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만사만물(萬事萬物)에 명칭을 부여하다
노자(老子)의 생각에 도(道)는 이름을 붙여준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도(道)란 삼라만상의 근원으로 무형(無形)이자 무명(無名)이다. 그러나 그 도(道)에서 비롯된 삼라만상은 모두 그 도(道)로부터 이름(名稱)을 부여받는다. 형체(형체(形體)가 생기고 명칭(名稱)이 있게되는 과정이 바로 무(無)에서 유(有)로 진행되는 것이다.
《노자(老子)》제1장에서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작이요, 명칭(名稱)이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라고 한 것은 도(道)가 무명(無名)의 상태일 때는 삼라만상의 근원이고, 일단 명칭(名稱)을 갖게된 상태는 삼라만상의 산모(産母)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삼라만상을 생성시키는가? 형체를 부여하고 명칭을 부여함으로서 삼라만상을 생성시킨다.
이 도(道)는 마치 《성경(聖經)》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과 같아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매 빛이 있었듯, 도(道) 자신은 무(無)이지만 이 도(道)는 일체의 유(有)에게 명칭을 부여한다. 이건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줘 다른 아이와 구별하기 쉽게 하는 것과 하등 차이가 없다. 아이도 자신의 이름이 있으므로 이 세상에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므로 도(道)란 명명자(命名者/이름을 붙여주는 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일체의 삼라만상에 명칭을 붙여주어 그러한 삼라만상이 겉으로 확실히 드러나게 해주고 있는 명명자(命名者)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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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고 희한한 이런 도(道)는 노자(老子) 생각에 너무도 위대하였다. 노자(老子)가 말하길.. 「도(道)는 허공(虛空)이지만 그 작용은 무궁무진(無窮無盡)하다. 도(道)는 너무도 깊고 깊어 삼라만상의 근원이다. (道沖, 而用之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제4장)
그렇다면 이 도(道)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 도(道)는 아무것도 아니다. 《노자(老子)》14장에서 말하듯 도(道)란 「보아도 보이지 않는 걸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걸 희(希)라 하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걸 미(微)라 한다」(視而不見名曰夷, 聽而不聞名曰希, 搏而不得名曰微)고 했듯 무(無)이다. 그러나 이 무(無) 속에는 무한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 아무 것도 없이 텅 빈 절대적인 공백을 말하는게 아니다. 그러므로 「혼돈 속에 모습이 있고, 몽롱한 가운데 사물이 있고, 아득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이 중요한 것은 대단히 진실된 것으로 믿고 따를 만하다」(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노자 22장)고 했던 것이다.
요컨대, 도(道)란 우주의 초기 혼돈(混沌)이자, 우주 중 유일한 진실된 존재이며, 우주만물의 공통된 근원으로 노자(老子)는 본 셈이다. 노자(老子)는 도(道)를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노자(老子)는 그렇게 생각했다. 노자(老子)의 전체 사상과 장자(莊子)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찬성하든 반대하든 어쨌든 위와 같은 도(道)의 개념 및 특징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노자(老子)의 생각에 도(道)는 이름을 붙여준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도(道)란 삼라만상의 근원으로 무형(無形)이자 무명(無名)이다. 그러나 그 도(道)에서 비롯된 삼라만상은 모두 그 도(道)로부터 이름(名稱)을 부여받는다. 형체(형체(形體)가 생기고 명칭(名稱)이 있게되는 과정이 바로 무(無)에서 유(有)로 진행되는 것이다.
《노자(老子)》제1장에서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작이요, 명칭(名稱)이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라고 한 것은 도(道)가 무명(無名)의 상태일 때는 삼라만상의 근원이고, 일단 명칭(名稱)을 갖게된 상태는 삼라만상의 산모(産母)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삼라만상을 생성시키는가? 형체를 부여하고 명칭을 부여함으로서 삼라만상을 생성시킨다.
이 도(道)는 마치 《성경(聖經)》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과 같아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매 빛이 있었듯, 도(道) 자신은 무(無)이지만 이 도(道)는 일체의 유(有)에게 명칭을 부여한다. 이건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줘 다른 아이와 구별하기 쉽게 하는 것과 하등 차이가 없다. 아이도 자신의 이름이 있으므로 이 세상에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므로 도(道)란 명명자(命名者/이름을 붙여주는 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일체의 삼라만상에 명칭을 붙여주어 그러한 삼라만상이 겉으로 확실히 드러나게 해주고 있는 명명자(命名者)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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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고 희한한 이런 도(道)는 노자(老子) 생각에 너무도 위대하였다. 노자(老子)가 말하길.. 「도(道)는 허공(虛空)이지만 그 작용은 무궁무진(無窮無盡)하다. 도(道)는 너무도 깊고 깊어 삼라만상의 근원이다. (道沖, 而用之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제4장)
그렇다면 이 도(道)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 도(道)는 아무것도 아니다. 《노자(老子)》14장에서 말하듯 도(道)란 「보아도 보이지 않는 걸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걸 희(希)라 하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걸 미(微)라 한다」(視而不見名曰夷, 聽而不聞名曰希, 搏而不得名曰微)고 했듯 무(無)이다. 그러나 이 무(無) 속에는 무한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 아무 것도 없이 텅 빈 절대적인 공백을 말하는게 아니다. 그러므로 「혼돈 속에 모습이 있고, 몽롱한 가운데 사물이 있고, 아득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이 중요한 것은 대단히 진실된 것으로 믿고 따를 만하다」(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노자 22장)고 했던 것이다.
요컨대, 도(道)란 우주의 초기 혼돈(混沌)이자, 우주 중 유일한 진실된 존재이며, 우주만물의 공통된 근원으로 노자(老子)는 본 셈이다. 노자(老子)는 도(道)를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노자(老子)는 그렇게 생각했다. 노자(老子)의 전체 사상과 장자(莊子)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찬성하든 반대하든 어쨌든 위와 같은 도(道)의 개념 및 특징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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