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의 위치에 대해서 재론합니다
이 대방을 정확히 알아야만 삼국의 위치를 제대로 추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 동이의 일부였던 AD670년 이전 "왜"의 위치를 제대로 알수 있습니다
관련 지도는 아래편에 별도로 모아 두었습니다
다른 좋은 자료들이 있으시면 소개바랍니다
(지명추적 : 대방)
(대방은 요동군에서 분리되고 하북성 석문에 접하여 있었다 !)
(대방의 중요성)
고구려 수도가 국내성이고,
후한이 낙양에 있었을 때인 196 - 200년 사이에
후한의 공손강이 요동군의 일부를 대방군으로 하였다
(삼국지 권 30)
대방의 위치는 동이국인 고구려, 백제, 신라 왜의 위치를 규명하여 주는 중요한 지명인데
요동군을 밝혀주는 요소도 된다.
대방의 위치를 밝히지 않는 한
결코 동이위치는 밝혀지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방의 위치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아는데 핵심적인 곳이다.
- 한, 왜, 백제(韓, 倭, 百濟)의 수도 및 낙랑군의 위치를 알수 있다
- 300년대의 신라 위치를 알 수 있다.
- 요동군의 위치를 알수 있다.
(대방의 위치에 대한 중국사서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1) 삼국지 권30
한대방지남 (韓帶方之南)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2) 삼국지 권30
왜인재대방동남 (倭人在帶方東南) (삼국지권30)
(왜인은 대방의 동남에 있다)
중국25사에 의하면 왜인(倭人)은
대방 남쪽,
"회계, 담이(남월), 주애, 이주, 단주"가 있는 곳에 있었다
(삼국지, 후한서, 남제서, 양사, 남사)
(운영자 개인생각)
상기 중국정사에는 분명히 왜국은 대방 남쪽인
- 회계
- 담이(남월)
- 주애
- 이주
- 단주
에 있다고 하였는데 아무도 여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정말 이상하고도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왜 관심들을 두지 않을까 ?
"왜국"이 AD670년 "일본"으로 국호 변경하기전의 왜국의 위치와 관련된 지명인데 말이다
지도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양 삼국 고지고와 현지도중 상기지명이 연관성있게 발견된 지도가 있다면 소개바랍니다
상기할 것은 지금 일본에서는
670년 이전에 지금의 일본땅에서 일본인들이 양자강 일대에 진출하여
양자강 이남을 다스렸다는 연구가 한창이며
이미 책까지 나왔다는 사실과
이러한 것이 일본학계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왜국의 양자강 이남 존재는
본 홈페이지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정사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소개하는 것이며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증빙한
일본사서의 일시집중관측지가 대만 포함 남지나 해상으로 나타나는 사실도
간과 하여서는 안된다고 본다
670년 이전 "동이 왜"는 분명히 양자강 이남에 있었음을 중국정사는 증빙하고 있다
(왜국 관련 지명도)
(3) 후한서 권 85
질환지간복범요동서안평살대방령(質桓之間復犯遼東西安平殺帶方令)
(질제와 환제 사이에 다시 요동 서안평을 침범하여 대방현령을 죽였다.)
(4) 삼국지 권 30
환영지말한예강성군현불능제민다류입한국건안중공손강분둔유현이남황지위대방군
(桓靈之末韓濊彊盛郡縣不能制民多流入韓國建安中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爲帶方郡)
(환제와 영제의 말년에 한과 예가 강성해져서 그 군현을 제어할 수 없이되자 많은 백성들이 한국으로 도망해 들어 갔다. 건안시대에 공손강이 남쪽지방 거친땅을 쪼개서 대방군을 삼았다.)
(5) '남제서'에서
백제는 요동에 광양, 조선, 대방, 광능, 청하, 낙랑, 성양등이 있었다.
북제서에 성양왕, 청하왕(城陽王 淸河王)이 있는데
북제(北齊)는 550-577년까지 28년간 있었다.)
