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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무엇인가(1)- 라즈니쉬의 진실(설현욱 박사)

작성자노자선|작성시간02.05.04|조회수420 목록 댓글 0
진실은 무엇인가- 라즈니쉬의 진실
설현욱 박사는 신경과 정신과 전문의로서 1987년 국립경찰병원 신경과 정신과 과장을 지내고 현재 성의학자로서 활동 중이다.

크리슈나무르티를 능가할 정도로 우리에게 열띤 호응을 보이게
하는 사람은 라즈니쉬다. 얼마 전 일반 서점가를 장식하는 사상서
가 라즈니쉬의 책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인도 출신이고 선(禪)문
답 같은 역설적인 얘기를 하는 것도 공통점이랄까?
필자도 비판과 분석의 태도를 갖지 않고 라즈니쉬의 글을 대하면
우선 내용상의 신비스렁ㄴ 것 같은 분위기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
러나 그 깊이를 응시하다 보면 선도소설 못지 않게 허무가 있고
우상화가 있다. 진실과 진리를 인식하는 데에 흘러드는장애, 그것
들을 세계에 만연시키려는 경향, 그것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이 글
을 쓰게되었다.

"암사슴처럼 천진하고도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는 수십 광년 너머
의 아름다움을 향한 응시를 계속하고 있고, 부드럽고도 성스러운
목소리로 신비로운 깨달음의 세계를 말하는 이, 철학ㆍ심리학ㆍ사
회학ㆍ정치학ㆍ경제학과 크리슈나무르티ㆍ부처ㆍ노자와 장자ㆍ예
수의 심오한 세계를 단순한 우화와 반짝이는 웃음으로 풀어낼 줄
아는 사람, 놀랄 만큼 박식한 교양 위에 그 가치의 진폭이 무궁무
진한, 감각과 깨달음의 사람,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가장 완벽한
통합자로서 자유와 해방의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이 등
라즈니쉬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끝이 없다. 그것은 찬사라기보다는
상당한 힘으로 정착된 한 종교의 교주에게 보내는 존경과 믿음의
감사 말씀이기도 하다." 라즈니쉬 책의 역자가 소개하는 글이다.
상당하다. 라즈니쉬의 다음과 같은 얘기는 압축된 아름다움마저
내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성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 필요하다. 꽃을 피우
고 흐르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는 크리슈나무르티차람 좀 색다른(신비적ㆍ마술적) 성장 배경을
가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철학과를 졸업하고 강의를 좀 하고, 저
널리스트도 약간 활약한 평범한 과정으로 전해진다. 그 후 21세
때에 어떤 깨달음이 엄습해서 인도의 봄베이 근처에서 그 깨달음
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다가 그 장소를 미국으로 옮겼다고 한다.
라즈니쉬의 왕국은 오레곤 주에 있는 황폐한 목장을 사들여 6만
에이커가 넘는 광대한 타운을 형성했다고 한다.
그의 역설로 가득 찬 책의 전체 내용을 비판할 능력은 필자에게
없지만 몇몇 구절을 인용해 본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그들은 애쓰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들에 핀 백합화의 비밀
은 무엇인가? 그들은 자연스럽게 산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피어
있다. 그들은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애쓰지도 않는다. 아마도
예수는 이 구절을 도가(道家)적 원전에서 구했음이 틀림없으리라.
그가 인도를 여행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심지어는 그가 일본을 여
행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에는 예수가 다녀갔다는 장소가 있
다. 또한 그가 티벳을 방문했다는 이야기도 잇다. 어쩌면 그는 일
본이나 티벳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은 그 자신의
내적 경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분명 도인이다. - 예수는
신뢰받을 수 있다."
- 일본이 서양에 알려진 것이 언제인데 예수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일본에 갔었다, 안 갔엇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금술에서처럼 횡설
수설과 이율배반이 하나의 특징이다.

"만일 그대가 노자ㆍ장자ㆍ열자 등을 만난다 할지라도 그대는 그
들을 알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도 평범할 것이다. 그
들은 그대에게 어떤 특별한 것을 부과하지 않는다. 기적을 보여주
지도 않고 초능력적인 힘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평범하다는 것 그것이 도(道)의 메세지이며 그대가 다
른 것이 되고자 하는 생각을 전혀 갖지 않을 만큼 평범하고 자족
하는 것을 의미한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말하고 듣고 걷고 자
고 햇빛이나 달 아래 앉고... 이 사소한 일들을 그대가 만족스러운
눔으로 볼때 이것들은 숭고하게 보인다."
- 기적을 바라고 신비의 힘을 바라는 선도소설을 읽는 독자들에
게 이런 라즈니쉬의 글은 필요할 곳 같다. 도교와 불교ㆍ유교ㆍ기
독교 등의 사상을 혼합하면서 도교의 사상체계로 설명하는 것, 그
것이 두 번째 특징이다.

