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해설)
>
>▒ 고요상(皐陶像).
>
>전설중에 동이족 수령 고요는
>요순(堯舜)시기에 형법을 관장하는 관직인 대리(大理)직에 임명되어
>마침내 관명(官名)족으로 "이(理)" 성(姓)이 되었다.
>고자(古字)중에 이(理)와 이(李)는 상통했다.
>(傳說中東夷族首領 皐陶 曾任堯舜大理之職
>管掌刑法的官 遂以官命族爲理氏 古字中理與李相通)
>
>▒ 노자백서(老子帛書),
>
>곧 <도덕경(道德經)>이니 호남성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출토.
>마왕퇴는 지나인에게 동이족 남월국의 소위 오랑캐국으로 회자되는 곳이니
>동이족 노자의 도덕경 출토는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
>
><당황실 이(李)씨 성의 뿌리를 찾아서-동이족 고요(皐陶)>
>
>
>이(李)씨 성은
>현재 한족(漢族)의 7.9%를 차지하는 대성(大姓)으로
>가히 백가(百家)성(姓)의 머리를 차지한다.
>
>이(李) 씨 성은 본래 동이(東夷)족의 한 갈래인
>"조이(鳥夷) 부락"의 "고요(皐陶:화락하게 즐길 요)"가 "혈연의 시조"가 되는데,
>
>요순(堯舜)시기에 형법을 관장하는
> "이관(理官)"에 임명된 것으로 인해 이"(理)"가 성(姓)이 되었다.
>
>
>상조(商朝)의 이관(理官)이었던 이정(理征)의 아들 이정(利貞)이
>성(姓)을 얻어 시조가 되었으니,
>
>노자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혁혁하게 이름이 드러났다.
>
>이(李) 씨 당(唐) 왕조에 300년 간 국성(國姓)으로 위엄을 떨쳤으며,
>12개 정권을 세웠으며,
>칭제한 자가 58인이 되었다.
>
>이(李) 씨 성의 이(李)는
>처음에는 장미과에 속하는 오얏나무 식물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
>이(李) 씨 성의 직접적인 기원은
>상조(商朝) 의 관명(官名)인 "대리(大理)"에서 비롯한 것이다.
>
>갑골문에는 이(李)라는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李) 씨 성의 기원은 원시인류의 순박한 생활습관과 더불어 밀접한 관계가 있다.
>
>최초의 "이(李)"는 <설문(說文)>에서 "이(李)"는 열매다"
>오얏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며...
>씨는 구형으로 여름에 성숙해 홍색광택을 띠고
>맛은 시고 달며, 식용으로 쓰이며, 일명 "가경자(嘉慶子)"라 한다" 하였다.
>
>
><통지(通志)·씨족략(氏族略)·관직으로 씨를 삼다(以官爲氏)>에
>
>"이(李)씨는,
>고요(皐陶)가 요(堯)의 대리(大理)가 되었는데,
>이로 인해 이 관직에 부름받은 족을 이(理) 씨로 삼았다.
>상조(商朝) 반년에 이정(理征)이 이(李)씨로 바꾸었다.
>
>
>중국 성씨 발전사 가운데,
>이(李) 씨 성은 주(周) 이후의 제 사적에 보인다.
>
>「국어(國語)·정어(鄭語)」가운데의 축융(祝融)의 후에 8성(姓),
>「진어(晋語) 4」가운데의 황제(黃帝)의 후에 12성(姓),
>「좌전(左傳)」에 기재된 서주(西周)의 20성(姓) 모두에 이(李)씨 성은 보이지 않는다.
>
>
>「성해(姓解)」에도 설명하기를,
>
>"주(周) 이전에 이(李)씨는 보이지 않는다.
>「사기(史記)」에 말하기를, "주(周)로부터 노담(老聃)이 있으니, 이(李)씨 성(姓)이다."
>이후로 이(李)씨 성(姓)은 점점 증가한다.
>이(李) 씨 성의 기원에는 다음의 5종이 있다.
