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렸을 때는 프로레슬링이 인기였습니다. 그당시 프로레슬링 선수로는 김일 천규덕 장영철 여건부 이런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그당시 동네에는 흑백티비가 있는 집이 몇집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일 프로레슬링 하는 날에는 흑백 테레비가 있는 어느 집에서 마당 한가운데 텔레비전을 내놓고 틀면 동네 아이들이 죄다 모입니다. 경기중에 가운데 앉은 누군가가 화장실간다고 일어나면 “야, 앉아, 안보여” 그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당시 김일의 박치기는 유명했습니다. 외국 선수들이 복면을 쓰고 나와서 한국선수들을 공격하면 한국선수들이 쩔쩔 맸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김일이 박치기를 외국선수들의 머리에 합니다. 그러면 덩치가 큰 외국선수들이 나가 떨어집니다. 그러면 티비를 보고 있던 우리들은 전부 일어나서 박수를 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장영철이라는 프로레슬링 선수가 기자회견 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프로레슬링은 쑈다” 그게 신문기사에 나오면서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태까지 우리는 가슴을 졸여가면서, 손에 땀을 쥐면서 경기를 봤는데 그게 쑈라고? 사람들은 긴가민가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영철 선수가 폭로를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레슬링 업계에서 장영철이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기를 하는척 하면서 장영철에게 린치를 가했다는 것입니다. 새우꺾기를 하면서 장영철 선수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장영철 선수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말하기를 경기를 하는척 하면서 자신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부터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서서히 식게 되었습니다.
이제 김일도 나이가 들어 여러 가지 병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졌습니다. 말년에 기자가 찾아가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진짜로 프로레슬링이 쑈였습니까? 김일의 박치기도 다 연출이었습니까?”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병상에 누워있던 김일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어차피 인생이란게 한판 연극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얼마후에 김일은 돌아가셨습니다. 박치기왕 김일은 박치기를 남기지않고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어차피 인생이란게 한판 연극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본문제목은 왜 사람은 장래 일을 모를까? 입니다. 괭장히 어려운 주제입니다. 오늘 본문을 토대로 해서 8월달 셋째 주일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1. 사람은 장래 일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7절.
세상에 알지못하는 것 3가지가 있으니 1.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 2.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것 3.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도 알지못하는 연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흡사 암막커튼이 쳐져있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부임하기 전 6개월 전에 마송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서울에서 부목사를 하고 있었는데 마송에서 나오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송 현대아파트로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니까 그게 현대아파트였구나, 하고 생각을 하는거지 그때는 저녁에 와서 기억도 안납니다. 집사부부가 말하기를 올 때는 시내로 오지 말고 신도로로 오세요 했는데 마송시내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마송시내는 엄청 막혔습니다. 그안에 갇혀서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나서 6개월 후에 제가 우리 교회로 부임을 할 줄은 꿈에서도 몰랐습니다. 그때 좀 미리 알았으면 거리도 얼마 안되니까 와서 인사도 좀 드리고 제가 6개월 후에 여기 올 사람입니다. 이렇게 인사도 드리고 좀 둘러 보고 했을텐데 정말로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내일 일도 모르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미래를 모르는가? 입니다. 미래를 좀 알면 여러가지로 도움이 될텐데 왜 미래는 암막커텐이 쳐져있는 것처럼 캄캄하게 막혀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 방송사에서 과거에 인기있었던 드리마를 재방송해준 적이 있습니다. 겨울연가인지 가을동화인지 하여간 엄청나게 큰 인기를 끈 드리마가 있었습니다. 너무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방송사에서 다시 재방송을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볼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몇번 하다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시청률이 안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안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었는데도 재방송하니까 아무도 안보는 것이었습니다. 왜 안보았을까요? 결과를 뻔히 알기 때문에 재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를 알면 흥미가 떨어져요. 결과를 알면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예전에 축구경기 한일전 하면 엄청 관심을 갖고 사람들이 보곤 했습니다. 언젠가 우리나라가 극적으로 3대 2로 이긴 적이 있습니다. 온국민이 난리가 났습니다. 정말로 손에 땀을 쥐고 봤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인 역전승이라서 그 경기를 나중에 재방송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봤는데 재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팀이 위기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걱정이 안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골이 안들어가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급박한 위기상태인데도 그냥 멀뚱멀둥 보고 있는 것입니다. 경기결과를 알기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결과를 알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미래를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결과를 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사람들이 그때부터는 아무것도 안하게 됩니다. 결론이 뻔한데 애쓰고 힘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차피 다 그렇게 될텐데...그러면서 사는 것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게 해놓으신 것입니다. 알면 열심히 살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돼다가 이렇게 됐다가 결론이 나와 있는데 힘쓰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일 일을 모르는 것이 내 인생을 사는 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모르는게 내 인생의 동력입니다. 우리 인생의 동력은 내일 일을 모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미래를 다 알면 인생의 동력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힘들어도 어려워도 꾸역꾸역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모른다는 사실때문에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르기 때문에 내가 힘써서 사는 것입니다. 알면은 허무함이 찾아옵니다. 결과를 뻔히 알면 흥미가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알면 집단 무력감에 빠질 것입니다. 세상 자체가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장래 일을 알지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알면 사는 의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장래를 모른다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들어 놓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동력이요, 그것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암막커튼 너머에 뭐가 있을까 하는 재미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기대감이고 그것이 사는 재미요, 그것이 내 인생의 동력입니다. 이러한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사람의 본문이라고 했습니다.
