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좋은 만남은 축복입니다! (삼하 23:8-12)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난생 처음 백화점엘 가 본 시골 할아버지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신기한 듯 이것저것 구경을 하는데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할머니 한 분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문이 열리고서는 예쁜 아가씨가 내리니까 이 할아버지는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손자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니네 할머니도 저 기계 속에 넣었다가 끄집어내야겠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신비한 기계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갔다 나오면 죄인이 의인이 되어 나오고, 낡은 인생이 새로워져서 나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성경의 수많은 사람들,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모두 새로워졌습니다.

우리 삶의 행복과 불행은 어떤 만남을 가지면서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만큼 ‘만남’은 중요합니다. ‘좋은 부모’ ‘좋은 아내’ ‘좋은 남편’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좋은 선배’ ‘좋은 후배’와 같은 사람과의 만남이 중요하고, 좋은 사람과의 만남을 위하여 ‘좋은 학교’와 ‘좋은 교회’와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좋은 교회와의 만남은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축복된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누리지 못하는 풍성한 삶

어떤 사람이 호화 여객선을 타고 세계 이 곳 저 곳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비싼 배표를 사느라 돈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2주일 동안 먹을 치즈와 과자부스러기, 캔 몇 개를 준비해서 배에 탔습니다. 그런데 돈이 많아 보이는 다른 사람들은 식사 때마다 뷔페를 즐기기도 하고 고급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습니다. 배가 목적지에 도착한 후 선장이 인사를 합니다. "행복한 여행이 되셨는지요?" "네, 좋은 구경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돈이 모자라서 치즈 조각, 과자부스러기, 캔 몇 개로 식사를 하느라고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그때 선장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합니다. "이 배 안의 모든 뷔페와 엄청난 음식들이 당신의 배 삯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단 말입니까?"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이 청년처럼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될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당신의 사명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생명을 얻고 거기에 프리미엄으로 더 풍성한 삶을 얻는 것 -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우리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새로운 탄생이고 새로운 출발이요, 거듭남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한 우주와 또 다른 한 우주의 만남으로 비유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는 것은 한 우주가 그 본래 우주의 있어야 할 자리를 찾는 것이고, 그가 있어야 할 가장 편안하고, 적절하고 빛나는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질병을 일으키는 정서적인 요인 중에서 흡연에 버금갈 만큼 심각하게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요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회적인 소외 즉 고독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의 전인 건강은 본질적으로 관계성에 기인합니다. 즉, "다른 사람들과 대체로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아니면 좋지 못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하는 문제는 그 사람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의 여부도 바로 얼마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인생은 만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환경과 만나고 사람들과 만납니다. 행복을 만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행을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공을 만나기도 하고 실패를 만나기도 합니다. 슬픔을 만나기도 하고 기쁨을 만나기도 합니다. 무엇인가 순간순간마다, 시시각각으로 만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입니다.


