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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소망.사랑-가장 위대한 것/고전13:13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12.09.27|조회수177 목록 댓글 0

믿음.소망.사랑-가장 위대한 것

 

고전 13;13-"그런즉 믿음,소망.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연결과 서론

믿음.소망,사랑(신,망.애) 이 세가지는 기독교의 모든 메세지를 요약한 핵심되는 말씀입니다

이 세가지가 그리스도인의 인격적 특성(본질)입니다.

그래서 이 세가지를 신앙생활의  삼대요소=삼대 덕목=신앙생활의 삼원색 혹은 신앙생활의 삼위일체 라고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믿음,소망.사랑-가장 위대한 것"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되고저 합니다

 

첫째로,믿음 소망 사랑이 왜 중요한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믿음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엡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요3:16. 행16:31)

우리는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믿음으로 하나님앞에서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요1;12-"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믿음으로 성령의 인침을 받습니다(성령충만함)

우리는 믿음으로 질병과 죄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응답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어 하나님나라에 들어 갑니다

믿음은 천국문을 여는 열쇠입니다(행16:31)

그래서 믿음은 끝까지 있어야 할 중요한 덕목입니다

 

소망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벧전 1:3-"찬송하리로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소망이 있게 하시며

 

소망은 거듭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소망(희망)은 삶의 의미와 이유를 부여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재림과 영생의 소망중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오늘의 고통을 견디고 무덤건너 소망이 우리에게 평화와 기쁨을 줍니다

 

소망(희망)이 생존의 가치와 보람을 얻게 합니다

무덤 건너 우리의소망이 이 세상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위로하고 평안을 선물합니다(살전4;16.고전15:51-55.닫2:3)

 

사랑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롬13:8-"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빚도 지지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요일4: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 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13:34-"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내가 너희를 사랑한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사랑은 모든 계명의 완성이요 핵심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 회개와 믿음으로,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사랑의 체험이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였습니다

 

사랑은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이며 의무 입니다

사랑은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사랑은 천국의 헌장입니다

천국은 사랑의 나라입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도 사랑의 생애입니다.

 

 

둘째로,믿음.소망. 사랑의 깨어질 수 없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믿음과 소망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요11:25-"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무덤건너 소망을 가직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소망을 갖게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소망이 없습니다.소망이 없는 믿음은 없습니다

롬5:1-5-"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골1:4-"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과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라 하였습니다

살전 1;3-"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항상 기억하라 하였습니다

히10:22-"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일과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않는일과 서로 돌아보는 사랑을 격려 하였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갈5:6-"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 하였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랑은 감상이며 사랑이 없는 믿음은 병든것 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사랑함으로 우리는 더욱 주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소망과 사랑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롬5:5-"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사랑이 없는 소망은 힘이 없습니다. 쉽게 절망에 빠짐니다

 

그래서 믿음,소망.사랑은 끊어지지 아니하고 항상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삼요소입니다.)(신앙의 삼화음)

 

세쨰로,믿음.소망.사랑의 영원성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고전 13:8-12-"예언이나 방언이나 지식이나 신유는 폐하지마는 "믿음.소망.사랑은 영원하다'하였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은 현세적인(일시적인)은사들을 사모 하였으나 영원한 선물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믿음.소망,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에서도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것이라 하였습니다

천국에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천국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성도간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천국에서도 소망이 필요합니다.-천국에서 주님은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천국에서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고전13:13-"믿음.소망.사랑.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것입니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였습니다

왜 사랑이 믿음과 소망보다 위대할 까요?.

 

첫째로,사랑이 없이는 믿음이나 소망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이 믿음은 불가능합니다

사랑이 없이 소망이 지탱되지 못합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이 없는 소망은 무력합니다

 

둘째로,사랑이 믿음과 소망보다 위대한것은,믿음과 소망은 무엇을 얻기위한 수단이지마는

사랑은 받기를 기대하지 아니하고 사랑하기위해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믿음과 소망보다 위대한것입니다

 

세째로,믿음과 소망은 "나"의 차원에서 설명되지마는 사랑은 철저하게 이타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나를 떠나는 것입니다.진정한 사랑은 나는 당신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기심이나 나를 위한것에서 다른사람을 위한 것(이타적)이기에 위대한 것입니다

 

넷째로.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8)-하나님은 믿음이시라거나 하나님은 소망이시라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나 소망이 우리로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일을 하지마는 사랑은 하나님자신의 본질입니다

사랑이 그래서 믿음과 소망보다 위대한 것입니다

 

다섯째로,사랑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C.S 루이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에로스에 의해서 태어나고. 스토르게 에 의해서 양육되고. 필레아에 의하여 성숙되고 아가페 사랑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사랑함으로 태어났고, 사랑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로 우리는 사랑하고 있는 만큼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살아 있는한.삶은 삶의 이유를 찾습니다

사랑이 죽을 때 우리는 이미 죽은것입니다(요일3;14)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에서만이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말 할 수 있습니다

시력이 약해지고 청력이 떨어지고 몸이 쇠약해 져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본론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사랑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산상보훈 75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품성을 가진자이다(요1:12)

 하나님의 가족인 증거는 (세속적 계급이나 혈통이나 국적이나 종교적인 특권이 아니고)오직 사랑이다

 곧 전 인류를 사랑하는 사랑이다. 미워하는 대신에 사랑하게 되는것은 다만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원고 133.1899

"치명적인 속임수는 인간이 형제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갖지 않고도 영생에 이르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 할 수 있다.

"서로 사랑하면 자신에게서 기적이 일어나는것을 체험할 수 있다.

 미움.분노.증오의 벽을 넘어서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정치세계에 정적이 있고.사업에 경쟁자가 있듯이  우리가 살면서 용서 할 수 없는 원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면 그것은 분명 기적이다."

 (사랑이 증오(미움)와 분노를 이긴다.  서로 사랑하면 변화가 일어난다.)