15절.
오래 전에 삼보교회를 은퇴하신 장로님이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분은 나이가 좀 들었을 때 625를 겪으셨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겪어보니까 하루 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국군의 세상입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면 이번에는 인민군 세상입니다. 아침에는 국군의 세상이 되었다가 저녁이 되면 인민군의 세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는 말 한마디에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입니다. 마음대로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자고 일어나도 그날이 그날이라는 것입니다. 맨날 평범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기를 그것이 평화라고 말했습니다. 무미건조한 평범한 일상같지만 그것이 평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충청도 분들은 아멘이 좀 늦다는 것입니다. 부흥회때 설교를 잘 듣고 집에가서 웃고 아멘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충청도 분들이 좀 늦는가 ?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연구했습니다. 옛날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시대 때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있었습니다. 이 세 나라가 싸움을 하는데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전국을 차지한다고 해서 중원싸움이 치열했습니다. 중원이라 하면 한반도의 중간인 지금의 충청도 지역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자고 일어나면 고구려 됐다가 자고 일어나면 신라됬다가 또 자고 일어나면 백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분들은 말이 급하지 않습니다. 한참 생각해 보고 대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신중하다는 얘기이지요.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성경은 말씀하기를 희락을 찬양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기쁘게 사는 것이 제일 큰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 한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희락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말씀하기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먹고 마시는 것! 하나님 안에서 희락을 누리는 것~ 하나님과 기쁘게 사는 것!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분복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산에서 전도사를 할 때 남자 집사님들과 함께 길거리에 있는 치킨 집에서 통닭을 먹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집이 여의도에도 하나 있고 돈이 좀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 방학이 되면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갔다는 것입니다. 그당시 할머니 할아버지는 과수원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이런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우리 귀여운 손주왔다고 하면서 과수원에서 자란 과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는 것을 보면 농익어서 떨어진 것들, 까치가 파먹은 것들, 이런 것들을 잘 발라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린 마음에 그게 늘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는 엄마한테 그랬다는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맨날 가면 까치 먹은거, 너무 익어서 떨어진 거, 이런 것만 준다고 불만을 얘기했다는 것입나다. 그런데 이제 자신도 나이가 환갑 줄에 접어드니까 그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신 것이 제일 맛있는 것이었다는 걸 이제사 알았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에는 그 깊은 뜻을 몰랐어요. 그러나 나이가 들고 생각이 깊어지니까 어른들의 깊은 뜻이 이해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그것도 내게는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나를 성장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할 때 그것이 진정한 희락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만 함께 해주신다면 그것이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13절.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는 이런 것입니다. 이제 곧 4개월만 있으면 영하 10도로 내려가는 강추위가 옵니다, 이렇게 말하면 부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이 무더운 여름에 4개월 후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게 지혜입니다. 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비가 올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옵니다. 이런 지혜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3절에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내 인생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대자연속에도 계시고 내 인생속에도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떤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하는데 그날따라 비가 왔습니다. 신부는 짜증을 냈습니다. “하필이면 우리 결혼식 하는 날에 비가 오다니.....”
그말을 들은 신랑이 말했습니다. “비가 온다고 해서 가장 중요한 시간에 마음이 흔들려서야 되겠소?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오”
두 사람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방안에 들어와서 불을 켜놓고 있으니 오히려 아늑하고 좋았습니다. 신랑 신부가 방안에 있으니 밖에서는 아무리 천둥 번개가 쳐도 오히려 행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예수님은 신랑이요 우리는 신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있으면 밖에서는 아무리 폭우가 쏟아지고 번개와 천둥이 쳐도 기쁘고 감사한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있고 주님안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이고 기쁨입니다. 오직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시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