잘 만나 축복을 받은 사람은 복 중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특히 사람에게는 인복(人福)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과 환난, 시련과 고통을 당했어도 사람을 잘 만나면 그 어려운 환경에서 헤치고 나와 승리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훌륭한 부모를 만나고, 좋은 남편과 아내를 만나고, 진실한 친구를 만나고 대행자가 될 수 있는 스승을 만나는 것은 큰 복입니다. 그러나 더 큰 복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고, 주님을 구세주로 만나고, 성령의 역사하심과의 만남입니다. 은혜 있는 교회를 만나고, 생명이 넘치는 교회,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만나고, 또 능력 있는 교회의 지도자를 만나는 것도 성도에게는 가장 값진 축복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날마다 수많은 만남을 통해 관계를 형성해 갑니다. 잠시뿐인 만남도 참으로 많지만 친구들은 5년, 혹은 50년 관계가 지속됩니다. 결혼하게 되면 부부가 50만 시간을 함께 살며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또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죽을 때까지 그 관계가 지속됩니다. 그런데 오래 지속되는 관계나 길을 가다가 스치는 관계나 이례적인 만남이나 모두 우연이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만남은 신비로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목회자를 만나고 교인들을 만나고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된 섭리 가운데에서 되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준비된 만남, 계획된 만남뿐 아니라 예기치 않는 만남도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 왕이 아들의 칼을 피해 피난 가다가 시므이라는 사람을 만난 것은 예측 불허의 만남, 전혀 준비하지 않은 만남, 예상하지 않은 만남이었습니다. 시므이가 돌을 던지고 티끌을 뿌리면서 다윗을 조롱하고 욕되게 할 때 감정대로 하면 다윗은 화가 치밀어 올라 시므이의 목을 쳤어야 했지만 다윗은 시므이를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줄을 알았기 때문에 조심했습니다. 진지해졌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시골 사람 시므이에게 조롱을 당하게 하시나?’를 생각하면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세상은 참 재미있습니다. 거미도 우연이 아닙니다. 캠브리지의 헤라이 헤이브 목사님은 영국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 추격하는 군인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큰 가마솥의 아궁이에 들어갔습니다. 누군가가 불을 때면 타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군인들이 달려와서 “저기다! 가마솥에 숨었을 거다. 뒤져 봐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거미 한 마리가 나타나서 거미줄을 빙 둘러쳤습니다. 달려와서 뒤지려고 하던 군인이 “거미줄이 있는 것을 보니 여기에 숨지 않았다.”라며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때 헤이비 목사님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거미 한 마리를 통해 나를 살려 주셨구나. 하나님께서는 저런 거미도 쓰시는구나.’ ‘거미 한 마리가 내 운명을 바꾸는구나. 거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죽었을 텐데 거미 때문에 내가 살았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함부로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게 생각하며 모든 일에 겸손하게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중요한 사람과의 만남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만남,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만남도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만남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구두닦이 출신의 백만장자가 있는데 그 백만장자가 14세 때부터 구두닦이를 했습니다. 구두를 닦아 주고 2불만 받고 나면 끝나는 만남이지만 그 만남을 통해 좋은 관계 형성에 힘쓰고, 또 모든 사람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성공하는 사람, 성공의 정상을 달리는 사람들은 신발이 다른 것을 알았습니다. 신발이 깨끗한데도 또 닦는 것입니다. 신발이 지저분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을 보지 못했답니다. 대개 성공한 사람들은 신발이 깨끗한데도 또 닦았습니다. 그리고 옷을 단정하게 입었습니다. ‘아하! 성공한 사람은 옷이 다르구나. 바지 줄이 쭉쭉 서고 깨끗한 사람이구나.’ 또 이 친구가 지혜가 있어서 구두닦이를 하면서 돈을 더 벌기 위해 꾀를 썼습니다. 신사가 구두를 닦고 5불을 주면 깜짝 놀라면서 “아니, 왜 이렇게 많이 주십니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그 인사를 받은 손님은 거스름돈을 당연히 받으려고 하지 않고 다섯 사람 중에 한 사람 정도만 제외하고 대부분은 그냥 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혜롭게 구두를 닦으니까 어떤 사장이 머리가 비상한 아이라는 것을 알고 ‘이 아이는 뭘 시켜도 되겠구나’ 하고 점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구두를 닦은 후 5불과 명함을 주면서 “18세가 되면 나를 찾아오너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친구가 그것을 놓치겠습니까? 18세까지 명함을 간직하고 있다가 18세가 되자마자 그 사장을 찾아갔더니 사장은 그 친구가 올 줄을 알고 미리 일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가 그 회사에 들어가서 백만장자가 되는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구두만 닦는다면 성공하기 어렵지만 구두닦이를 하면서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거기에서 관계를 창조하게 되면 성공하게 됩니다. 대수롭지 않은 만남이 우리 인생을 얼마나 크게 바꾸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진지해야 하고 모든 것을 중히 여겨야 됩니다. 모든 만남, 아주 하찮아 보이는 작은 만남도 귀히 여겨야 합니다. 심지어 자동차 사고가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지 않은 만남, 기분 나쁜 만남이 아니라 그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남으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분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왜 하나님께서 내게 사고를 허락하셨을까? 내가 이분에게 어떻게 해야 내게서 하나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절대로 헛된 일이 없습니다.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며 관계를 형성하게 되면 합력해서 복이 되고 선이 되고 값진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세 장수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용사, 챔피언, 장군, 영웅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단어인데, 그들은 다윗과 관계를 잘 맺은 사람들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고마운 용사들입니다. 요셉 밧세벳이라는 챔피언, 장군은 다윗의 전쟁 상황이 좋지 않을 때 혼자서 8백 명의 적을 쓰러뜨렸습니다. 그 기세에 적들이 다 도망하여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다윗 왕이 “고맙다. 요셉 밧세벳, 고맙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르아살이라는 장수는 진격해 오는 블레셋 군사의 위력에 밀려 이스라엘 백성이 다 도망하는 그 어려운 전세에서도 버티어 혼자 적과 맞서 싸워 엄청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고마워서 다윗이 “아, 엘르아살 장군.”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삼마인데, 블레셋 군대가 녹두밭에 진을 치고 있을 때 그 위력에 질려 이스라엘 백성이 겁을 먹고 또 도망을 갔지만, 삼마는 혼자 그 녹두밭에 들어가서 적군을 쳐부수었습니다. 사무엘하 22장 30절의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의지해서 혼자 적군에 달리며 얼마나 많은 적군을 쳐부수었는지 블레셋 군대가 패하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세 장수를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37명의 장수가 소개되는데 요압 장군이 없습니다. 사령관이요, 한평생 다윗 곁에서 싸운 요압이 빠졌는데 요압은 다윗과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압은 다윗을 위해 싸우는 것 같았지만 실은 자신을 위해 싸웠습니다. 자기 자리가 위태로우면 적을 치고, 라이벌 되는 사람을 다윗의 명령도 없이 쳐 죽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너는 필요 없다. 너는 나를 위하지 않았어.’하며 솔로몬으로 하여금 요압을 쳐 죽이게 합니다.

