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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사회

작성자Israel태성|작성시간26.06.16|조회수37 목록 댓글 1

1.
2024년을 시작하면서 독일어 협회가 발표한 올해의 단어는 'Krisenmodus'(크리젠모두스) '위기모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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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2020년 이후에 위기모드로 접어들었고, 이런 암울한 상황 즉 예전에는 예외적이었던 상황이 이제는 일상이 된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 위기를 가속화 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SNS와 유투브는 우리에게 안정이 무너지는 위기와 불안을 계속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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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건강에 대한 정보만 찾아봐도 수없이 많은 영상들이 나열되고 유독 그런 영상에 관심을 가지면서 점점 사회는 더 불안해지고 건강염려증에 걸려버린 것 같다. TV 채널도 방송 3사 밖에 없는 시절에도 즐겁게 봤는데, 이제는 100개가 더 되는 채널이 있지만 재미가 없는 세상이 되었고, 끝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지 모르는 정보과부화로 혼란스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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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ways on , Always connected" 라는 구호로 랜선이 있는 어느 곳에서든지 연결이 된다고 말하지만 이렇게 연결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너무 많은 정보로 어려워한다. 정치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도 수없이 많은 정보 속에서 분별하지 못하고 특정 정보만을 믿기도 하고, 무언가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하는 압박을 느끼며 살아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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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정은 어떻게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부제를 단 독일의 신경과학자 마렌 우르너의 <감정 사회>에서는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이 논점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대부분은 우리의 안전에 대한 위협과 관련된 것이다. 사람들은 안전에 대해 결정하고 선택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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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택을 만드는 것은 감정이다. 특히 불안을 조장하는 시대 속에서 내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것에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사람을 합리적 판단의 존재가 아닌 감정 덩어리로 표현한다.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서 문맹자'가 되면 불안을 자극하는 어떤 메시지에 유독 심하게 반응하며 그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면 그 감정의 뿌리를 따라 선택하고 판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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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치적으로 의견이 다를 때 사람들이 설득되지 않는 이유도 그들의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 즉 불안의 뿌리에서 출발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권운동가인 마야 안젤루는 여행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나는 배웠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을 잊고, 당신이 한 일을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지는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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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말은 잊고 사람은 잊을지 모르지만, 어떤 느낌은 남는다. 특별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던 기억들은 생생하게 몸에 남아 있다. 미국의 팟 캐스트 운영자아니 브레너 브라운이 7,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자신의 생활 속에서 어떤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라고 했는데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만족, 슬픔, 분노의 세가지 감정 상태에 있었고,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 자체가 너무 작다는 것을 '정서 문맹' 이라 부르고 '정서적 문해력'을 기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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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치적 문제에 유독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세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는 내가 정치적 이슈에 심각하게 반응하고 정서적으로 분노하는 이유는 내 안에 있는 어떤 불안의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깊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성적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의 뿌리 안에 있는 감정의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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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안정감이 필요하다. 불안하면 불안을 조장하는 외부 반응이나 미디어에 더 쉽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페이스북이나 SNS , 유투브는 사람들의 관심과 시간을 끌여들여야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오래 머무리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식이 바로 분노이다. 사람들은 부정적 정보에 빨리 노출되고 빨리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타락한 인간의 본성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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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요즘 매일 성경에서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보면 당파를 나누는 인간의 본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나는 아볼로파다. 바울파다, 그리스도파라고 이야기 하는 모습은 인간 안에 있는 당파성이 불안을 잠재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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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든, 정당이든, 조직이든, 국가든 관계없이 모두가 자신의 입장을 정해야 하며, 특정한 위치에 배치된다. 그리고 이것은 곧바로 진영을 형성하고 결국 양극화로 이어진다. 나로 하여금 찬성 혹은 반대 입장을 취하게 만드는 모든 문제에 필연적인 결과다. 그리고 이러한 배치는 나에게 일종의 안정감을 준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누가 나를 지지하는지, 비슷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통해 내 편과 적을 구분하면서 안정감을 가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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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는 안정을 원한다. 그래서 불안이 결국 우리의 감정의 뿌리가 되고 불안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완전한 안정감을 누리지 못하면 정치적인 문제에 너무 많이 휘둘리면서 더 큰 감정소모를 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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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임을 알지 못하면 오늘의 문제에 일희일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시대가 끝나기를 바랬을 것이다. 850:1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이제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이세벨의 시대였고 바뀐 것이 별로 없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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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렇게 승리했는데, 하나님의 기적이 있었는데 세상은 여전히 악의 시대 이세벨의 전성시대 속에 있었다. 엘리야는 도망쳤고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간구할 만큼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하나님은 지친 엘리야를 회복시킨 후에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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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지진과 불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오셨다. 그 세미한 음성의 내용은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의 역할을 이어가게 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왕상 19:17) 선언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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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선지자인 엘리사가 칼로 사람을 죽일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 말은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다. 악이 판을 치는 세상 속에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850:1로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신 그분은 역사 속에서 시간이 걸리지만 사람들을 세워가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와 심판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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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선거 하나 때문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분노를 쏟는 것 같다. 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며 오늘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며 기도하는 모습도 필요하다. 특히 기독교 안에서 정치에 대해 너무 많은 말들과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정서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심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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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저자는 '정서'가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여러가지 의견들을 제시한다. 또 진화론적 사고로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표현대로 인간의 마음에는 감정이라는 Emotion이 있지만 그 보다 더 깊은 곳에 정감이라는 Affection이 있다. 이 정감이 변화되지 않으면 삶은 변화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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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라는 이름하에 단순히 Emotion의 자극으로 정치적 구호들을 외치게 되면 기독교라는 진리와 본질이 정치와 감정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 거리게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정말 변화가 일어나려면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affection의 변화가 필요하다. 복음을 그 마음 중심에 심을 때만 정치 이데올로기보다 복음이 더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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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요나처럼 민족적 정체성이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되면, 히브리 민족의 정치적 일에는 분노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도망가는 삶을 살게 된다. 인간은 감정덩어리다. 감정의 뿌리에서 이성이 작용한다. 내가 판단하는 모든 합리적 판단이라는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안정감을 통한 affection의 변화가 없다면, 모두 감정적 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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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이 불안을 조장하는 시대에, 교회 안에서도 이리저리 휩쓸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정치를 논하기 전에 먼저 복음이 주는 삶의 안정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좀 더 여유있게 좀 더 겸손하게, 자신의 의견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의 겸손은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조롱하거나 악마화 하지 않는다. 우리의 감정, 우리의 마음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복음이 아니면 불안이 우리를 이끌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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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오늘도 그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역사의 주인이시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잠 16:4) 하나님은 악인의 악도 하나님의 주권의 역사 속에서 가장 알맞게 사용하시는 분이시다. 악인의 악을 처벌하고 근절하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악을 악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그럴려면 내안에 있는 감정의 뿌리가 불안이 아니라 안정감이어야 한다. 오직 복음만이 우리를 가장 균형있게 만든다.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말이다. 정치 이데올로기가 복음보다 더 중요할 때 우리는 요나처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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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일으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욘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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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에스더 | 작성시간 2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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