 

첫째로,(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려면)사랑의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요15:12. 요일5;12. 요1;12)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심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십자가에서 사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주님을 믿음으로 우리 마음에 영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요일3:1. 요일4: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5:1. 요일 3;4-"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요13:34. 교회증언 7권 266-"사랑의 하나님과 연결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나온다"

요일3;14-"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둘째로,이 사랑(아가페)을 소유하려면.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의 영에게 자신을 드려야만 합니다

갈5:22-"사랑은 성령임의 역사로 맺어지는 첫 열매(결과)입니다

사랑이란 열매(결과)는 성령님의 지배를 받아 비로소 결실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구하는 이마다 먼저 자신을 주께드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에 주께서 사랑의 일을 우리안에서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충만이 사랑충만입니다.성령은 사랑의 대리자요 위로자 이십니다.

 

셋째로,이 사랑(아가페)을 소유하려면,이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빌1:9-"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은 연습을 통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점점 더 커가는 것입니다(성장-어린아이의 일을 버린다)

따라서 사랑이 내 안에서 풍성하게 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로,이사랑(아가페)을 소유하려면,기도한 것을 주신줄 믿어야  합니다

막11:24-"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약속하셨습니다.

약1:6-"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요일5:14,16-"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하는것은 얻은줄을 또한 아느니라"했다

믿음으로 사랑을 구했으면 이제 그 사랑이 내 안에 부어진것을 인정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다섯째로,이사랑(아가페)을 소유하려면,그 사랑을 실천하십시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이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사랑의 하나님이 믿음으로 역사하여  우리 안에 거 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갈2:20)

 

예화

전쟁직후 미국의 관광단이 한 나환자 촌을 방문하였습니다

거기에 선교사로 파송된 한 간호원이 문둥병자의 상처를 싸매는 광경을 보고서 카메라에 담으면서

"나는 백만불을 준다해도 저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나도 할 수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기에 이 일을 합니다?"라고 말 했습니다.

그렇습니다.이제 그리스도의 사랑이 당신과나 나를 당신과 나를 강권하십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가장 위대한 사랑을 시작해야 합니다.

 

마20:27-28-"너희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의 중에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부부와 교회와 양로원과 나라가  될 것이다

 

C.S루이스는 "인류를 사랑하는것은 쉬운일이다  문제는 내 곁ㅇ; 있는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고 말했습니다.

 

예화-곽선희 사랑예화

장로님 한분이 사업에 실패하여 본의 아니게 많은 빚을 지고 하루 아침에 딱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아내와 자녀와 이웃에 면목이 없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집을 나와서 배회하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집을 나와 노숙자가 되어 버릴까? 아니면 죽어 버릴까?--"

이리 저리 헤매며 생각하다가 밤 12시쯤에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 안팎으로 불을 환하게 켜 놓고 몸가짐을 단정히 한 아내가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들어오자 "왜 이렇게 늦었어요?" 하고 미소를 지으며 맞아 들이고 방으로 가서

 

"온 세상 사람들이 죄다 당신을 보고 손가락질한다 해도 나는 당신의 진실을 믿습니다

 비록 부도가 나서 많은 빚을 졌지마는 당신의 진실은 부도 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나는 당신이 다시 일어날것을 확신합니다

그 옛날에 욥이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일어난 것처럼 당신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어느떄 보다도 지금의 당신을 가장 뜨겁게 사랑합니다

 

장로님은 아내의 말을 듣고 체면이고 뭐고 가릴것없이 아내 앞에서 목놓아 울었습니다

아내의 위로와 믿음과 사랑에 감동을 받고 고맙게 생각하였습니다

그의 아내의 두손을 맞잡고 말했습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죄인으로 보다라도 당신 만은 나의 진실을 믿어준다면 나는 끝내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 이후 장로님은 용기를 내어 마침내 사업을 다시 일르켜 세웠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재림징조를 말씀하고나서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준비말씀입니다

주님오실때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잘 활용하면서 성령충만함을 받아 사랑의 생애를 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마25:31-45말씀요점은 "사랑했느냐?"는 문제 였습니다

생애를 사랑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살며 영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하십니다(마15:40)

"사랑하는 이 마다 하나님께로서 낳느니라.

"행함(사랑)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 하였습니다

피 쟈스트-"사랑이 있는곳에 신이 있다"

아리스카-"천국으롤 올라가는 사다리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유고-"사람이 되려거든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욕 이기심)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일3: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예화-"임종의 집"에서 "삶의 집"으로 변화시킨 사랑

고 테레사 수녀는 인도 캘커타 거리에서 죽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죽어 가는 사람도 최후까지 최선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캘커타시 의 도움을 받아  어느 쓸모없는 사원을 깨끗이 청소하고 수리해서 그 곳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모으고

죽을때까지 사랑으로 간호해 주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임종시에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간호를 받던 임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삶의 보람을 느끼면서

죽음에서 회생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어느 간호원의 말대로 "임종의 집" 이 "삶의 집"으로 바꿔지게 되었습니다.

 

예화

미국 남북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샌디에이고 외곽지대에 있는 집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집주인인 부인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엄마!.저예요.제가 죽지않고 살아왔습니다." 전쟁이 나갔던 아들의 음성이였습니다

"당장에 달려오지 않고 전화는 무슨 전화냐?"아들이 보고싶어서 볼멘소리로 말헀습니다

"엄마!이제 곧 가겠습니다.그런데 전쟁중에 불쌍한 제 친구와 함께 갈까 합니다

 함께 전쟁에 참여 하였다가 눈하나와 팔하나와 다리하나를 잃은 친구입니다

 갈데가 없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있게 해 주세요"

"그래?그렇다면 며칠동안 함께 지내도록 해라"

"아니예요.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습니다."

