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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갚는 일에 관한 4가지 원리/사무엘상 25장 32-44절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

나발의 모욕적인 언사로 인해 노기를 참을 수 없어 추종자들을 이끌고 나발을 죽이러 가던 다윗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언행으로 그 가는 길을 멈추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비가일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1) 너를 보내신 하나님께 찬송드린다(32절).

2) 나를 막아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친히 복수했을 것이다(33절).

3) 그러면 너의 식솔 중 한 남자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34절).

그런 사정도 모르고 나발은 그날 밤 큰 잔치를 벌이고 먹고 마시고 놀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비가일은 철모르는 남편이라고 얼마나 원망했겠습니까. 그러나 다음날 아침까지 아비가일은 그 일어난 일을 나발에게 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그 일을 고했는데 그 소식을 듣고 나발은 크게 낙담하였고, 결국 열흘 후에 나발은 하나님이 치심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당한 욕을 신설하셨다! 하나님이 갚아주셨다!" 그리고 나서 그는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정중히 아내가 되어줄 것을 요청했고 아비가일은 즉시 그 청혼을 받아들여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원수갚는 일에 관한 몇 가지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1. 친히 원수를 갚으려는 행위는 악한 행위입니다

다윗은 나발의 괘씸한 행위를 징계하러 칼을 드는 것이 나쁜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이 뭐라고 말합니까. "나발에게 당한 나의 욕을 신설하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39절)."

다윗은 분명히 자기의 행위가 악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분노한 상태이기 때문에 나쁜 행위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순간적인 감정을 참을 수 없어 칼을 차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모습이 항상 이렇습니다.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순간적으로 입에서 잘못된 말이 나와 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괜히 그랬다."고 얼마나 자책합니까. 일을 저질러 놓은 다음에 한탄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누구에게나 이런 경험은 있습니다.

여러분! 순간적으로 넘어지지 않을 인생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억울하고 원통한 상황에서 잠시 한 템포 멈추고 원수갚는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원리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친히 원수를 갚으려는 행위는 잘못된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가 친히 원수갚으려는 행동을 막으십니다

친히 원수를 갚는 행위가 잘못된 행위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가 친히 원수를 갚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비가일과 같은 사람을 보내어 그 길을 막으십니다. 그러므로 누가 나의 원수갚는 길을 막거든 못이기는 척 하며 물러서십시오.

"이번에 아예 본때를 보여줘! 이번에 아예 버릇을 고쳐놓자!"라고 하는 말은 어떤 경우라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말은 참으로 우리의 말을 시원하게 해 주고 후련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지혜가 없는 말이고 복이 달아나는 말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후련한 길을 찾지 마시고 진정 복 받는 길을 찾으셔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깁시다. 조금 참아봅시다." 이처럼 피를 흘리는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막는 방향으로 말하는 것이 답답한 것 같지만 지혜로운 말이고 칭찬 받을 말이고 복이 찾아오는 말입니다(33절).

때로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바른 길이 더 중요하기에 후련한 길보다는 때로는 꽉 막힌 길로 인도할 때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나를 막는 손길도 필요합니다. 부모가 되어보면 자녀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나를 막는 부모의 손길'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3. 내가 원수갚는 길에서 물러서면 하나님이 친히 신설하십니다

내가 스스로 원수를 갚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절대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내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원수갚는 길에서 물러서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가장 멋있게 움직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원리를 택하는 것이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겠습니까.

본문은 그 사실을 얼마나 생생하게 보여줍니까. 다윗은 나발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발은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 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낙담했고, 열흘쯤 후에는 하나님의 징계로 급사하게 되었습니다.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스스로 원수갚으려고 해 보십시오. 원수는 계속 살고 오히려 자신이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그 원수갚은 일을 맡겨 보십시오. 그러면 원수와 상관없이 자신이 살게 됩니다. 사는 길과 죽는 길! 어느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4. 하나님께서 친히 원수를 갚으시면 부작용이 없고 덤까지 주십니다

만약 다윗이 친히 원수를 갚았다면 어떤 결과가 생겼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그는 신망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비가일이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다윗의 아내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처리를 해 주시면 미망인이 되어 다윗에게 시집가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만약 다윗의 칼에 나발이 죽었다면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처리해 주셨기에 아무 부작용도 없었고 결국 아비가일까지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원수갚는 일을 신설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원수를 풀어놓지 않으면 그 끈이 결국 여러분의 자유를 박탈해 버립니다. 그러나 원수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면 여러분은 대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감옥을 찾아가시겠습니까.

신설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원수를 용서하십시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고후 5:17).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원수도 잊어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가 막힌 일을 당했을지라도 원수를 그냥 가게 놔두십시오. 하나님의 새 역사를 믿고 그냥 가도록 그를 놔두십시오. 자신의 원수를 갚으려고 친히 갚으려고 하다가 그 원수보다도 더 못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못난 사람하고 싸우려면 같이 못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용서는 항상 감정을 넘어서 선택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용서하는 일에는 전혀 감정의 자리가 없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용서와 관련된 이 세 가지 원리를 꼭 잊지 마십시오.

1)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복수할 권한을 주지 않았다.

2)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복수할 수 있는 힘과 능력도 주지 않았다.

3)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복수할 수 있는 완전한 판단력을 준 적이 없다

자기의 판단이 완전하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다만 여러분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수를 용서하십시오. 정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바로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을 용서해준 사람들이 복 받는 일화로 가득 찬 책입니다. 여러분들도 용서의 사람이 되어 이런 복 받는 사람의 일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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