>
>첫째,
>
>전설 가운데 동이족 수령인 고요(皐陶)는
>일찍이 요순(堯舜)의 대리직(大理職:형법을 관장하는 관리)에 임명되니,
>그 식솔 제족들이 이(理) 씨가 되었는데
>고자(古字)중에 "이(理)"와 "이(李)" 자는 서로 상통해서 쓰는 글자였다.
>
>둘째,
>
>노자(老子)는 조상들이 이관(理官)이 되어,
>이(理) 혹 이(李)로써 씨(氏)를 삼았다.
>또 노자(老子)가 이(李)씨 여자의 소생이라는 설이 있다.
>
>전설에 이(李)씨 모친이
>81년 동안 뱃 속에 태아를 품고 있으면서,
>오얏나무(李樹) 아래를 노닐다가 좌측 장부(腸腑)를 가르고 노자를 낳더니,
>
>"태어나면서 오얏나무(李樹)를 손으로 가리켜, 이로 인해 성으로 삼았다"
>손으로 가리킨 나무를 성(姓)으로 삼아 불러왔다는 것은 망설(妄說)이다.
>
>셋째,
>
>춘추시대 조(趙)나라 장령(將領) 무안군(武安君)의 후대에 이좌거(李左車)가 있는데,
>그 후예가 이(李)씨가 되었다.
>
>네 번째,
>
>북위(北魏)는 이(李)씨로 바꾼 것을 꾸짖었다.
>
>다섯 번째, 당대(唐代)
>서(徐), 병( ), 안(安), 두(杜),
>호(胡), 홍(弘), 곽(郭), 마(麻),
>선우(鮮于), 장(張), 아포(阿布),
>아질(阿跌), 사리(舍利), 주사(朱邪), 동라(董羅) 등 의 씨(氏)가
>
>건국에 공(功)이 있다는 이유로 인해 이(李) 씨 성(姓)을 하사 받았다.
>
>이상에서
>
>이(李)씨 성(姓)의 5가지 설명 가운데,
>앞의 3종류는 「신당서(新唐書)·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중에 하나의 근원으로 합해지니,
>고요(皐陶), 노자(老子), 이좌거(李左車) 동일 세계(世系)중의 인물이 된다.
>
>이에 대해 일찍이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있으니,
>
>「승암집(升庵集)」 권 50
><이씨성은 하나가 아니다(李姓非一)>는 자못 첨예하게 말하여,
>
>"농서( 西)의 이(李)와 당실(唐室)의 이(李)는 동족이 아니다"고 말하고,
>「신당서(新唐書)·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는 왜곡 아첨된 설이라 하여
>"부회왕찬(附會枉撰), 미시지설(媚時之說)"이라 했다.
>
>진인각(陳寅恪)도 일찍이
>
>당 고조 이연(李淵)의 조상 선조에 대해 고증을 진행해,
>이연(李淵)의 조상 선조는 조군(趙郡) 이(李)씨의 후예로 여기고,
>농서( 西) 이(李) 씨의 후예가 아니라고 말한다.
>
>이로 인해 그 족(族)은
>조주(趙州) 소경현(昭慶縣)(지금의 하북 융평현(隆平縣)에 장사지내졌다.
>
>
>그러나
>조군 이씨와 농서 이 씨는 그 근원이 하나임이 이미 밝혀진 상태다.
>
>이상으로부터 가히 알 수 있듯이,
>「신당서(新唐書)·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가운데 기록된 세계(世系)에 대해,
>세인은 논쟁을 하고 있다.
>
>그러나,
>많은 성씨학의 저작은, 고요(皐陶)가 이(李) 성(姓)의 조상이 된다는 것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다.
>
>대당(大唐)의 종실(宗室)에 이르면
>이(李)씨는 한(漢) 족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이적(夷狄)에 속한다.
