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옹에서 택시를 타고
두번이나 찾아간 아르스~
고해소에서 16시간 이상 성사를
준 적이 있는 성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수단에 중백의를 걸친 고해사제가
고해소에 머물고 있지만,
고해성사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야말로 파리 새끼 한 마리 없다.
꽤 오래전의 일이다.
어느 본당 서품 동기 신부님을 찾아가
사제관에서 담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신학원 기숙사 부원장
신부님께서 들어오셨다.
우리는 너무나 반가워 인사를 드렸는데,
어른께서 서품 동기 사진을 한번 쓱
쳐다 보시더니, '다들 잘 계시는가?' 하셨다.
우리는 어른께서 그냥 하신 말씀인데도,
도둑놈 제 발 지리다고 내 자신과 모두가
부제 때와 첫 신부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잘 살고 있느냐? 는 질문으로 알아듣고,
모두가 할 말을 잃고 얼음처럼 되어
계면쩍은 웃음을 진 적이 있었다.
사제들을 양성하는 교회 어른들과
장상들의 마음은 한결같고,
교구를 책임지고 있는
주교님들의 마음도 한결같을 것이다.
고인이 되셨지만, 나의 서품을 주신
고(故) 김 남수 안젤로 주교님께서는
'주교는 항상 십자가를 메고서 뒷걸음질
치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씀하셨다.
뒷걸음질 친다는 것은 당신께 맡겨진
양떼들에 대한 책임 때문이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당신
자신의 영혼 구원 때문이라는 말이다.
늘 주교관에서 잠자리에 드실 때마다
당신 집무실의 벽에 붙어 있는
교구 사제들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특히 걱정되는 사제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하고 기도하신다고 하셨다.
자식들에 대한 모든
부모의 마음이 다 그럴 것이다.
본당 신부님들의 주보이신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께서 오늘날
본당 신부님들과 보좌 신부님들을
천국에서 바라보시며 뭐라고 하실까?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선익,
영혼들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정말로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성사를 집전해야 하는 사제직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실 것이다.
하느님과의 관계속에서 인격적 사랑의
체험 없이,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지 않고
올바른 사제직 수행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요새는 인성 교육이 안된 젊은 보좌들이
막무가내로 'ego pater, tu pater'하고
본당 신부님께 막 대더니 본당 신부님
체면이 말이 아닌 곳도 많다고 한다.
그야말로 고부갈등은 없는지? 하고
물으실 것 같다.
요사이 다는 아니지만, 주업(본업)과
부업을 혼돈하여 주업은 팽개치고
부업이 본업이 되어 사는 분들도 있어서
여기저기서 불평이 있는 것 같다.
'너 어디 있느냐?'(창세3,9)하고
아담에게 물으시는 하느님을 항상
의식해야만 한다.
그리고 사제 개인의 양떼가 아닌,
하느님의 백성,
주님의 양떼(요한21,15.16.17)를
잘못 돌보거나 잘못 인도했을 때의
책임을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심판때
물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천주교 교우수가 500만이라고
하지만, 주일을 지키는 교우는 100만이며,
지금 400만이 쉬고 있다.
이 400만을 어떻게 하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