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국신화에 숨은 잊혀진 고대사
(1) 고대신화와의 진지한 만남
최근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인기에 비하면 우리의 단순신화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신화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민족의 정체성과 무의식에
대한 해답이며 나아가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해
답이다. 우리의 고대사는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여러 부분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고의적인 누락이나 위조가 되었
다는 사실이 역사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지 않는가. 지금 중국에서는 전
설적인 왕조인 은(殷)왕조의 유적이 19세기말부터 드러남으로서 실존했던 왕
조임이 증명되었다. 이처럼 신화에는 결코 신화일 수만은 없는 진실이 담겨
있다.
중국학계는 문자의 시작을 은나라 갑골문자부터 보기 때문에 '상고금문'은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고금문'을 기초로 하여 전설의 시대를 해석하고
풀어놓은 [금문신고]에 눈길도 주지 않았고 내용 또한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불순한 내용이라서 중국은 이 문제의 책을 '금서'로 취급했으며 출판하
고 유통된 책을 회수하였다한다. 800권이라는 소량이 출판되고 유통된 책을
회수했으니 세상에 유포된 책은 극히 드문 희귀종이다. 그 중 4-5권이 국내
에 들어 왔다고 한다. 이 책을 연구한 사람이 소남자 김재섭씨이고 김재섭씨
한테 금문을 배운 사람이 책의 저자인 김대성이다.
낙빈기는 고대인들이 각종 청동기에 새긴 그림 같은 글자 '금문'을 연구하여
4,500년 전의 삼황오제(三皇五帝 : 기원전 2517-2298년. 9대 219년간) 시대를
논리 정연하게 역사의 시대로 증명하고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신화와 전설
을 역사로 주장하며 기존의 통박을 부정하는 것이다.
'금문의 비밀'은 중국의 금서인 [금문신고-金文新攷]의 내용을 재해석한 내
용이다. 그렇다면 금문신고는 무엇일까? 금문신고는 중국사학자 낙빈기
(1917-1994)가 평생동안 상고금문을 연구하고 풀이한 결과를 1987년 책으로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금문신고는 크게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금까
지 전해오는 각종 전적을 정리한 (1)전적집(典籍集) 출토된 각종화폐에 새겨
진 글자를 풀이한 (2)화폐집(貨幣集) 병장기에 새겨진 글자를 푼 (3)병명집
(兵銘集) 오제시대 인물을 집중 연구한 (4)인물집(人物集)으로 되어있다.
※ [금문신고]에 인용된 금문 관련 서적(금문 탁본을 엮은 책들)은 아래와
같다.
1. 오대징 편(吳大徵 編) -『가齋集古錄, 상.하』
2. 엄일평 편(嚴一萍 編) -『金文總集, 총10권』
3. 왕의영 편(王懿榮 編) -『 古錄, 3권』
4. 설상공 편저(薛尙功 編著) -『歷代鐘鼎 器款識』
5. 문연각 (文淵閣) -『四庫全書』
6. 우성오 편저(于省吾 編著) -『商周金文錄遺』
7. 용경 편저(容庚 編著) -『金文編』
8. 허신 편저(許愼 編著) -『說文解字』
9. 나진옥 편(羅振玉 編) -『三代吉金文存』
(2) 역사적 인물로 되살아난 위대한 신들
문자는 살아있는 유물이다 그것은 살아 꿈틀거리는 고대 유물인 동시에 그
변천과정이 바로 역사이다. 문자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써온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어떤 연유에서 그 같은 모양의 글자가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문자는 사람과 사람의 약속 부호이다. 도형적 기호를 빌려 언어를 재현하는
수단으로 문자의 탄생과 함께 역사시대는 시작된다.
금문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사용한 유물에 기록된 나무류(대나무
등), 돌, 각종 뼈다귀, 동물(거북)의 껍질, 금속(쇠-철) 등에 새겨진 원시 상형
문자를 일컫는 문형으로 본격적인 역사 시대(문자) 이전의 각종 기록(그림)
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문자이전의 문자인 것이다.
낙빈기가 금문 해석을 통해 밝혀낸 4500년 전의 역사 계보도를 따라가다 보
면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농과
황제, 요임금과 순임금이 실제 역사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는 것을 금문을
통해 시원하게 밝히고 있다.