>
>이미 화하사관이 드러난 유가사관의 필법으로
>이적을 금수시한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이적을 폄하해 설명하기를
> "당(唐)은 이적(夷狄)에 원류(原流)를 두고 있어서,
>생각건대 규문(閨門)이 예를 잃어버리는 일이 다르지 않다"라 했다.
>
>당(唐) 초기의 왕실 세습 이전에는
>문벌을 우선시하는 습속이 있어
>분분히 소리 높여 자신이 세가(世家) 대족의 후예라 칭하곤 했는데
>당 황실가인 이 씨 가문 역시 이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
>당조에 수정(修訂)된 「씨족지(氏族志)」를 보면
>왕실에 불리한 씨족은 모조리 배척해 없앤 동시에
>자기 혈통에 유리한 것은 가지와 잎을 보태어
>이(李) 씨가 서량(西凉) 무소왕(武昭王) 이고(李暠)의 정통후예라 성칭(聲稱)한다.
>
>왕실의 역사가 이같이 동이족의 혈통을 숨기고 가지를 보태는 형국인데
>일반 서민의 혈통과 역사가 분식됨은 보통이었다.
>
>「비급신서(秘 新書)」는
>「성찬(姓纂)」 및 「신당서(新唐書)·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를 인용해 기재하기를,
>
>"이(李)씨는 제(帝) 전욱고양( 頊高陽)의 후예다.
>전욱( 頊)은 대업(大業)을 낳고
>대업은 여화(女華)를 낳고
>여화는 고요(咎繇성 고 또는 허물구, 역사 또는 부역 요⇒ 皐陶)를 낳았다"
>
>
>그럼 "고요"는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넘어가자.
>
>중국 족보사료에 의하면
>
>고요(咎繇:皐陶)는 동이부족 수령이 되어,
>활동 중심지가 지금의 산동성 곡부(曲阜) 시(市)인 언(偃:奄)이었다고 말한다.
>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세기(世紀)>를 인용해 고요(皐陶)에 대해 설명하기를,
>
>"곡부(曲阜)에서 태어났다.
>
>곡부(曲阜)는 언(偃) 땅인데,
>고로 제순(帝舜)이 이로 인해 사성(賜姓)을 내렸으니 왈 "언(偃)"이다"
>
>이는 「좌전(左典)」가운데 설명한 바 있는,
>"천자가 태어났으므로 사성을 내렸다(天子因生而賜姓)"이다.
>고요(皐陶)는 요(堯)가 염황이(炎黃夷:염제, 황제) 연맹 수령이 되었을 때에
>이관(理官)으로 임명되었으니,
>곧 사법(司法)을 관장한 장관(長官)이다.
>
>
>「사기오제본기(史記五帝本紀)」에는
>
>그가 5종류의 형벌인
>묵(墨:온몸에 먹을 그려넣는 형벌),
>의( :코베는 형벌),
>비( :발을 제는 형벌),
>궁(宮:불알을 떼는 형벌),
>대벽(大 :사형)을
>
>제정해 책임을 맡아, 죄의 경중에 따라 형량을 다스리고,
>또 5형을 쓰지 않는 죄인은 분류를 매기어 내보냄으로써 천하의 인심을 얻었다고 한다.
>
>전설에,
>고요(皐陶)는 선악의 진위(眞僞)를 가리는 일종의 특이한 외뿔 짐승
>해태( :論衡에 선악을 아는 외뿔짐승의 羊이라 하였다)를 길렀는데,
>
>이 짐승의 판단으로 시비선악을 잘 내려
>순이 정권을 이양 받은 후에도 대리(大理) 직에 있어
>천하의 죄악을 잘 평정하여 사람들은 편안히 살면서 즐겁게 직업에 종사했다 한다.
>
>
>(그림설명)
>
>신화전설에 이(李) 씨 성(姓)의 시조인 고요(皐陶)는
>바로 이 선악을 정확하게 아는 신령한 짐승 덕으로 옥리(獄理)를 잘 판단했다고 한다.
>
>그는 이 독각기수(獨角奇獸)에 힘입어 형옥(刑獄)을 잘 다스려 명예를 얻었다.
