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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성도의 삶(딤후4:1-8)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8|조회수0 목록 댓글 0

지금 세상에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무늬만 수박’이라는 말처럼, 그냥 교회생활 잘하고 외형적인 신앙의 모습만 보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보이는 신앙생활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까지도 조금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내장까지도 다 보이는 투명한 물고기를 보신 적 있습니까? 저는 그 물고기를 보면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저 모습이겠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거짓이 없는 진실한 순종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라고 엄하게 명령합니다. 이는 세상 속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함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지금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적인 환경이나 자기가 처한 상황을 말하면서 세상과의 타협적인 신앙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어떤 환경이 주어져 있습니까? 가정이나 직장이나 일에 대하여 불만이 있습니까? 어려운 생활이 불만입니까? 성경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그것이 이룰 때까지 온갖 고통과 어려운 시험과 고난의 환경을 견뎌야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어려움 없이 만사형통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마침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 고난의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순종했다.’라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한다고 우리의 환경이 바뀌지 않습니다.

현대 교회를 정신 나간 신데렐라에 비유한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쓴 책의 표지에는 남루한 누더기를 걸친 한 소녀가 유리 구두 한 짝을 손에 쥐고 앉아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 신학자의 설명은 이러합니다. “잠시 후면, 왕자님과 결혼하여 왕비가 될 것인데, 이 소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소녀는 미래의 행복과 영광을 보장하는 유리 구두 한 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멍하니 구두 한 짝만 내려다보고 있는 처량한 모습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이미 이 지상에서 예수님의 신부가 되었으며, 그 혜택을 여러 면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미래의 엄청난 행복과 영광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이런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세속적인 삶에 도취하여, 세상과 함께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신데렐라와 같습니다.”

지금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경영하심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시는 과정에 있습니다. 중동과 소련이 불타고 있습니다. 세계가 흔들리는 경제로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할 때,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어디로 향하여야 하겠습니까?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내용을 봅니다.

디모데 서신은 바울의 말년, 즉 로마에서 마지막 생애를 보내던 때인 것으로 보입니다. 순교를 앞둔 노년에, 사랑하는 영적 아들이자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걸어온 걸음들을 돌아보면서 젊은 목회자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에서의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여러 가지 목회지침을 가르칩니다. 특히 본문 말씀은 자기의 죽음이 임박한 사실을 알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서 또는 전도자의 책임을 다하라.’라고 엄하게 명령합니다.

본문 1절에서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라고 하십니다. 엄하게 명령하는 내용은 2-5절의 내용입니다. ‘말씀을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으며, 성도들의 허물을 바로잡고, 책망해야 할 때는 책망하고, 옳은 일을 행하도록 격려하고,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며 떠날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3-4절을 공동 번역으로 봅니다.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듣기 싫어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은 자기네 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마음에 맞는 교사들을 끌어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꾸며 낸 이야기에 마음을 팔 것입니다.”

이런 때가 지금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울은 ‘비록 이러할 때가 올 것이지만, 그런 것에 마음 쓰지 말고 맡은 사명을 다하라.’라고 명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현대어성경) “그러나 그대는 굳건히 서서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그대가 맡은 사명을 다하시오.”

즉 ‘다가오는 세상 환경을 따라가지 말고, 고난이 닥치더라도 굳게 서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책임을 다하라.’라고 하십니다. 바울 자신은 ‘이미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으므로, 이제 남은 것은 주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받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바울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 서는 때’라고 했습니다. 즉 자기의 일을 결산하는 순간입니다.

※ 지금, 나는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까?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18세기 영국의 평론가이며 역사가입니다. 그는 ‘인간은 희망에 기초를 둔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 소유를 다 빼앗긴다 해도 나는 오직 한 가지, 희망만은 품기를 원한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에는 항상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의 활기를 잃거나 삶에 회의를 가질 때, 절망스러울 때도 찾아오기 마련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칼라일은 어떤 환경에서도 미래에 관한 희망에 모든 관심을 두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미래의 부활에 관한 소망에 모든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다만, 내가 관심을 두어야 할 소망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3-4절에서 ‘디모데가 당면한 현실의 환경’을 지적했습니다. 디모데가 당면한 환경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무관심하게 되고, 외식적인 신앙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환경 속에서 해야 할 일을 2절과 5절에서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며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즉, ‘직면한 환경이 어떠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직분과 직무를 충성스럽게 수행하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유대의 한 랍비가 성적이 부진한 제자 한 사람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랍비는 이 제자에게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하는 기도문을 외워보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은 처음 몇 줄 밖에 외우지 못했습니다. 다른 기도문에 대해서도 모두 그랬고, 지금까지 가르친 것도 거의 외우지 못했습니다. 랍비는 그 제자를 나무랐습니다. 젊은이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아갔습니다.

며칠 뒤, 랍비는 그 제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제자는 병으로 앓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집에 가서 거들어 주고,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일하여 돈을 보내는 등.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랍비는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랍비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에 생각한 건 이내 행동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여러 권의 책을 읽어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마음을 밭 갈지 않는다면 알고 있는데 머물고 만다. 마음을 밭갈이함은 두뇌를 밭갈이함보다 더 값지다.”

랍비의 가르침은 ‘많이 배워서 아는 것보다, 배운 것을 행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라는 의미입니다. 약2:14-17절을 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사:58:6-7절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 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생활 속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즉, 세상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은 알고 있고 믿는 하나님 말씀을 생활 속에서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일은,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거창하고 위대한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앞에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에게 크고 위대한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말과 행동이 진실하고, 슬픈 사람을 위로하고, 아픈 사람을 돌아보며, 별 볼 일 없는 이야기라도 기꺼이 들어주는 작은 것입니다.

그럴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화목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부부가 행동하는 것, 가족들에게서 오가는 대화를 듣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요즘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에게서 들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회에서 소외되어 교회를 찾아왔는데, 교회에서도 소외되는 외로움으로 교회를 떠난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에 실망하여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거부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별다른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세상 사람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내가 보인 행동 하나, 우리 가정의 모습이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마23:1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18:7절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이것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명하신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본문 2, 5절에서 디모데에게 말씀하신 내용은 디모데가 마땅히 지키고 행하여야 하는 직무였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명하신 대표적인 직무는 마5:16절에 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처럼 세상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때 이곳에 살게 하시고 이런 일을 하게 하셨겠습니까? 지금 내가 사는 곳, 내가 일하는 터전, 당면하는 세상의 일들. 이 모든 환경과 상황은 의미 없고 목적 없는 것이 없습니다. 잠언 16:4절에서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히 하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삶의 자리에서 진정으로 실천해야 할 긴급한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신 적 있습니까? 고고학의 탐험과 모험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이야기의 소재는 실화로서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탐험가로 알려진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 박사의 일화입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박물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는 매일 남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서 박물관의 바닥을 닦았습니다. 청년은 항상 행복한 표정으로 바닥을 닦았습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아니, 대학 교육까지 받은 사람이 굳이 바닥 청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자 채프먼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이곳은 그냥 바닥이 아니에요. 박물관이잖아요.” 그는 머지않아 박물관의 정직원으로 채용되었으며, 알래스카 등을 찾아다니며 고래와 포유동물에 관한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권위 있는 고고학자가 되었고, 훗날 미국 뉴욕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 관장까지 맡았습니다.

롬12:3절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리고 엡 4:7절에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지금 내가 어떤 자리에 있고, 어떤 일을 하느냐? 라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머물게 하신 자리와 맡겨 주신 일에 최선으로 성실하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며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8절 말씀에 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의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다가오는 험한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되게 행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보상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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