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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우팅(Shouting) 설교

주일예배_고난과 위로_12_05_01

작성자밑거름|작성시간14.11.18|조회수28 목록 댓글 0

본문 :

 

(고후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고후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고후 1: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후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고후 1: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후 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고후 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요절 :

 

(고후 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기도 : 성령님!!! 이 시간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제목 : 고난과 위로

 

우리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이 끊어지고 마음이 사형 선고를 받은 것처럼 심한 고난을 당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말씀 드려야 할까요? 이때 대부분의 성도들은 아예 죽이세요, 참 고약하시네요, 벙어리세요? 말씀 좀 해보세요 등 더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비아냥거립니다. 사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피할 길 즉 위로라는 선물을 풍성하게 준비해 놓으시고 막 부으시려는 참이셨습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은 환란 중에 있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위로의 하나님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위로의 하나님을 경험할 때 삶은 놀랍게 감사로 넘치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 중에 있습니까? 위로가 필요하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시고 삶이 감사로 변화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다같이 3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위로는 하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에 모든 위로에 대해 지식적으로 안다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5:3-5절을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난 중에 즐거워해야지 지식적으로 안다고 즐거워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환란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연단 받은 경험이 있을 때라야 진정으로 환란 중에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와 롬 6: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며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 옛사람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것이 바울 신학의 초점인 십자가의 도입니다. 우리가 고난 받을 때 주님도 함께 고난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님은 우리를 참으로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 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대환난 때 주님께서는 엄청난 고난을 받으십니다. 7:15-17을 보면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눈의 눈물을 씻어 주실 수 있는 것은 대환난 때 주리시고 목마르시고 해나 뜨거운 기운에 상하는 경험이 있으실 것이기때문에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특별히 세차례의 큰 연단 과정을 통해 우리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더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연단 받을 수 있는 고난의 환경이 각인마다 다양하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아를 깨트리는 과정 중 우리가 정욕적이 되었을 때 숨으셨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로 하시는 것만 좋아할게 아니라 주님 아프시죠? 주님 힘드시죠? 주님 힘내세요 응원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영적으로 많이 성장한 박태순 전도사님의 뒤를 이어 영적으로 어린 제가 성복교회를 섬기고자 하니 성도님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오히려 섬김 받고 위로 받지나 않을까 걱정도 해봅니다. 사실 성복교회와 박태순 전도사님 그리고 성도님들을 통해 벌써 하나님께서는 저를 위로하고 계십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저를 위해 많은 기도 부탁 드립니다.

 

다같이 4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사실 쉽게 아멘이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알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모든 환난을 경험하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위로할 수 있습니까? 그럼 우리의 모든 환난을 주님께서는 같이 경험하고 계시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전라남도 화순 등광리에 달 형제님께서 살고 계십니다. 또한 그곳에는 80세가 넘으신 한 장로님과 이 장로님이 계시는데 한 장로님은 아직도 지게를 지시는데 젊은 사람 세네배를 지신답니다. 또한 새벽 5시부터 풀을 뽑는데 보통 사람들은 2시간 하고 쉬는데 11시까지 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키가 큰 달 형제님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달 형제님은 젊은데다가 일하러 왔습니다 믿음 생활하러 왔습니다 고백했기 때문에 아프다고 말도 못한답니다. 허벅지와 허리가 땡기고 햇빛 쨍쨍 째는 상황에서 오기가 생기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저 여기서 일하다가 죽으렵니다 순교가 따로 있습니까 예수님 일하다가 죽으면 순교지 여기다가 비석 하나만 세워주세요 그랬답니다. 다행히 뙤약볕 쬘 때 한 11시 반부터 4시까지는 쉰답니다. 그리고 나서 4시부터 8시까지 죽어 라고 풀 뽑는답니다. 그나마 날씨 좋은 날은 괜찮은데 날씨 흐리면 아예 낮에도 안 쉰답니다. 이러다 보니 무슨 배짱인지 점심 먹고 나면 저녁을 먹고 가야 되는데 저녁도 안 먹고 산당에 올라가서 샤워하고 가만히 앉아서 묵상하고 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힘들다는 표정 없이 일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예수님 오늘 일하다가 죽어버릴 랍니다 고백한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일 끝나고 터벅터벅 산당 길을 걸어 오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고 합니다. 내가 너의 아픔과 같이한다 평소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아시는 거는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의 고통을 아시는게 아니라 함께 하시는구나 실제로 예수님께서 느끼시는구나 그게 탁 깨달아졌다고 합니다. 그 한마디가 어찌나 큰 위로가 되었던지 그 다음부터는 일하다 힘들 때면 아 예수님도 이렇게 아프시단 말이죠 아 그러시군요 그러면서 아 그렇지 내가 이거 아파하면 안되겠구나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안 아픈거야 안 아프지 아프면 안되지 아픈걸 거부하면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는 감쪽같이 힘든 게 없어졌다고 합니다. 힘든 것을 못 느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장로님 밭일에 적응이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장로님 일 시키는데 이 분도 뭐 휴식이 없다고 합니다. 이 장로님 일은 집 짓는 거라 안에서 하다 보니 쉬지도 못하고 이 분은 점심 먹은 후 20분 있으면 바로 일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초죽음이 되니 몸이 적응이 되더라는 겁니다.

