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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의 노년의 삶(시92:12-15)-정리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주안에서의 노년의 삶

 

시92:12-15

12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13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14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15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인사(축원)와 연결과 서론(천천히 이해확인 반복 멈춤 한교훈 톤을낮게 관심과집중할 질문이나 예화 짧게)큐티

오늘 "주안에서의 노년의 삶"주제로 깨달음과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구호:주여!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오직 예수와 십자가만 선포-예수 영접 구원)

 

 

오늘날 ‘노인’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선 산업화 이후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노동 가능한 연령을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노인은 노동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노동 현장에서 밀려나고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외모 중심 사회가 되면서,

노인은 노화로 주름지고 백발이 되고 등이 굽은 볼썽사나운 존재로 치부되었습니다.

 

게다가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노인은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복지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노인들은 사회가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노후 준비가 부족하여 생계비와 의료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가 복지 차원에서 이런 노인들을 돌봐야하기 때문에 노인은 사회의 짐이라는 인식이 점점 커져왔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 나이 들어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이 위축되기 쉽습니다.

나는 이제 예전 같은 존재가 아니야!”,

“나는 쓸모없는 존재야!”,

“나는 폐만 끼치는 사람이야!”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약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램]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사연씨가 불러 알려졌고, 임영웅씨가 불러 크게 히트를 친 노래입니다.

가사가 이렇습니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 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이 노래 가사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대목은

노년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노년기에 접어드는 사람들을 “늙은이”라는 뜻으로 ‘노인’(老人)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노인이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져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을 늙은이라고 폄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의 경륜이 깊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에서 “백발”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영적인 본을 받을 사람이라는 뜻으로 “장로”라고 부릅니다.

그야말로 무르익은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대표적으로 성경이 노년기를 맞은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살펴 보면서 노년기를 사는 분들

그리고 노년기를 맞을 준비하는 분들이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생의 후배들은 노년기를 살아가는 인생의 선배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대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년에도 강건하다.

 

본문 1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하나님의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번성하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하나는 ‘종려나무’입니다.

종려나무는 건조한 사막이나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깊이 내려서 잘 자랍니다.

그리고 잎이 시들지 않고 늘 푸르름을 유지합니다.

노년을 이 종려나무에 비유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노년에도 환경의 영향을 잘 극복하고,

늘 푸르름을 유지하는 강건함을 보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다른 하나는 ‘백향목’입니다.

백향목은 수백 년 이상 오래 사는 나무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썩지 않고 속이 단단하며 향이 계속 나는 변치 않는 강인함을 가집니다.

노년을 이 백향목에 비유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노년에도 강건하고,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지켜내는

변치 않는 강인함을 가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성경을 보면 이렇게 노년에 종려나무처럼 그리고 백향목처럼 강건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준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갈렙을 들 수 있습니다.

수 14:6-12를 보면

갈렙이 여호수아를 찾아와서 말하는 내용이 길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간단히 요약해보면 이렇습니다.

“내 나이 40세에 모세의 명을 받고 가나안 땅을 정탐했을 때 나는 믿음대로 말했지만

나와 함께 올라간 자들은 백성의 마음을 낙담하게 했습니다.”

“지금 보소서, 이제 나는 85세이지만, 오늘도 여전히 강건하니, 그 때와 같이 출입하며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그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갈렙은 45년 전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이야기입니다.

이때 갈렙은 나이 40에 정탐꾼으로 참여했고,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월이 흘러 나이 85세가 됐습니다.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헤브론 지역에 왔습니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지난날 모세가 자기에게 약속했던 이 산지를 지금 자기에게 달라고 청했습니다.

 

여기서 자기에게 달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그 산지를 지키고 있는 적들과 싸우는 일을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것입니다.

군사들을 이끌고 가서 이 산지를 정복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갈렙은 나이가 85세입니다.

기력이 노쇠하여 겨우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나이입니다.

그런데 적과 생사를 다투는 전쟁에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앞장서서 지휘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갈렙의 모습에서 강건한 노년의 모습을 봅니다.

우선 영적인 강건함입니다.

수 14:12를 보면 갈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노년기에도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강건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정신적인 강건함입니다.

수 14:12를 보면 갈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지금 전쟁에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85세면 노년에 마음이 약해질 만한데 담대했습니다.

정신적인 강건함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강건함입니다.

수 14:11을 보면 갈렙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내가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나이 85세지만 40세 때처럼 전쟁에 나가 싸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육체적으로 강건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노년기에 갈렙처럼 이렇게 강건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강건하시기 바라고,

마음과 몸도 강건하시기 바랍니다.

노년에도 믿음이 굳건하다

본문 1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앞에서 말씀드린 종려나무와 백향목이 여호와의 집에 심겼고,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선 여호와의 집에 심겼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집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구약시대에는 직접적으로 성막이나 성전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시편에서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

 

현대적인 의미로는 물리적인 뜻으로 교회 건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와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지는 영적 공간을 말합니다.

말씀과 기도가 나눠지는 공동체 안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집에 심겼다는 말은 예배와 영적 교제가 살아있는 영적 공간에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가 나눠지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뜰이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직접적으로는 성전의 마당 즉 성전의 안뜰을 말합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교제하고 제사를 드리는 장소였습니다.

