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목적 및 구성 ** 한국산악회 주관/주최 : 주로 젊은이들 대상( 대학생 및 30대 산악인 : 한국산악회 회원 가입 원칙. 젊은이들에게 고산에 대한 기술 훈련 및 경험을 쌓게 하여, 향후 한국산악회 또는 국내 산악회의 도전정신이 투철한. 모험과 극복을 행하는 산악가가 되기를 바라고 육성 : 모두 18명 ( 모험과 극복을 즐기는 산악인 육성 ) ** 1월 19일 : 월요일 ㅡ 1월 19일 오전 11시 40분 발, 카자흐스탄행, 오후 4시경( 현지 시간 : 4시간 시차 )에 도착 ㅡ 메니져 박인천 기술위원회 이사, 원정대장/ 등반 대장 : 김대현, 대구 지부 소속 : 집행부 2명 ㅡ 대학생 : 여대생 4명( 홍익대, 서울대, 성균관대, 성신여대 : 2006년 생도 있음 ) : 남대생 5명( 홍익 3명, 서울, 숭실, 인하공전 ) ㅡ 30대 : 4명 : 김재준. 대구지부, 설경일, 송준희, 박재민 ㅡ 70대 : 노성 49년, 진식 이사 56년, 환준 선배 46년생. ㅡ 저녁 6시 30분경(?) 숙소 도착 : 자동차로 이동. : 공항에서 약 30분( 출퇴근 시간대 아니면 ) 소요 ㅡ 숙소 : 소위 원룸 아파트먼트 : 약 15평형, 취사도구( 부억 ), 화장실, 침대 2인용 1개, 소파 1개, 옷장 등등 : 알마티 시내 한복판 : 하루 사용 : 6만원 (?), 6명까 수용 가능( 겨울 : 침낭 준비하면 ) ** 1월 20일 : 화요일 ㅡ 아침 8시경, 알마티의 유명한 Shymbulak 스키 리조트( 시작 해발 2200m ) 위쪽 등산학교( 2500m) 로 이동. ㅡ 3차에 걸쳐 자동차를 갈아 탔음 : 시내 ㅡ>( 20인승 ) 심불락 : 심불락 ㅡ>( 승용차 ) Small Shybulak 주차장 : 스몰 주자창 ㅡ> 등산학교 ( 4중 구륜 SUV ) ㅡ 평일 이라서 등산학교(?) 기숙사( 26명 수용 ? 간이 침대 : 4개 침대는 그곳 구조대가 사용 )에 빈 공간( 침대 )이 있어서 우리 모두( 18명 ), 기숙사에 입소. ㅡ 고소적응 훈련 : 2시경, 출발, 해발 3000m까지 다녀 옴 : 오프라인 길( 자동차 운행 가능 ). ㅡ 각 팀별로 저녁 식사 준비 및 식사.. ** 1월 21일 : 수요일 ㅡ 아침 6시 기상. 8시 고소적응 훈련 : 해발 3500m를 넘어서 약간 분지 형태의 Base Camp 대상지 ( 해발 3200m? )까지 다녀 옴 : 오후 5시경, 2500m 숙소에 도착. ㅡ 노성 생각 : 다른 지역은 대체로 바람이 온순한데, 이곳 분지( 사방이 4000m 이상의 높은 산봉우리 지역 )에서는 바람이 강하게 불고, 큰 바위등이 없어서, 야영( 텐트 설치 및 8 ~ 10일 야영 )에 적당한 장소가 아니다. ㅡ 하산후 저녁 식사하고 저녁 8시경, 전체 회의 : BC 구축장소 변경 관련. ㅡ 이유 : 3200m에 BC 구축 및 산악 행위에 위험 산재 : 눈이 많이 내려 쌓여 있다. : 눈사태( avalanche ). : 건설( 마른 눈, 분말 눈, power snow )이라서 , 소위 러셀이 잘 되지 않아서, 고산 등반시, 체력 소모 많다. ㅡ 결론 : 현 위치( 해발 2500m )에서 야영하면, 근처 산에서 훈련하고, 등반 하자. ( 노성 주장 : 원정 훈련의 2가지 주요 목적이, 1) 대학생들에게 고산 경험 및 2) 믹스 등반 훈련 아닌가 ? 