지금 하북성에 청하가 있으니 대방도 이 지역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
(장안 중심의 중국기록을 종합하여 보면 대방은)
① 강회(양자강과 회수)의 북쪽에 있어야 하고
② 위(衛)와 회계의 서북쪽에 있어야 하고
③ 요(遼)의 동쪽이며 안평의 서쪽에 있어야 하고
④ 청하가 있는 지역이어야 한다.
(결국)
하북성 청하, 안평의 서쪽이고
요의 동쪽인 태행산맥의 동쪽에 대방(帶方)이 있음이다.
한족들의 기록이 위와 같은데 우리의 기록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의한 대방(帶方))
① 온(온음"도")조왕(溫祚王)
온조왕 동명의 후손으로 구이가 있어 어짐과 신의에 돈독하여는데
나라를 대방고지에 세웠다.
구이는 구수왕(仇首王:214-233)과 고이왕(古爾王:234-286)을 나타내고 있다.
② 286년 책계왕(責稽王)
고구려가 대방을 치니 대방이 구원을 청하므로 군사를 내어 구원하고
고구리가 원망하므로 침략을 염려하여 아차성과 사성(阿且城과 蛇城)을 수리 하였다.
③ 개로왕(蓋鹵王)
대방태수마장무(帶方太守馬張茂)를 위(魏)에 보냈다.
증토축성(蒸土築城 : 연와로 성을 쌓았다.)
연하수언(緣河樹堰:하수=한수)
하수를 따라 제방을쌓았는데 사성의 동에서 숭산(崇山)까지 쌓았다.
그리고 한성이 고구리군에 함락되고 아차성(阿且城)아래에서 돌아가셨다.
472년에는 백제의 대방군이 있는데
한수, 하수, 숭산, 사성, 아차성, 하수의 제방, 벽돌의 성터가 있어야
대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구려본기에서 대방)
④ 태조(太祖) 94년
한의 요동 西安平을 쳐서 대방령을 죽이고 낙랑태수 처자를 사로 잡았다.
- 247년에 고구려가 평양성으로 옮겼다
- 265년에 위가 망하였다
- 315년 고구려가 대방군을 평정했다. (302 ~ 420년 까지 중국은 5호16국시대 였다)
(열전 및 신라본기)
⑤ 672년 김유신전에서
'당군은 말갈과 함께 석문의 들에다 진을 치고
법민왕은 장군 의복, 춘장 등을 보내어 대방의 들에다 진을 쳤다.
(당군여말갈영어석문지야왕(법민)견장군의복춘장등어지영어대방지야)
(唐軍與靺鞨營於石門之野王(법민)遣將軍義福春長等禦之營於帶方之野)
⑥ 300년 낙랑, 대방이 신라에 항복하였다
(위의 삼국사기에서 대방관계를 종합하면)
① 아차성, 사성, 한성, 하수, 숭산(阿且城, 蛇城, 漢城, 河水, 崇山)이 있어야 하고
② 요(遼)의 동쪽이며 안평의 서쪽에 있어야 하고
③ 석문이 있어야 한다.
지금
하북성에는 안평, 석문이 있고
하남성에는 숭산이 있으며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이 하수(河水) 또는 한수(漢水)라 부르는 황하(黃河)가 있고
숭산(崇山)의 북에서 하수를 따라 동으로 제방이 있다.
