어 느 유명한 화가가 어느 가정에 초대를 받아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바로 그 가정의 어린 딸의 생일이었습니다. 저녁 식사가 차려지자 그 어린 딸은 얼굴에 기쁜 웃음을 함빡 머금고 그 날 생일 선물로 받은 조그맣고 예쁜 부채를 손님들에게 자랑했습니다. 그 화가는 어린 아이에게 줄 선물을 미리 준비하지 못해서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무엇인가를 선물로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볼펜을 하나 꺼내들고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이 아저씨가 네 부채에다 아주 예쁜 그림을 그려 줄터이니 그 부채를 나에게 주렴!” 그러자 그 아이는 금방 웃음을 멈추고 부채를 등 뒤로 감추는 것입니다. 그 모양이 귀여워서 화가는 다시 그 아이에게 부채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소녀는 이번에는 부채를 손에 꽉쥔 채 자기 방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만약 이 소녀가 부채를 달라고 한 사람이 유명한 화가였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 부채를 더 멋지게 장식할 수 있는 행운의 기회를 잡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더 멋진 부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그날 부채를 달라고 하는 화가의 정체를 몰랐기 때문에 이런 행운을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소녀는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화가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는 인간들에게 더 축복된 인생을 살도록 해 주겠다고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라고 하시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부채를 빼앗기는 줄 알고 도망 가는 아이처럼 하나님의 손길을 피해 도망가 버립니다. 멀리 떨어져 적당히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성도 여러분! 믿는 자들은 신앙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고집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쓸데 없는 닭고집을 가지면 안됩니다. 고집을 갖되 올바른 고집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고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집이 좋은 고집이냐 아니면 잘못된 고집이냐가 다릅니다. 아마 역 계신 분들 중에도 고집이 쎄다라는 말을 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다 고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고집 때문에 성공하여 멋진 인생을 사는가 하면 그 고집 때문에 인생이 다 찌그러진 양재기처럼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 에 대한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집에 불이 나서 외양간의 소를 끌어 내려고 하면 불빛을 무서워하는 소는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 외양간에 있는 여물통을 엎어 버리면 그제서야 소는 그 곳이 자기가 있을 곳이 못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제 발로 걸어 나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계획대로 인도하지만 사람이 고집부리며 순종하지 않으려 할 때 사용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잠시 엎으시는 것입니다. 육신에 병이 들어도 깨어지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플 때는 목사님을 찾아와서 “목사님, 기도 좀 해주세요. 병만 나으면 이제 예수 잘 믿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병이 나으면 “내가 언제 기도 받고 병이 나았나? 나을 때가 되어서 나았지”라고 말 하든지 아니면 “의사 때문에 나았지”라고 하면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쉬운 말로 해서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밥통이 엎어지면 주님 앞에 나옵니다. 몸에 심한 병이 들고 직장을 잃고, 하는 일마다 안되어 올 데 갈 데 없으면 그 때에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고 하며 주님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주 고약한 고집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잘되고 평안할 때에 주님께 손들고 나오는 사람입니다. 여물통 다 엎어진 다음에 나오면 그만큼 손해입니다.