누가 인간관계를 잘 형성하는 사람입니까? 상대방에게 고마운 마음, 감사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눈물 흘릴 정도로 고마워하는 시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며느리를 좋게 보아야 합니다. 대개 시어머니들의 눈은 이상해서 자기 딸의 허물은 보이지 않고 며느리 허물은 어찌 그리 잘 보이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부부는 그 관계가 무덤으로 끝이 나지만 교회의 인간관계는 천국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만남에 더 신경을 써서 만남의 형성을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관계가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세 용사 삼마, 엘르아살, 요셉 밧세벳이 다윗을 위해 그렇게 싸워 준 것은 다윗이 좋아서 만이 아닙니다. 다윗은 흠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아내를 빼앗은 사람이고, 그 남편을 죽인 사람이고, 아들을 잘못 기른 사람입니다. 그 아들이 아버지 다윗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다윗을 위해 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다윗 편에 계시는구나. 내가 다윗을 위해 싸우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구나’ 하고 깨달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싸워 준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도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악한 인간은 사람을 쓰고 그 사람의 가치가 없어지면 버리지만 선한 사람은 반드시 보상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쓰시고 상을 주십니다. 마귀는 가룟 유다를 사용하고 그가 배가 터져 죽을 때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위해 순교하는 스데반을 보시고 “어서 오라” 하시며 상을 내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선한 하나님과 다윗을 닮아야 합니다. 언제나 빛과 그림자는 같이 있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내게 잘 해준 고마운 분들의 손을 잡아 주며 감사할 줄 아는 관계를 형성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상대방도 더 도와주고, 자신도 은총에 겨운 삶을 영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만남의 영성/인생은 만남입니다.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입니다. 산다는 것은 만나는 것입니다. 만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들어 가는 것은 만남입니다. 우리 인생은 만남과 선택을 통해 만들어져 갑니다. 좋은 만남은 좋은 인물을 만들고 좋은 인물은 좋은 인생을 창조해 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남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부모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영적 지도자와의 만남, 동역자와의 만남, 좋은 책과의 만남이 우리를 만들어갑니다. 부모와 친척과의 만남은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 외의 만남은 얼마든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스승은 훌륭한 제자를 만날 때 빛을 발하고, 탁월한 제자는 탁월한 스승을 만날 때 빛을 발합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땅을 만날 때 빛을 발합니다. 나무가 아무리 좋아도 좋은 땅을 만나지 못하면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훌륭한 인물의 배후에는 훌륭한 만남이 있습니다. 훌륭한 만남이 없이는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인물을 직접 만날 수도 있고, 책을 통해 만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만남을 통해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큰 나무 곁에 가면 죽지만 사람은 큰 인물 곁에서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게 됩니다.


좋은 만남, 아름다운 만남/ 좋은 만남은 축복입니다. 좋은 만남은 우리를 변하게 해줍니다. 너와 나의 만남을 통해 깨달음이 옵니다. 만남을 통해 우리는 내면을 보게 되고, 자신을 깊이 보게 되고, 우리 안에 엄청난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줍니다. 좋은 만남은 사람을 바꾸고. 사람을 살려냅니다. 기적을 일으킵니다. 새로운 생명, 새로운 신화도 좋은 만남에서 창조됩니다.