"그러면 한 일년동안 함께 있어라 처음에는 괜찮겠지만 세월이 가면 무거운짐이 되어 괴로울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니예요 어머니!.일생동안 같이 살고 싶습니다."

"너! 전쟁에 나가더니 감상주의가 되었구나! 그런 사람을 길게 사랑하기가 쉬운줄 아느냐?

 처음에는 괜찮은것 같아도 얼마간 지내다보면 싫증이 나고 그리고 나중에는 무거운 짐이 될것이다!"

어머니의 이 말을 듣고 아들이 "그럴까요?!"하고 아들의 전화가 끊겼습니다

그러한 전화를 받고 몇시간이 지난 후에 군본부로 부터 발송한 한 통의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당신 아들이 사망했습니다."

어머니가 깜짝놀라 달려가 보니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눈이하나없고 팔이 하나없고 다리하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불구아들을 어머니가 어떻게 사랑해 줄것인가 마지막으로 확인해 보았습니다

결국 처음에는 괜찮겠지만 무거운 짐이 될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에 절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입니다

그런데 장차 무거운 짐이 될것이라는 말에 희망과 용기를 잃은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은 제일 좋은 은사입니다

사랑의 영을 받아야 이러한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에 믿을 수 있고 사랑하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5:12)하십니다.

 

결론 적용 호소 결심-마치면서

고전 13: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항상 있을것"은 헬라어로 "매네이"로서 현재진행입니다

과거에 그랬다던가 미래에 그럴것이라는 것이 아니고 현재 여기에 이 세가지가 항상 있어야 한다는 말 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모든것은 변합니다

사람도 변하고 인심도 변합니다

세대도 변하고 모든것이 참으로 변합니다

돈과 건강과 사업과 미와 모든것이 변합니다

끝까지 남아 있어야할 끝까지 변치 말아야할 것들이 변하고 없어집니다

배가 고파서 못살기 보다 (아파서) 믿을 수가 없어서 변하고 있습니다

불신이 불안과 두려움을 줍니다 소망없고 절망적입니다

사랑이 식어가고 변하여 병들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이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사랑)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을 알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계명은 이것이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는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사람이 되는것을 말합니다

이 사랑이 있는곳에 (풍성하게)풍요와 행복과 평안과 건강과 영생이 있습니다

사랑을 많이 하심으로 이땅에서도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에 분쟁과 다툼을 이기고 사랑의 천국이 되시기 바람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것을 위대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표 성령은 사랑의 대리자 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위대한 사랑의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하여 주시기를 바람니다.

 

 


 

{성경의 사랑씨리즈,16}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장 13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다시 영하권으로 내려간다는 일기 예보입니다. 여러분들의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시어서 환절기의 감기 에 걸리지 않도록 유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16회에 걸쳐서 사랑에 관한 시리즈를 엮어보았 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으로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글을 계제합니다. 그동안 많은 님들의 성원속에서 글을 쓰게 하여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아플때나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여러분들이 격려하여 줌으로서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짐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앞으로도 이 생명이 살아서 숨을 쉬는 순간까지는 여러분 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면서 여러분들이 섬기시는 교회와 가정위에 우리 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 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다음부터는 시리즈 편으로 성령에 관한 것을 기록하고 자 합니다만, 호응도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사랑시리즈의 마지막을 시작합니다. 과거에 어떤 부부가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서 법원에 이혼 을 신청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아이의 부양문제 와 위자료를 놓고 심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광경 을 보면서 서류를 들치던 판사는 두 부부를 쳐다보면서 물 어보았습니다. "두 분 중에 아이는 누가 책임지고 키울거요?" 판사의 이 물음에 두 부부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판사는 옆에 서있는 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이야 너는 누구하고 살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아이는 한 손으로는 아빠의 손을 잡고 또 한 손으로 는 엄마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울먹거렸습니다. "아빠랑 엄마랑 다 함께 살고싶어요!" 아이의 그 소리를 듣고는 두 부부에게 재판일정을 한 달간 연기한다고 돌려보내며 자기가 보던 성경책을 그들에게 건내주면서, 고린도전서 13장을 하루에 3번씩 한달 동안 100번을 읽어오라고 말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들은 고린도전서 13장을 매일 읽는 가운데 자신들에게 사랑이 부족하였던 사실을 깨닫고 뉘우치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이혼소송을 취하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 진실한 사랑이 있으면 그 어떤 문제라도 다 해결이 되는법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가로 놓인 죄의 장벽까지도 허물어 뜨립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은 인간과 인간사이의 모든 불화와 반목 과 갈등도 제거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있는 곳에 화해와 화목과 즐거움 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믿음인들로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뒤돌아보면, 알게 모르게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 으로 용서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외 아들을 우리들을 위해 서 희생하시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우리가 누구를 얼마나 사랑하고 살아왔을까요? 정말이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을 제대로라도 행동 으로 옮겨보았을까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 시리즈를 마감 하면서 그동안 부족한 저 역시도 많은 것을 깨닫고 느끼며 소리없는 눈물도 흘려보았습니다. 그동안 저의 글에 격려로 댓글을 주시며 함께 하여주신 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다음편으로 성령에 관한 것을 기록해보고 자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귀한 선물인 이 사랑으로 다음 편도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씀처럼 영원까지 잊지 않고 간직하며 가지고 갈 수 있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주후:2010년 4월 13일의 이른시간에 "가장낮은자 목사.

 

항상 있어야 할 것들 (5/13)



본 문



설교자 박봉수 목사







항상 있어야 할 것들



본문/ 고전 13:13



어느 날인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따라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아서 단단히 준비를 하고는 집을 나섰습니다. 물론 우산도 챙겼습니다. 그것도 빗줄기가 굵어서 작고 간편한 접는 우산 말고 크고 폭이 넓은 우산을 썼습니다.