그 래도 여물통 다 엎어진 다음에라도 나오는 사람은 괜찮습니다. 아예 쪽박을 차고 인생이 비참하게 끝나 버리는 불쌍한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발람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해 주실 정도로 하나님의 특별한 대우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발락이 보낸 사람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며 하나님이 복준 백성이니 그들을 저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마음 속에 돈과 명예를 갖고 싶은 욕심이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자꾸 자기가 원하는 대로 고집을 부렸습니다. 고집 부리며 하나님과 타협을 합니다. 자기의 고집은 꺽지 않으려 하며 하나님이 자기의 고집대로 따라 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그 고집 때문에 자기가 타고 다니던 나귀에게 책망을 듣는 멍청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에게 꾸중을 들어도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런데 그는 하찮은 나귀에게 책망을 듣는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결과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함께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고집부리던 발람은 영원히 멸망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반 면 좋은 고집, 즉 믿음의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실패할 것 같아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야곱을 보세요. 그는 자나깨나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한 사람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욕심내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형 에서의 손을 타치하고 나올 정도 입니다. 자기 형 에서 보다 늦게 태어나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것에 대해 늘 억울해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눈만뜨면 어떻게 해야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연구한 사람입니다. 아마 야곱이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면 박사학위인 Ph.D는 충분히 받았을 것입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축복과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있었던 방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팥죽 한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샀을 뿐 아니라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도 직접 받은 사람입니다. 물론 도덕적으로 따지면 야곱은 비겁한 사람이며 사기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도 야곱과 같은 신앙인으로서 그를 높이 평가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만큼 철저하게 신뢰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야곱 같이 이렇게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죽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 내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많이 없습니다. 계산기로 따져서 유익이 될 것 같으면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며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가요? 그런데 야곱은 아주 철저하게 하나님의 축복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이것은 진짜 하나님을 신뢰하는 고집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 만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이렇게 고집스럽게 하나님의 축복을 갈구하던 야곱이 어떻게 되었나요? 물론 잘못된 방법을 사용한 것 때문에 고생은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그를 축복해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러한 사람에게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다니엘을 보세요. 그는 분명 느부갓네살의 동상 이외의 것에 절하거나 기도하는 사람은 사자굴에 집어 넣겠다는 왕의 칙령이 내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를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왕의 명령을 어기고 기도하면 죽을 것이라는 사실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고집을 부렸습니다. 죽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고집입니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을 향해 문을 열어 놓고 자기가 늘 하던 방법대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당장 칙령이 내려 졌습니다. 사자굴에 던져 넣으라는 명령입니다. 며칠씩 굶은 사자 굴에 다니엘이 던져 진다는 사실은 사자 밥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고집을 부리던 다니엘이 사자굴에 떨어지자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사자들의 입이 다 붙어 버렸습니다. 모두 양같이 순해 졌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요? 하나님이 신앙의 고집을 부리자 이렇게 기적을 베풀어 그를 구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는 사람은 신앙의 고집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갈대와 같이 바람이 이쪽으로 불면 이쪽으로 흔들리고 저쪽으로 바람이 불면 저쪽으로 흔들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올바르고 견고한 고집을 끝까지 부릴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잘못된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 경고 합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 가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 하십니다. 악한 마음이란 불신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한 마음이란 믿음이 조금 작거나 부족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을 믿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우리 가운데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조심하라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 고집으로 인하여 그런 상태에 빠졌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 즉 안식처를 찾아 들어 가는 도중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그들은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원망하며 불신앙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그 결과 불신앙의 사람들은 모두 40여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다 그곳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축복의 땅에 들어 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함께 출발했습니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못된 불신앙의 고집 때문에 그들의 2세들만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여도 불신앙으로 받지 않으려 하면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Flat Earth Society'라는 단체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국에는 실제로 'Flat Earth Society'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말로 번역한다면 '평평한 지구학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지구는 평평한 것이지 결코 둥글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론가들입니다. 그러기에 지구가 둥굴게 생겼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나 모든 우주 비행사들이 지구가 둥글다고 말하는 이론에 의해 세뇌 교육을 받아 속고 있는 희생자들이라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그들은 우주 비행사들이 지구와 평행한 타원주를 돌면서 지구의 허리를 돌고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배가 수평선 아래로 점점 사라지다가 또 점점 솟아오르는 것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 아니라 원근 화법에 의한 자연현상이요 속임수라는 것이다.
