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걸어온 길이 있다
복을 따라가다가 믿음을 만났고, 믿음을 따라가다가 씨앗을 만났으며, 씨앗을 따라가다가 스스로를 만났다.
처음에는 스스로라는 말 하나를 붙들었다. 왜 스스로일까. 왜 스스로라 했을까. 어떻게 생겨난 말일까. 누가 만들었을까. 혼자와는 무엇이 다를까. 자기와 자신과는 무엇이 다를까. 또 다른 나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말할까.
그 물음을 따라가다 보니 일본어의 自ら → ‘미즈카라’ → 스스로도 만나고, 영어의 self → ‘셀프’ → 자기 자신도 만나게 되었다. 비슷한 말들은 적지 않았다. 그런데 탐구를 이어 갈수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의 뜻을 찾고 있었지만 정작 스스로가 걸어온 길은 모르고 있었다.
언제부터 쓰였을까. 어떤 문헌에 나타날까. 옛사람들은 어떤 자리에서 이 말을 사용했을까.
그 순간 탐구의 방향이 바뀌었다.
뜻에서 발자취로.
사전에서 문헌으로.
풀이에서 삶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도 그렇다. 이름과 직업만 안다고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무엇을 겪었는지, 누구를 만나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를 알아야 비로소 그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전은 뜻을 알려 준다. 그러나 그 말이 왜 생겨났는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어떤 삶 속에서 쓰여 왔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그래서 뜻은 알아도 말을 모를 수 있다.
사람의 뜻이 삶에 있듯,
말의 뜻도 그 말이 걸어온 길에 있다.
돌아보니 지금까지 탐구해 온 복도 그랬고, 믿음도 그랬으며, 배움도 그랬다. 뜻풀이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삶을 만나게 되었다. 말은 죽은 표지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오며 남긴 삶의 흔적이었다.
이번 탐구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스스로의 뜻이 아니었다. 말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었다. 어쩌면 좋은 우리말 탐구란 낱말의 뜻을 찾는 일이 아니라, 그 말이 살아온 삶을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스스로의 뜻을 서둘러 정의하지 않으려 한다. 먼저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 한다. 문헌 속에서 스스로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들의 입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살펴보려 한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돌아보니 스스로보다 더 큰 것을 발견했다. 말도 사람처럼 저마다 걸어온 길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말을 안다는 것은 그 말이 살아온 삶을 만나는 일이며, 끝내는 그 말을 살아낸 사람을 만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뜻이 삶에 있듯, 말의 뜻도 그 말이 걸어온 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