그런데 점심때쯤 되니까 언제 그랬더냐 싶게 날이 활짝 갰습니다. 아직도 할 일이 많고 이곳 저곳 다녀야 할 때도 많은데 긴 우산이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신경도 쓰이고,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우산은 꼭 필요할 때가 따로 있습니다. 필요할 때가 아니고는 오히려 있어서 불편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다 필요할 때가 있고 또한 필요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필요할 때 그것이 있으면 요긴하게 사용되지만 필요치 않을 때 그것이 있으면 오히려 불편하고 거추장스럽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 모두는 항상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있어서 좋을 때도 있지만 오히려 있어서 불편할 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 가운데 그렇지만 돈은 예외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은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돈은 언제나 필요하고 돈은 언제나 요긴할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돈이 있어도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영화 타이타닉호를 보니까 마지막 장면에 배가 침몰하고 있었습니다. 몇 안 되는 구명보트를 타려고 아우성들이었습니다. 그 때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누가 양보하겠습니까? 수백억을 준다고 구명정 자리를 살 수 있겠습니까? 그 많은 보석, 그 많은 증권, 그 많은 돈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헤엄치는데 방해만 될 뿐입니다.



그리고 돈으로도 구할 수 없는 것도 세상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가 음식은 돈으로 살 수 있어도 입맛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돈으로 의사의 도움은 얻을 수 있지만 건강을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고대광실 호화로운 집은 살 수 있어도 가정의 행복은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돈으로 사람은 얻을 수 있어도 그 사람의 마음은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돈도 우리에게 언제나 필요한 것만은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돈은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언제나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항상 있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이것들은 언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평안을 얻게 해주고, 삶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먼저 믿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는 작년 연말에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5중 추돌 사고 한 가운데 휘말려들었습니다. 100킬로 이상으로 달리는 도중에 앞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저도 급정거를 했습니다. 겨우 앞차를 추돌하는 것을 면했습니다. 안도의 숨을 몰아 쉬는데 제 뒤에 오는 차가 저를 들이박았고, 또 이어서 그 뒤에 오던 차가 또 들이박았습니다.



저는 이 사고 이후에 나 혼자 운전을 잘한다고 사고를 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고 직후에는 운전하기가 겁이 났습니다. 또 뒤에서 날 들이박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이 생겼습니다. 그 이후 운전하면서 늘 백미러로 뒤를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뒤에 오는 차 운전자를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디 운전뿐이겠습니까? 다리를 건널 때도 성수대교가 무너진 기억 때문에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도 각종 비행기 사고에 대한 기억 때문에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장에서 무엇을 사려고 해도 농약을 넣었는지, 외국산을 속였는지, 유통기간 넘은 것을 감추고 있는지 도대체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와 사업을 동업하려해도 사기를 당한 기억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어디 투자를 하려해도 불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앞 뒤 좌우를 둘러봐도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 믿을 수 있는 것들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그래서 걱정입니다.



요 14:1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확인시켜줍니다. 우리가 믿을 대상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고, 이 세상도 믿을 대상이 아니고 우리가 믿을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짓말 하나 돈이 거짓말하지.' 맞는 말입니다. 사람이 약속을 지키려고 해도 돈이 없으면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약속 해 놓고도 그 약속을 끝까지 변치 않고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믿음의 대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한번 하신 약속은 끝까지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킬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어떤 상황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어떤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다, 어떻게 그렇게 굴뚝같이 약속하고는 날 속일 수 있는가?' 맞는 말입니다. 때론 사람이 악하기 때문에 일부러 약속을 어길 때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선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양심이 청결치가 못합니다. 상황에 따라 자기의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그가 누구라 해도 믿음의 대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결코 속이거나 결코 악을 행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마가복음 4장에는 믿음과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기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계셨습니다. 갑자기 광풍이 일어나며 풍랑이 쳐서 물이 배 안으로 들어와 가득 차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제자들은 물을 퍼내고 풍랑과 싸우느라 땀을 흘리며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뱃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 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풍랑이 일어도 배에 물이 들이차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편히 잘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계시고, 내 배에 타고 계시고, 내 인생의 문제에 관여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인생은 평안합니다. 행복합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소망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스위팅이라는 사람은 마음에 새겨둠직한 말을 남겼습니다."사람은 40일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고, 3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8분간 숨을 쉬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희망 없이는 단 2초도 살 수 없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를 존재케 하는 힘은 바로 희망입니다. 희망이 우리를 고난 속에서도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어 보이는 어려움 속에서도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둘러봐도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사막은 불같이 뜨거웠습니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우리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입니다. 더 이상 걸을 필요가 없어요. 그냥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죽는 편이 낫겠어요" 아버지가 아들을 타일렀습니다. "얘야 조금만 더 가면 틀림없이 맑은 물과 마을이 나타날 거야 힘을 내렴"



그 때 두 사람 앞에 커다란 무덤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아들은 더욱 절망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이 죽은 것처럼 우리도 죽게 될거예요 정말 완전히 절망이예요!" 그 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이 무덤은 희망의 징조이다. 왜냐하면 무덤은 마을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란다"

과연 두 사람은 곧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길은 때로 사막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한 복판에는 사막의 무덤과 같은 절망의 늪이 여기 저기 널려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 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니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희망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희망을 갖고 싶어도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희망은 돈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땀 흘려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거울 앞에 서서 하루에 수 만번씩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외친다고 희망이 내 마음 속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15:1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의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확인시켜 줍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창세기 마지막 부분은 요셉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총애를 받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 형들이 시기하고 미워해서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부자 집 아들이 하루아침에 멀리 타향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종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종으로 팔려간 집 여주인의 모함으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요셉의 인생은 본격적으로 사막으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오셉의 인생은 철저한 절망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셉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요? 바로 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꿈을 꾸게 했습니다. 꿈을 해몽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장차 자기 가족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 자기가 큰 위치에서 나라를 구하는 꿈 그런 꿈을 꿀 수 있게 했습니다.



