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신6: 5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8)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요3:16)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님께서도 제자와 우리들을 끝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요13:1) 그러므로 그 베풀어 주신 사랑으로 자녀가 된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과 마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떤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 계명을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 기독교는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의 종교입니다. 이 사랑은 크게 나눠서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총괄해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생각하게 되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크고 첫째되는 계명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계명의 기초가 됩니다. 다른 모든 계명이 이 계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좋을 것 입니다. 따라서, 이 계명은 모든 계명을 포함하는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 하나만 잘 지키면 자연히 다른 계명은 잘 지키게 될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상을 만들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연히 하나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힘쓸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 일서 4장 20 - 2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한 이 계명은 모든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이요, 모든 계명의 총괄이요, 제일 먼저 순종해야 할 계명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여러분, 여기 "사랑하라" 고 하신 말씀을 주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또한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존경만 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런데 경외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모든 은혜를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은 다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봉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하면서도 당신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우리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다른 면은 질투입니다. 사랑하면 질투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가 있는 것을 느낄 때 질투의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입니다. 만일에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가있는 것을 알면서도 질투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를 사랑하면 그가 나만을 사랑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의 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무엇으로 다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놀라운 사랑입니다.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을 또한 요구하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해서 정성을 쏟으면 쏟는 만큼 자녀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의 사랑을 요구하십니까? 오늘 주신 말씀 신명기 6장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초신자에게는 예수를 믿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숙된 성도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2:13)
1. 마음을 다하라
마음이란 사람의 가장 깊고 중요한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서 '심장'(렘11:20)이나 '중심'(애3:21)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이곳은 생명의 근원이며(잠4:23), 성령에 의해 말씀이 기록되는 곳이며(렘31:33),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엡3:17) 그리고 이 마음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시33:15) 따라서 마음을 다하는 것은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참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또 여기 "마음" 이란 말은 우리가 겉모양으로 하지 말고, 말로만 하지 말고, 중심대로 사랑하라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려오는 말에 "비둘기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인데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내 몸은 어디 있든지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언제나 그 마음이 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랑하면 그 사랑의 대상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관심이 없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나쁜 말 중에 하나는 무관심이라는 말입니다. 남편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교회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지 관심이 없다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께 향해 있어야 합니다.
2. 성품을 다하라
성품이란 '둘러싸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나파쉬'에서 온 것으로 '생명(창9:5), '사람'(레24:17), ' 영혼'(시124:7), '뜻과 의지'(창23:8)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품을 다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뜻과 의지, 생명을 다하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의 의지와 생명을 다바쳐서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성품을 다해서, 그러니까 모든 지력과 지식 그리고 지혜를 다해서 사랑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목숨을 다하고"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데는 혼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생명 전체를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대한 우리들의 사랑은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한 최선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 전체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 부분으로 사랑함으로써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3. 힘을 다하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육체의 능력이든지 심령의 능력이든지 내게 무슨 힘이 있든지, 가령 재력이든지 권력이든지 능력이든지 그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심령 전체를 드려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영과 육 전체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부분적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머리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혹은 감정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외부적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지, 정, 의 우리의 인격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라우디게아 교회처럼 미지근하게 사랑하지 말고 온 힘을 다해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 마음이 아니라(약1:6- 8) 한 마음, 곧 전심으로, 온 힘을 다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시도 바울은 복음을 위함에는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행20:24) 주님도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했습니다.(마16:24) 이는 우리가 오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랑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제일 먼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지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극진히 사랑하라고 하면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아내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요구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또,우리는 부모님을 극진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자녀를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우리의 생명을 사랑합니다. 가령 나이 많이 드신 분이 이젠, 빨리 죽어야지. 하는 말을 늘 외듯 합니다. 그러나 정말 죽으라고 하면 몹시 섭섭해 합니다. 왜요? 내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한 말씀은 내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순교의 자리에까지 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문자 그대로 자기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전적으로,우선적으로, 지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여기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극진히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우선 소극적으로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동안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한 공간 속에 두 가지가 같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소극적으로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지나가기 때문입니 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고 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 따라 살기를 힘씁니다. 이것은 사랑의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요한 일서 5장 1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 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그 계명을 지키려면 그것이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이 그 계명을 지키려면 힘들어서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23절에도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이 한 말을 꼭 기억하고 그대로 지키려고 힘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앙망합니다. 시편 42편 1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합니다. 시편 84편 2절에 보면 이런 갈급이 있습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 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궁정을 사모해서 육체와 정신이 쇠약해질 정도로 생각하고 앙망하는 모습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합니다. 그럴 때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어도 새 힘을 얻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려운 세상을 힘있게 살아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랑에는 힘이 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넷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지으려고 할 때 모든 백성에게 선포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명령에 의지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막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성막을 짓기 위해서는 실도 필요하고 나무도 있어야 하고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보석도 다 필요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것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바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원해서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모세의 말을 듣고,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자원해서 실과 천과 나무와 보석, 금, 은, 동, 철을 가져오는데, 너무 많아서 그 다음엔 모세가 이제는 더 가져오지 마시오. 넉넉하니 그만두시오. 라고 선포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일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분을 위해서 하는 일이면 즐거움이 있습니다. 전에 하나님의 사람 에스라 때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백성들을 다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와서 성전을 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원해서 나아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수고를 했지만 즐겁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있으나 그 수고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께 붓고 머리털을 풀어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왜 그런 일을 했습니까? 주님을 극진히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가룟 유다는 이것을 보고 쓸데 없는 낭비라고 비난했습니다.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내 시간, 내 재주, 내 물질 모든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드립니다.
다섯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기쁨으로 복음을 전파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남이 웃는 줄도 모르고 자기 남편 자랑하기에 침이 마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이 좋아만 보이고 훌륭해 보이고 자랑스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랑되시는 주님께 대해서도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선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전도입니다. 내게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을 말하지 않고 견딜 수가 있습니까? 이제 얼마 있으면 대학 입학 합격자 발표가 있을 것입니다. 내 아이가 합격한 통지를 받으면 이 기쁜 소식을 부모 혼자 간직하고 있을 수 있습니까? 알리고 싶고, 물어 보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 마음이 아닙니까? 옛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주님 때문에 핍박을 받으면서도, 매를 맞으면서도, 심문을 받으 면서도, 심지어 순교까지 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이 기쁜 복음의 소식을 전파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그 이유를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지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셔서 우리에게 새 나라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히 사랑할 만한 분이십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의 것을 사랑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다가는 결국 마 지막에 눈물로 끝내는 것밖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영광을 사랑합니까? 그 영광도 지나갑니다. 세상의 물질을 사랑합니까? 그 물질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돌고 도는 것이 돈입니다. 세상의 사람을 우리가 사랑합니까? 그 사람도 지나갑니다. 젊음을 사랑하십니까? 그 젊음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 되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세상의 것도 바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친구도 바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물질까지도 바로 대할 수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처음 사랑을 버렸다" 고 책망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 니다. 에베소 교회는 여러 가지 다른 일은 잘 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하나님과 상대하는 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는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니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오늘 여러분은 크고 첫째되는 이 계명을 분명히 들으시고, 우리 평생에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만이 아는 큰 행복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행복이므로 제가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자신만이 아는 큰 행복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여러분만이 아는 행복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고백합니다. 주여 ! 이 시간부터 하나님을 전보다 더욱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누구보다도 깊이 뜨겁게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깨끗이 살며, 세상을 이기며 참되게, 기쁘게, 만족스럽게 살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가르치고 자녀를 하나님 말씀으로 교육하는 데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