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올린 글은 월간인테리어에 연재되고있는 권영걸교수님의 글입니다. (made in taegu 지도위원으로 계시는 김창호님께서도 권영걸교수님을 도와 공간디자인 16강 집필에 참여하셨습니다.) 空과 間 원초적‘공간(空間)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은‘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인간에게는 가장 기본이고 본질적인 의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더욱이 공간이란 정말로 비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매우 희박하게 채워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비어 있음과 비어 있음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에까지 이르면 공간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심한 혼돈에 빠져버린다. 공(空)이란 하늘과 땅 사이와 같이 비어 있으면서 계속 퍼져가는 성질의 것으로, 감촉 할 수도 측정할 수도 없는 것인 동시에 꽉 차 있는 물질의 본질적 형식이기도 하다. 간(間)이란 풀이하면 문(門) 사이로 햇빛(日)이 비친다는 것이니 속이 빈 사이의 틈을 의미하지만, 바꾸어 말하자면 도량의 개념, 즉 공간에 있어서의 거리를 뜻한다. 예를 들어 기둥과 기둥 사이를 뜻하는 주간(柱間)이나, 때와 때 사이를 의미하는 시간(時間)을 말할 때와 같은 것이다. 우리 옛사람들의 행복을 뜻하던 `삼간초가(三間草家) 집을 짓고···’ 라는 말에도 우리의 관습적 척도인 간(間)이 있는 바, 그것도 기둥과 기둥 사이의 주간이 곧 행복의 공간인 것이다. 따라서 공간(空間)이라는 문자가 가지는 의미는 ‘비어있는 무엇이 만드는 틈’으로, 공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특히 동양사상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비어있음의 유용성과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이는 서양의 인식론에서와 같은‘물체와 물체의 사이’또는‘물체의 주위’로서의 공간이 아니며, 그 자체로서 하나의 존재이자 실존현상이다. 또한 기(氣)철학에서는 시공을 조정하는 공간디자인이라는 행위를 ‘기를 배열하는 일’로 본다. 그 배열의 구체성을 결정하는 형식을 이(理)라 하며, 기 배열의 가장 기본적 형식을 허실(虛實)로 보고 있다. 허와 실은 보통 기취(氣聚)의 밀도에 따라 상대적으로 인식되는 개념이며 실(實)로 구획되어지는 허(虛)를 보통 공간이라 표현하지만, 공간은 기하학적 무(無)가 아니라 기의 충만태로 보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공간은 기의 사회의 동태일 뿐이다. 공간觀 ‘공간’이란 수학과 물리학 혹은 자연철학의 일부분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개념으로, 공간관(觀)은 인간의 사상사(史)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 많은 성과를 이루어 왔다. 공간에 대한 인식이 각 시대의 사회사상과 세계관에 따라 변천하여 온 만큼, 공간에 대한 논의의 전개과정도 철학과 자연과학에서의 공간관을 고찰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공간개념은 공간을 모든 장소(topos:place)의 총화로 해석하는 한편, 방향성이라는 특성과 함께 동적인 장(場)으로서의 장소이론을 제시하여 고대의 세계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뉴턴(Newton)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실재(being)만을 진실로 간주했던 플라톤(Plato) 이후 유클리드 기하학1) 에 바탕을 둔 절대적 공간개념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는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공간은 활성력이 없고 동질적이고 변화가 없으며 어디서나 동일하다. 공간과 시간은 별도의 것이어서 서로 침범할 수 없고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 공간과 물질도 역시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뉴턴은 시간 역시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시간은 지속적이며, 한 방향으로 항상 변함없이 흐르는 억제할 수 없는 물줄기라는 것이다. 비록 인간의식이 치과의자에 누워 있거나 또는 청룡열차를 타는 것에 따라 시간을 다르게 느낀다 할지라도, 시간 그 자체는 의식 외부에 존재한다. 시간은 인간의 일과 무관한 거대한 제트기류로 인식되는데 그것의 변화율은 영원히 일정한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또 그와 동시대의 사람으로서 라이프니츠(Leibniz)는 공간을 사물간의 관계로 파악하였다. 그는 단자(單子, monad)들이 질서 있는 관계를 이루며 차지하는 장소가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가 상정한 공간 개념은 질서 있게 공존하는 사물들이 전제되지 않고는 생각될 수 없는 것이었다. 칸트(Kant)는 뉴톤 물리학의 기초 위에서 공간을 모든 인간의 마음에 구비된 보편적 형식이자 우리들의 세계상(像)을 구성하는 지(知)의 타고난 형식으로 보았으며, 질료(質料, matter)와는 다른, 질료로부터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이상과 같은 공간관이 서양사상사 속에서 계보를 이루며 주목을 끌어왔다. 뉴턴에 의해 확립된 고전물리학의 세계는 모더니즘의 과학적 토대를 제공하였으며, 공간은 절대적 수치로 치환 가능한 독립변수로 취급되었다. 