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셔서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지키시고 복을 주신 행복한 민족이었습니다.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시키시고, 광야의 시련을 견디게 하시고, 가나안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렇게 특별히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슨 대단한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은 단 하나, 오직 하나님만을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고 경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말씀을 따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듯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대접해 드리는 것, 그것 하나였습니다. 세상의 다른 우상들처럼 값비싼 제물이나 사람의 희생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혐오하시고 금지하셨습니다.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그런 것들은 아무 필요 없는 것이었지요. 하나님은 오직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순종과 믿음, 그것만을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것조차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말고 다른 이방의 우상들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거기 절하고 경배하고 거기다가 제물을 바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적인 관습에 따라 차마 할 수 없는 일들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질렀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남쪽 유다만 남아 있을 때, 히스기야 왕의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되어서 한 일들인데요,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바알을 섬기는 제단을 쌓았으며, 이스라엘 왕 아합이 한 것처럼, 아세라 목상도 만들었다. 그는 또 하늘의 별을 숭배하고 섬겼다. 또 그는, 주님께서 일찍이 ‘내가 예루살렘 안에 나의 이름을 두겠다’ 하고 말씀하신 주님의 성전 안에도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었다. 주님의 성전 안팎 두 뜰에도 하늘의 별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아들들을 불살라 바치는 일도 하고,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게도 하고, 마술사를 시켜 마법을 부리게도 하고, 악령과 귀신을 불러내어 물어 보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많이 하여, 주님께서 진노하시게 하였다.”(왕하21:3-6)
이미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범죄를 더 이상 두고 보실 수 없어서 앗시리아를 통해서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신 후였습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전례를 보고 정신 차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므낫세가 왕이 되자 이스라엘은 이방인들보다 오히려 더 악한 일을 하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멋대로 죄를 지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남유다마저 멸망시키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보내겠다. 이 재앙의 소식을 듣는 사람은 누구나 가슴이 내려앉을 것이다. 사람이 접시를 닦아 엎어 놓는 것처럼, 내가 예루살렘을 말끔히 닦아 내겠다. 내가 내 소유인, 내 백성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을 모두 내버리겠고, 그들을 원수의 손에 넘겨 주겠다.”(왕하21:12-14)
므낫세가 죽은 후 그 아들 아몬이 왕이 되었고, 아몬이 죽은 후에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요시야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고,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을 본받아, 곁길로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동안 방치되어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수리하던 도중에, 그동안 없어진 줄 알았던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는 애통해 하며 자기의 옷을 찢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얼마나 제멋대로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내린 모든 재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 율법책에 기록된 그대로 유다에게도 재앙을 내리시기로 한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요시야는 유다의 모든 백성을 예루살렘 성전에 소집했습니다.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과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어른으로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이 요시야 왕과 함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크게 읽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를 것과, 온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과, 이 책에 적힌 언약의 말씀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언약을, 주님 앞에서 세웠습니다. 온 백성도 왕과 함께 그 언약에 동참하였습니다. 왕은 우상을 섬기는 모든 기구들을 불태우게 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을 모두 몰아냈습니다.
