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지 않다면, 정말 모시고 사는 것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믿어도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을 바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 담임목사님을 집에 모시고 산다면 어떻겠습니까?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가정의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목사님 한 분을 모시고 사는 것만으로 가정이 이토록 달라진다면, 예수님이 정말로 내 마음에 거하심을 믿는 사람의 삶이 어찌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한 목사님과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씀을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그분이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조용히 고백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주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산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불편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고백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솔직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모시고 살기에 불편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한 번도 없었다면, 정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맞습니까?
사랑하여 행복한 결혼식을 치렀지만 결혼 첫날밤, 어찌 불편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내 마음에 거하신다면, 어떻게 아무런 불편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축복은 단지 죄 사함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매 순간 우리와 함께 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살전 5:10)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길에 불편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불편함을 지나는 동안,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되고, 날마다 더 친밀히 동행하게 되며, 마침내 그분을 사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어렵고 조심스럽기만 하던 그 동행이, 어느새 가장 깊은 사랑의 관계로 자라 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벧전 1:8)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이 누렸던 믿음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동행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복입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거하심을 믿는다는 것은, 분명 불편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함께 계신 예수님을 비로소 믿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불편함을 지나, 마침내 사랑과 기쁨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경외함입니다.
경외함이란, 예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말과 행동이 더 조심스러워지고, 가까이 모실수록 그분을 더 깊이 의식하며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기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