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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설교 정리한것

나를 살리는 거룩한 습관(시34:4-8)-정리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7|조회수0 목록 댓글 0

나를 살리는 거룩한 습관

 

시34:4-8

4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인사(축원)와 연결과 서론(천천히 이해확인 반복 멈춤 한교훈 톤을낮게 관심과집중할 질문이나 예화 짧게)큐티

오늘 "나를 살리는 거룩한 습관"주제로 깨달음과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구호:주여!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오직 예수와 십자가만 선포-예수 영접 구원)

 

확신은 육신의 건강을 증진함―(벧전 3:10-12 인용)

"하나님께서 시인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 그것은 육신의 건강을 증진시켜 줄 것이다.

그것은 영혼을 강하게 하여 의심과 당혹감과 극한 슬픔을 이기게 한다.

이런 것들은 생명력을 짜내어서 아주 고통스럽고 쇠약하게 만드는 신경증적 질병을 일으키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주께서 틀림이 없으신 그의 말씀으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기도에 기울이시는 한편

그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대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우리가 주의 대적이 되는 행동을 취할때 그것은 곧 어려움을 자초하는 것이다"(리뷰 1883. 10. 16).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합니다.

그러면서도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습관은 버릇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습관이 사람을 지배합니다.

신앙생활을 대부분 잘하고 있지만 잘못하는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습관이 잘못되어서입니다.

 

인생의 성공은 지혜에 의해 좌우됩니다.

지혜가 사람을 움직입니다.

지혜가 사람의 생각을 좌우하고, 습관을 형성하게 합니다.

 

이 세상에 연습 없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말하는 것, 먹는 것, 옷 입는 것, 수영, 볼링, 어학, 운전 등등....

문화는 연습과 반복된 행위로 태어난 습관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반복된 연습으로 사람이 되어 갑니다.

모든 것은 연습입니다.

사람은 연습으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갑니다.

한편, 거룩한 연습은 자신을 구원하고

악의 연습은 자신을 패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습관은 좋은 습관도 있고 나쁜 습관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선생님을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제도 속에서 우리가 배웁니다.

우리 성도들도 좋은 습관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는 습관- 습관을 쫓아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신 것처럼

기도는 늘 습관이 되도록 몸에 베여 있어야 합니다.

안식일날 예배드린다. 이것은 습관이 되어 합니다.

항상 기뻐한다. 감사하다. 전도한다. 이것은 우리 몸에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려면 늘 깨어 있어야하고 끊임없는 배움의 자세가 필요 합니다.

자신에게 기회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것들을 내 것으로 수용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평생 수업입니다.

 

성도 된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날마다'는 하루 24시간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영적 새로움(카이로스)의 주기가 하루 24시간(크로노스)이라는 뜻입니다.

점차적으로 낡는 겉사람의 한계성 속에서,

우리의 속사람은 평생 끊임없이 새로워짐을 경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바르고 지혜로운 신앙입니다.

 

무엇보다도 거룩하게 살기위하여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룩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할 어떤 행동이나 말,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이렇게 살기 어렵고 때때로 넘어집니다.

그럴 때에 즉시 회개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잘못을 범했다고 생각되면, 지체 없이 회개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이것이 순결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거룩하게 살아서 하나님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1.기도하는 습관(4)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성도 된 우리들이 가장 먼저 습관을 가져야 할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그 어떤 종교도 가지고 있습니다.

불자들도 100일기도 한다고 하며 무속인들도 기도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가끔 무속인들이 주문 외우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비슷한 수준으로 생각합니다.

게다가 종교가 없는 것보다는 하나쯤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이 맞는 것 같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비슷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유일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종교로서 다른 어떤 신도 인정하지 않습니다(이사야44:6).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시며,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만을 섬기며, 다른 이방 신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구원을 선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히 2:14).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으로서 성령으로 잉태 되사 사람과 똑같은 형상으로의 죄를 대속하고,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우리의 기도의 대상자이십니다.

그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데를 향하여 기도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 또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그분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사실 우상에게 기도하거나 응답을 기다리며 향기롭고 값진 제물을 바치는 일처럼 허망되고 무익한 일도 없습니다.

 

기도란 하나님과 마주 앉아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시간입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단지 자신의 소원과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그와같은 기도는 차라리 주문(呪文)에 불과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과 촛점을 맞추고 있다면 그 사람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명상하기도 하며 찬송을 부르기도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마음을 모으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발견하고 확인하기 위한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확신한 후에는 그 길이 아무리 험하고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바람직한 기도생활이며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기도가 바로 기도의 시작입니다.

