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원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보기 원한다’고 고백했던 맹인 바디매오의 심정은 곧 저의 영적 갈망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 바로 앞에 계신데도 볼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제 갈망도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이 분명 함께하시는데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내 마음에 거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일상에서는 주님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눈뜬 맹인처럼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음에 거하시는데도 염려하고 근심하며, 은밀한 죄를 짓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눈이 뜨였는지 아닌지는 “예수님이 내 마음에 거하심이 참으로 분명하게 믿어지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합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이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실제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환경과 문제 앞에서 요동하지 않고 세상을 이기는 담대함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영적 맹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영적 눈이 가려져 보지 못할 뿐입니다.
막연히 ‘예수님이 어딘가에 나와 함께 계시겠지’ 라고 생각하는 안일한 종교 생활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간절히 울부짖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눈을 뜨기 원합니다. 바디매오가 눈을 뜬 그 기적이 제게도 일어나게 하소서!”
사람들은 제가 어떻게 매일 예수동행일기를 쓰고, 나눔방에서 삶을 투명하게 나누며 살아가는지 궁금해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 위를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앞이 캄캄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저는 매일 매 순간이 그처럼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위험천만한 길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날마다 예수동행일기를 쓰며 제 생각 속에 주님을 모셔 들이고,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운전해야 살 수 있듯이, 날마다 일기를 쓰며 주님과 눈을 맞출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요동하지 않는 온전한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보기 원합니다” 하는 이 간절한 기도가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의 고백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유기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