 

그 안에서 번성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다는 말입니다.

나무가 나무로서 제 기능을 하고,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복된 노년은 여호와의 집에 심겼고,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는 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장소가 중요합니다.

머무는 장소, 삶을 영위해 가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바로 믿음을 지켜가고, 나아가 믿음의 풍성한 열매가 맺혀질 수 있는 그런 곳에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오래 전에 한 은퇴 권사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평생을 농촌에서 농사를 짓던 분입니다.

70이 넘어 남편과 사별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가운데 홀로 살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고 올라왔습니다.

처음에는 서울살이가 익숙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살만했습니다.

아들 내외도 보고, 매일 손주들과 지내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먹을거리, 볼거리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새벽 제단을 쌓을 교회가 가까이 없었습니다.

ㅎ식일 예배를 드릴 교회를 찾았지만 낯설었습니다.

온통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고, 예배 분위기도 너무 달랐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이 시들해졌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사라지고 영적으로도 심하게 눌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도저히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집에서 가출한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돌아가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마음이 더 강해졌습니다.

자식들이 말리고 주변 사람들이 붙잡았지만, 작심하고 시골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본 교회에서 새벽 제단을 쌓으면서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안시일 예배를 드리고 가까운 교우들과 교제하면서 영적으로 힘을 얻게 됐습니다.

“아!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호와의 집에 나무가 심겨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이 노년기의 살 곳을 찾아 이주합니다.

이주할 때 경제적인 문제, 관계적인 문제, 환경적인 문제, 여러 가지를 고려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노년에도 여호와의 집에 심겨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노년에도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고, 경제적인 여건이 좋고, 가까운 사람들과 산다고 해도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진다면 그곳은 결코 좋은 곳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노년에도 여호와의 집에 심겨져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노년에도 굳건한 믿음을 지키며 살기 바랍니다.

노년에도 열매를 맺는다

 

본문 1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며 빛이 청청하니”

한 마디로 말하면 노년에도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노년기에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노년기는 마치 빗살이 빠져가는 낡은 빗과 같은 모습입니다.

열매는 고사하고 자신을 지켜가기도 버거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은 노년기에도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국를 갔다오시는 분들은 대개 보이차를 선물로 가지고 오십니다.

그래서 보이차에 대해 조금 알게 됐습니다.

보이차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야생차이고 다른 하나는 재배차입니다.

야생차는 그야말로 야생 차나무에서 찻잎을 수확해서 차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이에 비해서 재배차는 야생차를 재배하기 쉽도록 품종을 개량하여 대규모로 차밭을 조성해서 재배하고,

그 찻잎으로 만든 차입니다.

당연히 야생차가 귀하고 차 맛도 깊고 가격도 비쌉니다.

 

중국 운남성에는 소수민족들이 야생차를 돌보면서 찻잎을 채취하여 차를 만드는 차 산지들이 있습니다.

이런 지역들에 가장 오래된 야생 보이차들이 있습니다.

대략 1000년에서 2000여년까지 된 나무들이 있습니다.

이 나무들이 그 지역의 야생차의 어머니 격입니다.

이런 나무들을 ‘차왕수’(茶王樹)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차왕수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나무가 있습니다.

운남성 린창 지역에 있는 차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수령이 무려 3200년이나 됩니다.

이 차나무가 가장 오래된 나무이고 모든 차나무의 어머니라서 이 나무를 ‘차황수’(茶皇樹)라고 부릅니다.

놀라운 것은 이 나무가 현재도 찻잎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이 차 나무에서 채취한 차 2kg이 경매에 붙여졌는데

무려 한화 18억 6천만원에 낙찰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브라함을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노년인 백 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보통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어갈 아주 특별한 아들입니다.

마치 차황수처럼 노년에도 특별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노년에도 열매를 맺습니다.

나이가 많지만 그래도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그 열매는 더욱 귀한 열매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노년기에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일까요?

고후 4:1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 겉 사람은 늙어갑니다.

병들고 약해집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처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열매를 맺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워집니다.

그래서 노년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우선 믿음의 열매입니다.

 

딤후 4:7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이 세상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서 했던 고백입니다.

자기는 이 땅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 죽음을 맞게 됐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영적 제자들 그리고 많은 믿음의 후배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 왔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믿음의 열매를 남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때문에 올바른 믿음이 널리 전파되게 됐던 것입니다.

 

다음 기도의 열매입니다.

 

눅 2:36-38을 보면 안나라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이가 84세입니다

. 그런데 성전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기 예수가 정결 예식을 위해서 성전을 찾았을 때 이 여인이 예언의 말씀을 전했다고 합니다.

안나는 노년에 풍성한 기도의 열매를 맺으며 살았습니다.

우리가 안나처럼 노년에 더 깊은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위해 깊은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깊은 기도는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풍성한 영적인 열매를 맺게 됩니다.

지혜의 열매

 

잠 16:3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그리스도인들은 연륜이 더할수록 지혜를 더해갑니다.

