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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딛 1:1-4-정리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8|조회수1 목록 댓글 0

나는 누구인가

 

딛 1:1-4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4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인사(축원)와 연결과 서론(천천히 이해확인 반복 멈춤 한교훈 톤을낮게 관심과집중할 질문이나 예화 짧게)큐티

오늘 "나는 누구인가?"주제로 깨달음과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구호:주여!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오직 예수와 십자가만선포-예수 영접 구원)

 

 

‘정체성’(Identity)이란 말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기 인식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같지만 막상 말해 보려면 제대로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는 게 바빠서 내가 누구인지 깊이 생각해 볼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체성을 모르고, 또 알아도 그대로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안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지거나 생각지 못했던 위기를 겪게 될 때 정체성이 흔들립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내게도 이런 면이 있었나?” 혼란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어느 가게에 한밤중에 도둑이 침입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도둑이 아무 것도 훔치지 않고 이상한 짓을 하고 갔습니다.

가게 안에 있는 물건의 가격표를 바꿔치기 한 것입니다.

고가의 명품에는 싼 가격을 붙이고, 싸구려 물건에는 비싼 가격표를 붙였습니다.

다음 날 가게 주인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가게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비싼 물건을 싼 값에 팔고,

싼 물건을 비싼 값에 팔게 된 것입니다.

가게는 손해를 보았고, 주인이 알고 정정하려 하자 손님들의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알고 보니 이 도둑은 건너편 경쟁관계에 있는 가게 주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모른 채 살아가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진짜 가치 있는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자기 자신도 자기를 비하하며 살아갑니다.

반대로 형편없는 사람들이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양 행세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살아야 합니다.

정체성을 확립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을 올바로 살 수가 있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또 해야 할 일을 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디도서는 사도 바울이 제자인 디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레데 섬에 보내서 목회하고 있는 디도를 격려하고,

중요한 교훈을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습니다.

본문 1:1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바울이 이 편지를 자신을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체성을 명확하게 확립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체성의 근거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자기가 이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까요?

어떻게 이런 정체성을 가지게 됐을까요?

사실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도 나름대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빌 3:5-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통적으로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그야말로 순전한 이스라엘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면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유대교를 지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마치 자기보다 나은 유대인이 있으면 나와 보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한 마디로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자긍심입니다.

정말 대단한 정체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뒤에 달라집니다.

딤전 1:1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은 자신을 죄인들 중의 한 사람 정도가 아니라,

죄인들 가운데도 가장 큰 죄인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죄를 지은 정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교회를 해하려 했던, 그야말로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죄인 정도가 아니라 죄인 중의 최고의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서 말씀을 듣고 난 뒤에 자신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빌 3: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바울은 그동안 자기가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던 것들,

자기 정체성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해’로 여기게 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배설물, 조금 적나라한 표현으로 ‘’처럼 생각하게 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자기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던 자신의 모습을

마치 쓰레기 처분하듯이 깨끗하게 정리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골마을 창고에 오래된 그릇 하나가 있었습니다.

겉보기엔 낡고 금도 가고, 먼지가 쌓인 그릇이었습니다.

주인은 그것을 허름한 그릇으로 생각해서 닭 모이그릇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골동품 감정사가 그 마을을 지나다가 우연히 그 그릇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귀한 백자입니다.

희소성도 높고, 역사적 가치가 대단합니다.

박물관에서도 보기 힘든 보물입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닭 모이그릇으로 쓰던 그릇이 알고 보니 수천만 원,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골동품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주인이 깨닫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그릇이 이렇게 귀한 것이었구나

 

그렇습니다.

우리도 저마다 자신이 누구인지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판단해 온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종합해서 자기 정체성을 세워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허상입니다.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닙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정체성의 근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관적인 우리 자신의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사람들의 평가 위에 정체성의 근거를 두고 있었습니다.

자기 확신 위에 정체성의 근거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예수를 만나고 주님의 말씀을 들은 뒤에 자신에 대해 올바로 알게 됐습니다.

올바른 정체성의 근거를 찾게 된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말씀 위에 근거를 두고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동안 주변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근거로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 오지 않으셨습니까?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확신을 근거로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 오지 않으셨습니까?

그 근거들은 그저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자칫 우리 자신을 잘못 생각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올바로 알려면 올바른 근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에 근거하여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근거로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정체성의 성격

 

그러면 바울이 예수를 만난 뒤 새롭게 정립한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절을 보면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여기서 종이란 ‘노예’를 의미합니다.

