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예원이에게 「왜 연어는 돌아올까」를 썼다.
며칠 뒤 미국에 있는 동생 흥이에게서 긴 카톡 글이 도착했다.
예원학교 예비소집일 이야기였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곡을 자유곡으로 적어 제출했던 일.
영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했던 일.
금수현 선생과 박해관 선생 이야기.
그리고 바이올린과 함께한 10년의 기억이었다.
신기했다.
그동안 내가 들었던 흥이의 바이올린 이야기는 늘 마지막 장면뿐이었다.
가세가 기울어 봉지쌀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어느 날, 결국 바이올린을 아궁이에 넣어 태워 버렸고 그날 이후 다시는 바이올린을 잡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것이 내가 알고 있던 바이올린 이야기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궁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어린 흥이가 보였다.
예원학교 운동장에 서 있던 소년.
영필하모니 연습실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소년.
선생님의 격려에 가슴 뛰던 소년.
수십 년 동안 보지 못했던 어린 흥이가 글 속에서 걸어 나왔다.
왜였을까.
왜 지금이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 흥이를 불러낸 것은 과거가 아니었다.
예원이었다.
예원학교를 앞둔 한 아이가 칠순을 바라보는 한 노인의 기억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생각해 보면 흥이는 지금 미국에서 외손자를 돌보고 있다.
외손자는 삶의 출발선에 서 있고, 예원이도 출발선에 서 있다.
그리고 흥이는 그 출발선을 뒤돌아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카톡이 내게 특별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흥이가 처음으로 어린 흥이를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흥이는 사건을 이야기했다.
바이올린을 태운 사건.
꿈을 접은 사건.
가난 때문에 포기한 사건.
그래서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아궁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사건 대신 사람이 나타났다.
예원학교 운동장의 소년.
비발디를 연주하던 소년.
선생님의 격려에 설레던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을 바라보는 칠순의 흥이.
연어는 강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흥이는 예원학교 운동장으로 돌아갔다.
영필하모니 연습실로 돌아갔다.
비발디를 연주하던 소년에게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소년만 있지 않았다.
어머니가 있었고.
선생님이 있었고.
형제들이 있었고.
하느님이 있었다.
오랫동안 흥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것은 아궁이였다.
그러나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 그가 다시 만난 것은 불길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한마디.
“큰형님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가 어쩌면 흥이가 평생에 걸쳐 찾아낸 답인지도 모른다.
📌(2026.06.19 08:15) 나는 혼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南田(李榮) 인공지능AI 첸 활용 정리: “돌아보니 내 삶은 사람으로 시작되어 사람으로 이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