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실의 미스테리(2) 동이족 수령 "고요" - 그림

작성자노자 선|작성시간02.11.30|조회수71 목록 댓글 0
>안원전 선생님 홈페이지에는 소중한 자료들이 너무도 많이 올려져 있습니다 > >본 사이트 내용과 더불어 참고하시면 우리 고대사의 매듭이 >봄 햇살에 눈녹듯이 스르르 풀려질 것입니다 > >최근에 올려진 글을 전문인용 소개합니다 >다소 어려워도 시간이 지나면 소중한 자료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 >감사합니다 > > >- 출처 : 안원전의 담론(http://www.cheramia.net) > > > ><담론194. 당황실의 미스테리-황제헌원, 진시황, 주문왕, 요,순,우,백이와 같은 동이족 혈통 2> > > >


>(그림해설) > >▒ 고요상(皐陶像). > >전설중에 동이족 수령 고요는 >요순(堯舜)시기에 형법을 관장하는 관직인 대리(大理)직에 임명되어 >마침내 관명(官名)족으로 "이(理)" 성(姓)이 되었다. >고자(古字)중에 이(理)와 이(李)는 상통했다. >(傳說中東夷族首領 皐陶 曾任堯舜大理之職 >管掌刑法的官 遂以官命族爲理氏 古字中理與李相通) > >▒ 노자백서(老子帛書), > >곧 <도덕경(道德經)>이니 호남성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출토. >마왕퇴는 지나인에게 동이족 남월국의 소위 오랑캐국으로 회자되는 곳이니 >동이족 노자의 도덕경 출토는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 > ><당황실 이(李)씨 성의 뿌리를 찾아서-동이족 고요(皐陶)> > > >이(李)씨 성은 >현재 한족(漢族)의 7.9%를 차지하는 대성(大姓)으로 >가히 백가(百家)성(姓)의 머리를 차지한다. > >이(李) 씨 성은 본래 동이(東夷)족의 한 갈래인 >"조이(鳥夷) 부락"의 "고요(皐陶:화락하게 즐길 요)"가 "혈연의 시조"가 되는데, > >요순(堯舜)시기에 형법을 관장하는 > "이관(理官)"에 임명된 것으로 인해 이"(理)"가 성(姓)이 되었다. > > >상조(商朝)의 이관(理官)이었던 이정(理征)의 아들 이정(利貞)이 >성(姓)을 얻어 시조가 되었으니, > >노자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혁혁하게 이름이 드러났다. > >이(李) 씨 당(唐) 왕조에 300년 간 국성(國姓)으로 위엄을 떨쳤으며, >12개 정권을 세웠으며, >칭제한 자가 58인이 되었다. > >이(李) 씨 성의 이(李)는 >처음에는 장미과에 속하는 오얏나무 식물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 >이(李) 씨 성의 직접적인 기원은 >상조(商朝) 의 관명(官名)인 "대리(大理)"에서 비롯한 것이다. > >갑골문에는 이(李)라는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李) 씨 성의 기원은 원시인류의 순박한 생활습관과 더불어 밀접한 관계가 있다. > >최초의 "이(李)"는 <설문(說文)>에서 "이(李)"는 열매다" >오얏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며... >씨는 구형으로 여름에 성숙해 홍색광택을 띠고 >맛은 시고 달며, 식용으로 쓰이며, 일명 "가경자(嘉慶子)"라 한다" 하였다. > > ><통지(通志)·씨족략(氏族略)·관직으로 씨를 삼다(以官爲氏)>에 > >"이(李)씨는, >고요(皐陶)가 