따라서, 고산 등반 경험을 해주어야 하니, 이것에서 새벽 일찍 1시 ~ 3시에 출발하여서 4000m 산행을 하면 좋겠다. ) ** 1월 22일 : 목요일 : 이틀 동안의 기숙사 생활에서 벗어나, BC 구측( 텐트 설치 ) ㅡ 오전 : 각 팀별로 텐트 설치 : 팀 75( 평균 나이 75세 )는 , 나무 데크 위에 텐트를 설치하지 않고, 실제 산행시 야영 하듯이 공터 땅위에 눈을 대략 제거하고 4인용 텐트( 중국제 Hill Man ) ( 3인 수용이 적절한 ) 설치 ㅡ 오후 : 원래 오후 2사에 근처 산으로 이동하여 훈련한다고 집행부에서 공지. : 팀 75는 훈련 준비를 하고, 2시 10분경, 대장에게 훈련 어떻게 할 것인가 문의 했더니. : 박인천( 박이사 ) 메니져가 식량 구입하러 가서,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대기 상태라고, : 뭔가 좀 찜찜해서, 김대장에게 뭐라고 한마디 했다. 1) 원래대로, 3200m 고도에 BC 구축했으면, 어떻게 식량 구하러 시내에 갈수 있느나 ? 2) 박이사 없으면 훈련이 왜 안되느냐 ? 3) 20여명의 인원이 아무 준비없이 쉬고 있어야 하느냐 ? : 김대현 대장 : 오늘을, 예비일을 겸하기로 했다. : 그러면, 어찌하여 팀 75에게. 이런 상황을 알려 주지 않았는가 ? ㅡ 팀 75 3명은, 2시 30분경, 김대장이 알려 주는, 바로 근처의 "검은 폭포( 빙폭 )"으로 출발했다. BC로 부터 약 50분(?) 해발 2700m에, 계곡 끝머리에 검은 바위가 우뚝 솓아 있었으나, 빙폭은 엄청 왜소했다. 3m 정도 높이의 빙폭을 잠시 올라 갔다가, 클라이미다운으로 내려 왔다. ㅡ 타 대원들은, 4시(?)부터 BC 출발하여서, 팀75와 마찬가지로 검은 폭포까지 산행한 것 같다. ** 1월 23일 : 금요일 : 흐림, 때때로 햇볕 ㅡ 텐트에서 첫 일박하고, 아침 식사를 버너와 산 냄비로 해먹고,,, ㅡ 9시경, 해발 2700m에 있는 이곳 부근, 훈련 암벽으로 이동 ㅡ 10시경 훈련 암벽에 도착. 요세미티 난이도 5.6, 5.7 ? ㅡ 크렘폰 장착하고, 장갑 끼고, 20여m 암벽 오르기. ㅡ 암벽위에서 상단으로 릿지 등반. ㅡ 팀 75는 행동식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 30분경 하산하기 시작했다. ** 1월 24일 : 흐림, 때때로 햇볕 ㅡ 3,680m(?) : Oktybronok봉으리 등반 하는 날. ㅡ 새벽, 3시 30분 기상, 5시 Oktybronok봉우리로 출발 : 팀 75는 제일 늦게, 5시 20분경 출발 했다. ㅡ 팀 75년 노성, 환준 2명만 참여, 김진식 이사는, 식사 문제로 불참 ㅡ 오전 11시경, 겨우 겨우, Oktybronok봉우리 밑에 도착. 약 25m 바위 덩어리( 난이도 요세미티 5.6 ~ 5.7 ? )를 올라야 피크에 도착하는데, 함께한 환준 선배가, 몹시 피곤하다고 암벽등반을 고사하여서 나는 3650m 도달로 만족 해야 했다. ㅡ 우리 대원들( 14명, 30대 팀은, 전날 다른 봉우리 도전하느라 불참 ) 모두 크렘폰을 장착히고 왔는데, 이곳 알마티에 서는 어떤 처녀는, 짚신 아이젠을 신고, 우리와 같은 루트로 이곳 3650m에 왔다. 그녀와 샐프 사진 찍음. ㅡ 3시 30분경, 들머리에 도착했다. 5시경, BC로 돌아 옴. ** 1월 25일 :: 맑음, 때떄로 흐림 : 팀 75는, 고산 다녀온 다음날 쉬기로 했다. ㅡ 오늘은 팀 75는 쉬는 날이다. 