>
>이 독각기수는 해태로
>해태는 바로 무신인 "치우의 귀면복사신앙"에 기인한 것임을 알면
>고요와 귀면복사의 대표 해태,
>혹은 해치와의 결합은
>더욱 동이족 고유의 민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할 수 있겠다.
>
>-------------
>
>임직에 있는 동안 고요는 수 차례에 걸쳐 현명한 계책을 내놓았으며,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 반드시 삼가 그 몸을 닦도록 하여,
>특별히 "지인(知人)"과 "안민(安民)"을 강조했다고 한다.
>
>순(舜)은 고요(皐陶)를 최고의 현신(賢臣)으로 여겨
>누구를 후계로 삼아야 할지 물으려 했다.
>
>그러나 순(舜)은 미처 그럴 새도 없이
>창오에서 우(禹)의 세력에게 쿠데타를 당하고 죽었지만
>대륙의 사서는 순(舜)이 심지어 고요(皐陶)에게 선양하려 했지만
>고요(皐陶)가 먼저 병들어 죽었다고 말한다.
>
>아무튼 대륙사를 떠들어 보면
>좁쌀만 한 반도식민사관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동이족이었던 고요는 대단한 인물이었음이 틀림없다.
>
>고요(皐陶)의 아들이
>바로 상고 대륙사에서는 고요(皐陶)보다 더 유명한 백익(伯益)으로
>그는 우(禹)를 타도하고 제위(帝位)까지 올랐다가
>다시 우(禹)의 아들 계(啓)에게 타도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
>고요(皐陶)가 죽은 후,
>"그는 육(六)에 장사지내졌다"
>
>「사기(史記)」는 「괄지지(括地志)」를 인용해 설명하기를,
>"안휘 수주(壽州) 안풍현(安豊縣:合肥바로 위) 남쪽 130리에
>옛 육성(六城) 동쪽에,
>우(禹)는 그의 어린 자식을 육(六)에 봉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이를 기념해서인지 수주에 우왕묘(禹王廟)가 세워져 있다)
>
>이후로 육(六)은 다시금 일개 "언(偃)" 성(姓)의 소국(小國)이 된다.
>
>
>그러나
>초(楚)국 목왕(穆王)이 이를 멸해 버렸으니, 계보가 없다.
>
>고요(皐陶)에게는
>장자 백익(伯益)이 있었는데,
>
><제왕세기>에 설명하기를,
>"백예(伯 (益))는, 순(舜)왕을 위해 가축을 많이 길렀으므로,
>가득 차 넘칠 "영( )" 씨 성(姓)을 사성 (賜姓) 받았다"
>
>이로써 가히 알 수 있듯이,
>백익(伯益)은 잘 훈련된 조수(鳥獸)로 인해
>순(舜)으로부터 "영( )" 성(姓)을 사성(賜姓) 받았으며,
>"영( )" 성(姓)은 부락의 수령이 되었다.
>
>고요(皐陶)의 둘째는 이름이 중견(仲甄)으로,
>중언(仲偃)으로도 불렸는데, 거듭 언(偃)이 성(姓)이 되었다.
>
>이후, 언(偃) 성(姓)은 고요(皐陶)를 조상으로 받들고 성(姓)으로 씨(氏)를 삼았다.
>
>고요(皐陶)의 후예는
>역우(歷虞), 하(夏), 상(商) 26세 기간에 이관(理官)이 된다.
>
>고인(古人)이 관명(官名)으로 씨(氏)를 삼은 것에 따라,
>고요(皐陶) 및 그 자손은 이(理) 씨가 되었다.
>
>관(官)으로써 씨(氏)를 삼은 이(理)씨는
>
>문제의 이정(理征)이라는 사람 때 이르러,
>상(商)의 맨 마지막 왕인 폭군 주(紂) 왕의 이관(理官)으로 임명되어,
>상(商) 주(紂)가 혼용혼용무도(昏庸無道)하여 여색에 빠지자,
>여러 차례 나아가 간언하고,
>법을 지켜 아첨하지 않았으나
>이미 혼음(昏淫)해진 주(紂) 왕은 이를 용납하지 않으므로, 마침내 죽을 화(禍)를 만났다.
