Ⅷ. 無極生太極이냐 無極而太極이냐
위에서 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주희와 육상산의 두 주장에는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둘 다 태극의 바깥세계에 무극이 있다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無極' 두 글자가 있고 없고 하는 것을 떠나서 세계 해석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 차이로 보아야 할 것이다.
『태극도설』에서 첫머리에 '無極'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고, 또 '太極本無極也'에 대해서도 분명한 해석이 없다. 이로 인해서 '무극'과 '태극'의 관계에 대해 문제점이 야기된다.
위에서 보듯이 김충렬이 노자 42장의 道生一에서 道를 무극이라 하고 태극을 一이라고 하면서 다시 기술하기를 無極과 太極은 二物이 아니지만 流刑을 설명하는 마당에서는 前後象狀의 變異로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즉 무극이 현상 쪽에서 流形해 가는 기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극은 老子에 있어서 玄之又玄과 같은 遡及論理의 소산이 되겠고, 태극은 공자가 말한 日新又新하는 流行論理의 시단인 셈이다. 1)
따라서 필자는 무극생태극에서 태극과는 다른 무극을 고찰해 보고자하며 무극이태극에서는 무극이면서 태극인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나뉨을 통하여 무극이 전체이면서 다시 太極을 포괄하는 의미를 통하여 현대에 우리에게 전개된 다양한 종교와 철학을 태극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것을 전체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사상체계로서 無極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무극과 태극의 의미를 노자라는 책을 통하여 도와 일이란 관점에서 해체를 하면서 다시 종합하여 종교간 지역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으며 전체를 포괄 할 수 있는 종교를 포함하는 統合哲學을 노자를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사회에 인류에게 평화와 희망을 주는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걸음마를 시작하고자 한다.
1. 易傳에 있어서의 易과 老子의 易
無極而太極을 탄생시킨 太極圖說은 역전의 繫辭傳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그 계사전의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高懷民이 쓴 周易哲學의 理解라는 책을 보는데, 필자의 입장에서는 고회민이 주역철학의 이해에서 공자가 역전을 썼다고 하는 입장에서 공자의 역과 노자의 역으로 기술한 내용을 바로 잡아 易傳에 있어서의 易과 老子의 易으로 바꾸어 기술을 하고자 한다.
노자는 "도라고 표현할 수 있는 도는 항상 있는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라고 한다. 이렇게 도를 언어나 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또한 현상의 모습 속에서 찾을 수도 없는 것이다. 2) 그리고 고회민은 十翼이라 불리는 역전이 전국중기 이후에 작성된 작품임에도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역전을 공자가 쓴 것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노자 81장을 통하여 道家易의 철학체계를 집필한 노력은 놀라운 것이라 하겠다. 또한 고회민은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역전을 孔子易으로 보고 人道의 측면에 관점을 둔 것으로 보고 노자는 形而上學의 측면에 치중하여 각기 마름대로의 영역에서 뛰어난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3)
그리고 班固가 漢書藝文志에서 '주역은 복희 문왕 공자라는 세분의 성인을 거친다'라고 말하여 노자를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도 이것은 공자를 정통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며, 노자는 복희와 문왕의 입장에 기초하여 형이상학적인 방면에서 발전하여 역의 다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4)
따라서 고회민은 주역철학의 원류를 공자와 노자에 이르러서 각각의 다른 철학체계로 건립되었다고 보고 있다. 공자와 노자의 역학사상은 그 출발점을 乾元의 시동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고회민이 주역철학의 이해에서 공자가 역전을 썼다고 하는 입장에서 기술한 내용을 바로 잡아 역전에 있어서의 易과 노자의 역으로 바꾸어 기술을 하고자 한다.
易傳에서 건원을 태극과 구별하여 말하면서 태극은 하나의 큰 자연적 변화의 작용으로 이른바 시작이 없는 것이고 또 이른바 움직임이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즉 시종과 동정의 상대적인 의미가 없는 것이다. 건원은 태극보다 한 단계 아래의 것으로 坤元과 상대되는 것이다. 역전에서의 건원은 시작이고 움직임이니 그것은 태극이 지향점과 목적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으로 말한다. 역전은 여기에서 아래로 향하는 그의 변화생성하는 철학체계를 전개하고, 노자는 여기에서 유로부터 무로, 자연으로 들어가는 위로 향하는 현학체계를 전개해 나간다.
역전에서는 乾元始動이라는 기본적 입장에서 출발하여 순순히 이어받는 성질을 가진 곤원으로 전개하고, 건원과 곤원이 부단히 작용하여 인간과 만물을 낳는 관점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역전의 하행적 노선이다. 그런 후에 인간의 상행적인 반성 즉 窮理盡性하여서 天命에 도달하여 건원시동의 기본적 출발점을 파악한다. 여기에서 다시 태극의 자연적 변화의 단계로 돌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역전은 上下와 往反이 상호 교차하는 이중적 노선을 보여주고 있다.