이번에는 역자의 해설 부분을 보자
"라즈니쉬가 자주 인용하곤 하는 우화 중에는 심리분석가와 정신
병원에 대한 것이 많다. 미국 사람들은 정신분석가를 마치 치과에
가듯 정규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있고, 프로이드학파
의 분석요법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라즈니쉬로서는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서양의 현상' 중의 하나이다.그는 이것이 미국의
특수한 현상으로서 집단적인 노이로제라고 진단하고, 누구나 정신
분석학자나 정신과 의사와 상담기일을 어기면 불안에 빠지고, 마
치 마약 상습자처럼 정규적으로 그들에게서 마취를 당하곤 하며,
구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몇몇 가난한 사람들 뿐이라고
개탄한다. 사실 미국 여성들의 가장 즐거운 대화의 주된 내용은
'내 정신과 의사는... '등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얘기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마음ㆍ정신을 해부하려 했다.
그것이 다름 아닌 분석ㆍ정신분석이다. 처음의 그는 인간의 마음
을 마음의 요소를 이루는 부분으로 분해해서 크게 못쓰게 만들었
다. 그후 아사지오니라는 사람이 정신분석법을 만들어 냈다. 그는
프로이드가 했던 것을 원상태로 회복해놓으려고 했다. 그는 다시
부분을 종합했고. 각 정신분석연구소마다 이 두 방법을 번갈아 적
용하고 있다. 그것은 갈 데 없는 과학이다. 그러나 인간은 과학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전체저그 율동을 냄새조차 맡아내
지 못하였다...."
- 미국의 실상은 가슴에 와 닿는 글이다. 맞는 부분도 상당히 많
지만 두 번째 인용 부분의 정신분석에 관한 글은 도대체 무슨 뜻
으로 한 얘기인 지 모르겠다. 나도 정신과 의사를 지낸 사람으로
서 아사지오니란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라즈니쉬의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서양현상'을 이용한 그 자신의
얘기를 하나 옮겨본다.
"질문: 합리화와 허튼 소리의 차이점을 설명해주십시오.
라즈니쉬의 대답: 허튼 소리는 합리화보다 훨씬 좋은 말 같지만
뜻은 같다. 합리화는 일상적인 단어(교수들이 사용하는 단어)인
반면 허튼 소리는 훨씬 도 생생한 말이다. 공처가가 아내와 여느
때처럼 말다툼을 하며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그 언쟁에서 아내가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뒤를 돌아보다가 갑자기 황
소 한 마리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고 lTdma을 발견했다. 너무나
다급한 그녀는 남편 생각도 못하고 혼자만 가까스로 길옆으로 피
했다. 그러나 미처 피하지 못한 남편은 소 뿔에 받혀 허공으로 떠
올랐다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곤 옹금엉금 기고 있던 남편이
아내보고 말하기를 '여보,만일 당신이 또 다시 나를 이렇게 때린
다면 정말 가만히 있지 않겠소'했다면 이것이 바로 허튼 소리이
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정신분석가에게 물어본다면 그는 그것을
"합리화'라고 얘기할 것이다."
- 숱한 우화를 예로 들면서 해학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그럴 듯하
다. 하지만 정신분석가에게 물어오면 이것은 합리화가 아니라 투
사(投射)이다.아내 때문에 그랬다는 것처럼 남에게 덮어씌우는 것
을 정신괴에서는 투사라고 한다. 합리화라는 것은 자존심과 체면
을 유지하기 위해 적당한 이유를 대는 것으로서 『이솝우화』에
서 여우가 포도를 따려다가 너무 높이 잇어서 따지 못하고 한다
는 소리가 "저 포도는 신 포도일 거야"라고 하는 얘기 같은 것이
다.
불완전한 지식으로 모든 종교와 모든 세상일을 설명하려는 것이
세 번째 특징이다. 심지어 라즈니쉬는 제자로부터 "라즈니쉬여,
당신은 나를 혼돈시키고 잇습니다"라는 지탄까지 받지 않았던가...
라즈니쉬는 피임약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혁신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피임약은 사랑에 대한 전체적인 개념을 완전히 변화시켰
고 이제 인간은 즐거움만을 위하여 성교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신흥종교나 주술의 세계이든 빼놓지 않는 '성적(性
的)인 요소를 포함한다는 것'- 이것이 네 번째 특징이다.

그의 오레곤왕국은 1985년부터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 유명한
얘기이고 해외토픽이나 주간지를 통해서 많이 보도된 얘기지만
1986년 1월 17일자 조선일보에 실렸던 하얀 전쟁의 작가 안정효
씨의 「영혼의 상품화」라는 그로 그 이야기를 대신하려 한다.

