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답게 강건하라/고전16장 13~14절![]()
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권면합니다. 복잡하고 문제가 많았던 고린도교회에 결론적으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폐일언하고 요약정리해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남자답게’라는 바울의 말은 성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성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14장 20절도 보면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13장 11절에도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바울이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자주 이야기한 이유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어린아이같이 유치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성인으로 자라지 않고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살면 교회를 어렵게 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고린도교회의 복잡한 분쟁들은 남자답지 못한 미성숙함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3절을 보면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아직도 어린아이의 모습을 버리지 못한 고린도교회의 모습은 늘 유치원생에서 못 벗어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의 중요한 주제는 성숙함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얻은 우리의 한 가지 목표는 다른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이라면 구원을 얻는 것이 아주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지만, 구원을 얻지 못했다면 그다음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얻은 백성이라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유일한 것은 바로 영적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라감에 대한 바울의 표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으로 일어나는 문제를 하나하나 극복해나가고 우리 안에 숨어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믿음 안에서 벗게 내는 작업으로 남자답게 강건해지는, 에베소서의 표현으로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이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말씀 뒤에 14절에 보면 남자다움은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16장에서 결론으로 남자다움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숙함을 사랑에 연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아주 강조한 대목입니다. 12장과 14장에는 은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런 은사들이 다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되어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의 사랑장에서 모든 것은 다 없어지지만 사랑은 영원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은사로 서로 키재기를 하고 분쟁과 시기와 갈등을 겪고 있는 고린도교회에 쐐기를 박아버립니다. 그래서 남자답게 강건하다는 표현은 아주 강한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성숙함을 이야기할 때 성숙함의 기준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남자다운 것이 큰소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남자다운 것은 부드러운 것입니다. 남자다움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힘의 절제입니다. 힘을 사랑을 담아 사용하는 것이 절제입니다. 연약한 어린아이를 부드럽게 잡아야지 힘껏 잡으면 뼈가 부러집니다. 그것은 힘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는 분쟁과 시기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리고 파당들이 있었습니다. 아볼로파, 바울파 나중에는 예수파, 그리스도파로 당을 지었습니다. 그 당시에 눈치를 보며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기준을 흑백논리로 나누는데 진리일 경우에는 분명히 해야겠지만, 진리가 아닌 것은 흑백논리로 나누면 안 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비진리의 문제로 싸우면서 결사적으로 이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 안에서 행하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진리가 아닌 부분에서 이기려고 하지 말고 져주는 것이 남자라는 뜻입니다. 생명을 걸어야 할 것은 진리입니다. 진짜 힘을 가진 사람은 부드럽습니다. 남자다운 것은 힘을 가졌는데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힘이 있는데 힘을 막 쓰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조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유연성이 일어납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부드러워집니다. 부서나 사랑방에서 일할 때 아주 경직되어있고 거칠고 잘 부딪히는 사람은 은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부드러워집니다. 웬만하면 받아들이고 부딪히거나 절대 이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병이든 사람은 경직되어있습니다. 죽음 직전까지 갈수록 점점 더 경직되고 숨이 끊어지면 몸이 뻣뻣해집니다. 씨름판에서 보면 하수들은 힘을 쓰다가 자기 풀에 쓰러지지만, 고수들은 그 힘을 이용합니다. 택견이라는 운동도 자신의 힘은 들이지 않고 상대편의 힘을 이용해서 이기는 것입니다. 택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부드러운지 모릅니다. 관계 속에서도 경직되면 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감정적입니다. 그래서 분쟁이 일어나면 고린도교회와 비슷합니다. 자신이 이기기 위해서 감정을 폭발하면 상대를 죽이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제일 처음에 「사랑은 오래 참고」 라고 했습니다. 오래 참고라는 말은 영어로 ‘long suffering'이라고 합니다. 고통스러움을 참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의 말씀 중 15개 중에서 3가지가 인내에 관한 것입니다. 사랑을 가진 자가 참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를 이겨내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인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능력과 기사와 각종 기가 막힌 예언의 역사가 나타났는데 사랑 하나가 빠져서 별것 아닌 것으로 싸우고 시끄러웠습니다. 남자답게 강건한 것은 관대하고 너그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도 관계 속에서 너그러움을 필요합니다. 