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벽은 길을 막는 것처럼 보인다.
젊을 때의 벽은 대개 밖에 있다.
가난, 학력, 직장, 경쟁, 세상의 눈길이 벽이 된다.
사람은 그 벽을 넘기 위해 달린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벽의 자리가 달라진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벽이고,
기억이 흐려지는 것도 벽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것도 벽이고,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줄어드는 것도 벽이다.
더 깊은 곳에는 또 다른 벽이 있다.
후회와 미련,
용서하지 못한 기억,
끝내 이루지 못한 꿈,
그리고 언젠가 마주해야 할 죽음이 벽처럼 서 있다.
많은 사람은 벽을 없애려 한다.
하지만 모든 벽이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벽을 대하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벽 앞에서 주저앉을 수도 있고,
벽을 돌아갈 수도 있으며,
벽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를 수도 있다.
때로는 벽이 우리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가지 못하게 붙들어 주는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노년의 벽은 젊은 날의 적이 아니다.
그 벽은 남은 시간을 헤아리게 하고,
사람을 돌아보게 하며,
삶의 본뜻을 다시 묻게 한다.
어쩌면 벽은 길의 끝에 서 있는 장애물이 아니라,
인생이 마지막으로 건네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무엇을 붙들고 살겠는가.”
벽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사람은 가장 깊은 자기 목소리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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