'삼국사기'의 내용도 한족의 사서와 비슷하지만
아주 정확한 기록이 있음이니
"석문(石門)과 대방"이 접하여 있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대방에 관하여 종합적으로 정리 하면)
1. 회계(會稽), 이주, 위(衛)의 서북쪽에 있어야 하고
2. 강회(江淮:양자강과 회수)의 북쪽에 있으며
3. 숭산(崇山) 북쪽에서 동으로 흐르는 한수(漢水) 또는 하수(河水)의 북쪽에 있어야 하고
4. 청하(淸河)가 있는 곳에 있으며
5. 요(遼)의 동쪽 즉 태행산맥의 동쪽에 있고 안평(安平)의 서쪽에 있어야 하는데
6. 석문과 대방(帶方)은 진을 치고 대적하고 있었으니 접하여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동양의 모든 사서에서 이보다 정확하게 대방을 밝힐 수는 없을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한족의 정사와 '삼국사기'에서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방은 태행산맥의 동쪽이며
안평의 서쪽 석문 유역으로 표기하든지
석문접대방(石門接帶方)으로 하든지 하면 될 것이다.
석문(石門)의 바로 남쪽에는
찬황(贊皇:西安平)이 있고 석성(石城)이 있고 樂山이 있다.
또한
'삼국지'에서 대방군은 요동군에서 분리되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지도상에서 대방의 위치를 확인해보시고
네티즌 여러분들이 더욱 연구하시어
이보다 더 나은 "대방"에 관련된 과학적인 자료가 나오길 고대합니다
대방, 낙랑은 절대 한반도로 가지고 올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방관련 지명도)
(대방, 석문 위치도)
- 하북성 "석문과 대방"은 접하여 있었다
(중국에서 제일 오래된 송나라 "우적도" 상 왜 관련 지명)
(일본서기에 나오는 일식기록의 최적관측지 : 서울대 천문학 박창범 교수)
- 남지나 해상으로 나온다
(중국 교과서 내용)
(천하고금대총편람도 상의 대마도, 일본, 가라국)
- 이지도는 16세기 지도인데 대마도 일본이 "대만"으로 표시되어 있다
- 원본을 확인해본 결과 하단 우측 세 번째 섬이 "가라국"으로 표시되어 있다
(중국 군사지도)
- 본 홈페이지 에서는 위(衛)가 670년 이전 왜국의 수도가 아니였나 하고 추적하고 있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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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지하철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이 대방을 정확히 알아야만 삼국의 위치를 제대로 추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 동이의 일부였던 AD670년 이전 "왜"의 위치를 제대로 알수 있습니다
관련 지도는 아래편에 별도로 모아 두었습니다
다른 좋은 자료들이 있으시면 소개바랍니다
(지명추적 : 대방)
(대방은 요동군에서 분리되고 하북성 석문에 접하여 있었다 !)
(대방의 중요성)
고구려 수도가 국내성이고,
후한이 낙양에 있었을 때인 196 - 200년 사이에
후한의 공손강이 요동군의 일부를 대방군으로 하였다
(삼국지 권 30)
대방의 위치는 동이국인 고구려, 백제, 신라 왜의 위치를 규명하여 주는 중요한 지명인데
요동군을 밝혀주는 요소도 된다.
대방의 위치를 밝히지 않는 한
결코 동이위치는 밝혀지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방의 위치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아는데 핵심적인 곳이다.
- 한, 왜, 백제(韓, 倭, 百濟)의 수도 및 낙랑군의 위치를 알수 있다
- 300년대의 신라 위치를 알 수 있다.
- 요동군의 위치를 알수 있다.
(대방의 위치에 대한 중국사서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1) 삼국지 권30
한대방지남 (韓帶方之南)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2) 삼국지 권30
왜인재대방동남 (倭人在帶方東南) (삼국지권30)
(왜인은 대방의 동남에 있다)
중국25사에 의하면 왜인(倭人)은
대방 남쪽,
"회계, 담이(남월), 주애, 이주, 단주"가 있는 곳에 있었다
(삼국지, 후한서, 남제서, 양사, 남사)
(운영자 개인생각)
상기 중국정사에는 분명히 왜국은 대방 남쪽인
- 회계
- 담이(남월)
- 주애
- 이주
- 단주
에 있다고 하였는데 아무도 여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정말 이상하고도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왜 관심들을 두지 않을까 ?
