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erformanda)라는 이 명제는 종교개혁자들의 표어이며, 교리갱신의 당위성(當爲性, sollen)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교회 갱신의 당위성의 구체적인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하나님되게'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되게'하는 일이란 본문 3절 상반절의 말씀대로입니다. 즉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법정신을 따라 실천하는 일입니다. 본문 23절 하반절의 말씀대로입니다. 즉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가지의 교회개혁의 내용을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보여준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을 통해서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시야왕이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은 성전에서 율법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서가 발견된 경위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이스라엘 왕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성실하지 못했고 또한 백성들에게도 선정(善政)을 펴지를 못했습니다. 더욱이나 왕들은 하나님을 저 버리고 이방나라의 우상들을 만들어 세워놓고 거기에 재물을 바쳐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왕들은 '하나님의 거룩성'과 '하나님의 전'을 더럽히는 불경스러운 일을 행한 것입니다. 이같은 불경스러운 시기에 요시야왕이 즉위하였습니다.(B.C 638) 그가 즉위한지 18년이 되던 해에 더럽혀진 하나님의 거룩성과 성전을 회복하는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곧 성전을 수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성전 수리를 대제사장 힐기야로 하여금 하게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은 성전 감독자와 목수와 건축자, 그리고 미장이들을 동원하여 성전을 수리하였습니다. 이들이 성전을 수리하는 동안에 한 권의 책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B.C 621)
이 책은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책이며 후에 예언자들에 의해서 새로운 정신으로 개정 수집 편집되어진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이 언젠가는 후세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국가적 민족적 중흥을 위한 개혁의 원리로서 사용될 것을 기대하고 성전 서제에 두었던 율법들의 요약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발견된 율법책이 요시야 왕에게 전해졌습니다. 요시야왕은 서기관 사반으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은 이 율법책의 내용을 듣자 자기 옷을 찢으며,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로 하여금 왕과 온 백성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하나님께 나아가 여쭈어 보라고 했습니다. (왕하 22:13) 그리하여 그들은 여선지자 훌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선지자 훌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첫째는 유다왕에게 책에 적혀 있는 재앙을 하나님께서 내리시겠다는 것과 하나님의 분노가 불길같이 떨어지면 아무도 그 불길을 끄지 못하리라는 무서운 심판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의 말씀은 이같은 하나님의 심판을 거두시겠다는 구원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말씀은 잘못을 회개하는 것이 전제가 될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여선지자 훌다의 입을 통해서 대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요시야 왕은 그 책에 기록된 것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의 시작입니다.
우선 요시야왕이 먼저 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을 소집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다국민들과 예루살렘 시민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의 무론노소(無論老少)하고 모드가 왕과 함께 성전에 올라가 성전에서 발견된 책을 공중 앞에서 읽게 하여 그 말씀을 듣게 하였습니다. 그런 후에 요시야왕은 여호와 앞에 서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서약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도 모두 그 언약을 따라 지키겠다고 서약하였습니다.
그 다음 요시야왕이 한 것이 성전을 정결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시야왕이 서약한 것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일입니다. 즉 요시야왕은 옛 가나안의 신들인 바알과 아세라와 앗수르-바벨론의 신들인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모든 기구들을 성전에서 내어다가 예루살렘성 바깥에서 불사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유다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고을과 예루살렘 사면에 있는 산당에서 분향하며 제사를 지내며 우상을 섬기게 한 가짜(거짓)제사장들을 파면시켰으며, 그는 또 바알과 해와 달과 성좌들과 기타 모든 천체들 앞에 제물을 바치던 제사장들도 파면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시야왕은 우상숭배를 위해 세워둔 모든 산당들과 제단들을 허물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그동안 유다왕들과 방백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과 모든 백성들이 행한 악은,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나 율례를 따라 오로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 말씀에 복종하여 이웃을 사랑하며 의롭게 살아야 할 그들이 하나님을 저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불의를 행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악행이었습니다. 따라서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이란 바로 이토록 더럽혀진 하나님의 거룩성과 성전을 회복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이 또한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의 원리인 것입니다. 이같은 종교개혁의 원리를 다른 말로하면, '한 민족, 한 하나님, 한 성전'의 원리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택한 유일의 '선민'이며 그러므로 이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이스라엘 민족의 단일성과 하나님의 유일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예배는 다만 예루살렘에서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민족, 한 하나님, 한 성전'이라는 개혁원리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우리는 앞서 서두에서 교회갱신의 당위성, 두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하나님되게'하는 일과 '법정신을 따라 실천하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이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되게'하는 일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유일신으로 믿고 그에게만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하며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의 거룩성'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법정신을 따라 실천하는 일'이란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따라 사는 일인데 이것은 곧 법 정신인 사람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하는 갱신의 과제인 것입니다. 즉 더럽혀진 성전의 거룩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자고로 성전(교회)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법(율법, 법도, 율례)이 실천되어야 하는 곳인데, 그같은 일이 실천되지 않고 특정인들의 치부하는 부패하고 더럽혀진 곳이 되어왔습니다.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이나 예수님의 성전숙청사건이나 마르틴 루터나 요한 칼빈의 종교개혁은 모두가 다 이같은 맥락에서 시도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한국교회 이대로 좋은가'라는 문제제기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이같은 문제제기는 교회갱신의 의지를 담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문제제기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급속도로 성장하였는데,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와서 한국교회 이대로 좋은가 라는 질문 앞에서 "한국교회는 갱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많이 변질되었으며 따라서 제 2의 종교개혁이 필요로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달라지고 갱신되어야 할 것인가를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처음 주제로 돌아가서 개혁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째는 '하나님의 거룩성'회복, 즉 '하나님을 하나님되게'하는 일입니다. 종종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한국교회가 성장제일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부패한 예루살렘 성전화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며 중세 암흑시대의 기독교왕국화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닌가 라는 문제제기를 또다시 해봅니다. 이 둘은 모두가 하나님을 경시하는 일이고 하나님 대신에 '물질'(Mammon)을 섬기는 타락하고 부패한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은 유다왕들과 온 백성들이 섬기고 예배했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한 것과 같은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입에 담기가 거북한 말입니다만, 지금 한국교회가 돈판이 되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돈을 쓰지 않고는 교단장이 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총회장이 되기 위해서 수억을 써야 한다니 이것이 돈판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또한 요즈음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흘러 나오는 설교의 내용이 '고난'보다는 영광이며 성공과 축복입니다. 성공과 축복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그것은 돈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교회의 강단이 '복음'보다는 무속신앙에서 강조하고 있는 건강축복, 재물축복 등 횡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 강단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즈음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가지고 목회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교회갱신의 당위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법정신'을 따라 실천하는 일입니다. '법정신'은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몸집을 커졌지만, 큰 몸집에 비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또한 사회변혁을 위해 도무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법정신인 '사랑'이 실천되지 않고 있으며 또한 '정의'가 실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정의는 둘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예배하기 위해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예배하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를 거부하였습니다.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불의하게 얻은 재물, 즉 피흘린 손으로 드린 재물을 거부한 것이고 법형식을 잘 지켰다고는 하지만 법정신인 사람을 이웃에게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바친 예배와 재물을 거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여러분들의 선교사역이 이같은 맥락에서 늘 새로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즉 여러분들의 선교사역이 '하나님이 하나님되는' 즉 '하나님의 거룩성'을 회복하는 일이 되며 나아가 법정신인 '사랑'이 실천되는 선교현장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