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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스카우팅 — 제28편 : 다시, 아그네스

작성자남전_투제로|작성시간26.06.10|조회수2 목록 댓글 0

[연작] 스카우팅 — 제28편 : 다시, 아그네스

이 연작은 아그네스로 시작하였다.

걸가이드를 세운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부분 올라브라고 답한다. 틀렸다. 걸가이드를 세운 것은 아그네스 베이든 포월 Agnes Baden-Powell 1858~1945이었다. 그 이야기에서 시작하였다.

이제 아그네스로 돌아온다.

아그네스는 1910년 걸가이드 협회 초대 회장이 되었다. 쉰한 살이었다. 그러나 시작은 그보다 일렀다. 1908년이었다. 아그네스는 스카우트 대를 하나 만들었다. 남자 대장을 찾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그러나 소녀들이 걸가이드에 들어오고 싶다고 나섰다. 1909년 크리스털 팰리스 집회에 소녀들이 스카우트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다. 그 자리에 이미 6천 명의 소녀들이 스카우트 본부에 이름을 올리고 공식적으로 스카우트 활동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로 등록되어 있었다. 포월은 아그네스에게 부탁하였다. 아그네스는 받아들였다.

아그네스는 잘 해냈다. 1914년 전쟁이 터질 무렵 영국 안에서만 30만 명의 가이드가 등록되어 있었다. 여기서 등록 인원은 당시 걸가이드 조직에 이름을 올린 회원 수를 뜻한다. 다만 오늘날처럼 등록비 납부까지 완료한 인원만을 집계한 것인지, 아니면 명부에 등재된 인원 전체를 포함한 것인지는 자료마다 설명이 달라 정확히 단정하기는 어렵다. 전쟁 중에는 가이드들을 이끌고 병원에서 봉사하였다. 붕대를 감았다. 부상병들을 위로하였다.

그러나 아그네스의 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1912년 포월이 결혼하였다. 스물두 살의 올라브였다. 올라브는 1915년 가이드 서약을 하였다. 1916년 서식스 Sussex 주 가이드 단장이 되었다. 같은 해 9월 각 주 단장들이 투표로 올라브를 영국 수석 가이드 Chief Guide로 선출하였다. 올라브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때 아그네스는 쉰여덟 살이었다.

아그네스는 명예 회장 자리를 받았다.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1917년이었다. 회장직은 스무 살의 프린세스 메리 Princess Mary 1897~1965에게 넘어갔다. 아그네스는 부회장이 되었다. 1920년에는 그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그리고 차츰 공식 직책에서 사라졌다.

올라브는 훗날 아그네스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그녀는 매우 재능 있고 극도로 영리하지만 완전히 빅토리아 시대 사람이었다고.

쉰일곱 살의 아그네스와 그 세대의 지도자들은 젊은 세대와 맞지 않았다고.

아그네스는 끝까지 가이드였다.

공식 직책에서 물러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걸가이드 협회의 공식 잡지인 걸가이드 가제트 Girl Guides Gazette에 글을 썼다. 유니폼을 입고 각지를 돌아다녔다. 여든이 넘어서도 천막에서 잠을 잤다. 캠핑을 계속하였다. 자신을 가이드의 할머니 the Grandmother of the Guides라고 불렀다. 그 이름이 좋았다.

올라브와 아그네스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우리 사이에는 사랑이 전혀 없었습니다.”

올라브가 직접 남긴 말이었다.

1945년 6월 2일이었다. 아그네스는 세상을 떠났다. 여든여섯 살이었다. 런던 켄살 그린 묘지 Kensal Green Cemetery 가족 묘소에 묻혔다.

그러나 가족 묘비에는 아그네스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았다.

걸가이드를 세운 사람의 이름이 묘비에서조차 사라진 것이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는다.

2024년 현재까지도 그 이름은 묘비에 없다.

역사는 때때로 가장 먼저 길을 연 사람을 잊는다. 예컨대 걸가이드를 세운 아그네스 베이든 포월의 이름이 오랫동안 동생인 로버트 베이든 포월의 그늘에 가려졌던 것처럼 말이다.

21세기에 들어서야 걸가이드 역사 연구자들과 일부 스카우트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아그네스의 공로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다시 아그네스를 찾기 시작하였다.

2022년 2월 22일 영국에서 아그네스 베이든 포월 기념 협회 Agnes Baden-Powell Appreciation Society가 만들어졌다. 묘비에 이름을 새기기 위한 모금도 시작되었다. 묘소를 복원하고 이름을 추가하는 데 1만 파운드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구글에서 아그네스를 검색하면 아직도 포월의 누나라는 설명이 먼저 뜬다.

그녀를 알아본 한 사람은 이렇게 썼다.

“나는 스카우트에서 20년을 보냈다. 그러나 아그네스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연작이 아그네스로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아그네스로 돌아온다.

📌(2026.06.10 14:34) 다시, 아그네스, 南田(李榮), 인공지능AI 첸 활용 정리: ‘역사는 때때로 가장 먼저 길을 연 사람을 잊는다. 그러나 잊힌 이름을 다시 기억하는 일 또한 역사의 몫이다.’

걸가이드를 세운 것은 올라브가 아니라 아그네스였다. 역사는 때때로 가장 먼저 길을 연 사람을 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아그네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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