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 MBC 창사 특집 다큐 ‘생명의 소리, 아날로그’를 보고 매우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음악을 수년 동안 비교 분석해서 생명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실생활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이기에 인상적인 부분들을 부분 인용하며 나의 생각을 나누려 합니다.
정신과 의사인 존 다이아몬드 박사는 음악이 최고의 치료법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Your body doesn't lie). 분명 디지털 녹음 기술은 몸의 에너지를 떨어뜨리고 스트레스를 주고 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디지털 음악이 치료에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80년간 녹음된 수천 장의 LP음반을 실험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예외없이 모두가 음악치료 효과가 있었고, 그 중 일부는 특히 좋았습니다. 환자들이 보인 부정적인 반응은 모두가 디지털 녹음 음반을 사용했을 때였음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아날로그 음악은 치유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음악도 디지털 방식으로 녹음되면 부정적인 영향을 가지게 됩니다. 마치 낮과 밤, 생과 사처럼. 그 때문에 지금까지 음악을 써 오는 동안 디지털 음악을 사용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디지털이 막 시작되던 1979년에, 그 역시도 치료에 사용하고 있던 기존 곡들을 디지털 CD로 대체했었습니다. 카루소, 존 맥코맥, 하이든 심포니 등. 그런데 이전과는 상반된 결과가 생겼습니다. 이전의 환자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긴장을 풀고 에너지를 변화시켜 더 건강한 몸으로, 즉 긍정적인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음악을 디지털로 들려주었더니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과학적인 증명을 위해 페스윌라의 피아노곡을 피아노 실연, LP, SACD, 일반 CD로 들려주면서 어깨와 연결된 삼각근육에 대한 근력 측정을 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위의 순서대로 근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사실이 더욱 심각하게 들려지는 것은, 요즘 중, 고 학생 중에 삼분지 이가 MP3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MP3는 CD보다 소리 전달 과정을 더 생략한 기계음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더욱 가증시킬 것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대구경신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악에 따른 학습 집중도를 비엔나 테스트법으로 측정했습니다. 모차르트 음악을 10일간 들려주고 반응 속도를 측정한 결과, 아날로그 음악을 들은 학생의 경우 그 반응속도가 1.5903초이었고, 디지털 음악을 들은 학생은 1.6772초였습니다. 공간지각 능력의 영역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정교한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디지털 음악은 매우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결과가 측정되었습니다. 디지털 음악을 습관적으로 들으며 공부하는 청소년은 두뇌구조의 퇴화로 탁월한 성적을 거두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음악은 내면적 도덕성의 전도현상(a reversal of inner morality)이 무의식중에 형성시킬 수도 있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랑은 좋은 것이고, 증오는 나쁜 것이다’ ‘건강은 좋은 것이고, 병은 나쁜 것이다’는 매우 상식적인 가치가 디지털 음악을 오래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심각한 전도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왜 요즘 청소년들이 참을성이 없고, 폭력적인 성격으로 치달아 반사회적인 행동을 일삼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경북대와 계명대 공동으로 식물을 대상으로 베토벤 교향곡 5번 ‘황제’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날로그 음악을 들은 식물에게 있어서 생장호르몬이 2-3일 정도 빨리 형성되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디지털 음악을 들은 식물군은 꽃눈 분화가 많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아서 스트레스로 인한 종족보존 현상이 두드러져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35일 동안의 오이재배 실험 결과는 놀라운 차이를 나타내 보였습니다.(CD-81.7CM MP3-77.6CM LP-89.2CM) 식물 성장 호르몬 ‘지베레린’의 검출 양이 그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또 대학생 10명을 대상으로 눈을 가린 상태에서(blind test) 베토벤의 소나타 ‘봄’을 LP와 MP3로 들려주었더니 8명이 LP로 음악을 듣는 것이 편하다고 응답했습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평소 때에 MP3를 귀에 꼽고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태교음악 실험을 대구효성병원에서 2001년 9월부터 2002년 2월 1일 까지 실시했습니다. 아날로그 음악과 디지털 음악의 차이는 태중에 있는 아이에게도 현저하게 나타났습니다. 아날로그 음악을 듣는 태중의 아이는 방긋방긋 웃는 모습인 반면, 디지털 음악을 들은 아이는 찡그리고 있었습니다. 