환준 선배님이, 침볼락 스키장에서 콘돌라 타고, 점심 먹자고 했다.. ㅡ 김이사가 계속해서, 마침, 박이사가, 뭔 리포트 작성해야 한다고, 함께 침볼락으로 가자고.. ㅡ 팀 75 3명 + 박이사 등 4명은 침볼락 스키장으로 ㅡ 타 대원들은 동네( 근처 ) 산으로 가벼운 하이킹 갔다. ㅡ 침볼락에서 콘도라 타고 중간역에서 내려서, 점심식사를 했다. 양고기등 나름 배불리 먹었는데, 맥주 500ml(? 300ml ?), 위스키 한잔 등등해서 8만원(?) 잘 즐겼다. ㅡ 다시 위졲으로 가는 콘도라를 타고 해발 3150m까지 올라 갔다. 환준선배와 김이사는 빙하 구경한다고 위쪽으로 진행, 나는 3150m에 남아 있었다. ㅡ 3시 30분경, 침볼락 2200m로 내려외서, 다시, 2500m BC로 돌아 왔다. 돌아 오는 시간 약 45분 ( 노성의 느린 걸음 걸이로 ) ** 26일 : 때때로 흐리고 때대로 맑음 : 전체 대원 쉬는 날 이란다. ㅡ 전체 쉬는 날. 팀 75는 Shymbulak에 가기로 했다. 마침 박이사가 침불락 상단을 안내 해준다고 한다. ( 빙하 또는 다른 곳 ) ㅡ 나는 스키를 타기로 했다. 늦게 침볼락에 도착해서, 겨우 1시간 30여분 스키를 즐기는데 몰경 12만원을 지불 했다. 어물쩡하다가 넘어져서, 원래 통증이 있었단, 왼 어께에 통증에 통증을 더 했다. ( 어제 주사 치료 받음. 아직 통증, 좀 심한 편, 이번 목요일( 2월 5일 ) 재차 병원 방문예정 ) ㅡ 박이사, 환준 선배, 김이사는, 오늘( 1월 26일 )은 빙하 방향에 눈사태 위험이 있다고, 침볼락 스키 리조트측에서 빙하 탐방길을 막았서, 할수 없이, 3150m측 산봉우리( 3500m )를 올랐다.. ** 27일 : 맑음. 때때로 흐림 ㅡ 팀 75는 알마티 시내로 이동하는 날. 다른 대원들은 3,990m 봉우리 도전하는 날. ㅡ 텐트를 거두고, 짐을 꾸리고, 알마티로 갖고갈 것들은 텐트에, 나머니는 카고 백에 넣었다. ㅡ 12시에 BC( 해발 2500m : 등산학교 )를 출발하여 하산하기 시작했다. ㅡ 침불락 리조트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계속 걸어 내려가사, 알마티 시내까지 가는 시내 버스를 타리로 했다. ㅡ 침불락에서 12,000원( 우리나라 돈 )이면, 20분 걸려서 , 시내버스 타는 곳까지 쉽사리 가는데, 우리는 그 돈으로 점심을 사 먹고, 걸어 가기로 했다. ㅡ 오후 3시 50분경에, 시내 버스 정거장에 왔다. 곧 바로 버스를 타고 시내로... 19일 숙소로 했던 그 아파트먼트로 향했다. 버스 기사가 우리를 내려줄 정거장을 잘못 알려 주어서, 거의 한시간을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운전기사 개자식 ! ㅡ 다른 대원들은 3,950m, 3,999m 봉우리를 성공적으로 등반코자, 새벽 3시경 BC를 출발하고 각각 저녁 5시 10분( 크리샤토바 정상 팀 ), 6시 30분( 크리샤토바 + 아마캘디 팀 )에 BC에 돌아 왔다고 한다. ** 28일 : 맑음, 때떄로 흐림 : 알마티 시내 구경 하는 날 ㅡ 오전 10시경, 숙소를 나와서, 그린 마트로 가서 몇가지 선물을 구입하고, 과일을 구입하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 왔다. ㅡ 환준 선배와 나는, 젠코브 성당, 전쟁 기념관, 악기 박물관, 책방을 거쳐서, 숙소로 돌아 왔다. ** 29일 : 흐림 : BC에 있는 대원들 모두가 시내로 돌아 오는 날이다. ㅡ 팀 75 3명은, 오늘 일정으로, 알마티 TV탑 ( 서울의 남산 타워 )을 구격하고, 카작 중앙박물관, 그리고 알마티에서 제일 큰 도서점을 방문키로 했다. 