또 중국인들이 우리를 낮추어 부르는 동쪽 오랑캐인 ‘동이(東夷)’의 오랑
캐 ‘이(夷)’자가 한족들이 중간 시조로 받들고 있는 하나라를 세운 시조,
즉 우(禹)임금의 이름이었음을 밝히고, 이렇다 보니 삼황오제시대의 제왕들
이 동이족의 직계이거나 외가가 되고 있으며, 고조선의 주인공들이 되고 있
다. 또한 우선 역사 시대의 첫 장을 연 인물이 중국인들이 시조로 받들고 있
는 ‘황제’가 아니라 그들이 동이족의 수장이라 부르는 ‘신농’이라는 점,
또 황제와 신농의 관계에 대한 중국 내의 끊임없는 논란에 대해 “아들
‘자’가 당시에는 ‘사위아들’의 뜻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
라며, 신농과 황제는 장인과 사위 사이임을 밝히고 있으며 황제는 제왕의 자
리에 오르지 못했음을 해독하는 대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또 문자의 기원도 이 시점에서 찾고 있다. 충격의 정점은 뭐니뭐니해도 문자
의 시작이 동이족의 시조이자 삼황오제시대의 첫 장을 연 신농이 만들었다
는 대목인데, 이는 황제의 명을 받고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기존 역사가
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중국의 삼황오제시
대가 다름아닌 고조선 219년의 역사시대와 동일하다는 추론은 우리 상고사
를 다시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우
리 민족(동이족)이 한족과 함께 삼황오제시대의 주인공이며 문자 역시 우리
민족이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 금문이 밝히는 메시지이다.
이것은 은나라의 땅이었던 은허(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가 중국문자 창조
의 시초라고 단정하고 있는 1940년대 신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허무맹랑한
학설이라고 뒤집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는 삼황오
제의 금문보다 1000년이상 뒤늦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낙빈기가 밝혀낸 삼황오제시대의 주역들이 「문무
대왕릉비문」 속에 고스란히 등장하고 있어 「문무대왕릉비문」이 고조선과
우리 역사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유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
다.
(1) 고대신화와의 진지한 만남
최근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인기에 비하면 우리의 단순신화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신화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민족의 정체성과 무의식에
대한 해답이며 나아가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해
답이다. 우리의 고대사는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여러 부분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고의적인 누락이나 위조가 되었
다는 사실이 역사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지 않는가. 지금 중국에서는 전
설적인 왕조인 은(殷)왕조의 유적이 19세기말부터 드러남으로서 실존했던 왕
조임이 증명되었다. 이처럼 신화에는 결코 신화일 수만은 없는 진실이 담겨
있다.
중국학계는 문자의 시작을 은나라 갑골문자부터 보기 때문에 '상고금문'은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고금문'을 기초로 하여 전설의 시대를 해석하고
풀어놓은 [금문신고]에 눈길도 주지 않았고 내용 또한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불순한 내용이라서 중국은 이 문제의 책을 '금서'로 취급했으며 출판하
고 유통된 책을 회수하였다한다. 800권이라는 소량이 출판되고 유통된 책을
회수했으니 세상에 유포된 책은 극히 드문 희귀종이다. 그 중 4-5권이 국내
에 들어 왔다고 한다. 이 책을 연구한 사람이 소남자 김재섭씨이고 김재섭씨
한테 금문을 배운 사람이 책의 저자인 김대성이다.
낙빈기는 고대인들이 각종 청동기에 새긴 그림 같은 글자 '금문'을 연구하여
4,500년 전의 삼황오제(三皇五帝 : 기원전 2517-2298년. 9대 219년간) 시대를
논리 정연하게 역사의 시대로 증명하고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신화와 전설
을 역사로 주장하며 기존의 통박을 부정하는 것이다.
'금문의 비밀'은 중국의 금서인 [금문신고-金文新攷]의 내용을 재해석한 내
용이다. 그렇다면 금문신고는 무엇일까? 금문신고는 중국사학자 낙빈기
(1917-1994)가 평생동안 상고금문을 연구하고 풀이한 결과를 1987년 책으로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금문신고는 크게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금까
지 전해오는 각종 전적을 정리한 (1)전적집(典籍集) 출토된 각종화폐에 새겨
진 글자를 풀이한 (2)화폐집(貨幣集) 병장기에 새겨진 글자를 푼 (3)병명집
(兵銘集) 오제시대 인물을 집중 연구한 (4)인물집(人物集)으로 되어있다.