절망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꿈으로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는 그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기근 속의 자기 가족들을 모두 구원해 내게 되었습니다.



요셉에게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에게 소망이 넘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견딜 수 없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니 돈으로 살 수 없는 너무도 귀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소망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사랑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퍽 오래 전에 미국의 유명한 잡지 가운데 하나인 라이프지는 "아름다운 참 사랑의 모습"이라는 기사와 더불어 한 노 부부의 사진을 실은 일이 있습니다.

기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영국의 한 지하철 대합실 식당에서 노 부부가 서로 부축하면서 마치 소굽동무 어린이처럼 정답게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비스켓을 주문했고 아내는 차 한잔을 주문했습니다. 무척 가난해 보였는데 두 사람은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두 손을 꼭 잡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주문한 음식이 나왔습니다. 남편이 먼저 비스켓 한 입을 먹었고, 아내는 뜨거운 차 한잔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남편이 비스케 반쯤을 먹고 나서 갑자기 틀니를 뽑아서 깨끗이 닦았습니다. 그리고 그 틀니를 아내에게 주자 아내는 자연스럽게 그 틀니를 끼고는 남은 비스켓 반을 먹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먹다 남은 차 반잔을 마시면서 아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기자의 눈에는 이 광경처럼 아름다운 부부 사랑의 모습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광경을 사진에 담았고, 제목을 "아름다운 참 사랑의 모습"이라고 썼습니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그 누구와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사랑이 이처럼 귀하고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랑을 만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사랑을 받는 사람도 있는 것인데 모두가 사랑하기보다는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이 땅에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을 받고자만 하는 자신을 보면서 부끄러워해 보셨습니까? 마땅해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할 생각을 하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괴로워해 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이 아름답고 복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요일 4:1-2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결코 사랑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에 감복한 사람들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고전 13을 보면 사랑은 하나님의 은사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사랑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남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한다면 정말 그런 가정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런 세상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고, 돈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정말 귀한 것들, 정말 가치 있는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그 가치를 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생명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그 생명이 풍성하려면, 진정한 행복을 누리려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항상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이 세상에서는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세 가지는 바로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비가 저 하늘로부터 내리는 것처럼 이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은 다 하늘로부터 옵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고 저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 그들만이 받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너무도 소중한 축복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이 풍성해서 진실로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기독정보넷 - http://www.cjob.co.kr/sermons-922.html

 

신앙생활의 제 1요소 믿음

본문 :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마경훈 목사



본문 :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설교영상보기] [설교 동영상을 보시기 원하시면 [설교영상보기]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몇 가지 소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가 믿음이고 둘째는 소망이며 셋째는 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니까 사랑만 있다면 믿음과 소망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믿음과 소망 위에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건물의 1, 2층이 없이 3층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과 소망이 없는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지만 믿음과 소망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신앙생활의 3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믿음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본문에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니까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사랑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가장 수준 높은 신앙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부족해도 믿음이 있다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다면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을 갖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하셨습니다. 엡 2:8에서는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벧전 1:9에서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행동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가끔 보면 그리스도인 중에 비그리스도인들 보다 도덕적으로 부족한 면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전도의 문을 막고 교회의 부흥을 방해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원이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또 도덕적으로 더 수준 높은 비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인정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는 도덕적인 수준을 떠나서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아무리 도덕수준이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전적으로 타락한 이미 죄로 더러워진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방법은 오직 믿음으로 인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히 11:6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해도 믿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열쇠는 믿음입니다. 신앙적인 모든 행위의 배경에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기에 곡식을 드렸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양의 첫 새끼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을 열납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믿음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차이입니다. 히 11:4에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동일한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서 함께 찬송을 하고 기도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며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벨처럼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어떤 사람은 가인처럼 믿음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믿음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마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기 때문에 그 아이를 치료하시기 위하여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 중에 일어난 치유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으로 가실 때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시던 예수님이 한 여인을 쳐다보시면서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의 육체의 병이 그 자리에서 치유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12년을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입니다. 하혈이 멈추지 않고 12년 동안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주님의 뒤로 와서 주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뒤를 따랐기 때문에 주님의 옷자락을 만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가운데 유독 그 여인만 치유가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구체적인 행동을 생각하는데 사실 하나님의 일은 행동 이전에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게 되면 구체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갖게 되면 믿음에 따르는 실제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장로는 살아있는 믿음은 행함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 6장에 보면 제자들이 주님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먼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이 당신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무슨 믿음을 가져야 합니까? 간략하게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입습니다. 사람이 의로워지는 것은 결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죄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의 결과 하나님과 단절되고 이 땅에서 하나님 없이 영적인 고독상태에서 홀로 살다가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 것인 인간의 처지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께서는 죄 없으신 분이시지만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들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요 3;16에 보면 단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셨는데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른다고 하십니다.

구원만이 아니라 건강이나 부요함 그리고 승리생활 까지 주님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벧전 2:24에서는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신 것은 우리의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값을 치르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고후 8:9에 보면 주님이 가난하게 되셔서 우리가 부요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부요하신 분이시지만 그분이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들의 가난의 값을 대신 지불하신 것입니다. 골2:15에 보면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우리의 승리를 위한 대가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주님의 공로를 동력화 시키는 방법입니다. 믿음은 주님의 공로가 나에게 실제가 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자동차를 생각해 보세요. 자동차의 모든 부품이 완벽하게 조립이 되어 있습니다. 기름 탱크에 기름도 가득합니다. 밧데리에 전기도 충분합니다. 이제 자동차를 움직이기만 하면 됩니다. 시동만 걸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간단합니다. 키 박스에 키를 꼽고 돌리기만 하면 시동이 걸리고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습니다. 구원과 축복과 능력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모든 조건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는 자동차 시동을 걸듯이 시동만 걸면 됩니다. 구원과 축복과 능력의 시동을 거는 방법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2.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능력으로 천지 만물을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인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상에 태어나서 언어의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최소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 이후 저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유년기부터 학생시절에도 그리고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줄곧 말했습니다. 작년에도 말했고 금년에도 많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서 말할 것 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분입니다. 전에도 말씀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니 영원토록 말씀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육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요 5:25에 보면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1장에 보면 죽었던 나사로가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살아나서 무덤에서 나왔던 사건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또 막 5장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달리다굼”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난 사건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런 사건들은 주님이 음성을 듣게 되면 육적으로 영적으로 살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목사가 성도들을 위하여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사역보다 말씀 사역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들이 다양한 문화적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것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하기 때문에 우리교회 성도들의 요구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른 어떤 사역보다 말씀 사역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사역을 다해도 말씀사역이 안 되고 있다면 실패하는 것입니다. 말씀사역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사역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행 6장에 보면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기 위하여 다른 사역을 내려놓았습니다.