좋은 만남보다 어려운 것은 그 만남을 가꾸는 것이고 좋은 만남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정원과 가정은 가꿀수록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데 만남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축복된 만남, 풍성한 열매를 맺는 만남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만남을 정성스럽게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만남이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목적 있는 만남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만남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깊은 영성은 만남을 소중히 여깁니다. 깊은 영성은 만남을 가꿀 줄 압니다. 깊은 영성은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함께 성취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만남이 뒤섞여서 자신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만남을 가꾸십시오 /우리는 날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잠깐 스쳐 가는 만남도 있고, 오랫동안 관계를 맺도록 만들어주는 의미 있는 만남도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만남도 있지만 "저 사람은 만나지 않았더라면..."하는 만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만남이든 우리에게 우연한 만남은 없습니다. 다만 섭리적인 만남이 있을 뿐입니다.


인생의 참다운 의미는 만남에 있다.

만남은 기쁨의 원천이며 사랑의 매개체입니다. 만남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아서 우리의 갈증을 해갈시켜 줍니다. 우리의 삶에 풍성함을 안겨주고, 안식을 줍니다. 사막을 거쳐 머나먼 여행을 하고 있는 나그네에게는 다시 일어서서 먼 길로 떠날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만남은 삶에 환희를 주고, 생에 맛을 더해 줍니다. 그러나 때로, 만남이 우리의 아픔과 상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만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만남을 어떻게 가꾸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 번의 만남이 우리의 생애를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한순간의 만남이 영원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만남은 선택과 결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좋은 만남은 원함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토록 소중한 만남이 친밀함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남이 그토록 아름답고 중요한 것만큼이나 잘못된 만남과 잘 가꾸지 못한 만남은 우리에게 엄청난 아픔과 고통을 가져다주곤 합니다.

정원사가 없는 정원은 없습니다. 가꾸지 않은 정원은 이미 정원이 아닙니다. 단지 잡초만 무성할 뿐입니다. 정원은 가꿀수록 아름답습니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눈에는 비전이 있습니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눈에는 씨앗을 뿌리면서 아름다운 꽃동산을 봅니다. 씨앗을 심으면서 아름다운 꽃을 보고, 꽃 내음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정원사입니다. 탁월한 정원사의 특징은 매일 정성을 다해 사랑을 가지고 정원을 가꾼다는 것입니다. 만남을 가꾼다는 것은 정원을 가꾸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만남, 축복된 만남,

열매 맺는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정원을 가꾸듯이 정성을 다해 가꾸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에게 주신 만남을 가꾸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겸손하십시오. 만남을 통해 배우기를 힘쓰십시오.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십시오.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좋은 만남을 추구하십시오. 이미 주어진 만남을 아름답게 가꾸기로 작정하십시오.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만남은 아름답게 가꾸어지고 있습니까? 귀한 만남은 우리의 인생을 빛나게 만들어 줍니다. 아름다운 만남의 축복이 넘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언 27:17)"

 

 

신앙은 형식이 아니라 만남이다

신앙은 형식이 아닙니다. 신앙은 만남입니다. 신앙은 형식이 앞서면 안 되고 내용이 앞서야 합니다. 물론 신앙에서는 형식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를 드리는데도 분명한 형식이 있습니다. 신앙고백, 찬송, 헌금, 말씀 우리가 형식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주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그 예배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형식이 중요하지만 내용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리를 의존하는 것보다 예수님께 더욱 의존해야 합니다. 전통을 추구하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합니다. 어떤 전통적인 틀을 가지고 따지며 이야기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그리스도를 닮아 가느냐,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 애를 쓰느냐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직적 체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조직이 사람과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있어야지 교회가 조직을 위해서 있으면 안 됩니다. 공동체가 조직화되어 가면 되어갈수록, 조직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화석화되는 것입니다. 현대판 바리새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도주의를 극복하여야 합니다. 제도와 조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한 그 교회는 화석과 같은 곳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여러 기관으로 조직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근본적으로 생명을 가진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는 어떤 고정된 교리나 체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되는 법칙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될 경우에는 언제든지 고치고 새로운 진리를 수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적은 그리스도이지 조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도 대신, 조직 대신, 행정 대신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성령의 열매를 사모하여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오만과 편견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들의 전통만이 맞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처럼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조직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도 용납도 없습니다. 자기들의 신앙이 제일로 옳고, 가장 바르고, 제일이기 때문에 자기들과 같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들이야말로 편견중의 편견이요, 잘못된 것 중에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만남의 의미

