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10주기를 앞에 두고
어머니 10주기를 앞두고 있다.
처음에는 추모의 글 한 편이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고 지난 삶을 돌아볼수록 새로운 어머니가 나타난다. 내가 알던 어머니는 어머니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어머니는 결코 주어진 상황을 기다리며 사신 분이 아니었다.
원서동 처녀 시절에는 소 한 마리를 혼자 발골할 만큼 당차고 야무진 분이었다. 눈썰미와 손재주가 뛰어나셨고 특히 손맛이 좋으셨다. 당신의 셋째 고모이신 호원당 조자호 할머니를 도와 전통 한식을 익히셨고 훗날에는 그 빈자리를 대신하여 자문을 해주실 만큼 실력을 인정받으셨다.
국민학교도 병약하여 제대로 마치지 못하셨지만 한글은 물론 일본어까지 익히셨다. 육십갑자를 손으로 짚으며 세월을 헤아리셨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스스로 배우고 익히셨다. 동네 노인들의 학벌 자랑 앞에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으셨다. 어느 날 한 이웃 할머니가 대학은 나왔느냐고 묻자 “나 이대 나왔어.” 하시며 웃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말 속에는 학력이 아니라 배움에 대한 자존심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바느질과 뜨개질 솜씨도 남달랐다. 양장 본까지 직접 떠서 당신 옷은 물론 아버지의 모시옷과 자식들 옷가지까지 손수 지어 입히셨다.
아버지의 사업이 1969년 KBS-TV 광고방송 폐지 이후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집안의 무게는 점차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생활비를 받아 쌀을 조금씩 떼어 모아 비상금을 마련하셨고 정작 어려운 시절에는 일본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선물로 사다 주어 고이 간직하던 일제 속옷까지 내놓아 쌀을 사셨다는 말씀도 들은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우리 집을 지켜낸 분이 아니라 우리 집을 만들어낸 분이었다.
아버지는 가정만을 생각하며 살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을 품고 넓게 살아가셨다. 그런 아버지 곁에서 어머니는 묵묵히 안을 지키셨다. 사업이 기울고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두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끝내 자기 자리를 놓지 않으셨다.
그리고 이제 와 돌아보니 어머니가 내게 남겨주신 가장 큰 유산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주어진 운명을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삶.
배우고 익히며 자기 몫을 감당하는 삶.
어려움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삶.
그것이 어머니가 몸으로 보여주신 삶이었다.
어머니 10주기를 앞두고 한 편의 글을 쓰려 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내가 알고 있던 어머니는 어머니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는 여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내 앞에 서 계신다.
이 글은 어머니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야 시작되는 이야기의 첫 장이다.
어머니를 다시 알아가는 길.
그 길의 첫머리에 이 글을 놓는다.
南田(李榮)
📌(2026.06.12 22:11) 어머니 10주기를 앞에 두고, 南田(李榮), 인공지능AI 첸 활용 정리: 어머니를 추억하려 했으나 오히려 새로운 어머니를 발견하게 된다. 십 년의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어머니 이야기의 첫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