노자도 건원시동으로부터 출발하는데, 그 건원시동을 有로 간주한다. 건원에 들어가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만물을 낳으려고 하기 때문에 유가 된다. 유가 있고 나서 위로 無를 향하여 나아가는데 이렇게 무인 道로 나아가는 것은 바로 도로부터 自然의 의미를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 自然之道는 노자의 철학체계에서 향상적 노선의 극치로서 공자가 아래로 인간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노자도 위로 자연의 도를 파악한 후에 다시 꺽어서 아래를 향하여 나아간다. 즉 "도는 1을 낳고,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날고, 3은 만물을 낳는다" 5)로 우주만물의 생성을 말하는 것이다. 노자의 현학적인 철학체계 또한 上下往反의 이중적인 노선이다. 6)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런 까닭에 易傳은 노자의 영향을 받아 전국중기에 이루어졌다는 얘기가 일관성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노자는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7)라고 한다.
역전은 그의 仁道 중심의 철학체계 내에서 자주 건원의 자연 속으로의 적용을 말하고 있다. 다만 간략하게 말하고 상세한 해석은 노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노자도 그의 현학체계 중에서 때로는 인간사를 말하는 데는 매우 간략하게 하고 세부적인 내용은 공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므로 노자의 우주생성론의 하행적 노선과 공자의 하행적 노선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두 학설은 往復周流하는 체계일 뿐만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져 하나의 큰 왕복주류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주역철학의 체계이다.
司馬遷은 사기의 老子列傳속에서 공자가 노자에게 禮에 관하여 묻는 일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공자는 돌아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노자는 바람과 구름을 타고서 승천하는 용"으로 비유한 것은 결코 헛되이 한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노자의 道家易을 공자의 儒家易과 비교해 보면 전자는 天上의 학문이고, 후자는 地上의 학문이다. 즉 공자가 人間中心의 입장에서 道를 중심으로 하는 노자의 玄學體系를 이해하기에는 마치 하늘위에서 움직이는 용처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노자철학의 이론구조는 마치 천상에서 노니는 용과 같은 것으로 어떤 누구라도 감히 노자 五 千字로 표현하는 사상체계가 결코 일치성을 가지지 않거나 또 그곳에 숨어있는 깊고도 깊은 哲學이나 根據들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81장으로 구성된 노자라는 책을 단순히 아직도 남아있는 진귀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밤하늘에 흩어져 잇는 빛나는 별들이 빛을 낼 수 잇는 것은 하나의 큰 우주법칙에 의한 것과 마찬가지로 노자 역시 하나의 큰 철학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고회민은 최근에 역학을 연구하면서 나름대로의 心得을 통하여 어느 순간에 노자의 이론적 경계를 완전하게 파악하여 다시 그것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연구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노자의 밝고 깊은 지혜에 대하여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노자철학도 공자철학과 똑같이 가치를 가지지만 양자의 강조점은 다르다. 공자는 人間中心的이고 노자는 그 근거가 天에 있다. 그의 사상은 허황하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다. 또 가설조차도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形而上學的인 입장으로 보면 그는 참으로 순수한 理性主義者이다. 노자의 전체상상은 위를 향하여 역학의 태극을 탐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哲學的 출발점은 주역의 乾元에서 시작한다. 건원의 위를 향하여 소급해 보면 유가 있고 유에서 다시 무를 끄집어낼 수가 있는데, 바로 위의 방향으로 미루어 나가는 노선이다. 그런 후에 자연으로부터 아래의 방향으로 전개하는데, 즉 자연에서 도를 드러내고 一, 二, 三을 낳고 만물을 낳아서 다시 주역에서 말하는 乾元ㆍ坤元의 변화와 生生의 의미와 합치한다. 이것은 아래의 방향으로 향하는 것인데, 우주만물의 생성노선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위를 향하여 전개하여 나가고 다시 아래로 전개해 가는, 한번 가고 한번 오는 것은 마치 주역에서 말하는 도의 流行變化와 같다. 주역의 철학은 공자와 노자 두 사람의 분업과 합작을 통하여 하나의 남김도 없이 완전하게 설명되고 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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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金忠烈, 東洋哲學의 本體論과 人性論, 연세대학교 출판부 1982. P80∼81
2) 高懷民, 鄭炳碩역, 周易哲學의 理解, 문예출판사, 1995.1.20. P15
3) 高懷民, 鄭炳碩역, 같은 책 P20
4) 高懷民, 鄭炳碩역, 같은 책 P21
5) 노자 42장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6) 高懷民, 鄭炳碩역, 같은 책 P22
7) 노자 40장 反者道之動
8) 高懷民, 鄭炳碩역, 같은 책 P471∼474
위에서 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주희와 육상산의 두 주장에는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둘 다 태극의 바깥세계에 무극이 있다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無極' 두 글자가 있고 없고 하는 것을 떠나서 세계 해석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 차이로 보아야 할 것이다.
