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 할 때는 두 가지로 나누어서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작정적 의지 (Decree Will)이고 두번째는 교훈적 의지 (Preceptive will) 이다. 작정적 의지란 변치 않는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의 죽음, 예수님의 다시오심같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방해될 수 없는 하나님의 변치않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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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적 뜻이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등의 우리에게 명시된 교훈적 율법을 말한다. 이런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순종과 불순종으로 거부될 수도있고 실현될 수도 있다. 벌코프는 <조직신학>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작정적 의지란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일어나게 될 바(즉 만물의 최종사태)를 의도하거나 명령하시는 바로서의 하나님의 뜻이다. 교훈적 의지란 하나님이 그의 도덕적 피조물 (사람과 천사들)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의무들을 보여주는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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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것을 신명기 29:29은 "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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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진 하나님의 일이 있고,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일이 있다는 것이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일은 작정적 뜻 즉 영원의 세계에 이루어지는 일이고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속한 일이고 우리가 순종할 수 있는 약속이다. 좀 쉽게 말해 감추어진 하나님의 일은 작정적 뜻이고 우리에게 나타난 약속은 교훈적 뜻이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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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적 뜻을 알 수 없지만 나타난 교훈적 뜻은 알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주시지는 않으시지만 나타난 교훈적 뜻에 순종함으로 궁극적인 하나님의 작정적 뜻을 이루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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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교훈적 뜻 "네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만 알고 있었다.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더 깊은 작정적 뜻은 알 수 없었다. 하나님의 작정적 뜻은 이삭을 죽이지 않고 숫양으로 대신 죽는 구속의 드라마였지만 아브라함은 교훈적 뜻에 순종함으로 궁극적인 하나님의 작정적 뜻을 나중에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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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난의 이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왜 이런 고난이 있는지 인간은 알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우리에게 보여주신 교훈적 뜻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이다. 내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궁극적 뜻이 있음을 믿으며 우리는 오늘 명확한 교훈적 뜻에 순종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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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비전도 마찬가지이다. 원대한 비전 감추어진 하나님의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오늘 내 삶에 명확하게 주어진 말씀의 교훈적 뜻에 순종할 때 어떤 방식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아름답게 이루시는 그 과정에 나를 참여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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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브라켈은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에서 하나님의 작정적 뜻과 교훈적 뜻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교리는 세상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알게 해주고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들어주는 종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주권을 가지신 분이 나를 다스린다는 안정감과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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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가장 아름다운 길로 인도해주시는 분이시다. 세상에 여러가지 악과 어려움이 하나님의 뜻을 좌절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면 장래의 은혜를 바라보며 오늘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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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릭 워렌은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단지 자신의 감정 (Feeling) 일 뿐이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은 사실(Fact) 이라고 말하면서 내가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 (Faith) 라고 말했다. 인생이란 나의 감정(Feeling) 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넘어선 사실(Fact)을 믿는 것 (Faith)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