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남편 마온 황무지 아라바(23:24)에서 다윗은 사울의 군대에 의해 거의 포위된 상태로 체포될 뻔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블레셋이 침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지게 되었고 사울은 그 소식에 급히 철수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이 셀라 하마느곳이라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셀라 하마느곳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큰 위험을 모면한 다윗은 그 다음에 보다 안전한 장소를 찾아 떠났는데, 그곳이 사해 서쪽에 있는 벼랑과 굴이 많은 엔게디 요새입니다. 본문은 엔게디 요새에 있는 한 굴에서 있었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 밀고자가 다윗이 엔게디 요새에 있다는 소식을 알려주자 사울은 군사 3천을 이끌고 다윗을 잡으러 가게 되었습니다. 가도 도중에 사울은 피곤해서 한 굴에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그 굴의 깊은 곳에서는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먼저 들어와 숨어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울이 들어와 잠을 자니 다윗이 마음만 먹으면 사울을 금방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잠자는 사울을 죽이지 않고 그의 겉옷자락만 베어내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다윗의 몇가지 탁월한 성품을 살펴보게 됩니다.
1) 사울의 머리를 베지 않고 겉옷자락을 베었던 점(4절)
2) 겉옷자락을 베고도 마음이 찔렸던 점(5절)
3) 여호와의 기르부으심의 의미를 소중히 여겼던 점(6절)
4) 추종자들에게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했던 점(7절)
이 장면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1. 기회를 살리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살리십시오
기회보다 하나님의 뜻이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기회를 죽일 때도 있어야 합니다. 기회를 살리는 것보다 그 기회가 바로 하나님이 주신 기회인가 하는 것을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쫓기는 다윗에게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이 눈앞에서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의 목을 치겠다는 결단을 하기만 하면 다윗의 고난은 순간적으로 끝납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러나 그는 그 기회를 살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회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기회가 올 때 그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서 만든 기회도 있습니다. 그런 기회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살려야 하지만 기회가 왔다고 무조건 그 기회를 잘 살리고자 하면 부작용이 얼마나 심한지 모릅니다. 만약 다윗이 엔게디 굴에서 주어진 그 기회를 살리면 그것은 쿠테타, 역모가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정당방위라 변명해도 그의 명성에는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군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왔다고 무조건 덤벼들지 말고 진정 그 기회가 진정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인지, 그리고 그 기회를 살리는 방법이 하나님의 원리에 합당한 방법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는 기회를 잠시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이 더 놀라운 기회를 열어 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분별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의 9가지 은사를 논할 때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가장 먼저 열거되고 있고, 심지어는 '믿음'의 은사보다 먼저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십시오. 신앙생활에서 믿음은 중요한 것이지만 바른 믿음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볼 때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2. 나의 잘못에 예민하고 남의 잘못에 둔감하십시오
다윗이 잠자고 있는 사울의 겉옷자락을 베고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인데 그 사소한 일에 마음이 찔렸습니다(5절). 자신의 바르지 못한 일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예민했던 다윗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실상 사울이 그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했습니까. 죄 없는 그를 죽이려고 한 적이 몇 번입니까. 그러한 잘못에 비하면 그가 사울의 겉옷자락을 벤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입니까.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잘못에는 둔감했고 자신의 잘못에는 예민했습니다. 사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훌륭한 점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에는 둔감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에는 예민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한없이 철저합니다.
진정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자신에게는 철저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남을 철저하게 관리하려고 하는 사람이 되기 이전에 자기를 철저하게 관리하려고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3. 상황에 좌우되는 사람이 아니라 일관된 사람이 되십시오
본문과 같은 상황에서 다윗이 사울을 대적하는 모습을 보여도 정당방위로 이해해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상황과는 상관없이 사울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원수로 보지 않고 여전히 '주'로 보았습니다.
남이 미워한다고 해서 나도 미워하는 사람! 남이 나에게 악하게 대한다고 해서 나도 악하게 대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상황에 좌우되는 사람입니다. '상황에 좌우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은 다가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은 '상황이 어찌하지 못하는 일관된 사람'에게 다가옵니다.
남이 어떻게 하든 나는 하나님의 원리를 따르리라고 하는 사람! 사울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하나님이 뜻을 행하리라고 하는 다윗과 같은 사람! 내가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울도 역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중시했기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의 뜻을 포기했던 다윗과 같은 사람! 이런 사람이 일관된 사람입니다.
여러분!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그리고 변함없이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상황이 그래서'라고 변명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여전한 사람이 되십시오. 꾸준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은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 있는 그 자리를 지키십시오! 여러분의 영적 주소를 너무 쉽게 변경하지 마십시오. 이미 하나님의 축복의 소포가 여러분이 있는 그 주소로 배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그 자리를 떠나면 여러분은 그 소포를 전달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