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본문 : 요 8장
사람은 누구나 삶과 죽음의 전쟁을 하고 있다. 일하는 것도 먹는 것도 살기 위함이다. 그러나 원치 않는 고통과 죽음이 찾아온다.
그 옛날 인도의 왕자 석가(釋迦)는 생로병사의 이유를 알기 위해 조물주를 찾아 떠났다. 그러나 만나지 못하고 그 음성을 듣고 가르친 것이 불경(佛經)이며, 고려 시대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간행했다.1) 이 팔만대장경의 뜻을 아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다.
대한민국 삼성재단(三星財團) 창립자 이병철 씨는 생로병사의 이유 등 질문 24가지를 가톨릭교 박 모 신부에게 질문하였고, 24년 만에 차 모 신부(교수)가 그 답을 내어놓았으나 그것은 정답이 아닌 엉터리 답이었다.
하나님은 약 2,500년 전 석가에게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예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석가 후 약 500년이 지나 하나님이 보내시어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이 ‘삶’에 대해 요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시기를, 자기의 피와 살을 먹는 자만이 영생이 있다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잡아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하였으나, 예수님은 3일 만에(제3일에) 부활 승천하셨다. 이후 예수님이 이방의 사도(司徒)로 택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한 사람(아담)으로 죽음이 왔고, 한 사람(예수님)으로 삶이 왔다고 하였다. 아담은 죽어 흙으로 돌아갔고, 예수님은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 하늘로 올라갔다(창 3:17-19, 눅 24:46, 고전 15:4, 행 1:9-11).
우리 신앙인은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요 10:35). 초림 당시, 이 땅에 자기의 시체가 없는 엘리야와 모세와 예수님은 변화산상에 나타나셨다(마 17:1-8). 기록된 바 아담(창 3장)과 하나님의 아들들(창 6장)이 선악과를 먹지 않고 죄를 짓지 않아도 흙으로 돌아갔겠는가? 앞에서 본 세 사람의 육체가 어찌하여 이 땅에 없으며, 이 사람들만이 변화산에 나타났는가? 예수님은 제자 세 명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다시 오실 때의 모습을 이 날 미리 보여 주신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육체 따로, 영체(靈體) 따로가 아니라, 육체와 영체가 하나로 변화된 모습이다.
바울은 마지막(일곱째) 나팔에 홀연히 변화한다고 하였다. 육체가 죽은 자들의 그 육체는 다시 살지 못하고, 그 영은 변화되어 하늘의 신령한 영과 같이 되어 살고, 육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도 변화하리니, 죽을 것이 죽지 않고, 썩을 것이 썩지 않을 때에는 사망이 생명(이김)에게 삼킨 바 된다고 한 그 말씀이 응한다고 하였다(고전 15:51-54).
이와 같은 말씀이 요한복음 11장(25-26절)에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것(이 말)을 믿느냐?” 하셨고, 제자들은 “주여, 그러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게 하셨다(요 11:43-44). 이 일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게 하였다.
또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에서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않는다.”고 하셨고, 이에 유대인들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야곱도 죽었거늘 너는 아브라함과 야곱보다 크냐?”고 하였다. 예수님은 “내 안에 아버지(하나님)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내가 있다.”고 하셨다. 이 말은 하나님이 영생하심같이 예수님도 하나님과 함께 영생한다는 의미가 된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바울의 증거를 볼 때 같은 뜻의 삶을 말하고 있다.
계시록 20장에서 본바, 주의 말씀을 증거하다가 목 베임을 받은 영혼들과 우리 살아남은 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첫째 부활에 참예한다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바울의 증거도 이와 같이 육체가 죽은 자들의 영이 변화되어 신령한 영으로 살고, 우리 육체들도 변화되어 썩지 않고 죽지 않는다 하였고, 이 말은 죽은 순교자와 우리 살아남은 자가 첫째 부활에 참예한다고 한 그 말과 일치한다.
(성질이 까다로운)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제일 불쌍한 자가 될 것이나, 부활의 첫 열매로 보여 주신 예수님같이 주 재림 때 주께 속한 자가 차례로 부활한다고 하였다(고전 15:19-24).
아담 범죄 이후 지구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왔다. 많은 인재들도 왔다가 갔으며, 죄 사함을 받기 위한 제사도 지내 왔다. 왜 하나님은 석가의 물음에 예수님을 그 답으로 주셨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셨고, 피를 흘리셨다. 사망이 죄 값이라면 예수께서 십자가로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셨으니, 이 땅에 사망이 끝났어야 했다. 그런데 왜 2천 년 간 사망이 여전한가?
요한복음 6장에서 말한 예수님의 피와 살은 언제 먹게 되는가? 누가복음 22장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은 “참 포도나무(예수님)에서 난 것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먹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예수님의 피와 살은 계시록 성취 때에 먹게 된다(계 5:9-10, 계 7:14, 계 12장 참고).
이러므로 바울도 마지막(일곱째) 나팔의 비밀이라 하였고, 이 때 죽을 것이 죽지 않고 썩을 것이 썩지 않는다고 하였다. 7개 나팔 중 6개는 계시록 8장에서부터 나팔 소리가 나고(계 8, 9장), 이 마지막 일곱째 나팔은 계시록 11:15부터 불게 된다. 이 나팔 소리로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하였으니, 하나님의 승리요, 구원이며, 회복이 되는 것을 알린 것이다. 사도 바울도 이 계시록 때의 마지막 일곱째 나팔 소리를 말한 것이며, 구원의 비밀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2천 년 전에 흘리신 피는 계시록 때 그 효력이 나타나게 되고,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먹을 때까지는 먹지 않겠다.”고 한 ‘아버지의 나라’는 계시록 5장에서 자기(예수님의) 피로 산 나라와 제사장들이다. 흰 무리도 계시록 7장에서 예수님의 피로 옷을 희게 씻은 사람들이므로, 이 또한 계시록 때의 일이며, 피로 된 것이다.
아담 범죄로 죽음이 왔고, 예수님의 피로 삶이 오게 된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석가에게 말한 ‘생로병사의 고통’에 대한 답은 예수님이셨고, 예수님의 피였다.
주를 믿는 성도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때와 피의 효력이 있게 되는 때에 계시록 2-3장에 약속한 복과 약속의 목자를 아는 것이 구원의 길이요 영생에 대한 답이라 할 것이다. 아멘!
1) 석가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 불경이다. ‘대장경’은 석가의 가르침과 그 밖에 불제자(佛弟子)들이 저술한 것 또는 불교의 역사, 석가의 전기, 기타 불교에 관한 문헌 등을 종합한 것이다. 고려 고종 때 판수 약 8만여 개의 대장경을 만들었으니, 이를 ‘팔만대장경’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