>
>이정(理征)의 처자 설화(契和)씨는
>어린아이 이정(利貞)을 데리고 도망 길에 올라,
>지금의 하남(河南) 경내인 이후(伊侯)의 터로 달아났다.
>굶주림을 참지 못하다가 나무 한 그루 위에 열린 과실을 보고,
>곧 따먹으니 모자(母子)는 겨우 살 수 있었다.
>
>그 후,
>이정(利貞)은 주(紂) 왕이 추격해 잡힐 것을 두려워해
>감히 이(理) 상(姓)을 칭하지 못하고,
>목숨을 구한 은공으로 "목자(木子)", 이(李)씨로 개칭했다.
>
>이것이 후일 "지수위성(指樹爲姓)"의 설이 되었다.
>이 설을 생각해 보면, 이(李) 성(姓)의 시원은 상말(商末) 주초(周初)에 해당된다.
>
>이상으로부터 가히 알 수 있듯이,
>이(李)씨 성(姓)은 고요(皐陶)가 혈연의 시조가 되니,
>그는 언(偃) 성(姓)의 후예로, 일
>찍이 관(官)으로 씨(氏)를 삼아 이(理) 성(姓)을 칭했다.
>
>청(淸)의 유학자 진가모(秦嘉謨)가 편집한 「세본(世本)」에 의거해 상고해 보면,
>고리(古理), 리(里), 이(李) 3자(三字)는 함께 통한다.
>
>「사기·오제본기(史記·五帝本紀)」에 고요(皐陶)가 대리(大理)가 되었다 기재하고,
>
>「관자법법(管子法法)」에 기재하기를,
>고요(皐陶)가 이(李<理>)가 되었다 하고,
>「사기·위세가(史記·魏世家)」에는 "이극(李克)"이라 기재되어 있고,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이극(里克)" 등등으로 기재되어 있다.
>
>이리하여,
>이(李) 씨 성(姓)은 이관(理官)이었던
>고요(皐陶)가 혈연의 시조가 되었다는 설이 만들어진 것이니, 실제로 망령된 말이 아니다.
>
>
>고요(皐陶)는
>이(李) 씨 성(姓)의 혈연 시조가 되어 정직 과감하고 매우 창조적이었다고 전한다.
>
>그의 공덕은 아주 깊어서 이(李) 성(姓) 자손의 본보기이자 동시에 교만이 된다.
>"지수위성(指樹爲姓)"의 설법에 따라,
>강직하여 굽히지 않는 이정(理征)의 아들 이정(利貞)은
>마땅히 이(李) 성(姓)이 성(姓)을 취득한 시조이다.
>
>한편,
>
>도교(道敎) 시조 노자는 이름이 이이(李耳)로
>"정사(正史)"에는 이(李)씨 성(姓)의 제 1인으로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
>이성족(李姓族)의 계보는,
>이(李) 당왕조(唐王朝)의 상세한 고증으로 인해서 가까스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
>그 혈맥은 번창해 넘친 나머지 가지치고 나간 지엽이 아주 많아졌다.
>
>현재 「신당서(新唐書)·종실세가표(宗室世家表)」에 기재된 바에 의하면,
>이정(理征)의 이(理)를 이(李) 성(姓)으로 고친 후의 종계(宗系)를 다음과 같이 찬술(撰述)하고 있다.
>
>이정(理征)은
>설화(契和)씨의 여식을 아내로 맞아 창조(昌祖)를 낳았는데,
>창조는 진(陳)의 대부(大夫)가 되어, 고현(苦縣)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
>진(陳)은
>서주(西周)의 진국(陳國)으로
>옛터는 지금의 하남성 개봉(開封) 이동(以東), 안휘(安徽) 박현( 縣) 이동(以東)으로
>춘추 말년에 동이족 초국(楚國)에게 멸망되었으며,
>고현(苦縣)은 지금의 하남성 녹읍(鹿邑) 현(縣) 동쪽 10리에 있는 마을이다.