이러한 독특성이 있기에 다른 종교의 기도와는 전적으로 다른 양상을 띱니다.

결국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 영광과 뜻을 위해서 노력하는 행위, 마음 그 자체입니다.

 

사도행전3장1절에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예수님이 오시기 전 시대의 유대인들은 기도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후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신 후에도

이러한 기도의 습관은 계속되었습니다.

사실 신약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기도시간을 정해 놓으라는 말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기도가 어느 일정한 시간동안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호흡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5장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러나 우리는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기도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성경 안에서 그 이유를 발견하기는 매우 힘이 들지만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주님과의 은밀한 교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기도했었던 이유를 알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는 것도 좋은 습관이요 전통이지만,

때로는 바리새인처럼(또 많은 유대인처럼) 외식적인 기도가 될 위험도 없지않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오랜 시간 교제할 수 있는 장소를 그때 그때 찾아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우선 예수님의 방법대로 각자 자기에게 가장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찾아서 기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나중으로 기도를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큰 위기를 만나면 밤낮 부르짖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습관이며, 훈련으로 성숙해집니다.

평소에 기도를 안 하다 보면 큰 위기를 만나도 강청하는 기도를 못합니다.

히려 위기 앞에서 절망하게 됩니다.

평소에 기도의 훈련이 되어야 위기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기도의 자리로 나갈 수 있습니다.

 

본문 4절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여기서 ‘두려움’은 ‘메구라’인데 마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삼일 밤낮 동안 갇혀 있는 것처럼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도우심을 구하였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두려움에서 건지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습관이야 말로 나를 살리는 거룩한 습관입니다.

 

2.주를 경외하는 습관(5-7)

 

[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성도 된 우리가 가져야 할 거룩한 습관은 주를 경외함입니다.

 

하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신 분으로 우리가 유일하게 경외할 분이십니다.(신6;4)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물을 만드셨으며,

또한 아름답게 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깨닫는 것입니다. 

 

이사야33장6절에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가장 소중한 보배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입니다. 

이 시대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이 이렇게 어지러운 이유는

정말 소중히 가꿔야 할 보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분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하심에 대하여 경외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주권자의 존재를 경외할 때 나타나는 것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호의를 얻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징계와 징벌 그리고 심판의 권리가 모두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존 맥아더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지혜로운 길을 가게 됩니다.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 곧 복되고 형통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사람입니다.

가정 일이나 직장 일을 비롯한 모든 일에 복되고 형통하는 길은,

삼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 도에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자기 부정의 자세요, 겸손한 태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스스로를 겸비하게 돌아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시대를 바르게 분별함으로써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고 전적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려는

중심을 반드시 확립해야 합니다.

 

그런 중심이 하나님앞에 바로 설 때,

세상의 거대한 미혹의 파도 속에서 우리를 철저히 구별시켜 주시고

때에 맞는 섭리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내가 그런 겸비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그동안 나 스스로에 대해 보이지 않던 부분을 비춰주시고 조명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중심이 되도록 인도해주시지만

애초에 그런 마음 자체가 없다면 하나님이 강제로 우리를 잡아끌어서 인도해주시지 않습니다.

 

출애굽기33장19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로마서9장15절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 사람의 중심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중심이 아니라면 그 사람에겐 은혜가 임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본연적으로 지식을 추구합니다(전1:13).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 없이 지식은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소홀하고 단지 천기의 운행만을 파악하고자 애쓰는 교만한 철학자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는 겸손한 농부가 휠씬 낫습니다.

 

하나님 경외는 순경과 역경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타나는 지속적인 태도와 행동입니다.

순경과 역경은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의뢰하는지를 시험해 보는 기회로 제공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잘 아는 아굴은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말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부와 가난은 모두 견디기 힘든 것이며, 형통과 도난의 때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떠한 때에라도 주어진 상황과 현실에 대해 자족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예로 사도 바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혜자는 풍족할 때나 징계의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성경의 훌륭한 인물들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생명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 결국은 승리의 결과였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 당부합니다.

 

전도서12장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본문7절에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다윗은 자신이 아기스왕의 왕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

단지 자신이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척했기 때문이었거나,

자기에게 그런 위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자신을 둘러서 보이지 않게 해 주시고,

위기상황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는 일은 나를 살리는 거룩한 습관입니다.

