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스카우팅 — 제31편 : 한국 스카우팅3. 성장
1953년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나라는 여전히 가난하였다.
학교는 무너져 있었고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빴다.
그러나 전쟁 속에서 돋아난 싹은 멈추지 않았다.
해마다 새로운 가지를 뻗으며 자라기 시작하였다.
1955년이었다.
캐나다 나이아가라온더레이크Niagara-on-the-Lake에서 열린 제8회 세계 잼버리8th World Scout Jamboree에 한국 대표가 참가하였다.
단 한 명이었다.
한국 스카우팅의 외로운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그 한 걸음은 세계를 향한 문을 여는 시작이었다.
1959년이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제10회 세계 잼버리10th World Scout Jamboree가 열렸다.
이번에는 121명이 참가하였다.
불과 4년 전 한 명이었던 나라였다.
한국 스카우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학교마다 스카우트 대가 생겨났다.
야영이 이어졌다.
하이킹이 이어졌다.
봉사 활동이 이어졌다.
기능장을 따고 진급을 하는 일이 소년들의 목표가 되었다.
범스카우트는 많은 소년들의 꿈이었다.
한국 스카우팅의 성장은 곧 학교대의 성장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소년들은 학교에서 처음 스카우팅을 만났다.
교실에서 만나고 운동장에서 만나고 야영장에서 만났다.
지역대도 있었다.
학교를 넘어 동네를 중심으로 모이는 대들이었다.
수는 많지 않았지만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66년이었다.
보이스카우트한국연맹Boy Scouts Korea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68년에는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으로 정착하였다.
연맹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갔다.
1983년이었다.
한국은 처음으로 세계스카우트연맹World Organization of the Scout Movement우줌WOSM 이사국으로 피선되었다.
한국 스카우팅이 세계 운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작은 나라의 스카우트 운동이 이제는 세계 무대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1년이었다.
강원도 고성에서 제17회 세계 잼버리17th World Scout Jamboree가 열렸다.
주제는 세계는 하나 Many Lands, One World였다.
133개국 19,081명이 참가하였다.
세계 잼버리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참가하였다.
냉전이 무너지고 있었다.
동구권 스카우트들이 세계 잼버리로 돌아왔다.
고성의 바닷가에는 세계가 모여 있었다.
1922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후원에서 여덟 명의 소년이 모였다.
그것이 씨앗이었다.
광복과 전쟁을 지나며 씨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마침내 큰 나무로 자라났다.
1991년 고성 세계 잼버리는 그 나무가 맺은 가장 큰 열매 가운데 하나였다.
그 시대 수많은 소년들이 그 나무 아래에서 꿈을 키웠다.
📌(2026.06.12 16:01) 한국 스카우팅 3. 성장, 南田(李榮), 인공지능AI 첸 활용 정리: 전쟁 속에서 돋아난 싹은 멈추지 않았다. 해마다 새로운 가지를 뻗으며 자라기 시작하였다. 1,37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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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용 단문 : 1955년 세계 잼버리에 참가한 한국 대표는 단 한 명이었다. 그러나 4년 뒤 마닐라에는 121명이 참가하였다. 학교마다 스카우트 대가 생겨났고 마침내 1991년 고성 세계 잼버리가 열렸다. 전쟁 속에서 돋아난 싹은 어느새 큰 나무로 자라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