>
>창조(昌祖)는 동덕( 德)을 낳고,
>동덕의 증손 석종(碩宗)은 주(周) 강왕(康王)으로부터
>고현(苦縣)에 있는 채읍(采邑)을 하사받았다.
>
>5세손 건(乾:字는 元果)때에 이르러
>주(周)대의 상어사대부(上御史大夫)를 맡았다.
>
>그는 익수(益壽)씨의 여식 영부( 敷)를 아내로 맞아,
>아래로 이이(李耳:字는 伯陽,老聃(노자)으로 칭한다)를 낳으니,
>그는 주(周) 평왕(平王) 때에 태사(太史)로 임명된다.
>
>「사기·노자한비열전(史記·老子韓非列傳)」에 설명하기를,
>
>"노자는 초(楚)나라 고현(苦縣) 역향(歷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이라"했으니,
>이 고현(苦縣)이 바로 초(楚)나라가 멸한 바 있는 바로 그 진(陳) 나라의 고현(苦縣)이다.
>
>또 설명하기를,
>"성(姓)은 이(李) 씨로, 이름은 이(耳), 자(字)는 백양(伯陽),
>죽은 뒤 임금이 내린 시호는 담(聃)으로,
>주(周)의 수장지사(守藏之史:도서관장)를 지냈다"
>
>이 기록은 정사(正史) 가운데 처음으로 이(李) 씨의 한 개인을 명확히 가리킨 것이다.
>
>
>이후 「광운육지(廣韻六止)」는
>「사기」의 설을 따온 「풍속통(風俗通)」을 인용해
>"이(李) 씨가 이 백양(李伯陽:노자)의 후손"이라 여긴다.
>
>이이는
>고대의 성인으로 만사만물에 정통 박식하여 공자가 일찍이 그에게 가 예를 물으니,
>유익함을 얻되 얕지않으니,
>
>설명하기를,
>내가 노자를 보니, 풍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형상이라 하였다.
>노자의 학설은 후세에 전해져 「도덕경(道德經)」 상, 하 편 5천 자를 남겼다.
>
>이이(노자)의 후대 이종(李宗:자는 尊祖)은,
>본래 진(晋)국 사람인데,
>전국시대 위국(魏國) 성읍(城邑) 단간(段干)에 봉해져
>읍(邑)을 성(姓)으로 삼았는데,
>
>사람들은 그를 간목(干木) 대부 또는 단간목(段干木)이라 불렀다.
>위문후(魏文侯)가 매번 그 문앞을 지나갈 때면 반드시 수레에 내려서 걸어갔다.
>
>그는 일찍이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로부터 배움을 구해 숨어서 벼슬하지 않았다.
>
>위문후(魏文侯)가
>그의 재능을 높이 사 그를 찾아보고 관작을 주려 했으나
>단간목은 위문후를 피해 담장을 넘어 도망가 만날 수 없었다.
>위문후는 더욱 존경하여
>단간목의 집에 거마를 몰고가 집 앞에 내려 존경의 뜻을 표했다.
>
>엎드린 측근들이 이해를 못하자
>위문후는 단간목이 비록 누추한 곳에 살고 있지만
>그 현덕한 명성이 천리밖에 가득하므로 내 어찌 그를 존경치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
>이후, 단간(段干)씨는
>후대에 널리 각지에 유포되었으며
>동이(東夷) 국가 산동성 제(齊)나라에도 단간붕(段干朋), 단간륜(段干綸)이 있으며,
>
>같은 동이(東夷) 국가인 한(韓)나라에도
>단간월인(段干越人)이 있고, <전완세가(田完世家)> 에 단간명(段干明)이 있다.
>
>(계속)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