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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田의 기록들

복을 빌어준다는 것 Ⅱ 대신할 수 없기에 믿는다

작성자남전_투제로|작성시간26.06.21|조회수0 목록 댓글 0

복을 빌어준다는 것 Ⅱ
대신할 수 없기에 믿는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안에 적지 않은 뜻이 담겨 있다.

부모는 자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스승은 제자를 대신 깨닫게 할 수 없다.

조부모는 손주를 대신 성장시킬 수 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처음에는 그것이 인간의 한계처럼 보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점이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대신 살아 줄 수 없기에 믿는다.

대신 깨달아 줄 수 없기에 기다린다.

대신 성장시켜 줄 수 없기에 복을 빌어준다.

얼마 전 「복을 빌어준다는 것 Ⅰ. 사람은 왜 복을 빌어줄까?」를 쓰며 한참 생각한 적이 있다.

돈은 줄 수 있다.

음식도 줄 수 있다.

옷도 줄 수 있다.

지식도 가르쳐 줄 수 있다.

그런데 복은 주지 않는다.

복은 빌어준다.

왜 그럴까?

그 물음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다시 같은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사람은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믿고,

그래서 기다리고,

그래서 복을 빌어준다.

복을 따라가다가 끝내 씨앗 앞에 이르게 되었다.

아직 싹트지 않았지만 살아 있는 씨앗.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자라날 수 있는 씨앗.

아직 꽃피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꽃필 수 있는 씨앗.

복을 빌어준다는 것은 그 씨앗을 믿는 일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씨앗도 마찬가지다.

씨앗은 대신 자라 줄 수 없다.

싹도 대신 틔워 줄 수 없고,

꽃도 대신 피워 줄 수 없으며,

열매도 대신 맺어 줄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믿고 기다리는 일뿐이다.

그래서 씨앗 앞에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축원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받은 믿음은 다시 다른 사람을 향한 믿음이 된다.

누군가에게 받은 축원은 다시 다른 사람을 향한 축원이 된다.

씨앗이 싹이 되고,

싹이 나무가 되고,

나무가 다시 씨앗을 남기듯이 말이다.

돌아보니 사람도 씨앗도 다르지 않았다.

대신 살아 줄 수 없고,

대신 자랄 수도 없다.

그래서 믿는다.

그래서 기다린다.

그래서 복을 빌어준다.

오랫동안 복을 따라갔다.

그런데 끝에 가서 얻은 것은 복의 정의가 아니었다.

대신할 수 없기에 믿는다.

📌(2026.06.21日20:45) 南田(李榮) 우리말 탐구 정리: 사람은 대신할 수 없기에 믿고 믿기에 복을 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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