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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믿음, 그리고...(몬1:1~21)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8|조회수0 목록 댓글 0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힘들고 억울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불평은 고사하고 감옥에서도 오히려 기뻐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만난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오네시모입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일하던 종이었는데요, 무슨 일인지 오네시모가 주인인 빌레몬을 배반하고 도망을 나온 모양입니다. 오네시모가 도망 나오면서 주인인 빌레몬에게도 적잖은 물질적 손해까지 끼치고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잡혀서 옥에 갇히게 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참 묘하신 분이시거든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어디로 가든지 꼭 따라다니시면서 일일이 다 간섭을 하신단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미리 만날 사람을 준비시켜 놓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오네시모가 주인에게 물질적 피해를 끼치고서 도망을 나왔다가 붙잡혀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거기에 사도 바울이 갇혀 있었던 겁니다. 보나마나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붙들고서 날마다 기도를 해 주면서 말씀을 가르쳐 주었을 겁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역사하시는데, 변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죄인이 변해서 의인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오네시모가 새 사람이 된 거예요.

 

사도 바울이 보니까 오네시모, 이 청년이 아주 쓸만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오네시모와 함께 동역을 했으면 좋겠다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게 된 겁니다.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은 당시에 아주 부자였고요, 지금 식으로 하면 개척교회 목회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의 편지 내용이 이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과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당신, 빌레몬에게 몇 글자 적어 봅니다. 사모님도 잘 계시죠?” 빌레몬 목사님의 사모님 이름이 압비아입니다. “압비아 사모님도 잘 계시죠? 목사님의 아드님, 아킵보도 많이 컸겠네요. 그저 아무쪼록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내가 항상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 목사님,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빌레몬 목사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시고 믿음이 좋으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믿음의 교제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8절부터 사도 바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 건데, 빌레몬 목사님에게 편지하기를 오네시모를 풀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겁니다. “내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오네시모를 만나서 열심히 가르치고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내가 감옥 안에서 낳은 내 영적인 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네시모는 옛날의 오네시모가 아닙니다.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네시모는 예전엔 당신에게 있어서 아무짝에도 슬모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주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기와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일꾼으로 쓰고 싶었던 거였어요.

 

사실은 빌레몬도 사도 바울에게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를 달라고 하면 가타부타 말할 입장은 아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억지로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기왕이면 정식으로 빌레몬의 승낙을 받아서 오네시모를 자신의 심복으로 쓰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니 이후로는 오네시모를 종으로 생각하지 말고, 종과 주인의 신분을 뛰어 넘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형제의 관계로 오네시모를 대해 달라는 부탁을 편지로 쓴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예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잘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하나님 앞에 소개하시면서 사도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부탁했던 것처럼 그런 심정이 아니셨을까 싶은 겁니다. “하나님, 여기 있는 아무개 성도를 위해서 내가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 죄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나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시옵소서!” 자,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도 바울과 빌레몬 그리고 오네시모, 이 세 사람의 관계를 보면 너무너무 감동입니다. 보통 삼각관계라고 하면 갈등 구조를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게 아니라 사랑으로 아주 끈끈하게, 아주 단단하게 이어진 완전한 사랑의 관계였던 거예요.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죄악에 빠져서 죽음의 길을 헤매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우리들을 변화시켜서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셨잖아요? 마찬가지로 오네시모가 사도 바울을 만나지 못했었다면 어떻게 새로운 오네시모가 탄생할 수가 있었겠어요?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우리가 새롭게 변화를 받을 수가 있었겠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일찍이 우리들을 택해 주시고 만나 주셨으니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변화를 받아서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정작 빌레몬이 용서하고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오네시모는 오갈 데가 없었을 거 아니겠어요?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세 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 5절과 6절 말씀을 보세요.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교회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교회 안에도 사랑이 가득해야 합니다. 사랑이 메말라서 만날 싸우고 다투는 교회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사랑이 없는 교회는 은혜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요한 아시죠? 야고보의 동생 요한 말입니다. 야고보와 요한, 이 두 사람은 성격이 불 같아서 별명이 ‘보아너게’였습니다.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보나마나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처럼 목소리도 컸을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지도자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하늘로서 오신 선생님이라는 걸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좋은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 말 저 말 다 필요 없고, 사람이 거듭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가기는커녕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는 것이오!” “거듭 나야 된다고요? 사람이 한 번 태어나면 그만이지 또 어떻게 다시 거듭 태어난단 말입니까? 이 나이 먹고 다시 엄마 뱃속에 들어갔다 나오란 말입니까?” “그게 아니고,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오.” 그러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이 말씀 한 마디에 ‘우레의 아들’이었던 요한이 변화를 받아서 지금까지도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갖게 된 줄 믿습니다. 그때부터 요한은 죽을 때까지 사랑만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사랑이 가득한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두 번째 말씀은 ‘믿음’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진정한 사랑은 믿음에서 나오는 줄 믿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깊은 사람들은 쉽게 사랑을 저버리지 않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에 바탕을 둔 믿음의 사람은 사랑도 쉽게 식어지질 않습니다. 빌레몬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랑과 용서가 가능했던 겁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 겸손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얼음은 고체이지만, 얼음이 녹으면 액체가 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계란은 겉으로 볼 땐 고체이지만, 깨지면 액체라는 거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살아있을 땐 육체이지만, 죽으면 시체에 불과하다는 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지금 숨 쉬고 산다고 10년, 20년 산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에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친교, 교제’입니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6절)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 고백입니다. 성도의 교제가 없는 교회는 말짱 도루묵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헛된 것이 되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유무상통하면서 있는 사람은 그 있는 것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드린 것 아니겠어요? 믿음이 있노라 하고 사랑이 있노라 하면 반드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 마치고 나서 점심 한 끼 같이 먹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모이기에 힘을 썼습니까? 그들이 모이면 뭘 했어요? 같이 한 자리에 모여서 떡을 떼면서 서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믿음의 교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자유인으로 만들어서 주님의 일꾼으로 쓰셨던 것처럼 죄와 사망에 매여 사탄의 종이었던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믿음 안에서 서로 서로 사랑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시는 우리 형곡반석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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