요(堯)의 대리(大理)가 되었는데, >이로 인해 이 관직에 부름받은 족을 이(理) 씨로 삼았다. >상조(商朝) 반년에 이정(理征)이 이(李)씨로 바꾸었다. > > >중국 성씨 발전사 가운데, >이(李) 씨 성은 주(周) 이후의 제 사적에 보인다. > >「국어(國語)·정어(鄭語)」가운데의 축융(祝融)의 후에 8성(姓), >「진어(晋語) 4」가운데의 황제(黃帝)의 후에 12성(姓), >「좌전(左傳)」에 기재된 서주(西周)의 20성(姓) 모두에 이(李)씨 성은 보이지 않는다. > > >「성해(姓解)」에도 설명하기를, > >"주(周) 이전에 이(李)씨는 보이지 않는다. >「사기(史記)」에 말하기를, "주(周)로부터 노담(老聃)이 있으니, 이(李)씨 성(姓)이다." >이후로 이(李)씨 성(姓)은 점점 증가한다. >이(李) 씨 성의 기원에는 다음의 5종이 있다. > >첫째, > >전설 가운데 동이족 수령인 고요(皐陶)는 >일찍이 요순(堯舜)의 대리직(大理職:형법을 관장하는 관리)에 임명되니, >그 식솔 제족들이 이(理) 씨가 되었는데 >고자(古字)중에 "이(理)"와 "이(李)" 자는 서로 상통해서 쓰는 글자였다. > >둘째, > >노자(老子)는 조상들이 이관(理官)이 되어, >이(理) 혹 이(李)로써 씨(氏)를 삼았다. >또 노자(老子)가 이(李)씨 여자의 소생이라는 설이 있다. > >전설에 이(李)씨 모친이 >81년 동안 뱃 속에 태아를 품고 있으면서, >오얏나무(李樹) 아래를 노닐다가 좌측 장부(腸腑)를 가르고 노자를 낳더니, > >"태어나면서 오얏나무(李樹)를 손으로 가리켜, 이로 인해 성으로 삼았다" >손으로 가리킨 나무를 성(姓)으로 삼아 불러왔다는 것은 망설(妄說)이다. > >셋째, > >춘추시대 조(趙)나라 장령(將領) 무안군(武安君)의 후대에 이좌거(李左車)가 있는데, >그 후예가 이(李)씨가 되었다. > >네 번째, > >북위(北魏)는 이(李)씨로 바꾼 것을 꾸짖었다. > >다섯 번째, 당대(唐代) >서(徐), 병( ), 안(安), 두(杜), >호(胡), 홍(弘), 곽(郭), 마(麻), >선우(鮮于), 장(張), 아포(阿布), >아질(阿跌), 사리(舍利), 주사(朱邪), 동라(董羅) 등 의 씨(氏)가 > >건국에 공(功)이 있다는 이유로 인해 이(李) 씨 성(姓)을 하사 받았다. > >이상에서 > >이(李)씨 성(姓)의 5가지 설명 가운데, >앞의 3종류는 「신당서(新唐書)·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중에 하나의 근원으로 합해지니, >고요(皐陶), 노자(老子), 이좌거(李左車) 동일 세계(世系)중의 인물이 된다. > >이에 대해 일찍이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있으니, > >「승암집(升庵集)」 권 50 ><이씨성은 하나가 아니다(李姓非一)>는 자못 첨예하게 말하여, > >"농서( 西)의 이(李)와 당실(唐室)의 이(李)는 동족이 아니다"고 말하고, >「신당서(新唐書)·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는 왜곡 아첨된 설이라 하여 >"부회왕찬(附會枉撰), 미시지설(媚時之說)"이라 했다. > >진인각(陳寅恪)도 일찍이 > >당 고조 이연(李淵)의 조상 선조에 대해 고증을 진행해, >이연(李淵)의 조상 선조는 조군(趙郡) 이(李)씨의 후예로 여기고, >농서( 西) 이(李) 씨의 후예가 아니라고 말한다. > >이로 인해 그 족(族)은 >조주(趙州) 소경현(昭慶縣)(지금의 하북 융평현(隆平縣)에 장사지내졌다. > > >그러나 >조군 이씨와 농서 이 씨는 그 근원이 하나임이 