바울의 삶은 아주 단순합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선이 올곧고 아주 분명하기 때문에 핵심적인 진리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것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아주 무덤덤해져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에, 진리에 사로잡혀있으면 다른 것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관심이 없어집니다. 바울의 표현 중에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는 표현을 아주 좋아합니다. 이런 태도 속에서 바울의 삶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 외에는 거의 무신경이라고 말할 정도로 단순합니다. 빌립보서 전체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사소한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분쟁과 시기 질투가 많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남자답게 강건하고 사랑 안에서 행하고 유치한 짓을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남자다움의 기준은 쓸데없는 데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사랑으로 행하는 것, 사랑이 삶의 기준에 되어야 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관대한 태도를 갖고 진리에 관한 것을 붙잡고 복음을 위해서 내 삶을 드릴 때 영적인 성인이 됩니다. 우리는 주변의 것을 다 정리하고 진리의 핵심을 붙잡고 믿음을 따라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행하든지 사랑으로 행하고, 비진리에 대해서는 관용하고 부드럽게 대하고 양보하고 져주면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또 남자답게 강건한 것은 용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믿음에 굳게 서서」 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원문상으로 보면 강건함이라는 단어에는 용기를 가지라는 뜻이 있습니다.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말 속에는 주도적이고 적극적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관계적인 면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드러워야 하고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데는 도전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란 적극적인 삶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비켜가는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은 정면승부를 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제자들을 보면 항상 우물쭈물하고 주도적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전혀 다릅니다. 복음서의 제자들은 훈련을 받고 있는 학생의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전장에 투입된 전사들과도 같습니다. 복음서의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 늘 보호받고 보조자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병이어의 역사가 일어날 때도 예수님이 축사하신 후에 광주리를 들고 다니면서 보조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 곁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치고 나가야 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고 난 다음에 제자들이 달라졌습니다. 오순절 이후 제자들이 뚜렷하게 달라진 것은 담대함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니 담대함이 생긴 것입니다. 이때는 예수를 죽였던 종교지도자들이 아직 서슬이 퍼레서 있는데도 제자들이 하나도 겁을 내지 않습니다. 핍박과 저항이 거세게 몰아쳐도 겁내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놓고 당신들이 예수를 죽였다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시대는 교회 안에서 성경공부를 많이 한 제자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치고 나가는 담대함을 가진 사도들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성경공부, 이런저런 과정을 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초대교회의 사도성이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복음서에서 훈련받은 제자들이 성령이 임하시자 두려움 없이 용기를 가지고 치열한 환경 가운데서 영적 전쟁을 벌이는 전투부대가 된 것입니다. 군인은 참모총장 정도의 계급이면 야전군의 훈련을 거친 사람들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야전군이 앞에서 치고 나갑니다. 그런데 요즘 군대생활이 아주 편하고 좋아져서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복음서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실 때 남은 9명의 제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자 귀신 들린 아이를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남자답게 강건하다는 것은 담대함, 복음의 야전성입니다. 빌라도 총독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남자답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처세에 눈에 어두워 비겁한 삶을 살고 진리 앞에서 진리를 선택하지 못하고 인류의 구원자를 십자가에 넘겨줍니다. 그러나 극적으로 비유되는 한 어린 소녀가 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입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를 낳을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소식을 듣고 “주의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합니다. 돌에 맞아 죽게 되면 죽겠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은 권력의 최정상에 앉아서 진리를 선택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역사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넘겨준 악명을 쓰게 되었지만, 한 어린 소녀는 진리를 받아들이면 위협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도 진리를 받아들여 구원자를 탄생시켰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믿음이고 그 믿음은 담대함입니다. 마리아야말로 남자답게 강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약한 소녀에게서 위대함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두려움에 빠져서 예수를 부인했는데 나중에 사도행전에서 성령에 충만한 베드로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는 돌을 던지는데도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학자들에 의하면 스데반의 설교는 주옥같은 설교였습니다. 그는 그런 기가 막힌 좋은 설교를 하다가 돌에 맞아 죽어도 물러서지 않는 담대함을 가졌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다 라는 에스더와 같은 담대함입니다. 마틴 루터는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교황청이 그를 단두대에 세울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위험한 일을 감행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켜 그 혜택을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담대함이 역사를 바꾼 것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라는 말은 모든 결정의 기준이 상황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자답게 강건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우리 안에 이상한 감정이 생깁니다. 