수년을 기도해도 교회는 부흥되지 않고 맨날 보는 그 얼굴 그때의 심정을 주님께서는 우리와 동일하게 경험하십니다. 사명을 위해 경기도 시흥까지 새벽 별보고 출발해서 저녁 별보고 집에 돌아가는 그 발걸음과 그때의 심정을 주님께서는 우리와 동일하게 경험하십니다.

 

다같이 5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많은 위로가 필요한 분 계십니까?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겠습니다. 더 많은 고난을 주옵소서

저는 아내와 두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셔야 하는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제가 받는 고난이야 주님을 고난을 본받고자 함이지만 아내는 10년이 넘도록 저의 부족함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고 이제 급기야 생이별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두 아이들도 할머니의 손에 맡겨지며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 많은데 존재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아버지의 존재가 항상 같이 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아이들에게도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같이 6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우리는 성경의 핵심진리를 알기 때문에 성도들을 상담하고 권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식적인 것은 우리의 머리를 위로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가슴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바울과 같은 고난과 위로의 개척자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았고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음이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 했고 결국 큰 사망에서 건짐을 받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 바울이기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고난을 견딜 수 있도록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성복교회는 주변의 이단 소리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지역의 어두움을 지금까지 밝은 빛으로 밝혀 온 경험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까지 이 일을 해왔다고도 생각해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기에 앞으로 성복교회는 많은 밝은 빛 교회들이 견고하게 세워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같이 7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5:4을 보면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연단의 경험을 가지고 당당하게 외치는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작년 말쯤 계시에 제가 목회를 하는데 앉아서 하는 목회가 아니라 서서 외치는 목회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차량에 표어를 붙이고 노방에서 외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중에는 부흥이 되자 안에서 성도들을 양육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계시를 통해 저를 이곳으로 확정하셨습니다. 흰집에서 숲길을 지나면 언덕이 많은 곳이 있는데, 그 중 한 언덕 꼭대기에 흰색과 붉은색 페인트질을 해서 더욱 아기자기해 보이는 작은 집 한 채가 있었다. 한 방으로만 이루어진 집이었으며, 5명의 식구들이 식탁에 식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기 보이는 언덕 꼭대기에 보면 5명의 식구가 사는 집이 있다. 거기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들은 너와 함께 있어 양육을 받을 무리이다. 그들이 네게 거추장스러운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오히려 섬기기를 잘할 것이니 조심하라. 그들이 보여주는 선을 악으로 갚지 말며 빛과 덕의 모범이 되어라. 헌신과 희생으로써 내 양들을 잘 돌보아주기 바란다.

성복교회를 향한 주님의 소망은 무엇일까요? 주님과 같이 고난을 받으며 지역 성도들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이 마지막 때를 대비할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외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노방에서 외치는 것이 공동체적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밝은빛목요전도집회를 통해 더욱 그 열매들이 가시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최대한 공동체 중심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저는 밝은빛목요전도집회 전도 위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부득이한 경우 이 지역을 중심으로 마지막 때를 외쳐야 될 줄로 믿습니다.

 

다같이 8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따라해 보겠습니다. 환난을 알면 도전이 생깁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환난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야 그들도 고난에 도전하며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현필 선생님의 영성은 춥고 배고픈 영성인데 달 형제님이 도전을 했습니다. 추운 날 벌벌 떨며 기도를 하는데 이현필 선생님보다 더 두꺼운 옷을 입었어도 2시간 만에 몸이 저절로 이불 속으로 가더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거의 하루 20시간을 기도한다고 합니다. 달 형제님의 간증을 들은 여자 제3수도회 정회원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한 분은 30년 신앙 생활 넘게 했는데 이제 3년 정도 되는 사람에게 배우려고 하니 자신이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말씀이 이 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환난을 경험하자! 힘써 환난을 경험하자! 외칠 수 있어야겠습니다.

 

다같이 9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정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을 주시는 목적입니다. 삼정애도를 보면 거비정화의 길, 진덕명화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내적, 외적 옛사람의 행실들을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 옛사람의 생각이 정화되길 기도합니다. 편하고자 하는 생각, 대접 받고자 하는 생각 등 정욕적인 우리의 생각이 한주간 주님의 이름으로 정결해지길 기도합니다.

 

다같이 10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이 말씀이 우리 평생에 위로의 말씀이 되고 특별히 대환난을 통과할 때 참된 위로의 말씀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다같이 11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네를 부르는데 대학생 때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후배 부부가 떠올랐습니다. 즉시 전화를 걸어 명재 목자님 가정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고 이제 신앙을 회복하라고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매우 감사를 했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것은 우리가 상대방을 위로할 수 있는 믿음으로 성장하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감사가 풍성케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성복교회가 이제는 많은 교회들을 위로하는 교회로 쓰임 받으며 주님과 교회들에게 칭찬 듣는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더 큰 고난을 주시고 더 큰 위로를 주사 우리로 감사가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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