이는 공간이 물리적 요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며,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파악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20세기초까지만 해도 철학과 과학은 시간을 존재로 보고 있었다. 모더니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시간을 존재로 보고 그것을 독립변수로 취급할 것을 가르쳐왔다. 즉 시간을 공간과 분리된 존재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공간, 시간, 빛에 대한 뉴턴의 개념은 우리의 선험적 지식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그것들은 자명한 것처럼 보였으며, 오랫동안 우리의 상식으로 굳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로 넘어와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이며 단지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을 선언하면서 모든 것을 전도시켰다. 그는 일반적인 3차원 공간을 확대시켜 사물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일련의 사건으로 해석하여 공간개념을 4차원적 관계의 장으로 확대하였다. 그는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의 측정을 위해 고안된 개념일 뿐임을 밝혔다. 고전물리학의 우주관이 붕괴되 고 새로운 세계관이 탄생한 것이다. 중국의 선승 승조대사(勝肇大師)는 그의 저술 조론(肇論)에서 ‘물질은 본래 공(空)한 것이며 과거와 미래가 없고 천류(遷流)하지도 않으며 동요하지도 않는다’는 물질론을 제시한 바, 그가 말하는 공(空)의 성질은 오히려 형태가 있는 사물의 본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반야심경이 말하는 ‘색(色)은 공이요, 공(空)은 곧 색이다’ 라는 것과 같은 맥락의 생각이다. 서양의 공간론은 일찍이 사물을 통해 설명되어 왔으며 공간을 독립된 대상으로 파악한 반면, 동양의 공간론은 공간과 시간적 형태를 일원론적 이원으로 보며 시(時)와 공(空)을 상통(相通)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자연과학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서양의 공간관이 끊임없이 변화해온 것에 비해, 동양의 공간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급변하지는 않았다. 이는 동양의 공간관이 정체되어서가 아니라, 본디부터 인간과 공간과 사물을 상대적인 관점과 통합적인 시각에서 생각했던 점에 기인하는 것이다. 공간의 인식 철학과 자연과학에 근거한 공간 개념들을 현상적인 공간에서 우리가 쉽게 인식하고 실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공간은 그 자체로서 지각될 수가 없고, 오로지 형태의 네가티브2)로서만 인식 될 수 있기 때문에 공간을 인간화하는 실존으로서의 형태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자신의 감각기관의 능력 한계 내에서 오직 실존(實存)을 통한 공간의 유추를 경험할 뿐이다. 공간의 인상은 수많은 단편화된 공간경험의 통합을 통해서 형성된다. 인상의 형성이란,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무엇인가 새로운 가치를 얻는 일이다. 공간 그 자체는 감지할 수 없는 것이지만 공간을 충만 시키는 것, 예를 들어 빛 또는 물(物)과 같은 물리적인 요소를 매개로 하여 감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과 인간은 심적 연관을 갖는다. 그래서 공간디자인의 중심 개념도 ‘형태’로 귀결된다. 이를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면, 테제로서의 '공간’과 안티테제로서의 ‘형태’가 종합될 때에 환경(milieu)이라는 개념이 탄생한다. 공간디자인은 인간을 에워싼 모든 요소들과 유일한 독립변수인 인간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꾀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부 여해나가는 활동인 것이다. 공간은 사물과 사물간의 상관관계에 의해 인식되며, 사물은 다시 인간에 대해 정신적 영향을 발생시킨다. 공간은 그저 비어있는 단순한 공허(空虛)이거나 무제한적인 용기(容器)가 아니며, 지각할 수 있는 사물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성립하고 이러한 사물간의 관계를 통해 공간에 대한 인식의 틀이 형성된다. 우리는 공간을 볼륨(volume)으로 파악하는 과정에서 주변 대상물들간의 역학적 작용에 의해 크기와 방향, 밀도 등을 가진 하나의 총체적인 힘으로 느끼게 된다. 즉 우리가 공간을 경험할 때 공간을 개별적인 요소 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된 힘으로 인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공간인식은 심리적 장(場)이론에 의해 설명되는데 그 힘은 지각장(field of perception) 내에서 방향, 크기, 영역을 가지고 있고, 장의 상태는 그 장에 작용하는 모든 힘들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장(場)이론과 공간행태는 제2講과 제3講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인간의 공간행태는 그 움직임이 너무나 다양하고 그 변화가 급전하므로, 공간의 인식은 그 당시의 상황에 부합되어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된다. 따라서 인간이 느끼는 공간적 체험이란 자신이 놓여진 상황과 실존적 공간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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