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뉴스가 있었습니다.
칠레의 한 탄광에서 매몰되었던 서른 세 명의 광부들이 사고 발생 69일 만에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뉴스입니다.
지하 625m 갱도에 갇혀서 무려 69일을 견뎌낸 광부들의 소식인데요, 이 사람들이 무사히 구조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심리적인 안정을 돕기 위한 심리학자들이 있었고요, 이들의 건강을 체크해 주는 의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폐쇄 공간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미연방 항공 우주국(NASA)에서도 직원이 파송되었었답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무사히 살아서 귀환하기까지에는 그들만의 비밀이 있었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팠기 때문에 사람을 잡아먹을 생각까지도 했었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들 가운데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지도자가 만들어졌고, 갱 안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지도자의 통제에 따라서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예배도 드렸고요, 그 안에서 게임도 즐기고 영화도 보면서 정해진 시간에 불을 켜고 정해진 시간에 불을 꺼서 깜깜한 지하 땅굴 속이었지만, 나름대로 생체 리듬을 지켜나갔대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멀쩡한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무의미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불규칙하게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가장 기본적인 질서이자, 우리 몸에 가장 잘 맞는 생체리듬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지난 8월에 제가 ‘천국 매뉴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일이 있든지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매뉴얼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병설 집사님은 올해 연세가 90세인데, 일평생 농사를 짓느라 무척 고생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주일만 되면 뒤도 안 돌아 보시고 교회로 나오십니다.
오수균 집사님은 2박 3일 가족 모임이 있어서 어디로 놀러 가더라도 토요일이면 무조건 집으로 와서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공동주 집사님은 요즘 사과 농사일이 얼마나 바쁜 때인지 몰라요.
그런데도 주일이면 모든 일손을 다 놓고 교회로 달려 나와서 예배를 드려요.
이것이 우리들이 꼭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천국 매뉴얼’입니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것이 몸에 배여서 그 리듬이 깨지지 않으면 만사형통입니다.
그런 신앙을 만드는 기초가 뭔지 아세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당시만 해도 이단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불과 몇 십 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복음을 변질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주 단호하게 외쳤습니다.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 8절 말씀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천사들이나 이 세상의 그 어떤 존재라도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바울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방인들에게는 물론이고 자기 동족 유대인들에게까지도 수도 없이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고린도 후서 11장 23절 이하의 말씀을 읽어보면 정말 바울이 복음 전하는 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잘 알 수가 있는데요.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옥에 갇히기도 했고요, 매도 수도 없이 많이 맞았고요,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습니다.
유대인들의 태형 가운데 제일 심한 태형이 ‘40에 하나 감한 매’거든요.
40대를 맞으면 거의 혼절하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나마 자비를 베푼다는 뜻에서 40대를 다 안 때리고 40에서 하나를 감한 서른아홉 대를 때리는 거예요.
그렇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세 번 태장으로 맞았고요, 한번은 돌로 맞았고요, 또 선교 여행을 다니다가 보니까 옛날에는 교통수단이 시원찮았었던 때였잖아요?
배를 타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폭풍에 배가 파선해서 일주야(一晝夜)를 깊은 바다에서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여기 저기 다니다 보니까, 강을 건널 때에는 강의 위험이 있었고요, 언제 어디서 강도가 나타날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온갖 모함이라는 모함은 다 들었습니다.
잠을 제대로 잤겠습니까? 밥을 제때에 꼬박꼬박 챙겨 먹었겠습니까?
옷이나 제대로 입고 다녔겠어요?
그러니 낮에는 더위에 허덕이고, 밤에는 추위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런 고생을 하고 다녔을까요?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빌3:8) - 할렐루야!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결혼도 하지 않고, 미친 듯이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해 놓고 다른 곳으로 가기만 하면 얼마 안 가서 이단사상이 교회 안에 침투를 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켜 놓는 거예요.
그러니 사도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지금처럼 금방 차타고 한 두 시간 만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사도 바울은 옥에 갇혀 있어서 몸이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나는 이렇게 감옥에 매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매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분명히 단언하건데,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어 있지 않고 역사하고 계신다!”(믿습니까?)
나는 복음을 전하다가 복음 때문에 이렇게 죄인 취급을 받고 죄인처럼 매어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어있지 않다는 거예요.
내가 잠간동안 옥에 갇혀 있어서 복음을 전하러 다니지 못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매어있지 않고 살아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할렐루야!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서 복음이 전파되고 있고요,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꿈틀꿈틀 역사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울은 모든 것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2절 이하의 말씀을 보니까, 자기는 지금 옥에 갇혀 있지만, 자기가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이기 때문에!(롬8:28) - 믿습니까?
자, 그러면 우리들이 전해들은 하나님의 말씀, 우리들이 전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일까요?
첫 번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핵심은 ‘항상 미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예요.
‘미쁘다’는 말은 요즘엔 잘 안 쓰는 말인데요, ‘미덥다’라는 뜻입니다.
미덥다라는 말도 좀 생소하죠?
‘믿음직스럽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간다’라는 뜻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되지 않고 진실하기 때문에 믿을 수 밖에 없는 말씀입니다!
미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전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사람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왠지 모르게 자꾸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고요, 처음 만났는데도 어딘가 모르게 믿음이 가고 듬직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고 해도 100% 완전한 사람은 없어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사람이 속이냐? 돈이 속이지!”
사람은 아무리 진실하려고 해도 상황이 그렇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어쩌겠어요? 능력이 없는데…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도 신실하시고 미쁘신 말씀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1절에서 13절 말씀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기꺼이 우리들도 예수님을 위해서 죽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무슨 배짱으로요?
내가 예수 안에서 죽으면, 주님께서 나를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려 주실 거니까! 할렐루야!
주와 함께 죽으면 주와 함께 다시 살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신 미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8절 말씀을 다 같이 봉독해 보실까요?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히 기억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어떤 사람은 요한복음을 통째로 다 외우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정말 대단하잖아요?
설교를 하는데 성경은 보지도 않고 어디 몇 장 몇 절, 어디 몇 장 몇 절, 그러면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줄줄줄줄 다 외우더라고요.
그런데 결국 그 사람이 나중엔 이단이 되고 말더라고요.
성경을 외우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성경을 달달달달 외운다고 해도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다.’라고 말을 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또 아무리 똑똑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어떻게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을 다 기억할 수가 있겠어요?
젊었을 때에는 똑똑하고 기억력이 좋아서 달달달달 외우면 되겠지만, 그게 얼마나 가냐고요?
나이가 들고 건망증이 심해지고 나중에 치매가 오고 그러면 외웠던 거 다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난 척을 하고 똑똑한 척을 해도 인간들은 다 그래요.
내 기억력을 믿을 수가 없고요, 또 그 기억력이 그렇게 오래 가질 못합니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말씀대로 죽으시고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미쁘신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매어있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역사를 하시는지 아세요?
매어있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세우고 계십니다.
15절 말씀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매어있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 앞에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여러분 자신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다시 살아나신 미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를 부끄러울 것이 없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