이미 밝혀진 상태다. > >이상으로부터 가히 알 수 있듯이, >「신당서(新唐書)·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가운데 기록된 세계(世系)에 대해, >세인은 논쟁을 하고 있다. > >그러나, >많은 성씨학의 저작은, 고요(皐陶)가 이(李) 성(姓)의 조상이 된다는 것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다. > >대당(大唐)의 종실(宗室)에 이르면 >이(李)씨는 한(漢) 족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이적(夷狄)에 속한다. > >이미 화하사관이 드러난 유가사관의 필법으로 >이적을 금수시한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이적을 폄하해 설명하기를 > "당(唐)은 이적(夷狄)에 원류(原流)를 두고 있어서, >생각건대 규문(閨門)이 예를 잃어버리는 일이 다르지 않다"라 했다. > >당(唐) 초기의 왕실 세습 이전에는 >문벌을 우선시하는 습속이 있어 >분분히 소리 높여 자신이 세가(世家) 대족의 후예라 칭하곤 했는데 >당 황실가인 이 씨 가문 역시 이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 >당조에 수정(修訂)된 「씨족지(氏族志)」를 보면 >왕실에 불리한 씨족은 모조리 배척해 없앤 동시에 >자기 혈통에 유리한 것은 가지와 잎을 보태어 >이(李) 씨가 서량(西凉) 무소왕(武昭王) 이고(李暠)의 정통후예라 성칭(聲稱)한다. > >왕실의 역사가 이같이 동이족의 혈통을 숨기고 가지를 보태는 형국인데 >일반 서민의 혈통과 역사가 분식됨은 보통이었다. > >「비급신서(秘 新書)」는 >「성찬(姓纂)」 및 「신당서(新唐書)·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를 인용해 기재하기를, > >"이(李)씨는 제(帝) 전욱고양( 頊高陽)의 후예다. >전욱( 頊)은 대업(大業)을 낳고 >대업은 여화(女華)를 낳고 >여화는 고요(咎繇성 고 또는 허물구, 역사 또는 부역 요⇒ 皐陶)를 낳았다" > > >그럼 "고요"는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넘어가자. > >중국 족보사료에 의하면 > >고요(咎繇:皐陶)는 동이부족 수령이 되어, >활동 중심지가 지금의 산동성 곡부(曲阜) 시(市)인 언(偃:奄)이었다고 말한다. >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세기(世紀)>를 인용해 고요(皐陶)에 대해 설명하기를, > >"곡부(曲阜)에서 태어났다. > >곡부(曲阜)는 언(偃) 땅인데, >고로 제순(帝舜)이 이로 인해 사성(賜姓)을 내렸으니 왈 "언(偃)"이다" > >이는 「좌전(左典)」가운데 설명한 바 있는, >"천자가 태어났으므로 사성을 내렸다(天子因生而賜姓)"이다. >고요(皐陶)는 요(堯)가 염황이(炎黃夷:염제, 황제) 연맹 수령이 되었을 때에 >이관(理官)으로 임명되었으니, >곧 사법(司法)을 관장한 장관(長官)이다. > > >「사기오제본기(史記五帝本紀)」에는 > >그가 5종류의 형벌인 >묵(墨:온몸에 먹을 그려넣는 형벌), >의( :코베는 형벌), >비( :발을 제는 형벌), >궁(宮:불알을 떼는 형벌), >대벽(大 :사형)을 > >제정해 책임을 맡아, 죄의 경중에 따라 형량을 다스리고, >또 5형을 쓰지 않는 죄인은 분류를 매기어 내보냄으로써 천하의 인심을 얻었다고 한다. > >전설에, >고요(皐陶)는 선악의 진위(眞僞)를 가리는 일종의 특이한 외뿔 짐승 >해태(  :論衡에 선악을 아는 외뿔짐승의 羊이라 하였다)를 길렀는데, > >이 짐승의 판단으로 시비선악을 잘 내려 >순이 정권을 이양 받은 후에도 대리(大理) 직에 있어 >천하의 죄악을 잘 평정하여 사람들은 편안히 살면서 즐겁게 직업에 종사했다 한다. > >