이 일을 가리켜서 요시야의 종교개혁이라고 부릅니다. 이 개혁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세우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모시고 순종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하나님 대접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리에서 쫓겨나 계시던 하나님을 다시 그 자리로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에는 성경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듣고 따르는 것이 바로 개혁의 시작이었고, 완성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그렇게 우상을 섬기고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에게 모든 것을 바쳤던 이유는, 그렇게 하면 더 복을 많이 받고, 더 안전하고, 더 부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한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하나님 말씀만 따르는 건 위태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일이 귀찮고 까다롭고 어렵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우상들은 제사만 거창하게 바치면 된다고 하는데, 왜 하나님은 우리 일상생활까지 간섭하면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시는 거야, 귀찮아, 불편해, 그러면서 복은 더 많이 주겠다고 하고, 생활에는 간섭하지 않는 이방의 우상에게 더 마음이 끌렸던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하게 여기다 보니, 결국 그 말씀 자체가 사라져버리고 마는 결과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살게 되었고, 그것은 곧 하나님 없이 살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닌 다른 모든 우상들, 이방의 악한 풍습과 제도를 하나님 대신으로 섬기고, 그게 하나님이라고 믿고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고, 이스라엘은 오히려 이방인보다 더 철저하게 우상에게 빠지게 되었고, 우상을 섬기는 일에 더 열심을 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이방인보다 더 악한 민족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켰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 등장한 것이 바로 요시야 왕이었습니다. 요시야왕은 성경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서 신접한 자와 박수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혐오스러운 것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없애 버렸습니다. 성경은 요시야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이와 같이 마음을 다 기울이고 생명을 다하고 힘을 다 기울여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주님께로 돌아간 왕은, 이전에도 없었고 그 뒤로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왕하23:25)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오늘을 종교개혁주일로 정한 것은 1517년에 독일의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의 문에 면죄부의 부당성을 지적한 95개조의 항의문을 게시한 것을 종교개혁의 기점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마틴 루터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 낸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개혁의 핵심이 바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중세 가톨릭교회가 성경을 닫고 교회의 가르침, 교회의 전통만을 따르고 거기 순종하도록 교인들에게 강요해왔던 거지요. 가톨릭교회는 성경을 읽지도 못하고, 번역하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설교를 하는 신부들 중에도 성경을 읽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설교가 성경말씀에 근거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개혁자들은 교회의 가르침과 교회의 전통이 너무나 성경에서 멀어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체코의 개혁자 얀 후스는 교회의 주장이 오직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할 때에만 교회에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결국 그것 때문에 가톨릭교회에 의해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오직 성경만이 우리 믿음의 근거요 표준이며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외쳤습니다.
오늘 우리도 종교개혁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성경을 어느 자리에 놓고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까? 만약에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는 성경을 읽고 있습니까? 성경을 읽고 있다면, 성경 말씀대로 살고 있습니까? 성경이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까? 성경이 우리 삶의 표준이 되고 있습니까?
일본의 유명한 과학자요 신앙인이었던 우찌무라 간조 선생에게 어느 날 한 대학생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성경을 믿고 싶은데 성경에서 예수가 물 위를 걸어갔다든지, 또 죽었다가 살았다든지 그런 거만 빼놓고 믿으면 안 됩니까? 왜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을 믿도록 강요하십니까?”
그러자 우찌무라 간조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학생은 성경의 첫 말씀인 창세기 1장 1절을 알고 있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아닙니까?”
“맞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거 기적 아닌가?”
“기적이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그게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성경은 기적으로 시작된다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마지막에는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이라는 말이 나오지. 죽으시고, 승천하셨다가 영광중에 구름 타고 다시 오실 예수님. 그 또한 기적 아닌가 말일세. 그러니 성경에서 기적을 다 빼버린다면 앞표지와 뒤표지만 남게 되는 거라네.”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믿습니까? 혹시 우리는 앞표지와 뒤표지만 믿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들, 그 놀라운 역사들을 우리는 말씀 그대로 믿습니까? 성경의 그 모든 이야기들이 우리와는 상관없는, 그냥 책 속의 이야기인 채로 남아있지는 않습니까?
지금도 참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과는 상관없이 교리나 어떤 사람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믿고 따르는 것을 봅니다. 요즘 신천지라는 이단이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거기서 빠져 나온 사람이 하는 말이, 거기 포섭돼서 성경공부를 하다 보니까, 처음에는 성경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거기 빠져들고 세뇌되고 나니까, 이제는 아예 성경은 필요 없게 되더라는 겁니다. 성경하고 아무 상관없는 교주 이만희의 말만 들으면 되니까요. 교회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까요? 성경과 상관없는 목사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어떤 목적을 위해서 성경을 멋대로 짜 맞춘 이야기를 마치 하나님의 말씀처럼 믿고 따르는 경우는 없을까요? 성경과 상관없는 어떤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신비체험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처럼 철썩 같이 믿고 거기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는 없을까요? 천국을 보고 왔다느니,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들었다느니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는 않나요? 그런 이야기들을 성경보다 더 믿으면서 오히려 성경을 무시하고 외면하고 있지는 않나요? 혹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온 말은 철썩같이 믿으면서, 성경의 가르침은 의심하고 무시하지는 않나요?