말씀만이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역도 말씀의 전파사역입니다.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문화적 접근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켜 보려고 하지만 문화적 접근을 통해서 세상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교회문화가 세상문화보다 앞섰기에 문화적 접근을 통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세상문화가 교회문화보다 앞섰습니다. 이제는 문화적 접근으로 안됩니다. 원색적인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무식해 보인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살리는 길이고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신적원위를 떨어뜨리기 위한 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성경은 지난 2천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만났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강단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입니다. 성경만을 말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성경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만이 인생의 기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황에 의해서 움직이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기준이 되어서 성경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성경이 인생의 기준이기 때문에 문제를 만나면 성경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유명한 '맨소랜담'을 만든 사람은 '하이드'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원래는 문방구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대로 이 일에서 재미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돈을 더 벌고 싶어서 주식을 투자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업이 망했습니다. 그 때부터 여기를 보아도 빚, 저기를 보아도 빚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답답한 문제투성입니다. 아마, 그가 그 문제에만 매여 있었다면 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를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 했는지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제가 무엇을 잘못 했는지 알기를 원합니다." 그 때에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 가는 생각은, YMCA에 4만 불을 헌납하기로 서원해 놓고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정리해 서 헌납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과 새 출발을 하리라 결심하고는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창세기부터 읽어 나가는 중 28장에 와서 야곱이 십의 일조를 바침으로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때부터 십일조를 철저히 바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약방을 하는 친구가 만나자고 합니다. 그 친구는 같이 고약을 한번 만들어 보자고 친구가 제안을 합니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한 후 만들어 낸 것이 맨소래담 입니다. 이 약품이 나중에는 얼마나 잘되는지 전미국을 석권하기 시작합니다. 더 나가서는 전 세계를 향해 팔려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는 아무리 수입이 많아도 철저하게 십일조 할 뿐 아니라, 나중에는 십의 이조, 삼도, 더 나가서는 십의 구조까지 드리면서 열심히 선교와 구제사업을 힘썼다고 합니다. 그는 큰 문제에 봉착했을 때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함으로 하나님의 강하신 도우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성경 속에서 길을 찾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설교자에게 대언의 영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을 대신해 말하게 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영혼을 살아나게 됩니다.

겔 37장에 보면 에스겔이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입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마른 뼈들에게 외치자 마른 뼈들이 모이고 달라붙기 시작했습니다. 에스겔의 대언이 계속되자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이고 생기가 들어가서 살아났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한다면 그의 말은 에스겔의 대언과 같은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혼이 살아날 것입니다. 마른 뼈와 같은 영적인 상태를 유지하던 사람들의 영혼이 살아날 것이며 에스겔의 환상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들의 영혼에 말씀하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은 믿는 자 속에 계십니다. 성령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고 바울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 속에서 역사하시며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비행기 조종사는 관제탑의 통제를 다라야 하기 때문에 관제탑에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운동선수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서 시합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감독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갖지만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말씀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듣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하여 듣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교제할 때도 상대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교제하는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두 번째 이유는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속에서 자신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3.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특별한 순간에만 역사하시고 지금은 뒷짐 지고 구경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도 인류의 역사에 구체적으로 간섭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을 이루어나가고 계시고 우리가 모여서 예배할 때 임재하시고 우리가 기도할 때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특별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기적을 체험했고, 문제가 있을 때는 기도하여 기도응답의 특권을 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생에 한 번 정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평생을 지속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날마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집니다. 태양은 변함없이 뜨지만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날마다 태양빛을 쬐는 사람이 있고 전혀 태양빛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해가 뜰 때 그늘에서 나오면 태양빛을 받게 되지만 태양이 떠도 늘 그늘 속에 숨어 있는 사람은 한번도 태양빛을 쬘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브라함 때나 엘리사 때나 초대교회 때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말씀대로 순종하십시오.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엄청난 기적을 통해서도 체험할 수 있지만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통해서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갓피플에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저희교회 김기승 집사님은 갓피플 [뚜벅이가 꿈꾸는 세상] 칼럼리스트인데 집사님이 갓피플에 쓴 글이 배달 된 것입니다. 집사님은 두 가지 기도 응답에 대해서 글을 썼더군요. 하나는 아내 집사님과 함게 자전거를 타게 된 응답입니다. 백순화 집사님이 자전거를 타지 못했는데, 김기승 집사님이 소원 반, 한탄 반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제 아내와 같이 자전거 타고 올 수는 없나요? 저도 아내랑 같이 자전거 타고 싶은데” 그런데 이번에 중국 선교 가서 서안 성벽 땅 밟기를 자전거를 타고 했는데 그 때 백순화 집사님이 자전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자전거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어제 아내 집사님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응답은 철가방입니다. 주일학교 예배시간에 캐릭터를 하는데 철가방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철가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내 되는 집사님과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다녀오다가 식당에서 쓰기는 너무 낡았으나 교회에서 캐릭터용으로 쓰기는 적당한 철가방을 하나 주워왔습니다. 아내 집사님과 첫 번째 자전거를 함께 탄 날 교회에서 꼭 필요한 철가방을 허락하셨습니다. 큰일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소원을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저는 날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하나님이 주신 꿈과 환상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말 그대로 꿈이었는데 요즘은 실제가 된 일들이 많습니다. 생각하면 감사하고 놀라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더 기대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저에게 계속해서 꿈과 환상을 부어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것들이 불가능하게 보일 수 있지만 또 세월이 지나면 현실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갑시다. 하나님을 지식으로 알지 마시고 경험으로 아십시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한 3요소 가운데 믿음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믿음이 중요한데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1.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어야 합니다.

