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것이 알고 싶다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특정에 사건, 사고, 사람을 파헤치면서 실체에 접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기독교인도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접근을 통해 신앙의 실체를 파악하고 성경 위에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2.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실체가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가 말씀 하시는 7가지가 무엇인가를 파헤치면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바르게 알 수 있는 실체에 접근하게 됩니다. 예수님 스스로 밝히신 예수님의 7가지 자화상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내용을 확인하였으면 합니다.
3. 예수님은 스스로를 생명의 떡이라고 하십니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4.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음식입니다. 여기에서 생명의 떡은 한국적 표현입니다. 서구적 표현은 생명의 빵입니다. 육식 위주의 식사를 한다면 생명의 고기로 표현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5. 핵심은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십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우리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에 참여합니다. 생명의 떡에 참여하는 의식입니다.
6. 우리 민족은 떡을 좋아 합니다. 잔치 자리에는 떡이 빠지지 않습니다. 위로와 격려의 자리에도 떡이 나옵니다.
7. 우리 교회도 떡을 좋아 합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떡을 교인들에게 대접합니다. 장학 헌금을 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시 떡을 대접하는 문화가 이어집니다. 초기에는 장학금을 강조하다가 함께 식탁 교제를 할 때 떡으로 섬기는 것도 성경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떡의 문화를 계속 이어갑니다. 더 나아가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떡에 진심인 문화를 함께 기뻐하고 참여합니다.
8. 그런데 예수님이 왜 자신을 스스로 생명의 떡이라고 표현을 하셨을까요?
9. 떡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먹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고 마셔야 생명이 유지됩니다. 떡은 삶이기도 합니다. 떡을 먹고 힘을 내어서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10. 떡은 함께하는 기쁨이고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잔치 자리나 장례식장 식탁에는 떡이 나옵니다. 그 떡을 먹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양식인 떡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 삶의 희노애락 한 가운데로 들어오셨기에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11. 예전에 설과 추석을 앞두고 떡 배달을 종종 하였습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떡을 배달하는 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삶이 보였습니다. 잔치 하는 집은 맑고 밝고 환합니다. 그리고 음료수든 과일이든 심지어 잔돈까지도 나누어 줍니다. 섬겨 줍니다. 그런 집은 잘 되는 집입니다. 들어가도 나가도 복이 있는 집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그러하기를 소원합니다.
12.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기에 예수님과 동행하는 가정과 교회는 잔치합니다. 섬김의 기쁨, 나눔의 은혜가 풍성합니다. 들어가도 나가도 복이 있습니다.
13. 육체의 양식은 먹고 또 먹어도 때가 되면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먹고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떡은 영원히 주리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이상갑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