노예는 주인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주인에게 소속된 존재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인이시고 자신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생각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여기서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철저하게 보낸 사람의 뜻에 순종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보내셨고,

자신은 보내신 분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았던 이 두 가지는 매우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관계 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뒤에 철저하게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사시는, 철저하게 주님과의 관계 속에

새롭게 빚어진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 빼고는 자신은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두 가지 정체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안의 정체성’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밖의 정체성’입니다.

예수 안의 정체성은 바울처럼 예수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정체성입니다.

이에 비해서 예수 밖의 정체성은 예수와 무관한 채 세워진 정체성입니다.

 

이 두 가지 정체성은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릅니다.

우선 정체성의 내용이 다릅니다.

예수 밖의 정체성은 우리가 어디 출신이냐, 현재 명함에 새겨진 직함이 무엇이냐,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가 구성 내용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의 정체성은 예수와의 관계가 핵심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갚기로 했는가

이런 것들이 정체성의 핵심 내용입니다.

 

다음으로 정체성의 지속성이 다릅니다.

예수 밖의 정체성은 상황이나 환경이 달라지면 흔들립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나갈 때 정체성이 든든하게 세워집니다.

그러나 실패하게 될 때 정체성이 크게 흔들립니다.

 

예를 들어서

좋은 대학을 나와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을 하고 빠르게 승진을 할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대상이 돼서 실직을 하게 되고

이직을 하지 못할 때, 낙심하게 되고 깊은 우울증을 겪게 됩니다.

 

이에 비해서 예수 안의 정체성은 상황이나 환경이 달라져도 여전히 든든하게 서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사역을 할 때 공동체에서

영적 권위를 인정받으며 정체성이 확고했습니다.

그러다 박해를 받으며 체포되어 맞고 감옥에 투옥이 되었지만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 안의 정체성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결코 예수를 빼놓고 나는 누구인지를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정체성의 역할

 

그러면 바울에게 정체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은 구체적인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가 사도라는 것을 깨닫게 하셔서 사도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명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택하셨지만

아직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들이 믿음을 갖게 하는 사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이미 믿는 사람들은

건한 삶을 살게 양육하고 이끌어주는 사명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체성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살게 할 뿐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사명자의 삶을 살게 하고 삶의 목적을 갖게 해 줍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본문 디도서는 바울이 디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런데 디도는 자기가 애지중지 양육해서 세운 자기의 제자입니다.

누구보다 자기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왜 이렇게 자기를 소개하는 말로 시작하고 있을까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바울은 무엇을 하든지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기 정체성에 맞게 하려는 거룩한 습관이 있다는 점입니다.

사도로서 사도에 걸맞은 편지를 쓰고,

사도에 걸맞은 사역을 하고,

그리고 사도에 걸맞은 삶을 살려고 힘썼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디도에게도 정체성을 잊지 말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디도가 그레데 섬에서 목회할 때 하나님의 종이고

주님께 보냄을 받은 사람임을 잊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디도도 자기의 정체성에 걸맞은 사역을 하고,

자기의 정체성에 걸맞은 삶을 살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교회 김선영 집사님이라는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세 자녀를 둔 평범한 주부입니다.

남편은 직장 일로 바쁘고,

아이들은 각기 학원에 다니느라 집 안은 늘 정신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삶 속에서 이분은 점점 지쳐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나는 그냥 밥하고, 청소하고, 잔소리나 하는 사람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데… 그 부르심은 도대체 뭘까?”

하루는 교회에서 여성 소그룹 모임을 인도하던 중에

딤후 1:5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 말씀을 읽는 순간,

“그래, 나는 단지 주부가 아니라,

아이들을 디모데처럼 양육하는 어머니다!”라고 깨닫게  되었고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 나는 엄마입니다. 아이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는 엄마입니다.”

그날부터 이분은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줄 때 기도했습니다.

아이가 잠든 후,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말씀 한 구절을 써서 도시락에 넣어주었습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믿음의 엄마들과 함께 기도하며 삶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면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이 정체성이 우리를 새롭게 세워줍니다.

이 정체성이 우리를 일하게 합니다.

이 정체성이 복된 열매를 거두게 합니다.

 

결론 적용(나 청중)호소 결심 결단합시다

오늘 "나는 누구인가 자기 정체성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는 게 바빠서 내가 누구인지도 잊고 살고 있지 않으십니까?

나름대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언제부터인지 희미해지지는 않았습니까?

 

다시 내가 누구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눈으로 나를 보고 말씀 위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정체성에 맞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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