2.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3.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출처] 기독정보넷 - http://www.cjob.co.kr/sermons-1673.html

 

 

신앙생활의 제 2요소 소망

본문 :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마경훈 목사



본문 :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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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앙생활의 제2요소인 소망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상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소망이라는 말은 소원이나 꿈과 환상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전도 소망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믿음과 사랑이 중요한 것처럼 소망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가르쳐줍니다. 심지어 성경은 비전이 없는 백성들, 꿈과 환상을 잃어버린 백성들은 망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소망 없는 인생은 보나마나 실패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히 11:1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소원입니다. 기대하는 것 꿈을 꾸는 것입니다. 꿈이 없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재정비 되어야 합니다.

비전이 없이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눈을 감고 길을 가려는 사람과 같습니다. 눈 감고 길을 가면 아주 위험합니다.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르는 것입니다. 길을 가려면 눈을 떠야 하는 것처럼 건강한 믿음 생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비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소망을 가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빌 2:13에 보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스타일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 속에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따라서 움직이게 하십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에 대한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소원을 갖고 기도했고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위하여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해방에 대한 강렬한 소원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소망을 통해서 그 사람의 신앙이나 인간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가진 소망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잠 11:23에 보니 의인의 소원은 선한 것이지만 악인의 소망은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가진 소원이 선한 것이라면 그 사람은 선한 사람일 것이고 그가 가진 소원이 악한 것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는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소원이 신령한 것이라면 그는 영적인 사람이고 그가 가진 소원인 세속적인 것이라면 그 사람은 육신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롬 15:13에 보니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누구든지 비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되었고, 사라는 열국의 어미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만난 직후에 사람 낚는 어부의 꿈을 갖게 되었고,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에 아나니아를 통해서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소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면 완전한 절망 속에서도 회복의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욥 7:6에 보면 욥은 소망 없이 세월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식들을 잃었고, 재산도 다 없어져 버렸고, 아내도 떠났고, 몸도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에게는 소망이란 없었습니다. 완전한 절망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욥38장에서 소망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소망의 하나님은 욥을 회개하도록 하신 후에 회복될 수 없는 절망적인 환경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몸도 건강해지고 가정도 회복되고 자식들도 10명이나 낳게 되고 재산은 전에 복을 누렸을 때보다 갑절이나 많아졌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환경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신 소망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행 20:24에서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하겠다는 확실한 비전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일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감옥에도 갇히고 여러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목숨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전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류 구원의 비전에 사로잡히셨습니다. 그 비전을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셨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온갖 고난을 감내하셨습니다. 비전 성취를 위하여 심지어 죄인의 모습으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인류 구원의 비전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소망의 원칙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1. 위대한 비전을 가지십시오.

제가 말하는 위대한 비전은 몇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 위대한 비전은 큰 비전입니다.

사람은 꿈을 가져도 자기 수준에 맞는 꿈을 꾸게 됩니다. 어찌 보면 그 꿈이 진실한 것 같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여 사는 생활입니다. 그렇다면 내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 수준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보면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꿈꿀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기를 의뢰하는 자들을 도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 81:10에 보면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입을 넓게 열라는 말은 큰 것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큰 것을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는 것은 그 당시 상황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상할 수 없는 기적들을 행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일을 행하셨던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백성들에게 입을 넓게 열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기적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이시니 쩨쩨하게 구하지 말고 크게 구하라는 말입니다.

시 2:8에서는 “내게 구하라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크게 구할 것을 명하십니다.

성경에 나온 믿음의 사람들은 큰 꿈을 가졌고 그들의 꿈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저에게 초등학교 2학년짜리 여자조카가 한명 있습니다. 이 아이는 5천명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비전입니다. 5천명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 되려면 큰 기업의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 가진 꿈치고는 엄청나게 큰 꿈입니다. 이 아이는 아직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구체적으로 경험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꿈을 꾸고 있다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그분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들이라면 그 아이보다는 더 큰 꿈을 꿀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꿈이 아니라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큰 꿈을 꾸십시오.



2) 위대한 비전은 주님의 비전과 같은 비전입니다.

주님의 비전은 이 땅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비전입니다. 주님의 비전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비전입니다. 주님의 비전은 땅 끝 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비전입니다. 주님의 비전은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세계비전입니다.

바울은 목사로서 선교사역을 했는데 그가 가진 비전은 주님의 비전이 자신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이었기에 그의 비전은 주님과 같은 비전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역시 동일한 비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인 사도 바울을 도와서 로마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일을 하는데 자신들의 직업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비전은 주님의 비전이었습니다.

우리가 품는 비전도 주님의 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비전이 성취되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게 되어야 합니다.

제가 성도들에게 영성과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자주하는데 바로 주님의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손에 영성을 또 한 손에는 전문성을 가지고 세계와 열방을 향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비전이 단지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주님의 비전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비전이 어떤 자리에 오르기 위한 비전이라면 그것도 주님의 비전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신 직업이나 능력, 제정이나 재능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확실한 목적의식을 갖는다면 그것이 바로주님의 비전입니다.



