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10. 대림 제2주간 목요일(마태 11,11-15) Icon of St. John the Baptist 요한이 바로 엘리야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1,11-15).”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다.” 라고 강조하신 것은 당신이 바로 메시아라는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말라키서를 보면 이런 예언이 나옵니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말라 3,23-24).” 이 예언은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시기 전에 먼저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시겠다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사실상 메시아를 곧 보내신다는 예언입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즈카르야에게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는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예고하는 말을 할 때 이런 말도 했습니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 1,17).” 이 말은 말라키서의 예언을 인용한 말이고, 세례자 요한은 말라키서에 예언되어 있는 엘리야 예언자의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을 예고하는 말입니다. <이 예고도 사실상 메시아께서 곧 오신다는 예고입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 가운데에는 ‘엘리야 예언자가 곧 메시아’ 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요한 1,19-21).”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당신이 엘리야요?” 하고 물은 것은, “당신이 메시아요?” 라는 뜻으로 물은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아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사람들 가운데에는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로 생각했거나 메시아이기를 기대했다가, 당사자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바람에 실망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엘리야 예언자를 메시아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보다 먼저 와서 준비하는 예언자’로 생각하긴 했지만, 어떻든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는 일을 체험한 뒤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되었으면서도 엘리야 예언자에 관해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마태 17,10-13).” 이 말씀도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다.’ 라는 말씀이고,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라는 것을 제자들이 깨달았다는 말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믿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일에 대해서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 상황을 보면 세례자 요한이 한 일을 성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만일에 그가 사람들을 모두 회개시켰다면, 예수님의 일도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텐데, 그가 실패했기 때문에 그만큼 예수님의 일도 어려워진 것이 아닌가?” 세례자 요한이 박해를 받고 수난을 당하고 순교한 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이루어진 일의 전체 규모만 보고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것은 믿음 없는 세속 사람들의 방식일 뿐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죽음에 이르기까지’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점에서도 그의 임무 수행은 성공이고, 또 요한의 회개 선포를 받아들여서 회개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고, 요한이 인도한 대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의 임무 수행은 성공입니다. 물론 요한의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그들은 스스로 ‘구원의 은총’을 거부한 자들입니다. 그것은 세례자 요한의 탓이 아니라, 그 사람들 자신들의 탓입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 복음을 받아들였고,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니, 믿음 없는 세속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의 복음 선포 활동은 실패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의 일은 대성공입니다.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과 계획대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도 성공이고, 예수님 승천 뒤에 복음이 선포되는 과정과 그 결과를 보아도 성공입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요한 17,4).”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구원과 멸망은 우리가 선택합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은 메시아 예수님의 성공과 승리에(메시아의 왕정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은 메시아의 나라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제외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신을 제외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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