『태극도설』에서 첫머리에 '無極'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고, 또 '太極本無極也'에 대해서도 분명한 해석이 없다. 이로 인해서 '무극'과 '태극'의 관계에 대해 문제점이 야기된다.
위에서 보듯이 김충렬이 노자 42장의 道生一에서 道를 무극이라 하고 태극을 一이라고 하면서 다시 기술하기를 無極과 太極은 二物이 아니지만 流刑을 설명하는 마당에서는 前後象狀의 變異로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즉 무극이 현상 쪽에서 流形해 가는 기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극은 老子에 있어서 玄之又玄과 같은 遡及論理의 소산이 되겠고, 태극은 공자가 말한 日新又新하는 流行論理의 시단인 셈이다. 1)
따라서 필자는 무극생태극에서 태극과는 다른 무극을 고찰해 보고자하며 무극이태극에서는 무극이면서 태극인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나뉨을 통하여 무극이 전체이면서 다시 太極을 포괄하는 의미를 통하여 현대에 우리에게 전개된 다양한 종교와 철학을 태극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것을 전체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사상체계로서 無極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무극과 태극의 의미를 노자라는 책을 통하여 도와 일이란 관점에서 해체를 하면서 다시 종합하여 종교간 지역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으며 전체를 포괄 할 수 있는 종교를 포함하는 統合哲學을 노자를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사회에 인류에게 평화와 희망을 주는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걸음마를 시작하고자 한다.
1. 易傳에 있어서의 易과 老子의 易
無極而太極을 탄생시킨 太極圖說은 역전의 繫辭傳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그 계사전의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高懷民이 쓴 周易哲學의 理解라는 책을 보는데, 필자의 입장에서는 고회민이 주역철학의 이해에서 공자가 역전을 썼다고 하는 입장에서 공자의 역과 노자의 역으로 기술한 내용을 바로 잡아 易傳에 있어서의 易과 老子의 易으로 바꾸어 기술을 하고자 한다.
노자는 "도라고 표현할 수 있는 도는 항상 있는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라고 한다. 이렇게 도를 언어나 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또한 현상의 모습 속에서 찾을 수도 없는 것이다. 2) 그리고 고회민은 十翼이라 불리는 역전이 전국중기 이후에 작성된 작품임에도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역전을 공자가 쓴 것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노자 81장을 통하여 道家易의 철학체계를 집필한 노력은 놀라운 것이라 하겠다. 또한 고회민은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역전을 孔子易으로 보고 人道의 측면에 관점을 둔 것으로 보고 노자는 形而上學의 측면에 치중하여 각기 마름대로의 영역에서 뛰어난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3)
그리고 班固가 漢書藝文志에서 '주역은 복희 문왕 공자라는 세분의 성인을 거친다'라고 말하여 노자를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도 이것은 공자를 정통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며, 노자는 복희와 문왕의 입장에 기초하여 형이상학적인 방면에서 발전하여 역의 다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4)
따라서 고회민은 주역철학의 원류를 공자와 노자에 이르러서 각각의 다른 철학체계로 건립되었다고 보고 있다. 공자와 노자의 역학사상은 그 출발점을 乾元의 시동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고회민이 주역철학의 이해에서 공자가 역전을 썼다고 하는 입장에서 기술한 내용을 바로 잡아 역전에 있어서의 易과 노자의 역으로 바꾸어 기술을 하고자 한다.
易傳에서 건원을 태극과 구별하여 말하면서 태극은 하나의 큰 자연적 변화의 작용으로 이른바 시작이 없는 것이고 또 이른바 움직임이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즉 시종과 동정의 상대적인 의미가 없는 것이다. 건원은 태극보다 한 단계 아래의 것으로 坤元과 상대되는 것이다. 역전에서의 건원은 시작이고 움직임이니 그것은 태극이 지향점과 목적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으로 말한다. 역전은 여기에서 아래로 향하는 그의 변화생성하는 철학체계를 전개하고, 노자는 여기에서 유로부터 무로, 자연으로 들어가는 위로 향하는 현학체계를 전개해 나간다.
역전에서는 乾元始動이라는 기본적 입장에서 출발하여 순순히 이어받는 성질을 가진 곤원으로 전개하고, 건원과 곤원이 부단히 작용하여 인간과 만물을 낳는 관점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역전의 하행적 노선이다. 그런 후에 인간의 상행적인 반성 즉 窮理盡性하여서 天命에 도달하여 건원시동의 기본적 출발점을 파악한다. 여기에서 다시 태극의 자연적 변화의 단계로 돌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역전은 上下와 往反이 상호 교차하는 이중적 노선을 보여주고 있다.