"벌써 작년 일이 되어 버렸지만 라즈니쉬의 체포사건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영혼의 스승이라 자처하며 전세계
의 무수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라즈니쉬가 수십 대의 롤스
로이스를 타고다니며 사교(邪敎)의 교주나 황제같은 생활을 한다
는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의 실망은 차라리 배반감에 가까웠다고
하겠다. 6만 4천 에이커의 땅에다 왕국을 세우고 오레곤 주를 몽
땅 라즈니쉬 푸람으로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큰소리를 치던 라즈
니쉬의 비서 쉴라의 표독스러운 얼굴은 명상과 영혼을 상품화하
여 장삿속을 차리자는 탐욕으로 너무나 살벌했었다.
그러다가 작년 말 그 왕국이 갑자기 무너졌다. 사기결혼에다 마약
복용과 암살음모 혐의까지 받게 되자 자가용 비행기로 몰래 출국
하려다가 체포된 라즈니쉰는 감옥으로 갔고, 결국 40만 달러의 벌
금을 문 다음 5년 내 미국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사
실상 축출되었다.
육신의 고통을 초월하여 영혼의 평화를 찾아야 한다고 명상을 부
르짖던 라즈니쉬는 감옥에 갇히자 그의 편안한 의자를 들여보내
줄 수 없느냐고 요구했다가 웃음거리가 되더니, 출국을 당한 다음
에도 독일에서 체포된 쉴라와 서로가 독살음모를 꾸몄다는 비방
을 마구 퍼부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크리슈나무르티가 교단을 해체시켯던 마음가짐이 오히려 이제 와
서는 더욱 정신적인 지도자다움을 보여준다. 어찌 종교와 돈버리
의 수단으로 전락될 수 있을까. 에어컨디셔너를 단 롤스로이스와
무장경호원까지 거느리고 돌아다니는 정신적인 스승- 현대의 얼
마 안 남은 영혼에서 이미 탐욕과 물욕의 암세포가 자라나고 있
는 지도 모른다. 우염된 장승곡이 들려올 것 같다."
- 사상은 긍정할만하다고 하더라도 행동은 이율배반적이다. 이것
이 라즈니쉬의 다섯번째의 특징인 것이다

라즈니쉬와 크리슈나무르티는 우리로 하여금 명상이나 선(禪)ㆍ흰
두교 등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 문제점이랄까?
이렇듯 현대인들의 전세계적 지도자라고까지 찬양하는 그 촉수
높고 허황한 조명의 불빛을 돌려,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점신적
스승들을 만나는 행복에 마음을 쓴다면, 그러한 예는 결코 빈약하
지 않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칼 융의 분석심리학적 이론을 데미안이란 작품
을 통해 이름답게 표현해 낸 헤르만 헤세라든가, 필자가 정신과를
선택하는 데 큰 동기를 부여했던 희랍인 조르바와 영혼의 수련의
작가 니코스 카잔챠키스 같은 사람들을 들고 싶다.

<노자선의 생각>
노자선은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한 법정스님의 수상록 산에는 꽃
이 피네 와 무소유 등의 수상록과 살아있는 지성인 달라이 라마
의 행복론이나 마음으로부터의 명상 등을 권하고 진리와 비폭력
의세계를 열어 인도를 구해 낸 간디의 날마다 한 생각이나 갠디
스강을 맨발로 걷다 등과 폭 넓은 통찰력을 지닌 류영모옹의 다
석사상문집 등의 사람들을 들고 싶다.
또한 노자의 도덕경과 법정이 쓴 법구경과 신약전서 4복음서 중
예수어록 부분을 순수하게 읽기를 권한다.

널리 안다는 박식한 사람은 깊이 알지 못한다(노자선)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은 아름다운 말은 아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진리를 담고 있는 말로서
도에서 나오는 말은 담백하여 아무런 맛이 없지만
믿어도 좋은 말들이다
원래 믿음이 있는 말은 듬직하지만 아름답지는 않으며
아름다운 말은 미사어구(美辭語句)가 많지만 믿음성이 없는 것이다

뛰어난 웅변은 말더듬이가 얘기하는 것처럼 어눌한 것 같이
착한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옳다고 내세우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을 걲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는 것은
변론으로 다투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착한 행동이 못된다
노자 오 천자에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광범위하게 담고있지 않지만
도에 대한 끊임없는 진리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과 우주를 다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원래 널리 안다는 박식한 사람은 깊이 알지 못한다

진리를 깊이 있게 알게될 때 비로소 참 아는 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르는 것이 없이 다 안다는 사람은
실은 진정으로 한가지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믿음성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못하다
착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고 변론을 잘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다
참으로 아는 자는 박식(博識)하지 않고 박식한 자는 잘 알지 못한다

노자 81장 신언불미(信言不美) 미언불신(美言不信)
선자불변(善者不辯) 변자불선(辯者不善)
지자불박(知者不博) 박자부지(博者不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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