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은 한국 교회에 대단히 중요한 해였습니다.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한국 교회에 다시 한 번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 해였습니다. 한국 교회 10만 성도가 상암운동장에 모여 예배를 드렸고, 각 교단들도 대형 집회를 열었으며, 선교단체와 개 교회들도 회개를 통한 부흥운동을 기대하며 한 해를 출발했습니다. 할렐루야교회도 1월 7일부터 1주일 동안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Transformation 2007’대회에 참석하였고, ‘우리를 새롭게 하여주옵소서’를 주제로 한국 교회의 소망에 동참했습니다. 이처럼 올 한 해 한국교회는 ‘부흥을 넘어서 변혁으로’가는 길을 추구해왔습니다. 한국 교회가 새로운 부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영적 부흥뿐 아니라 국가적인 대변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면서 부흥과 변혁을 추구한 한 해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영적인 방향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옛 성품과 습관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면서 인생의 궁극적인 방향이 하나님 쪽으로 전환되는 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첫 번째 변화는 우리 안에 예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을 말 합니다.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방향의 전환입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에게 이 근본적인 방향의 전환, 하나님을 향한 방향의 전환이 꼭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 속에 성령님이 오십니다. 내 속에 영원한 생명이 생겨서 다시 영적으로 태어난 사람이 됩니다.
두 번째 변화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 성장하는 변화입니다. 어린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나는 것처럼 영적인 생명도 우리의 가슴속에서 성장을 시작하고, 성장을 통해 우리 삶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부흥과 변혁”에 있어서 변혁은 이 두 번째 변화를 말합니다. 첫 번째 예수를 믿는 변화에 이어, 우리가 예수 믿고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자신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화, 성숙, 성장, 변화 등 여러 가지 단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살 때 그 삶에는 구체적으로 변화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자신의 변화를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내 가족과 교회와 교계가 변하고 나라와 세계가 변하기를 바라지만 사실 우리 개인이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 때문에 내 가정이 변화되면 좋겠는데 나 스스로도 잘 변화되지 않아서 몸부림을 칩니다. 내 아내와 자식까지 변화시킬 여력이 없습니다. 하물며 내 직장을 변화시키거나 우리 사회와 나라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힘든 일이지요.
예수 믿고 내 내면이 변화되는 것도 힘들고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갈등을 느끼고 방황 하거나 자신에 대해서 실망을 하기도 합니다. 변화에 대한 욕구나 변화를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변화 자체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나라와 민족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가 나 자신의 변화를 추구할 때 작은 변화로부터 큰 변화까지 점차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돌이켜 보면, 성경에서 말하는 허황된 생각과 허망한 삶을 살던 예수 믿기 전의 옛사람과 비교했을 때 예수 믿은 지금 분명 변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전에는 교회라는 곳을 모르고, 하나님께 예배드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기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삶속에 크고 작은 변화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일어난 변화요 성령님 때문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는 나를 변화시키십니다. 모든 성화(聖化)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람은 왜 스스로 변화할 수 없나? 오늘 본문 17-19절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이해력이 어두워졌습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17절) 여기서 총명은 understanding(이해)이라는 뜻입니다.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영적인 무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17절) 이해력이 부족하므로 영적인 지식을 갖추기가 힘듭니다.
셋째, 보이지 않는 마음의 눈입니다.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17절) 여기서 ‘굳어졌다’는 ‘blindness’, 눈이 어둡다는 말입니다.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보이질 않습니다. 이해도 되지 않고 깨달아지지도 않기 때문에 자연히 앞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광야를 계속 빙빙 돌며 방황했던 것처럼 눈이 보이지 않아요.
넷째,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부터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생명의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 무뎌진 영혼의 무감각입니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19절) 영적으로 감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무질서한 성적인 타락입니다.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19절)
일곱째, 가득 찬 욕심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19절)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용할 줄은 알아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변화된 인생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의 우리는 이런 것들로 가득 차서 선한 방법으로 상향적 변화를 일으킬 수가 없고 하향적인 변화만 나타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의 죄성 때문에 생기는 이 엄청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피를 흘리심으로 내가 죄 사함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영적인 세계를 은혜로,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가 듣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성령님을 나를 도와주시는 분으로 믿으며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가 예수님 때문에 우리 안에 일어났습니다. 이 변화로 우리가 점차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이제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고 방향이 정해졌기 때문에, 나의 문제들을 예수님이 고쳐주시도록 주님께 드리기 시작할 때 우리 삶에는 개인적인 변화, 구체적인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옛 사람의 타락한 모습과 행동은 완전히 버려야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도록 새 사람을 계속 입어라, 내면을 계속 변화시켜가라고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변화가 날마다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추구해야 할 것인가?