2. 꿈과 환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십시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막연히 집을 짓는다는 생각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분명한 청사진이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꿈과 환상도 두루뭉술하면 안 됩니다. 분명한 그림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집중력도 더 생기게 되고 기도도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미에서 목회를 하시는 카르레라는 목사님 간증입니다. 한 어머니가 귀가 없는 아이를 안고 안수기도를 받으러 왔다고 합니다. 카르레 목사님은 그 아이에게 하나님이 멋진 귀를 만들어서 붙여주는 것을 상상하면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고 난 다음 얼마 있지 않아 귀가 아닌 조그만 혹이 생겨났습니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다시 기도를 받으러 왔을 때도 처음과 변함없이 귀가 생길 꿈을 가지고 상상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안수해 주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에게도 아이에게 이미 귀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침마다 “우리 아기, 귀가 예쁘구나.”라고 말하고 귀가 생긴 것을 바라보면서 쓰다듬어 주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도 별반 다른 일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루는 그 날도 없는 귀를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안수를 했습니다. 눈을 떠보니 그 작은 혹이 부채처럼 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바라고 원하는 것은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먼저 그리고 꿈꾸고 상상할 때 그림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도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이가 건강한 모습을 상상하시고,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상상하시고, 아이가 훌륭하게 자랄 것을 상상하면서 기도하십시오. 아이가 국가의 지도자가 될 것을 상상하시고, 아이가 교회의 기둥이 될 것을 상상하시고, 아이가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을 상상하시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안되고 망할 것을 상상하며 기도한다면 현실이 안 되고 망하는 쪽으로 기울어질 것입니다. 일이 되어지고 성공할 것을 상상하면서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바라보는 대로 될 것입니다.



3. 꿈이 성취되도록 위대한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위대한 꿈이 현실이 되려면 반드시 위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꿈이 큰 만큼 대가도 큰 것입니다. 대가지불을 두려워하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큰 꿈을 꾸어도 꿈이 현실이 될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꿈에 불과한 것입니다.

저는 환경 회복을 위한 1000일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성도들이 1000일 동안 새벽잠을 포기하고 기도의 대가를 지불합니다. 아침잠을 포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000일간의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응답될 것입니다.

꿈만 꾸고 앉아있지 마시고 작은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씨앗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있습니다. 한 알의 콩을 심으면 몇 십 배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콩을 모두 심으면 엄청난 콩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콩을 전부 심는다면... 그렇게 10년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성경대로 최소 30배의 열매를 거둔다면 8년 후에는 6561억 개의 콩이 됩니다. 그렇게 100년을 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콩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능성이 많은 콩도 심지 않고 그대로 나두면 10년이 가도 100년이 가도 그냥 한 알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그만한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전을 받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낮 꿈에 불과합니다. 그 이유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 13:4에 보면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으니라”고 말합니다. 게으른 사람 즉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에 원하는 것 다시 말해서 꿈꾸는 것, 소망하는 것이 있어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지런한 사람 즉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은 마음의 풍족함 다시 말해서 마음에 원하는 것, 소망이 실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4. 언제나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성령충만하라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들에게 소망을 주시는 부은 성령님이십니다. 롬 15:13에 보니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십니다. 시 39:7에서는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때로는 멀리 보게 하시고 때로는 가까운 곳을 보게 하시면서 인도하십니다.

멀리 보는 비전이 약하다고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분과 함께 가기만 하면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과 같이 사역을 하시는 분 가운데 한국 분이 있는데 킴 윅스라는 시각장애인입니다. 한국 전쟁 때 실명을 했고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어떤 미국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인디아나 주립대학에서 공부하고 또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수업을 하여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녀가 예수를 믿고 놀라운 간증거리를 갖게 되어 빌리그레함 목사님과 함께 집회를 할 때마다 간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간증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장님인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분을 믿고 내가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 성실할 때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꼭 도달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 10년 후 20년 후의 일을 말씀해주지 않으셔도 당장에 할 일들만 지시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분은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에 가장 합당하게 목적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위의 내용과는 반대로 어디로 가는지 최종 목적지는 아는데 지금 어떤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지 잘 몰라도 하나님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으면 괜찮습니다. 목적지를 아시는 하나님이 과정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아이들과 여행을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설악산까지 자가용으로 이동합니다.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은 알아도 중간 과정은 몰라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운전대를 잡은 아빠가 알아서 설악산 까지 데리고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얼마나 멀리 보느냐 얼마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느냐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하나님 안에 거하느냐입니다. 비록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정확하게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합당한 장소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5. 적극적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큰 꿈을 꾸고 열심히 노력해도 반드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꿈이 확실하고 초인적인 노력을 하지만 꿈을 성취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시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를 원한다면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우리들을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 시 107:23-20에 보니까 배를 타고 사업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합니다. 무역을 하다가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광풍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죽음의 위기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근심 중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시고 물결로 잔잔하게 하십니다. 기도 응답으로 즐거워할 때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1000일간 특별 새벽기도를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게 하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의 씨앗을 뿌려봅시다. 시간이 지나면 응답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될 것입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기도응답이 확 믿어질 때가 있습니다. 환경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마음으로 확 믿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확신이 올 때까지는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확실하게 믿어지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천사들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지면 감사하십시오. 그렇게 믿어지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십시오. 응답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역사는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는 시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저주하셨지만 무화과나무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뒤에 보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바짝 말라 있었습니다. 말씀이 떨어질 때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보니 말씀이 실제가 된 것입니다. 믿는 것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이루어집니다. 풀을 뽑아 놓으면 뿌리가 뽑혔으니 죽었지만 바싹 마르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이처럼 이미 믿은 것은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나타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1. 위대한 비전을 가지십시오.

1) 위대한 비전은 큰 비전입니다.

2) 위대한 비전은 주님의 비전과 같은 비전입니다.

2. 꿈과 환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십시오.

3. 꿈이 성취되도록 위대한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4. 언제나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5. 적극적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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