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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읽는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글/김원중/(포항공대교수. 시인)

작성자노자 선|작성시간02.11.03|조회수338 목록 댓글 0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글/김원중/(포항공대교수. 시인)

도 덕 경

(道德經)





'도'는 우주만물의 원리이고
이 원리를 따르고 지키고 것이
'덕'이라는 것이다.
도를 따르기 위해
무엇인가 인위적으로 행하는 것이
덕이 아니라 본성대로 자유스럽게
사는 것이 덕이다.
즉 우위자연의 생활태도가
덕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인 새 천년을 앞둔 지난해(199년 11월 22일) 연말에 시작한 김용옥교수의 <노자와 21세기> TV강좌는 2천년 새해에 들어서도 계속되어 그 열기가 대단하였다. 비록 시청률이 가장 낮은 EBS(교육방송) TV강좌였지만 많은 화제와 논란은 남겼다. 2천년 2월 24일 종강 후 각 언론에는 두 가지로 갈라진 논란이 있었다. 즉 찬성하는 측과 비판하는 측이다. 노자(老子)를 통하여 동양철학을 알기 쉽게 시청자에게 전달하였다는 김용옥 지지파와 학문적 깊이는 뒤로 한 채 자아도취로 일관해 학문의 격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론자들로 갈라진 여론을 보았다. 김용옥교수를 천재 철학자로 극찬한 시청자도 있었고 기인 또는 지식상인으로 평한 시청자들도 있었다. 나도 시간이 있을 때면 시청하였지만 흥미로운 강좌였고 철학을 오락화한 공로를 세우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였다. 그리고 30년 전에 발간 된 시인 이원섭 선생이 펴낸 노자 <도덕경(道德經)>을 다신 한 번 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김용옥교수가 56회에 걸쳐 강의한 내용을 담음 책, <노자와 21세기>는 상·하로 나누어 간행되었지만 그것은 <도덕경>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도덕경>은 전부 81장까지 있는데 김용옥교수는 24장까지만 강의한 것이다. 그러니까 상편인 도경(道經) 37장 중 24장까지만 강의하였고 하편인 덕경(德經) 44장은 손도 못 댄 것이다.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와 함께 중국사상 내지 동양사상의 양대 산이라고 지칭 할 수 있는 노자의 <도덕경>은 전설에 따르면 세상을 등진 노자가 자신을 알아보는 한 문지기의 권유로 즉석에서 지어준 5천자의 문장이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1장에서 37장까지는 도(道)에 대한 설명이고 38장부터는 덕(德)을 설명한 문장이다.
공자의 유가(儒家)와 대립되는 노자의 도가(道家)사상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인(仁) 의(義) 예(禮) 지(知)라는 덕목을 미리 정해 놓고 이를 실천하라고 강조하는 공자의 유교사상과는 대조되는 자연 회귀론적 견해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도(道)는 우주만물의 원리이고 이 원리를 따르고 지키는 것이 덕(德)이라는 것이다. 도를 따르기 위해 무엇인가 인위적으로 행하는 것이 덕이 아니라 본성대로 자유스럽게 사는 것이 덕이다. 즉 무위자연의 생활태고가 덕이라는 것이다.
이 동양 최고의 지혜의 책인 <도덕경>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무명천지지시(無名天地之始) 유명만물지모(有名萬物之母)이라는 도가도장(道可道章)이 제1장이다. 이것을 이원섭 시인은 ‘영구불변한 도(道)’라고 하였다. ‘도라고 이르는 도는 영구불변한 도가 아니요, 이름(名)이라 이르는 이름은 영구 불변한 이름이 아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도란 이 영구불변한 도에서 파생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소위 이름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즉 그것들은 언어(이름)를 초월한 존재다. 그러기에 이름 없는 상태, 즉 무명(無名)이야말로 천지의 원초적 상황이며 이것에서 이름이 생김으로써 모든 현상이 존재하게 되는 터이므로 이름있는 것, 즉 유명(有名)은 만물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이원섭 해설)
1972년 1월에 간행된 이원섭시인의 노자 도덕경은 81장을 사상적 경향에 따라 분류하였고 각 장마다 역문·원문·해설을 시도하고 간단히 어귀 해석도 첨가하였다.(대양서적간 <중국사상대계> 2권 노자 장자편 참조)