첫째는 윤리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변화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닙니다. “성령이여, 나에게 윤리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나의 이 구체적인 문제를 바꿔주시옵소서.” 이렇게 성령님께 제시할 때 윤리적인 변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윤리적인 문제의 첫 번째가 거짓말입니다.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25절) 우리 입술의 거짓말을 멈추고 이제부터 참된 말을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힘듭니다.
1997년 4월에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과에서 사람이 하루에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하는지 조사를 했습니다. 다양한 직업인들을 대상으로 하루의 대화를 녹음하고 저녁에 녹음기를 회수해서 이 사람들이 하루 종일 한 말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분석을 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평균 8분마다 한 번씩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루 동안 평균 200번의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약속시간에 늦으면 “차가 많이 막혀서”라는 거짓말을 하는 식입니다. 직업별로는 정치인, 점원, 언론인, 변호사, 세일즈맨, 심리학자의 순으로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조사니까 우리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요.
제가 영어 성경을 읽다가 깜짝 놀란 구절이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all men be liars”, 모든 인간은 거짓말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만 진실이요 인간은 다 거짓말쟁이라는 말입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조사가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표현력이 부족해서, 때로는 축소하거나 확대해서 말하거나, 아니면 고의적으로 검은 것을 흰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단어 하나만 다른 것을 써도 사실이 아닌 것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을 보면서 인간이 거짓말하기가 쉽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당신은 거짓말쟁이야!”라고 하면 엄지와 검지를 뺀 나머지 손가락 셋은 나를 가리키는 것을 봅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이 보일 때 나에게는 그런 점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진실은 진리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성령 안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노력한다 할지라도 완전히 진실할 수는 없습니다.
영국에서 열린 거짓말 대회에서 1등은 “나는 한 번도 거짓말을 안했어!”였답니다. 사람은 한계가 있는 존재여서 말을 해도 그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거짓말도 종류가 많아요. 도덕형?사기형?악질형?농담형?아부형?위장형?교육형?회피형 등 8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의도적이 아니라 우리의 한계와 유한성 때문에 나도 모르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진실을 말 하려면 진실이 우리 마음속에 있어야 됩니다. 마음에 진리가 없던 사람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면 비로소 진리를 얻게 됩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께 듣고 배워서 그분의 진실을 나의 진심으로 만들어 갈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변화되어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처럼, 성령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말을 네, 아니오, 함으로써 우리가 이 땅에서 신임 받고 살 수 있는 변화가 있기를 원합니다.
한국은 사기죄가 일본의 10배라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변화되지 않으면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20여 년 전 제가 미국에 있을 때, ‘The kingdom of liar’( 거짓의 왕국)라는 제목의 TV프로가 30분 동안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짜상품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한국에서 가짜 상품을 만들어 파는 곳들을 취재해서 한국을 거짓말쟁이 나라로 미국 전역에 방송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로 우리가 변화됨으로써 우리나라가 진실 된 나라, 믿을 수 있는 나라로 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화를 내지 않도록 변화하는 것입니다. 정서적인 변화, 마음의 혁명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26절)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화를 내지요.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는 것은 “분을 내어도”라고 한 것입니다. 분을 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니 고맙지요. 속이 상하고 정말 신경질이 나서 화를 낼 수는 있으나 “범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화가 나서 물건을 부수거나 발길질을 하거나 욕을 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지, 화가 난 그 자체는 죄가 아니라는 겁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중요한 것은 화를 내되 범죄 하지 말고 해가 지기 전에 해결 하라는 것입니다.
