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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스카우팅 — 제29편 : 한국 스카우팅1. 씨앗

작성자남전_투제로|작성시간26.06.10|조회수2 목록 댓글 0

[연작] 스카우팅 — 제29편 : 한국 스카우팅1. 씨앗

1907년이었다.

포월이 브라운시 섬에서 첫 야영을 열었다.

작은 씨앗 하나가 뿌려졌다. 훗날 스카우팅이라 불리게 될 씨앗이었다.

그 씨앗은 영국의 소년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씨는 국경을 모르고 바다를 건넜다. 영국을 넘어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15년 뒤 조선 땅에 닿았다.

1922년이었다.

일제강점기였다. 조선은 나라를 잃은 식민지였다.

1922년 10월 5일,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후원에서 조철호 趙喆鎬 1890~1941가 여덟 명의 소년과 함께 조선소년군 朝鮮少年軍 창립식을 열었다. 경성제1호대 京城第一虎隊였다. 한국 최초의 스카우트 대였다.

조철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조선군 사단에 배속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앞잡이가 되는 길을 거부하였다. 만주로 망명하였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일하였다. 뒤에 김성수가 세운 중앙고등보통학교로 옮겼다.

오산학교와 중앙학교는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민족교육의 현장이었다. 나라를 잃은 시대에 사람을 기르는 일은 곧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조철호 역시 그렇게 생각하였던 듯하다. 그는 총을 드는 길보다 사람을 기르는 길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던 듯하다. 나라를 잃은 시대에 조선의 미래는 소년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였던 듯하다.

조선소년군은 그런 생각 속에서 태어났다.

같은 무렵이었다.

서울 중앙기독교청년회 YMCA 소년부 간사 정성채 鄭聖采는 조선소년척후대 朝鮮少年斥候隊를 발족시켰다.

출발은 달랐다.

그러나 바라보는 곳은 같았다.

나라를 잃은 시대에 조선의 소년을 기르는 일이었다.

조선소년군과 조선소년척후대의 뒤에는 오산학교가 있었고 중앙학교가 있었으며 YMCA가 있었다.

나라를 잃은 시대에도 사람을 기르는 일이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었다.

1924년 3월 1일이었다.

3·1운동 5주년을 맞아 두 단체는 통합하였다. 소년척후단조선총연맹 少年斥候團朝鮮總聯盟이 결성되었다. 민족 지도자 이상재 李商在 1850~1927를 총재로 추대하였다.

같은 해 4월 베이징에서 열린 극동국제소년군대회에 참가하였다. 조선 스카우트가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 나간 것이었다.

그러나 통합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조선소년군은 순수 조선식 운영을 강조하였다. 조선소년척후대는 국제 스카우팅의 방식을 중시하였다. 결국 두 단체는 다시 각자의 길을 걸었다.

일제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카우트 운동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년들을 기르고 시민을 기르고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37년 7월 31일이었다.

파고다공원에서 시국강연회가 열렸다. 장내 정리를 맡은 스카우트 대원들은 모자 끈에 태극 문양과 무궁화꽃, 그리고 한글로 준비 ㅈㅜㄴㅂㅣ가 새겨진 장식을 달고 있었다.

일본 경찰은 그것을 문제 삼았다.

장식을 압수하였다. 지도자들을 수배하고 구금하였다.

그해 9월 3일, 단체는 강제 해산되었다.

준비.

ㅈㅜㄴㅂㅣ.

한글 다섯 글자 때문이었다.

스카우트의 표어였다.

일제는 그것을 두려워하였다.

조철호 역시 시련을 피하지 못하였다. 1926년 6·10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귀국 뒤에는 동아일보에 몸담으며 조선소년군 육성에 나섰다.

1941년 세상을 떠났다.

포월이 세상을 떠난 바로 그해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찾아왔다.

1946년 3월 1일.

대한보이스카우트 중앙연합회가 출범하였다. 3·1운동 기념일을 택한 것이었다.

씨는 살아남았다.

일제가 줄기를 꺾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씨앗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포월이 브라운시 섬에 뿌린 씨앗은 바다를 건너 조선에 닿았다.

그리고 조선의 토양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스카우팅은 영국에서 왔다.

그러나 조선에서 그것은 단순한 소년운동이 아니었다.

나라를 잃은 시대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광복과 함께 씨는 다시 싹을 틔웠다.

조선 땅에 떨어진 작은 씨앗 하나가 마침내 새로운 봄을 맞이하였다.

📌(2026.06.10 22:23) 한국 스카우팅 1. 씨앗, 南田(李榮), 인공지능AI 첸 활용 정리: ‘스카우팅은 영국에서 왔다. 그러나 조선에서 그것은 나라를 잃은 시대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포월이 브라운시 섬에 뿌린 씨앗은 바다를 건너 조선에 닿았다. 조철호와 오산학교, 중앙학교, YMCA는 그 씨앗을 받아들였다. 일제가 줄기를 꺾을 수는 있었지만 씨앗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광복과 함께 씨는 다시 싹을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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