그들은 "달이 투명체이므로 어떤 날 밤은 달을 통하여 별을 볼 수도 있는데 달에 착륙했다는 게 무슨 말이냐?" 라고 우깁니다. 아무리 분명한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해도 그들은 한 발자국도 자기들의 고집을 버리려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볼 때 얼마나 어리석은 주장들인가?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지구는 둥굴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 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다 이런 모습입니다. 아무리 진리를 제시해 주어도 고집을 부리며 믿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소개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다가 죽음의 문을 여는 순간 앗차하며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예 수를 믿지 않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은 어떤가요?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나요? 혹시 고집과 불신앙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법대로 고집 부리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하 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반역하던 때처럼 못된 고집을 부리지 말아라.” 특별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만 못된 고집 때문에 망한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은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영적으로 아브리함의 자녀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이 받았던 영적인 축복은 우리도 똑 같이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하나님을 반역하던 그때와 같이 못된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된 고집이 있으면 빨리 내려 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불순종은 결국 천국에 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우리의 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다 받아 누려야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하나님의 축복에 관심이 없다고 하시는 분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는 못된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의 못된 고집을 버릴 수 있을까요? 제가 두 가지의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이 두가지를 실천한다면 못된 고집이 선한 고집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 두 가지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과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다고 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은근히 다른 것을 의지할 때가 있습니다. 왜나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은 환경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다져지지 않은 사람은 환경에 따라 하나님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합니다. 마치 하나님을 고무풍선같이 생각합니다. 자신의 기분이 좋아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커 보이다가 기분이 나빠지면 작아 보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사람은 하나님은 언제나 견고한 바위이십니다. 자기를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자기의 상태에 따라 하나님이 변하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온전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신뢰하는 사람은 또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알라딘이라는 월트 디즈니에서 만든 어린이 영화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주인공인 알라딘과 제스민이라는 여자가 나옵니다. 알라딘은 거리를 방황하는 거지이며 제스민은 공주입니다. 그런데 제스민이라는 공주는 아버지가 정해 주는 남자에게 시집가라는 궁중의 법도에 불만을 품고 몰래 가출을 합니다. 시장통으로 나간 제스민 공주는 배고파 하는 어린 아이를 불쌍히 여겨 과일 하나를 집어 주므로 도둑으로 몰려 손목이 잘리려는 순간 알라딘이 나타나 구해 줍니다. 긴 이야기를 짧게 줄인다면 그 일로 인해 알라딘과 제스민 공주가 만나 알라딘이 사는 높은 옥상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왕의 카운셀러인 쟈파라는 나쁜 사람이 있는데 그가 알라딘을 납치하라는 명령을 내려 두 사람은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이때 알라딘이 제스민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Do you trust me?” 한국말로 번역하면 “너는 나를 신뢰하니?” 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손을 내 밀었습니다. 이때 제스민 공주는 알라딘이 묻는 말에 “예스” 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공주의 손을 잡은 알라딘은 “그러면 여기서 내려 뛰어!”라고 합니다. 이때 제스민 공주는 주저하지 않고 그 높은 빌딩 꼭대기에서 함께 뛰어 내렸습니다.
이게 바로 신뢰입니다.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거나 예수님을 신뢰한다는 말이 바로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나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라는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인은 어떤 의미에서는 큰 고집쟁이들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대로 밖에는 살 줄 몰라서 인간적 타협을 거부하고 오직 진리에만 붙잡힌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오늘날 진리의 파수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의 일을 하는데 열정적이고 어려움을 만나도 주님을 의지하며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성 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오직 오늘이라는 시간 밖에는 없습니다.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시간들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이 나에게 주어질 때 믿음을 갖고 열심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잘못된 고집이 있으면 오늘 집어 던져야 합니다. 내일 버리겠다고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내일은 우리의 것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루를 마치 일생처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루의 24시간이 여러분의 70년이라고 생각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루 중 한 시간이 여러분의 1년이나 2년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럴 때 순간순간 잘못된 고집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며 살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면 신앙의 낙오자가 되지 않고 천국가는 그때까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므로 여러분이 불순종을 만들어 내는 잘못된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삶이 되어 기쁘게 즐겁게 살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