 

 

3.하나님께 피하는 습관(8)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모든 사람은 언제나 평안할 수는 없습니다.

환난이나 시련이나 곤고한 일을 당하여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의 아니게 억울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억울하게 무고를 당하거나 오해를 받을 때에 하나님에게 호소해야합니다.

억울한 무고나 오해를 받아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억울함을 풀어보려고 하면

할수록 대적하는 사람들의 미움과 투지도 더 커져서 억울함이 풀리기는커녕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꼭 필요하다면 법에 호소하는 수도 있지만 법정을 통하여 명예를 회복하는 데에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설혹 법적으로는 명예가 회복된다하더라도 이미 그때에는 명예에 되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간 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호소해야합니다.

 

사람의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안전에 대한 욕구입니다.
아무리 마음이 좋고 착한 사람도 안전이 흔들리고 안전에 위협을 주는 말을 듣거나

행동을 가하면 화를 벌컥 내고 달려듭니다.

우리에게는 환란 날에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우리가 환란과 고통을 피할 참 피난처가 없습니다.

구약에 보면 '도피성'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아무 리 큰 죄를 범한 자라도 이 도피성으로 피하면 아무도 잡아가지 못하였습니다.

그 곳에서만은 안전이 보장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말씀 속에는 이러한 개념이 담겨있습니다.

세상이 도피성 되시는 하나님의 품에 있는 성도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피할 곳이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시편5편11절에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기서 “주께로 피하는 자'란 곧 하나님만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심과

자신의 구원이 오직 그분께 로서만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께 전적으로 의뢰하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반에 걸쳐 정세가 급변하는 오늘날,

과연 우리가 어디에 가서 피난처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시어

"낮에 해가 너를 상치 않고 밤에 달도 너를 상치 않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환란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담대한 신앙 고백을 할 수가 있습니다.

 

피난처가 있다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피난처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피난처로 알리십니다(시 48:3).

산 위에 세운 성보다, 중국의 만리장성보다 더 든든하고 안전한 피난처이십니다.

우리 마음의 피난처, 영혼의 피난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영적 고향입니다.

하나님이 팔을 펼쳐 우리를 맞아 주십니다.

 

자기의 벌거벗은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면, 불안에 떨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피난처이시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벗은 채 불안한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입히셨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게 하셨습니다(롬 13:14).

우리에게는 피난처가 있습니다.

 

시편17편8절에

“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눈에 가장 가까운 것은 눈동자 자체입니다.

위험을 제일 먼저 보고 보호하는 것이 바로 자기 눈동자입니다.

 

다윗은 눈동자처럼 소중한 존재입니다.

위험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보호합니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춘다 하였습니다.(주 날게 밑)

독수리 한 마리가 창공에 뜨면 두려워 모든 짐승들은 굴과 우리로 재빨리 피합니다.

독수리의 날개는 크고 위용 있습니다.

날갯짓 한 번에 창공을 순식간에 날아오르며 그 날개는 온 하늘을 덮을 만합니다.

 

이처럼 주 날개 아래 거하는 다윗은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합니다.

날개의 품 안에 있는 새끼는 밖에서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친다 해도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평화는 한가한 들판에 풀을 뜯고 있는 양의 모습이 아닙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절벽 틈 사이로 어미 새의 품 안에 곤히 잠든 어린 새의 편안입니다.

 

시편31편19절에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다윗은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해 쌓아두신 은혜,

즉 고난 뒤에 숨겨 놓으신 하나님의 또 다른 복이 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닥치면 그것 하나만 붙잡고 괴로워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고난의 순간에 고난 뒤에 숨겨 놓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고난 뒤에는 하나님이 숨겨놓은 복이 반드시 있습니다.

 

고통당하고 억울한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피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고통당하는 나를 위해 숨겨놓으신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피하여 영적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고

하나님이 쌓아두신 은혜를 헤아리며 삶의 새로운 희망을 열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본문8절에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이 우리의 울타리요,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환란 날에 피할 피난처이십니다(시 46:7).

 

결론 적용(나 청중)호소 결심결단 합시다

오늘 "나를 살리는 거룩한 습관"주제로 깨달음과 교훈을 받았습니다

 

환난이 오거나 쉼이 필요할 때나 하나님께 피하는 습관이 나를 살리는 거룩한 습관입니다.

 

1.기도하는 습관(4)

2.주를 경외하는 습관(5-7)

3.하나님께 피하는 습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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