평생을 잘 살아오신 어느 노부부가 있습니다. 물론 다투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둘이 화가 나서 말을 안 하다가도 할아버지가 “여보, 해가 지네”라고 말하면 할머니가 “알았어요”하며 해가 지기 전에 화를 해결하라는 말씀을 잘 실천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해가 지기 전에 “해가 지네!”라고 말씀하시고 분을 풀어가면서 변화를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분이 오래 가면 상처가 깊고 골이 깊어져 더 아프고 힘이 들지요.
만약 분을 풀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마귀에게 틈을 주게 됩니다. “와서 마음대로 공격하고 헤집고 다니며 내 인생을 어지럽히라”고 마귀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분을 풀기 힘들면 그 문제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 제가 분을 잘 참지 못합니다. 제 분 냄을 하나님께서 가져가시고 고쳐주시옵소서.”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변화의 은총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셋째는 도적질 하지 않도록 변화하는 것입니다. “도적질 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 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28절) 자기 손으로 수고해서 가난한 자에게 선한 일을 할 정도로 완전히 변화하라고 말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도둑이 아닙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하지 않지요. 그런데 남의 명예를 뺏어 그 사람의 명예를 추락시키거나, 편하게 잘 있는 사람의 평화를 말 한 마디로 빼앗기도 합니다. 약속시간에 늦어 다른 사람의 시간을 뺏을 때도 있습니다. 6시에 약속했는데 6시 30분에 간다면 상대방의 시간 30분을 훔친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늦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전에 아래층 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릴 때, 예배에 계속 늦게 오는 분들이 계셔서 예배부에서 예배 시작 후에는 출입문을 잠갔습니다. 늦게 온 분들은 밖에서 예배를 드렸지요. 집에서 5분, 10분만 일찍 떠나면 될 텐데…. 시간은 지키도록 노력을 합시다. 변화가 있어야 됩니다. 대통령을 만나러 가도 1시간 먼저 가는데 하나님 만나러 가면서 습관적으로 늦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옳은 일이 아닙니다.
넷째는 나쁜 말을 하지 않도록 변화하는 것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29절) 들어서 불편하고 속상하고 평화를 깨는 말, 남의 인격을 손상시키고 기분 나쁘게 만들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더러운 말들은 아예 입에 올리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됩니다. 나쁜 말을 자꾸 입에 올려 평생 연습을 했는데 그것이 금방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 제 말이 참 험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연습해 놓은 것인데, 이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가 많습니다. 이 험한 말들을 고쳐 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면 성령님께서 고쳐주실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계속 추구해나가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나쁜 습관이 남아있으면 누가 슬퍼하나? 성령님께서 슬퍼하십니다. 우리가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성령님이 우리 가슴속에 계실 텐데 성령을 속상하게 하는 말을 할 때마다 내 안의 성령이 괴롭고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30절) ‘근심’은 걱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슬퍼한다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나와 동행하시면서 나의 모든 것을 다 보시고 아십니다. 여러분의 나쁜 습관으로 인해 여러분도 불편하고 가족과 친구들이 불편한데 여러분 속에 계시는 성령님은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내 안에 있는 성령님, 내 마음을 정결케 하여주옵소서. 나를 변화시켜주옵소서.” 꾸준히 기도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또 모든 나쁜 습관을 과감하게 버리라고 했습니다. 습관의 변화를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좋지 않은 것들은 성령님을 슬프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쓴 뿌리) 노함과(분을 품는 것) 분냄과(분노를 폭발시키는 것) 떠드는 것과(말이 많은 것) 훼방하는 것(남을 비평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내 속에 악이 있기 때문에) 버리고”(31절) 이런 것들을 성령님 앞에 내어놓고 하나씩 고쳐 달라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여러분을 정결케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습과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성품을 닮기 원합니다.” 이렇게 주님께 고백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성품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가장 귀한 것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32절) ‘인자하다’는 ‘친절하다’는 말입니다. ‘불쌍히 여기다’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내 마음을 고쳐 부드럽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나를 늘 용서해주시는 것처럼 서로서로 용서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변화는 주님나라 가는 그 날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옛 습관과 옛 사고를 과감하게 주님께 내어드릴 때 주님께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습관, 새로운 사고, 새로운 언어, 새로운 감정으로 우리를 새롭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변화하여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모습에서 나타나고, 우리 때문에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복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