"왜국"이 AD670년 "일본"으로 국호 변경하기전의 왜국의 위치와 관련된 지명인데 말이다
지도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양 삼국 고지고와 현지도중 상기지명이 연관성있게 발견된 지도가 있다면 소개바랍니다
상기할 것은 지금 일본에서는
670년 이전에 지금의 일본땅에서 일본인들이 양자강 일대에 진출하여
양자강 이남을 다스렸다는 연구가 한창이며
이미 책까지 나왔다는 사실과
이러한 것이 일본학계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왜국의 양자강 이남 존재는
본 홈페이지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정사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소개하는 것이며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증빙한
일본사서의 일시집중관측지가 대만 포함 남지나 해상으로 나타나는 사실도
간과 하여서는 안된다고 본다
670년 이전 "동이 왜"는 분명히 양자강 이남에 있었음을 중국정사는 증빙하고 있다
(왜국 관련 지명도)
(3) 후한서 권 85
질환지간복범요동서안평살대방령(質桓之間復犯遼東西安平殺帶方令)
(질제와 환제 사이에 다시 요동 서안평을 침범하여 대방현령을 죽였다.)
(4) 삼국지 권 30
환영지말한예강성군현불능제민다류입한국건안중공손강분둔유현이남황지위대방군
(桓靈之末韓濊彊盛郡縣不能制民多流入韓國建安中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爲帶方郡)
(환제와 영제의 말년에 한과 예가 강성해져서 그 군현을 제어할 수 없이되자 많은 백성들이 한국으로 도망해 들어 갔다. 건안시대에 공손강이 남쪽지방 거친땅을 쪼개서 대방군을 삼았다.)
(5) '남제서'에서
백제는 요동에 광양, 조선, 대방, 광능, 청하, 낙랑, 성양등이 있었다.
북제서에 성양왕, 청하왕(城陽王 淸河王)이 있는데
북제(北齊)는 550-577년까지 28년간 있었다.)
지금 하북성에 청하가 있으니 대방도 이 지역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
(장안 중심의 중국기록을 종합하여 보면 대방은)
① 강회(양자강과 회수)의 북쪽에 있어야 하고
② 위(衛)와 회계의 서북쪽에 있어야 하고
③ 요(遼)의 동쪽이며 안평의 서쪽에 있어야 하고
④ 청하가 있는 지역이어야 한다.
(결국)
하북성 청하, 안평의 서쪽이고
요의 동쪽인 태행산맥의 동쪽에 대방(帶方)이 있음이다.
한족들의 기록이 위와 같은데 우리의 기록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의한 대방(帶方))
① 온(온음"도")조왕(溫祚王)
온조왕 동명의 후손으로 구이가 있어 어짐과 신의에 돈독하여는데
나라를 대방고지에 세웠다.
구이는 구수왕(仇首王:214-233)과 고이왕(古爾王:234-286)을 나타내고 있다.
② 286년 책계왕(責稽王)
고구려가 대방을 치니 대방이 구원을 청하므로 군사를 내어 구원하고
고구리가 원망하므로 침략을 염려하여 아차성과 사성(阿且城과 蛇城)을 수리 하였다.
③ 개로왕(蓋鹵王)
대방태수마장무(帶方太守馬張茂)를 위(魏)에 보냈다.
증토축성(蒸土築城 : 연와로 성을 쌓았다.)
연하수언(緣河樹堰:하수=한수)
하수를 따라 제방을쌓았는데 사성의 동에서 숭산(崇山)까지 쌓았다.
그리고 한성이 고구리군에 함락되고 아차성(阿且城)아래에서 돌아가셨다.
472년에는 백제의 대방군이 있는데
한수, 하수, 숭산, 사성, 아차성, 하수의 제방, 벽돌의 성터가 있어야
대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구려본기에서 대방)
④ 태조(太祖) 94년
한의 요동 西安平을 쳐서 대방령을 죽이고 낙랑태수 처자를 사로 잡았다.