노자도 건원시동으로부터 출발하는데, 그 건원시동을 有로 간주한다. 건원에 들어가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만물을 낳으려고 하기 때문에 유가 된다. 유가 있고 나서 위로 無를 향하여 나아가는데 이렇게 무인 道로 나아가는 것은 바로 도로부터 自然의 의미를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 自然之道는 노자의 철학체계에서 향상적 노선의 극치로서 공자가 아래로 인간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노자도 위로 자연의 도를 파악한 후에 다시 꺽어서 아래를 향하여 나아간다. 즉 "도는 1을 낳고,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날고, 3은 만물을 낳는다" 5)로 우주만물의 생성을 말하는 것이다. 노자의 현학적인 철학체계 또한 上下往反의 이중적인 노선이다. 6)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런 까닭에 易傳은 노자의 영향을 받아 전국중기에 이루어졌다는 얘기가 일관성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노자는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7)라고 한다.
역전은 그의 仁道 중심의 철학체계 내에서 자주 건원의 자연 속으로의 적용을 말하고 있다. 다만 간략하게 말하고 상세한 해석은 노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노자도 그의 현학체계 중에서 때로는 인간사를 말하는 데는 매우 간략하게 하고 세부적인 내용은 공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므로 노자의 우주생성론의 하행적 노선과 공자의 하행적 노선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두 학설은 往復周流하는 체계일 뿐만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져 하나의 큰 왕복주류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주역철학의 체계이다.
司馬遷은 사기의 老子列傳속에서 공자가 노자에게 禮에 관하여 묻는 일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공자는 돌아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노자는 바람과 구름을 타고서 승천하는 용"으로 비유한 것은 결코 헛되이 한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노자의 道家易을 공자의 儒家易과 비교해 보면 전자는 天上의 학문이고, 후자는 地上의 학문이다. 즉 공자가 人間中心의 입장에서 道를 중심으로 하는 노자의 玄學體系를 이해하기에는 마치 하늘위에서 움직이는 용처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노자철학의 이론구조는 마치 천상에서 노니는 용과 같은 것으로 어떤 누구라도 감히 노자 五 千字로 표현하는 사상체계가 결코 일치성을 가지지 않거나 또 그곳에 숨어있는 깊고도 깊은 哲學이나 根據들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81장으로 구성된 노자라는 책을 단순히 아직도 남아있는 진귀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밤하늘에 흩어져 잇는 빛나는 별들이 빛을 낼 수 잇는 것은 하나의 큰 우주법칙에 의한 것과 마찬가지로 노자 역시 하나의 큰 철학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고회민은 최근에 역학을 연구하면서 나름대로의 心得을 통하여 어느 순간에 노자의 이론적 경계를 완전하게 파악하여 다시 그것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연구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노자의 밝고 깊은 지혜에 대하여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노자철학도 공자철학과 똑같이 가치를 가지지만 양자의 강조점은 다르다. 공자는 人間中心的이고 노자는 그 근거가 天에 있다. 그의 사상은 허황하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다. 또 가설조차도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形而上學的인 입장으로 보면 그는 참으로 순수한 理性主義者이다. 노자의 전체상상은 위를 향하여 역학의 태극을 탐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哲學的 출발점은 주역의 乾元에서 시작한다. 건원의 위를 향하여 소급해 보면 유가 있고 유에서 다시 무를 끄집어낼 수가 있는데, 바로 위의 방향으로 미루어 나가는 노선이다. 그런 후에 자연으로부터 아래의 방향으로 전개하는데, 즉 자연에서 도를 드러내고 一, 二, 三을 낳고 만물을 낳아서 다시 주역에서 말하는 乾元ㆍ坤元의 변화와 生生의 의미와 합치한다. 이것은 아래의 방향으로 향하는 것인데, 우주만물의 생성노선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위를 향하여 전개하여 나가고 다시 아래로 전개해 가는, 한번 가고 한번 오는 것은 마치 주역에서 말하는 도의 流行變化와 같다. 주역의 철학은 공자와 노자 두 사람의 분업과 합작을 통하여 하나의 남김도 없이 완전하게 설명되고 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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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金忠烈, 東洋哲學의 本體論과 人性論, 연세대학교 출판부 1982. P80∼81
2) 高懷民, 鄭炳碩역, 周易哲學의 理解, 문예출판사, 1995.1.20. P15
3) 高懷民, 鄭炳碩역, 같은 책 P20
4) 高懷民, 鄭炳碩역, 같은 책 P21
5) 노자 42장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6) 高懷民, 鄭炳碩역, 같은 책 P22
7) 노자 40장 反者道之動
8) 高懷民, 鄭炳碩역, 같은 책 P47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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