단순히 세상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넘어서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비롯된 영적 분별력과 삶의 성숙함을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의 열매로 공동체와 자녀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해주고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노년기에 이런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바랍니다.

믿음의 열매로 믿음의 본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열매로 중보기도의 응답을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혜의 열매로 인생의 후배들을 올바로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결론 적용(나 청중)호소 결심 결단합시다(본문요약적용 찬송 예화 구체적인실천사항)묵상

오늘 우리는 :"주안에서의 노년의 삶"주제로 깨달음과 교훈을 배웠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나 나이가 들어 노년기를 맞게 됩니다.

이때 단순히 늙어가는 노년이 아니라 무르익어가는 노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노년기의 그 완숙한 멋을 주 안에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고

종려 나무-그리스도인

"종려 나무는 그리스도인 생활을 잘 상징한다.

종려 나무는 열사의 사막 한 가운데 꼿꼿이 서 있지만 죽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나무가 땅 속 깊은 곳, 생명의 샘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기 때문이다(리뷰 1885. 9. 1).


그리스도인

"광야에 있는 종려 나무(시 92:12 인용)

열대 지방의 태양 빛을 피할만한 은신처 하나없는 뜨거운 사막을 애써 건너는 지친 여행자를 보라.

물은 떨어지고 타는 듯한 갈증을 해소시킬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혀는 부풀어 오르고 그는 술취한 사람같이 비틀거린다.

이 끔찍한 사막에서 꼼짝없이 죽는구나 생각했을 때 집과 친구들의 환상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갑자기 앞서 가던 사람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른다.

 

모래 뿐인 음울한 광야 저 멀리 푸르게 잘 자란 종려 나무 한 그루가 치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

희망이 있어 맥박은 빨라지고 종려 나무에 힘과 생기를 준 그것이 열기 가득한 맥박을 서늘하게 해줄 것이며

갈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것이다.
생수의 샘물에서 자양분을 길어 올리는 종려 나무가 사막 한 복판에서도 푸르고 싱싱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사랑의 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길어 올릴 수 있다. 

그리고 죄악의 광야에서 불안에 가득차서 곧 죽게 된 지친 영혼들이 마시고 살 수 있는 생명수 샘물로 인도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같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쳐 보이고 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초청하신다. 

이 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길어 내고 또 길어 낼 수가 있다"(사인즈 1904. 10. 26).


기왕 그리스도인이 번성하고 발전할 바에야 낯설은 사람들 틈에서 해야 하고 비웃고 조롱당하는 가운데서 그렇게 해야 한다. 

광야의 종려 나무처럼 꿋꿋이 서야 한다. 

하늘은 구리빛 같고 사막의 모래는 종려 나무 뿌리 주변을 후리치고, 

나무 둥치 둘레에 쌓일지 몰라도 그 나무는 불타는 사막 한 가운데서도 언제나 푸르고 싱싱하며 힘있게 살아있다. 

종려 나무의 작은 뿌리가 보일 때까지 모래를 파내어 보라. 

그러면 그 생명의 비결을 발견할 것이다. 

종려 나무는 땅 속깊이 뿌리를 내려서 땅 속에 숨겨져 있는 지하수에 이른다. 

종려 나무는 그리스도인을 참으로 적절하게 상징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에녹과도 같이, 비록 타락한 감화로 둘리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분을 굳게 붙든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행하면서 그분께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아서 그들을 두르고 있는 도덕적 오염을 방지한다. 

바벨론 궁정에 있었던 다니엘같이 때묻지 않고 순결하게 꿋꿋이 서 있다. 

이는 그들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타락의 와중에서도 그들의 정신은 고결하고 불신자들과 외적인 신앙 고백자들, 

그리고 불경스럽고 세속적인 사람들로 둘리어 있지만 그들은 진실하고, 충성스러우며 열렬하고 열심이 있다.


그들의 신앙과 생애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다. 

예수는 그들 속에 있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다. 

종려 나무의 잔뿌리같이 믿음은 보이는 것들 아래로 꿰뚫고 내려가 생명의 크신 샘에서 자양분을 길어 올린다"

(사인즈 1886. 7. 8).


억센 백향목 그리스도인(겔 31:7)

예수의 사랑이 영혼 속에 살아있을 때 지금은 단지 시들은 가지일 뿐인 사람들이

“그 뿌리가 큰 물가에 있는”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될 사람들이 많이 있다.

백향목은 그 뿌리가 튼튼하기로 유명하다.

그것은 몇개의 잔뿌리로 땅에 붙어 있는 것으로 만족지 않고 마치 튼튼한 쐐기 같은 잔뿌리들이 갈라진 바위 틈사이로 파고 들어간다.

그리고는 붙잡을만한 강한 요새를 찾아서 점점 더 깊은 곳에 이른다.

태풍이 그 나무 가지에 휘몰아 칠때도 굳게 선 그 나무는 태풍도 뽑을 수가 없다.

만약 그리스도의 제자된 자가 진리에 뿌리를 박고 기초를 놓아서 영원하신 반석과 확고한 연합을 이루고 있으면

모든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참으로 잘 생긴 백향목들이 되지 않겠는가?"(리뷰 1882.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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