- 247년에 고구려가 평양성으로 옮겼다
- 265년에 위가 망하였다
- 315년 고구려가 대방군을 평정했다. (302 ~ 420년 까지 중국은 5호16국시대 였다)
(열전 및 신라본기)
⑤ 672년 김유신전에서
'당군은 말갈과 함께 석문의 들에다 진을 치고
법민왕은 장군 의복, 춘장 등을 보내어 대방의 들에다 진을 쳤다.
(당군여말갈영어석문지야왕(법민)견장군의복춘장등어지영어대방지야)
(唐軍與靺鞨營於石門之野王(법민)遣將軍義福春長等禦之營於帶方之野)
⑥ 300년 낙랑, 대방이 신라에 항복하였다
(위의 삼국사기에서 대방관계를 종합하면)
① 아차성, 사성, 한성, 하수, 숭산(阿且城, 蛇城, 漢城, 河水, 崇山)이 있어야 하고
② 요(遼)의 동쪽이며 안평의 서쪽에 있어야 하고
③ 석문이 있어야 한다.
지금
하북성에는 안평, 석문이 있고
하남성에는 숭산이 있으며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이 하수(河水) 또는 한수(漢水)라 부르는 황하(黃河)가 있고
숭산(崇山)의 북에서 하수를 따라 동으로 제방이 있다.
'삼국사기'의 내용도 한족의 사서와 비슷하지만
아주 정확한 기록이 있음이니
"석문(石門)과 대방"이 접하여 있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대방에 관하여 종합적으로 정리 하면)
1. 회계(會稽), 이주, 위(衛)의 서북쪽에 있어야 하고
2. 강회(江淮:양자강과 회수)의 북쪽에 있으며
3. 숭산(崇山) 북쪽에서 동으로 흐르는 한수(漢水) 또는 하수(河水)의 북쪽에 있어야 하고
4. 청하(淸河)가 있는 곳에 있으며
5. 요(遼)의 동쪽 즉 태행산맥의 동쪽에 있고 안평(安平)의 서쪽에 있어야 하는데
6. 석문과 대방(帶方)은 진을 치고 대적하고 있었으니 접하여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동양의 모든 사서에서 이보다 정확하게 대방을 밝힐 수는 없을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한족의 정사와 '삼국사기'에서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방은 태행산맥의 동쪽이며
안평의 서쪽 석문 유역으로 표기하든지
석문접대방(石門接帶方)으로 하든지 하면 될 것이다.
석문(石門)의 바로 남쪽에는
찬황(贊皇:西安平)이 있고 석성(石城)이 있고 樂山이 있다.
또한
'삼국지'에서 대방군은 요동군에서 분리되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지도상에서 대방의 위치를 확인해보시고
네티즌 여러분들이 더욱 연구하시어
이보다 더 나은 "대방"에 관련된 과학적인 자료가 나오길 고대합니다
대방, 낙랑은 절대 한반도로 가지고 올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방관련 지명도)
(대방, 석문 위치도)
- 하북성 "석문과 대방"은 접하여 있었다
(중국에서 제일 오래된 송나라 "우적도" 상 왜 관련 지명)
(일본서기에 나오는 일식기록의 최적관측지 : 서울대 천문학 박창범 교수)
- 남지나 해상으로 나온다
(중국 교과서 내용)
(천하고금대총편람도 상의 대마도, 일본, 가라국)
- 이지도는 16세기 지도인데 대마도 일본이 "대만"으로 표시되어 있다
- 원본을 확인해본 결과 하단 우측 세 번째 섬이 "가라국"으로 표시되어 있다
(중국 군사지도)
- 본 홈페이지 에서는 위(衛)가 670년 이전 왜국의 수도가 아니였나 하고 추적하고 있음
(감사합니다)
============================================
▷◁ 대구지하철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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