>(그림설명) > >신화전설에 이(李) 씨 성(姓)의 시조인 고요(皐陶)는 >바로 이 선악을 정확하게 아는 신령한 짐승 덕으로 옥리(獄理)를 잘 판단했다고 한다. > >그는 이 독각기수(獨角奇獸)에 힘입어 형옥(刑獄)을 잘 다스려 명예를 얻었다. > >이 독각기수는 해태로 >해태는 바로 무신인 "치우의 귀면복사신앙"에 기인한 것임을 알면 >고요와 귀면복사의 대표 해태, >혹은 해치와의 결합은 >더욱 동이족 고유의 민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할 수 있겠다. > >------------- > >임직에 있는 동안 고요는 수 차례에 걸쳐 현명한 계책을 내놓았으며,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 반드시 삼가 그 몸을 닦도록 하여, >특별히 "지인(知人)"과 "안민(安民)"을 강조했다고 한다. > >순(舜)은 고요(皐陶)를 최고의 현신(賢臣)으로 여겨 >누구를 후계로 삼아야 할지 물으려 했다. > >그러나 순(舜)은 미처 그럴 새도 없이 >창오에서 우(禹)의 세력에게 쿠데타를 당하고 죽었지만 >대륙의 사서는 순(舜)이 심지어 고요(皐陶)에게 선양하려 했지만 >고요(皐陶)가 먼저 병들어 죽었다고 말한다. > >아무튼 대륙사를 떠들어 보면 >좁쌀만 한 반도식민사관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동이족이었던 고요는 대단한 인물이었음이 틀림없다. > >고요(皐陶)의 아들이 >바로 상고 대륙사에서는 고요(皐陶)보다 더 유명한 백익(伯益)으로 >그는 우(禹)를 타도하고 제위(帝位)까지 올랐다가 >다시 우(禹)의 아들 계(啓)에게 타도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 >고요(皐陶)가 죽은 후, >"그는 육(六)에 장사지내졌다" > >「사기(史記)」는 「괄지지(括地志)」를 인용해 설명하기를, >"안휘 수주(壽州) 안풍현(安豊縣:合肥바로 위) 남쪽 130리에 >옛 육성(六城) 동쪽에, >우(禹)는 그의 어린 자식을 육(六)에 봉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이를 기념해서인지 수주에 우왕묘(禹王廟)가 세워져 있다) > >이후로 육(六)은 다시금 일개 "언(偃)" 성(姓)의 소국(小國)이 된다. > > >그러나 >초(楚)국 목왕(穆王)이 이를 멸해 버렸으니, 계보가 없다. > >고요(皐陶)에게는 >장자 백익(伯益)이 있었는데, > ><제왕세기>에 설명하기를, >"백예(伯 (益))는, 순(舜)왕을 위해 가축을 많이 길렀으므로, >가득 차 넘칠 "영( )" 씨 성(姓)을 사성 (賜姓) 받았다" > >이로써 가히 알 수 있듯이, >백익(伯益)은 잘 훈련된 조수(鳥獸)로 인해 >순(舜)으로부터 "영( )" 성(姓)을 사성(賜姓) 받았으며, >"영( )" 성(姓)은 부락의 수령이 되었다. > >고요(皐陶)의 둘째는 이름이 중견(仲甄)으로, >중언(仲偃)으로도 불렸는데, 거듭 언(偃)이 성(姓)이 되었다. > >이후, 언(偃) 성(姓)은 고요(皐陶)를 조상으로 받들고 성(姓)으로 씨(氏)를 삼았다. > >고요(皐陶)의 후예는 >역우(歷虞), 하(夏), 상(商) 26세 기간에 이관(理官)이 된다. > >고인(古人)이 