예를 들면 도에 관한 것은 앞에 소개된 ‘영구불변한 도’를 위시하여 ‘도(道)의 발생’ ‘도의 형상’ ‘도의 작용과 그 무한성’ ‘도에서 만물로’ ‘도의 만유(萬有)’ ‘도의 초월성 1,2’ ‘도의 영구성’ ‘도의 동(動)과 용(用)’ 등 10개의 제목을 붙여서 소개하였다. 덕을 주제로 한 것도 ‘덕의 발생’ ‘유현(幽玄)한 덕’ ‘덕의 표현’ ‘덕과 인의(仁義)’ ‘도덕의 후천성’ 등의 제목을 붙여 소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도덕경>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온갖 지혜가 펼쳐져 있다.
물론 이원섭시인이 붙인 소제목들이다. 그 가운데 몇 개의 제목을 소개하면 ‘만유 이법(理法)과 치자(治者)’ ‘무위(無爲)의 실천’ ‘무(無)의 공용’ ‘감각의 제압’ ‘최상의 정치형태’ ‘위정자의 자연적 정치’ ‘위정자의 태도’ ‘정치의 장구성(長久性)’ ‘무위자화(無爲自化)’ ‘무위정치의 비결’ ‘우민정치’ ‘현실정치의 요령’ ‘유위(有爲)정치의 폐단’ ‘대국과 무위정치’ ‘국가의 정치와 도’ ‘격언’ ‘대국과 그 통치자’ ‘정치가의 자격’ ‘자연의 통제’ ‘백성과 형벌’ ‘세금과 백성’ ‘이상적 정치가’ ‘용병(用兵法)’ ‘자연의 침묵’ ‘도(道)의 찌꺼기’ ‘행동의 극치’ ‘명예와 재산’ ‘대(大)를 넘어선 여김’ ‘생(生)과 사(死)’ ‘언어와 지식’ ‘직관의 결핍’ ‘노자와 유토피아’ 등 전부 82개의 소제목을 붙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보면 정치적인 면과 무위(無爲)와의 관계가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섭 선생은 왕필본(王弼本)을 텍스트를 삼아 매우 꼼꼼하고 성실하게 <도덕경>을 번역하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김용옥교수는 <노자와 21세기> 강좌에서 <도덕경>의 첫 장부터 잘못된 번역의 오류를 지적하였다.
“여기 늘 그러한(常)이라는 말을 많은 노자의 번역자들이 ‘영원불변의’라는 말로 잘못 번역한다. 첫장부터 이렇게 <노자>를 잘못 해석하면 노자의 지혜는 마치 영원불변의 이데아적인 그 무엇을 추구하는 서양철학이나 잠정적이고 덧없는 이 세상을 거부하고 천국의 도래를 갈망하는 기독교의 초월주의가 되기가 쉽다. 기독교의 본의가 그런 것이 아니지만 후대의 헬레니즘과의 잘못된 결합으로 결국 서양의 초월주의는 기독교 문명의 상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노자는 ‘항상 그러함’만을 말하지 ‘불변’을 말하지는 않는다. 동양인들에게는 ‘불변’이라는 것이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동양인들에게 ‘염원’이란 ‘변화’의 지속일 뿐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단지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이다. 그 생각을 노자는 여기 ‘말’이라고 표현한 것이다.”(김용옥 <노자와 21세기·상> p105 참조)
‘도를 도라고 말한다’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지 않을 수 없는 도를 우리의 생각 속에 집어 넣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실제의 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불변의 영원을 추구하였다면 동양인들의 지혜는 변화의 영원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인들 매일 아내에게 ‘아이 러브 유’를 하여도 동양인들은 하지 않는다. 물론 요즘 세대들은 서구화 경향의 영향을 받아서 변하였겠지만 나의 경우에도 30년이 넘는 결혼생활에 한 번도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노자의 사상에서 보면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늘 그러한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고 말한 노자의 지혜와 같은 것이다. 노자는 단순한 올드맨인지 모르겠으나, 노자 <도덕경>은 두고 음미해 볼 만한 인류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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