평생을 가도 첫인상을 남기는 사람이 있고 늘 마주해도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날 때 즐거우나 돌아서면 슬퍼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독할 때 웃어 줄 수 있는 편안한 사람도 있습니다. 만남이란 언제나 그런 것 입니다. 혼자라 생각해도 돌아서면 누군가 서 있게 마련이고 같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그들이 내 곁에 있으란 법도 없습니다. 기쁘다 해서 찾을 것도 없고 슬프다 해서 두려워하며 피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면 오는 대로 그저 편안하게 대하면 그 뿐입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처럼 보이다가도 조금만 알게 되면 운명으로 여겨지는 태고 적으로 기약된 약속일 수도 있고 삶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대할까 걱정할 것도 없고 지난 일들에 매달릴 필요도 없습니다. 종말은 기다리지 않아도 다가와서 이별이란 말만 뿌리고 갈 것이기에 만남의 의미가 하나의 부분 이듯이 다만 순간에 충실하면 그 뿐입니다. 많은 사람에 기뻐하기보다 작고 소중한 만남에 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돌아섰다 해서 따라갈 필요도 없고 결국 가야하는 사람은 혼자뿐! 이별은 만남에서 부터 시작 되었고 만남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아프기도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아름답다면 보내주는 사람은 소중합니다. 슬픈 만남에 고개 돌리지 않고 설령 가야 할 때라도 만남의 시간을 기억하면서 미소 지으며 보내주는 사람이 되자. 만나고 헤어짐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과 같은 것 사랑과 행복을 위한 만남이면 좋겠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아름답다면 보내주는 사람은 소중합니다. 슬픈 만남에 고개 돌리지 않고 설령 가야 할 때라도 만남의 시간을 기억하면서 미소 지으며 보내주는 사람이 되자 물과 소금의 만남처럼 물과 소금은 서로 다른 성격 이지만 알고 보면 친한 사이 입니다.

잦은 만남과 이별이지 않고 고귀한 만남으로 둘은 빈자리를 채워 주길 원합니다. 서로는 언제나 함께 함에 식탁 위에 간을 맞춰 주는 하나의 의미 입니다. 만남이 싱거우면 소금이 되어 짜면 물이 되어 서로를 영원 까지 찾아 주는 아름다운 물과 소금의 만남처럼 우리의 만남도 서로의 부족한 자리를 채워 주는 필연의 만남이길 소망합니다. 서로는 언제나 함께 함에 식탁 위에 간을 맞춰 주는 하나의 의미입니다.


만남의 세 가지 법칙

첫 째, 만나고 싶은 사람을 쉽게 만나서는 안 된다. 당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만남이라도 쉽게 만나게 되면 아무런 가치도 고마움도 모르게 됩니다. 둘 째, 커다란 만남은 작고, 작은 만남은 크다.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커다란 만남을 추구합니다. 셋 째,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이 뒤섞여서 당신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 20대 꼭 만나야 할 50인 (나키타니 아키히로) 중에서 - 미래에 만날 사람은 20대에 만나는 법입니다. 20대의 문을 나서 생의 광활한 들판으로 나가면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만남은 없습니다. 20대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당신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만남은 곧, 가치관의 확대입니다. 자기 자신을 무한정으로 확대시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무한정으로 확대시켜 주며 결코 후회 없는 만남! 꼭 만나야 할 분! 여러분, 자신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실 분!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된 만남, 사랑의 만남/복된 만남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기회를 줍니다. 우리 안에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줍니다. 삼중고(三重苦: 입과 눈과 귀의 장애)를 겪는 어린 헬렌 켈러를 만난 설리반은 헬렌에게 있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 가엾은 소녀 속에 감추인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평생 헌신했습니다. 사랑하면 비전을 보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그 사람만의 개성과 자기 빛깔이 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과 비전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내어 거름을 주고 꽃피게 해주는 사람, 그런 복된 만남, 사랑의 만남이 인생을 바꿉니다. 
만남과 마주침의 차이/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입니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때의 마주침입니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 합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만나 우연으로 끝나면, 그것은 마주침입니다. 우연처럼 만났으나 필연으로 이어지면, 만남입니다. 그 필연은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가져다주지도 않습니다. 오랜 자기 준비와 기다림 끝에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만남은 필연이며,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는 위대한 창조의 순간입니다.


만남이란 서로 마주 보는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의 사이에는 깊은 웅덩이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만남'을 가지려면 누군가가 상대방이 있는 쪽으로 훌쩍 웅덩이를 뛰어 넘어가야 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자기 자신을 무한정으로 확대시켜 가는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무한정으로 확대시켜 주며 결코 후회 없는 만남! 꼭 만나야 할 분! 자신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실 분!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