그러나, 날씨가 흐려서 , TV탑 오르는 것은 취소하고, 카작 중앙박물관을 먼저 가기로 했다. 이곳 알마티( 카작 ) 택시 앱( 우리나라 우버, 카카오와 비슷한 )을 팀 75 대원 모두에게 설치 하지 않아서 택시 타기가 매우 어려웠다... 카드로 비용 지불 원칙 1) 지나 가는 카작인에서 택시 타고 갈 장소를 말하고, 2) 그 사람이 택시를 불러 주고, 3) 택시 비용을 현금으로 해당 택시비용을 지불 ㅡ 카작은 유목 민족(?) 유목민의 나라(?)라서 그러한지, 카작 중앙 박물관에 볼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건물 자체도 크지 않았고,,,, ㅡ 택시로 다시 알마티에서 제일 크다는 도서점, Book City로 이동했다. 점심 식사를하고 책을 구입키로 했는데, 깜빡 잊고, 점심 식사후 책 구입을 하지 않고, 택시로 곧장 숙소로 돌아 왔다. 구입하려던 것은, 알마티 및 "투육 수" 지도, 알마티 및 카작 고산 안내, 키르기즈스탄의 알라 아르차 국립공원 산 안내 책들 이었다. ㅡ BC에 있던 모든 대원이 알마티 숙소로 돌아 왔다. ㅡ 저녁 7시에 모두 모여서 식사하는 뒷풀이 모임을 가졌다. 양꼬지가 참 맛있고, 저렴한 편이다.. ** 1월 30일 : 흐림, 밤에 비 내림 ㅡ 팀 75는 우선, 알마티에서 제일 큰, 사우나(?)( 종합 목욕탕 )에 가기로 했다. 단순 목욕탕(?)( 사우나 ) 입장은 1만원 정도 인데. 타월을 빌리고, 스립퍼를 빌리니, 인당 비용이 2만원꼴이다.( 2시간 ). ㅡ 카작식, 사우나, 핀린드식, 트루키식 사우나 시설 등이 있었으며, 자작나무 잎으로 만든 몸을 두드리는 제품( 9천원, 1.2만원 )도 있었으나, 우리들은 구입하지 않았다. ㅡ 마지막, 알마티 점심을, 한국인 운영 식당에서 먹고, 오후 4시경, 숙소로 돌아 왔다... ** 박이사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1) 박이사가 회원들과 인사 나누는 것에 인색하다는 소문이 있다. 물었더니, 한국산악회에 온지 이제 4~5년이라서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고 얼굴 기억을 잘 하지 못해서, 그런것 같다. 나는( 박이사 ), 인사에 전혀 인색하지 않다고 하면서 껄껄 웃는다.. 2) 수일전, 노성이, 뭔가 제안 했는데, 여러 대원 앞에서 일언지하에 딱 잘라 버려서, 내가( 노성 )이 많이 불편했다. ( 나도 대꾸할 할말이 있었지만 ), 박이사가 책임자이라서 )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박이사 : "그 때, 대학생 대원들도, 형( 노성 )과 같은 생각( 말을 하는 )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일부러 딱 달라 말했다.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ㅡ 둘 사이에 많은 소통이 있었다( 노성 생각 ). 역시 말을 주고 받고, 생각을 주고 받아야 소통이 되고 오해(?)가 줄어 든다.. ( 때때로, 산소포화도가 80 + - 2, 3이라서 싸이트 담당 "의사"가 7124m 등반을 허락치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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