구전으로 내려온 태교 중, 소나무가지에 젖어드는 바람소리가 최고라는 말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입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모차르트 음악보다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악을 들려주었을 때 자율신경의 안정이 잘 이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계명대 신경정신과에서도 음악자극에 따른 근육의 활성화 정도를 측정했더니 LP-10.44 CD-9.31 MP3-8.22로 나왔습니다. 아날로그 음악은 감정적인 스트레스를 덜 주어 자율신경계에 좋은 영향을 끼치며 교감, 부교감의 균형을 이루게 한다는 것입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방식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 둘의 차이는 사인파의 다름에 있습니다. LP의 사인파는 끊어짐이 없습니다. 그런데 CD의 사인파는 계단모양으로 끊어져 있습니다. MP3는 더 끊어져 있습니다. 이는 소리를 적은 용량에 많이 저장하려고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음악은 실재를 ‘0’과 ‘1’로 부호화한 테이터의 조합이기 때문에 원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얼핏 듣기에 같은 소리로 들리지만 몸의 세포는 기계음과 자연음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반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음악치료에 있어서 어떤 곡을 듣는가도 중요하지만 음원이 디지털이냐 아날로그 방식이냐가 먼저입니다.
이미 디지털 음악의 폐해를 알고 있는 호주 캔버라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수업 중 CD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호주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고물상에 팔아버린 LP 턴테이블을 거의 대부분의 가정들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아직까지 LP시장이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1975년경 LP 한 장 당 제작비용이 10불이라면 CD는 22센트에 불과했습니다. 당연히 음반 제작자들은 원가절감을 위해 디지털 녹음 방식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채산성을 이유로 현재 LP를 단 한 장도 만들어 내지 않고 있습니다. 디지털 문화는 음악의 대중화에 기여를 하였으나 사람의 정신세계를 황폐케 하였으며, 몸을 망가뜨리는 흉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빠르게’ ‘많이’가 대변해주는 자본주의 보편적 가치인 편리성과 상업성의 폐해가 흉물처럼 점점 드러나고 있습니다.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에 급급하다보니 사회전반에 부실공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때 기계문명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주리라고 낙관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기계문명에 의해 인간은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마치 하와가 뱀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죄의 종노릇하듯이.....
이제부터라도 불편을 감수하고서 생명의 소리가 들리는 자연의 세계로 되돌아오는 것만이 인류가 살 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에덴동산에는 오직 아날로그 소리만이 존재했었습니다. 창조 도구인 ‘말씀’도 죽은 언어가 아닌 살아있는 언어, 아날로그였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민중들과 함께 애환을 나누셨습니다. 성령님께서도 아날로그적인 음성으로 생명의 질서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광야의 외치는 자, 세례 요한의 소리도 아날로그였습니다. 결국, 살아있는 소리만이 생명을 창조하고 충만하게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조화(造花)라 하더라도 또 다른 생명을 만들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조화를 선물로 주는 것은 상식에 어긋납니다.
인위(人爲)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신위(神爲)보다 어찌 더 나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도시생활을 해야만 하는 이들을 위해 국가가 지원하여 아날로그 소리를 만드는 음반 공장을 건설해야 합니다. 공공기관이나 병원 특히 교육기관에서는 아날로그 음악만을 들을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합니다. 저렴한 가격과 편리성 때문에 보급되고 있는 디지털 피아노도 생산이 중단되어야만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디지털 피아노를 치면서 기계음에 익숙하게 되면 결국은 인간성이 말살되고 기계적 인간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예술 활동을 통한 전인격적인 교육을 도모하고자하는 본래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계적으로 조작된 소리를 아무 생각없이 주고는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화려한 외양이나 편리보다는 생명의 본질을 추구하는 가치관 회복이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에는 별 관심이 없는 천민자본주의적인 삶의 행태에 브레이크를 걸고, 생명의 소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길러져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교회 공동체가 자본주의적인 상업성이나 대중성에 편승하지 말고, 생명을 회복하고 충만케하는 진리를 사랑하며, 아름다운 전형(典型)을 만들어 삶의 열매로 선교하는 아날로그 목회로 되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눅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