※ [금문신고]에 인용된 금문 관련 서적(금문 탁본을 엮은 책들)은 아래와
같다.
1. 오대징 편(吳大徵 編) -『가齋集古錄, 상.하』
2. 엄일평 편(嚴一萍 編) -『金文總集, 총10권』
3. 왕의영 편(王懿榮 編) -『 古錄, 3권』
4. 설상공 편저(薛尙功 編著) -『歷代鐘鼎 器款識』
5. 문연각 (文淵閣) -『四庫全書』
6. 우성오 편저(于省吾 編著) -『商周金文錄遺』
7. 용경 편저(容庚 編著) -『金文編』
8. 허신 편저(許愼 編著) -『說文解字』
9. 나진옥 편(羅振玉 編) -『三代吉金文存』
(2) 역사적 인물로 되살아난 위대한 신들
문자는 살아있는 유물이다 그것은 살아 꿈틀거리는 고대 유물인 동시에 그
변천과정이 바로 역사이다. 문자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써온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어떤 연유에서 그 같은 모양의 글자가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문자는 사람과 사람의 약속 부호이다. 도형적 기호를 빌려 언어를 재현하는
수단으로 문자의 탄생과 함께 역사시대는 시작된다.
금문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사용한 유물에 기록된 나무류(대나무
등), 돌, 각종 뼈다귀, 동물(거북)의 껍질, 금속(쇠-철) 등에 새겨진 원시 상형
문자를 일컫는 문형으로 본격적인 역사 시대(문자) 이전의 각종 기록(그림)
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문자이전의 문자인 것이다.
낙빈기가 금문 해석을 통해 밝혀낸 4500년 전의 역사 계보도를 따라가다 보
면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농과
황제, 요임금과 순임금이 실제 역사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는 것을 금문을
통해 시원하게 밝히고 있다.
또 중국인들이 우리를 낮추어 부르는 동쪽 오랑캐인 ‘동이(東夷)’의 오랑
캐 ‘이(夷)’자가 한족들이 중간 시조로 받들고 있는 하나라를 세운 시조,
즉 우(禹)임금의 이름이었음을 밝히고, 이렇다 보니 삼황오제시대의 제왕들
이 동이족의 직계이거나 외가가 되고 있으며, 고조선의 주인공들이 되고 있
다. 또한 우선 역사 시대의 첫 장을 연 인물이 중국인들이 시조로 받들고 있
는 ‘황제’가 아니라 그들이 동이족의 수장이라 부르는 ‘신농’이라는 점,
또 황제와 신농의 관계에 대한 중국 내의 끊임없는 논란에 대해 “아들
‘자’가 당시에는 ‘사위아들’의 뜻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
라며, 신농과 황제는 장인과 사위 사이임을 밝히고 있으며 황제는 제왕의 자
리에 오르지 못했음을 해독하는 대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또 문자의 기원도 이 시점에서 찾고 있다. 충격의 정점은 뭐니뭐니해도 문자
의 시작이 동이족의 시조이자 삼황오제시대의 첫 장을 연 신농이 만들었다
는 대목인데, 이는 황제의 명을 받고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기존 역사가
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중국의 삼황오제시
대가 다름아닌 고조선 219년의 역사시대와 동일하다는 추론은 우리 상고사
를 다시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우
리 민족(동이족)이 한족과 함께 삼황오제시대의 주인공이며 문자 역시 우리
민족이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 금문이 밝히는 메시지이다.
이것은 은나라의 땅이었던 은허(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가 중국문자 창조
의 시초라고 단정하고 있는 1940년대 신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허무맹랑한
학설이라고 뒤집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는 삼황오
제의 금문보다 1000년이상 뒤늦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낙빈기가 밝혀낸 삼황오제시대의 주역들이 「문무
대왕릉비문」 속에 고스란히 등장하고 있어 「문무대왕릉비문」이 고조선과
우리 역사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유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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