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빌어준다는 것
사람은 왜 복을 빌어줄까?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돈은 줄 수 있다.
음식도 줄 수 있다.
옷도 줄 수 있다.
지식도 가르쳐 줄 수 있다.
그런데 복은 주지 않는다.
복은 빌어준다.
왜 그럴까?
⸻
복이라는 말을 붙들고 한참을 따라가 보았다.
복은 받는 것인가.
주는 것인가.
비는 것인가.
짓는 것인가.
그 물음을 따라가다 보니 뜻밖의 곳에 이르게 되었다.
⸻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부모는 자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스승은 제자를 대신 깨닫게 할 수 없다.
조부모는 손주를 대신 성장시킬 수 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
처음에는 그것이 인간의 한계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점이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
대신 살아 줄 수 없기에 믿는다.
대신 깨달아 줄 수 없기에 기다린다.
대신 성장시켜 줄 수 없기에 복을 빌어준다.
⸻
아, 그래서였구나.
사람은 복을 주지 않는다.
복을 빌어준다.
⸻
복을 따라가다가 끝내 씨앗 앞에 이르게 되었다.
아직 싹트지 않았지만 살아 있는 씨앗.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자라날 수 있는 씨앗.
아직 꽃피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꽃필 수 있는 씨앗.
⸻
복을 빌어준다는 것은 그 씨앗을 믿는 일처럼 느껴졌다.
⸻
씨앗은 대신 자라 줄 수 없다.
싹도 대신 틔워 줄 수 없고,
꽃도 대신 피워 줄 수 없으며,
열매도 대신 맺어 줄 수 없다.
⸻
그래서 믿는다.
그래서 기다린다.
그래서 복을 빌어준다.
⸻
누군가에게 받은 믿음은 다시 다른 사람을 향한 믿음이 된다.
누군가에게 받은 축원은 다시 다른 사람을 향한 축원이 된다.
씨앗이 싹이 되고,
싹이 나무가 되고,
나무가 다시 씨앗을 남기듯이 말이다.
⸻
복을 따라가다가 씨앗 앞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알 것 같았다.
왜 사람은 복을 빌어주는지를.
⸻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
오늘 얻은 것은 복의 정의가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사람은 대신할 수 없기에 믿고,
믿기에 기다리며,
기다리기에 복을 빌어주는 존재라는 것을.
🌱
📌(2026.06.20土14:43) 복을 빌어준다는 것 南田(李榮) 우리말 탐구: “사람은 대신할 수 없기에 믿고, 믿기에 복을 빌어준다.” 1300여자
추천 게시판: 말의 뿌리 탐구, 남전의 기록들, 노인이 노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