관명(官名)으로 씨(氏)를 삼은 것에 따라, >고요(皐陶) 및 그 자손은 이(理) 씨가 되었다. > >관(官)으로써 씨(氏)를 삼은 이(理)씨는 > >문제의 이정(理征)이라는 사람 때 이르러, >상(商)의 맨 마지막 왕인 폭군 주(紂) 왕의 이관(理官)으로 임명되어, >상(商) 주(紂)가 혼용혼용무도(昏庸無道)하여 여색에 빠지자, >여러 차례 나아가 간언하고, >법을 지켜 아첨하지 않았으나 >이미 혼음(昏淫)해진 주(紂) 왕은 이를 용납하지 않으므로, 마침내 죽을 화(禍)를 만났다. > >이정(理征)의 처자 설화(契和)씨는 >어린아이 이정(利貞)을 데리고 도망 길에 올라, >지금의 하남(河南) 경내인 이후(伊侯)의 터로 달아났다. >굶주림을 참지 못하다가 나무 한 그루 위에 열린 과실을 보고, >곧 따먹으니 모자(母子)는 겨우 살 수 있었다. > >그 후, >이정(利貞)은 주(紂) 왕이 추격해 잡힐 것을 두려워해 >감히 이(理) 상(姓)을 칭하지 못하고, >목숨을 구한 은공으로 "목자(木子)", 이(李)씨로 개칭했다. > >이것이 후일 "지수위성(指樹爲姓)"의 설이 되었다. >이 설을 생각해 보면, 이(李) 성(姓)의 시원은 상말(商末) 주초(周初)에 해당된다. > >이상으로부터 가히 알 수 있듯이, >이(李)씨 성(姓)은 고요(皐陶)가 혈연의 시조가 되니, >그는 언(偃) 성(姓)의 후예로, 일 >찍이 관(官)으로 씨(氏)를 삼아 이(理) 성(姓)을 칭했다. > >청(淸)의 유학자 진가모(秦嘉謨)가 편집한 「세본(世本)」에 의거해 상고해 보면, >고리(古理), 리(里), 이(李) 3자(三字)는 함께 통한다. > >「사기·오제본기(史記·五帝本紀)」에 고요(皐陶)가 대리(大理)가 되었다 기재하고, > >「관자법법(管子法法)」에 기재하기를, >고요(皐陶)가 이(李<理>)가 되었다 하고, >「사기·위세가(史記·魏世家)」에는 "이극(李克)"이라 기재되어 있고,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이극(里克)" 등등으로 기재되어 있다. > >이리하여, >이(李) 씨 성(姓)은 이관(理官)이었던 >고요(皐陶)가 혈연의 시조가 되었다는 설이 만들어진 것이니, 실제로 망령된 말이 아니다. > > >고요(皐陶)는 >이(李) 씨 성(姓)의 혈연 시조가 되어 정직 과감하고 매우 창조적이었다고 전한다. > >그의 공덕은 아주 깊어서 이(李) 성(姓) 자손의 본보기이자 동시에 교만이 된다. >"지수위성(指樹爲姓)"의 설법에 따라, >강직하여 굽히지 않는 이정(理征)의 아들 이정(利貞)은 >마땅히 이(李) 성(姓)이 성(姓)을 취득한 시조이다. > >한편, > >도교(道敎) 시조 노자는 이름이 이이(李耳)로 >"정사(正史)"에는 이(李)씨 성(姓)의 제 1인으로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 >이성족(李姓族)의 계보는, >이(李) 당왕조(唐王朝)의 상세한 고증으로 인해서 가까스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 >그 혈맥은 번창해 넘친 나머지 가지치고 나간 지엽이 아주 많아졌다. > >현재 「신당서(新唐書)·종실세가표(宗室世家表)」에 기재된 바에 의하면, >이정(理征)의 이(理)를 이(李) 성(姓)으로 고친 후의 종계(宗系)를 다음과 같이 찬술(撰述)하고 있다. > >이정(理征)은 >설화(契和)씨의 여식을 아내로 맞아 창조(昌祖)를 낳았는데, >창조는 진(陳)의 대부(大夫)가 되어, 고현(苦縣)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 >진(陳)은 >서주(西周)의 진국(陳國)으로 >옛터는 지금의 하남성 개봉(開封) 이동(以東), 안휘(安徽) 박현( 縣) 이동(以東)으로 >춘추 말년에 동이족 초국(楚國)에게 멸망되었으며, >고현(苦縣)은 지금의 하남성 녹읍(鹿邑) 현(縣) 동쪽 10리에 있는 마을이다. > >창조(昌祖)는 동덕( 德)을 낳고, >동덕의 증손 석종(碩宗)은 주(周) 강왕(康王)으로부터 >고현(苦縣)에 있는 채읍(采邑)을 하사받았다. > >5세손 건(乾:字는 元果)때에 이르러 >주(周)대의 상어사대부(上御史大夫)를 맡았다. > >그는 익수(益壽)씨의 여식 영부( 敷)를 아내로 맞아, >아래로 이이(李耳:字는 伯陽,老聃(노자)으로 칭한다)를 낳으니, >그는 주(周) 평왕(平王) 때에 태사(太史)로 임명된다. > >「사기·노자한비열전(史記·老子韓非列傳)」에 설명하기를, > >"노자는 초(楚)나라 고현(苦縣) 역향(歷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이라"했으니, >이 고현(苦縣)이 바로 초(楚)나라가 멸한 바 있는 바로 그 진(陳) 나라의 고현(苦縣)이다. > >또 설명하기를, >"성(姓)은 이(李) 씨로, 이름은 이(耳), 자(字)는 백양(伯陽), >죽은 뒤 임금이 내린 시호는 담(聃)으로, >주(周)의 수장지사(守藏之史:도서관장)를 지냈다" > >이 기록은 정사(正史) 가운데 처음으로 이(李) 씨의 한 개인을 명확히 가리킨 것이다. > > >이후 「광운육지(廣韻六止)」는 >「사기」의 설을 따온 「풍속통(風俗通)」을 인용해 >"이(李) 씨가 이 백양(李伯陽:노자)의 후손"이라 여긴다. > >이이는 >고대의 성인으로 만사만물에 정통 박식하여 공자가 일찍이 그에게 가 예를 물으니, >유익함을 얻되 얕지않으니, > >설명하기를, >내가 노자를 보니, 풍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형상이라 하였다. >노자의 학설은 후세에 전해져 「도덕경(道德經)」 상, 하 편 5천 자를 남겼다. > >이이(노자)의 후대 이종(李宗:자는 尊祖)은, >본래 진(晋)국 사람인데, >전국시대 위국(魏國) 성읍(城邑) 단간(段干)에 봉해져 >읍(邑)을 성(姓)으로 삼았는데, > >사람들은 그를 간목(干木) 대부 또는 단간목(段干木)이라 불렀다. >위문후(魏文侯)가 매번 그 문앞을 지나갈 때면 반드시 수레에 내려서 걸어갔다. > >그는 일찍이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로부터 배움을 구해 숨어서 벼슬하지 않았다. > >위문후(魏文侯)가 >그의 재능을 높이 사 그를 찾아보고 관작을 주려 했으나 >단간목은 위문후를 피해 담장을 넘어 도망가 만날 수 없었다. >위문후는 더욱 존경하여 >단간목의 집에 거마를 몰고가 집 앞에 내려 존경의 뜻을 표했다. > >엎드린 측근들이 이해를 못하자 >위문후는 단간목이 비록 누추한 곳에 살고 있지만 >그 현덕한 명성이 천리밖에 가득하므로 내 어찌 그를 존경치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 >이후, 단간(段干)씨는 >후대에 널리 각지에 유포되었으며 >동이(東夷) 국가 산동성 제(齊)나라에도 단간붕(段干朋), 단간륜(段干綸)이 있으며, > >같은 동이(東夷) 국가인 한(韓)나라에도 >단간월인(段干越人)이 있고, <전완세가(田完世家)> 에 단간명(段干明)이 있다. > >(계속)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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