그것이 담대함입니다. 전에는 문제를 피해 다녔는데 성령이 임하셔서 담대함이 생기면 문제를 찾아가서 해결하고 싶어집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담대함이 생겨 정면 돌파할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을 믿고 코뿔소처럼 밀고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다가 담대함을 주셔서 앞으로 돌격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믿음이 우리 안에서 작동되어 거룩한 자신감이 일어납니다. 남들이 안 된다고 말하면 이상한 호기심이 생깁니다. 뛰어들어가서 진짜 안 되는지 확인하고 싶어지는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남자다움의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부산이 복음화가 안 된다는 수많은 요인을 치고 나온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새벽에, 이 밤에 이렇게 나와 기도하는 것이 기적입니다. 요즘 한국교회에서는 개척교회가 다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단교회는 많아지고 부흥하는데 한국교회가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처럼 마음이 공허하고 영적인 갈망과 갈증이 있는 시대는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귀중성을 놓치고 영광스러움과 능력을 믿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해 복음이 복음의 역할 못하니 미국도 온갖 잡신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느 시대보다도 복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저는 복음이 능력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아무리 망가진 가정도 복음이 역사하면 금방 살아납니다. 마약에 찌든 사람, 창녀, 무당도 살아납니다. 문제는 용기가 부족한 것입니다. 믿음에 굳게 선다는 것은 후퇴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도 밀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마지막을 보면 바울이 그토록 원하던 로마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죄인의 모습으로 갑니다. 가다가 유라굴로라는 풍랑을 만나 모든 사람이 초주검이 되었을 때 바울이 일어나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죄인이 리더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신분과 상관없이 이 세상 가운데서 리더십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세상 가운데서 확신을 갖고 믿음의 선포를 할 때 사람들은 선포하는 믿음의 언어에 빨려들게 되어있습니다. 직장에서도 기도하고 확신을 얻고 믿음의 선포를 한다면 사장도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저는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700여 년 전의 말씀인데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정확하게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라는 진리는 역사가 바뀌어도, 세상이 바뀌어도 진리라는 것이 확실히 믿어집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최후의 승리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과정에 불과합니다. 오늘 일어난 과정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최후의 승리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는 최후의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 종말론적인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오랜 시간 동안 기가 막힌 복음 전도자로 쓰임 받았는데 그동안 옆에서 지켜봤던 한 분이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께 어떻게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평안을 유지하며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언제나 눈을 들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그 나라, 우리의 삶을 완성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크고 작은 수많은 문제 앞에서도 평정을 유지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현실만 바라보면 낙심할 수 있습니다. 당장 일어난 일만 보면 그것이 전부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마지막 확실한 약속을 붙잡고 성취될 날을 바라보며 믿음 안에서 견고하게 조급해지지 않고 별일 아닌 일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다면 최후의 승리를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가장 남자답게 강건해지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가장 매력적이고 남자다움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없이 부드러운 분이십니다. 그러면서도 한없이 강한 분이십니다.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부드럽게 물처럼 흘러가십시오. 그러나 진리 앞에서는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이 굳세고 천하가 나를 어떻게 한다 해도 요동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이고 마지막에는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1절을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약해지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시고 은혜가 주어지면 강한 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상황에 따라 흔들리거나 연약해지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일에 주저함이 없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에 굳게 서시고 믿음으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고 중심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달려가고 뒤로 물러서지 말고 정면 돌파하십시오. 이상한 괴변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전사들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시면 그곳에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용기를 잃어버리지 마시고 최종적인 승리를 믿고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라고 연약할 때 은혜 안에서 강해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비진리에 관한 것들은 사랑으로 용납하고 부드럽게 대하고 손해 보고 져주면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 사랑에 실패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신다면 진정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