성경을 읽고,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 그 말씀대로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부모 말 안 듣는 건, 부모를 무시하기 때문이겠지요. 회사에서 상사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건 상사를 상사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대로 살지 않는 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거지요.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고 인정도 하지 않는 겁니다.
성경을 읽지도 않고, 읽어도 믿지도 않고, 믿어도 행하지도 않는 것이 이스라엘과 중세 가톨릭의 공통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생각과 말이 우선이고, 그걸 더 믿고 따랐던 것이 그들이 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고집이 더 중요하고 앞서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는 없을까요? 그들보다 우리가 더 심하다고 하면 심한 말일까요?
요즘 방송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기독교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대개 기독교가 잘못하고 있다, 문제가 있다는 식의 보도들입니다. 그러면, 기독교 단체들은 발끈해서 반박하고 항의하고 종교탄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보도하는 내용들을 보면, 대부분 일반인의 건강한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 거리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도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누가 봐도 잘 했다고 하기 힘든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확성기로 소리 지르면서 전도를 한다거나, 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과 쌍욕을 해가면서 싸움을 한다거나 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전도하는 걸 방해하는 사람과 싸우려고 전기 충격기까지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셨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성경에 전도하라고 하셨으니까, 성경말씀대로 그렇게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다 자기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말씀대로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그런 식으로 전도하라고 하는 대목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욕하고 싸우고 전기 충격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기를 공격하는 사람을 공격하라고 한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결같이 성경말씀 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아니라 자기 주장, 자기 고집, 자기 만족을 위해 하는 일을 성경 말씀대로 하는 거라고 하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종교개혁자들이 했던 일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기준과 자기 눈으로 성경을 읽고 자기 뜻대로 해석하던 것을 바꾸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즉 우리의 삶과 신앙을 읽어서 변화시키도록 한 것이 종교개혁이다.”
교회 안에서 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고, 거기서 끝납니다. 무슨 제도를 바꾸고 예배 순서를 바꾸고 하는 건 개혁의 본질이 아닙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그 말씀을 읽고, 믿고,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교회 개혁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개혁이 필요한 때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은 내팽개치고 사람만 따라다니고 사람만 숭배하는 모습을 지금 너무나 많이 보고 있습니다. 교회가 선포하는 말씀들이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이야기,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처세술에 머물러 있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방법을 포기하고 사람의 수단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용서를 잊어버리고 세상의 방법대로 이해관계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고 있습니다. 교회회가 거룩하고 순결하고 정직하려고 하기보다 물욕과 과시욕에 빠져서 추한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교회가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선 이스라엘이요, 종교개혁 앞에 선 로마 가톨릭 교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요시야는 종교개혁을 하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시키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성경을 읽게 하고, 그 말씀대로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요시야왕을 인정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유다 왕국은 끝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 때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유다에게 쏟으시려던 그 불타는 진노를 거두어들이지는 않으셨다. 므낫세가 주님을 너무나도 격노하시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내가 외면하였듯이, 유다도 내가 외면할 것이요, 내가 선택한 도성 예루살렘과 나의 이름을 두겠다고 말한 그 성전조차도, 내가 버리겠다.”
너무 늦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유다가 저지른 범죄가 너무나 크고,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나 심하게 하나님을 무시하고 외면했다는 겁니다. 비록 요시야는 애를 썼지만, 이스라엘 전체가 회복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십니다. 다만 요시야가 살아있을 때까지는 그 실행을 미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시면서 뭐라고 하실까요? 더 늦기 전에,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과 판단에 맞추어 읽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내 이해관계에 맞추어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청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개혁입니다.
종교개혁주일을 맞을 때마다,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언제쯤 가벼운 마음으로, 종교개혁을 기념할 수 있을까요? 지나간 옛날 얘기로 개혁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너무 늦기 전에,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리기 전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갑시다. 그래야 삽니다. 그래야 교회가 살고 그래야 우리가 삽니다. 교회가 살아야 나라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국민들이 삽니다. 교회가 살아있어야 이 땅의 백성들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칭찬받는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