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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정명론과 노자의 무명론의 비교

작성자노자 善|작성시간06.04.21|조회수1,218 목록 댓글 0
공자의 정명론과 노자의 무명론의 비교
-- 그 논리와 사고 방식의 대립을 중심으로 --

손영식(울산대 철학과)

차 례

1. 들어 가는 말
2. 본론
2.1, 정명론(正名論)
2.11, 역할의 집합으로서 개인
2.12, 덕목의 집합으로서 인(仁)
2.13, 충서(忠恕)
2.14, 충서 이론의 변용
2.15, 개인과 사회의 조화
2.2, 무명론(無名論)
2.21, 명(名) 부정의 논리
2.22, 사회와 역사의 분석
2.23, 명 부정과 힘의 논리
3. 맺는말


1. 들어 가는 말
선진(先秦) 시대에 나온 문헌 가운데 『논어』와 『노자 도덕경』은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우선 그것들은 표현 방식에서 부터 차이가 난다. 논어와 도덕경은 대화체와 운문체가 문체상의 차이점으로 보통 지적된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그런 문체상의 차이가 아니라 서술 방식의 차이이다. 논어는 긍정적 서술이 주라면 도덕경은 부정적 서술이 주이다.1) 이 서술상의 차이는 단순한 표현 방식의 차이일 뿐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사고 방식 (혹은 시각)의 차이에서 유래하며, 나아가 이 사고 방식의 차이는 현실 파악 방식이나 현실에 대한 처방의 차이를 결정한다. 이 사고 방식의 차이는 그들의 근본적인 관심에서 유래한다. 공자의 경우 당시에 무너져 가던 주나라의 제도를 회복하려 했으므로 `무엇 무엇을 행하라'는 것을 주로 말한다. 이는 표현상으로는 긍정적 서술로, 논리상으로는 정명론으로 나타난다. 노자는 사회 제도와 문명이 주는 억압과 혼란을 비판하고 그런 것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따라서 사회와 문명의 비판은 부정적 서술로 나타나고 논리상으로는 무명론으로 나타난다.
사고 방식의 차이는 또한 그들이 가진 논리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리 혹은 사고 방식은 그들의 전 사상 체계에 일관되고 있다. 이 글은 그들의 논리를 제시하고, 그 논리가 어떻게 그들의 체계에 일관되고 있는가를 보여 주고자 한다.
이 글은 공자의 정명론이 먼저 나오고 이것에 대한 반격으로서 노자의 무명론이 나왔다고 보고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노자서(老子書)의 성립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노자 도덕경은 공자 이후에 성립되었다는 결론이 많다.2) 필자의 주된 관심은 그들의 역사적 선후 관계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그들 철학의 전 체계가 어떤 근본적인 논리와 사유 형식에 근거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선진 시대의 철학이란 혼란한 당시의 상황을 대상으로 전개한 끝없는 사유의 실험3)이라 할 수 있다. 공자와 노자는 그 사고 방식의 극한적 대립을 보여 준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사유의 실험의 극단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4) 사유의 형식 혹은 논리를 명확히 대비시켜서 밝히기 위해서 필자는 일단 정명론에 대한 반대 명제로서 무명론이 나왔다고 보고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2. 본 론
여기에서 말하는 공자의 사상은 논어에 한정시키며,5) 노자도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사상을 말한다. 이 두 책에서 보이는 공자와 노자의 사고 방식은 그 근원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논어의 전편을 흐르는 일관된 맥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며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안연11)라는, 즉 "정치란 바로 잡는 것이다(政者는 正也)"(안연 17)라는 정명론6)에 있다.7) 노자의 전체를 꿰뚫고 있는 사고 방식은 "차원 높은 덕은 덕스럽지 않으므로 덕이 있고, 차원 낮은 덕은 덕을 잃지 않으므로 덕이 없다(上德은 不德이므로 是以로 有德하고, 下德은 不失德하므로 是以로 無德이다) (38장)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들을 단순화시키면, 정명론은 A=A 라는 것이고; 노자의 경우는 A=~A, ~A=A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한다(君君)'는 것은 "A는 A다워야 한다"는 것, 즉 "A=A이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노자 38장은, 상덕(上德)의 경우, 덕을 A라고 하면, ~A=A [~A=不德, A=有德], 하덕(下德) 의 경우 ~~A=~A [~~A=不失德, ~A=無德]라는 것, 즉 A=~A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네 번 나오는 `덕'이 모두 약간씩 의미를 달리하지만 단순화 형식화를 위하여 그 차이는 무시한다.)
이것은 논리의 경우, 동일율(A=A), 모순율(A≠A), 배중율(A or ~A)로 이루어지는 형식 논리를 따르는 것이 공자의 입장이라면, 그것을 배격하고 모순의 공존을 인정하는 것이 노자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A=~A는 문제가 있는 표현이지만 간략함을 위하여 그냥 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모순의 공존'이고,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립의 공존'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차이는 몇몇 어구나 명제상의 차이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고 방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들의 사상의 전 체계에 그 사고 방식의 차이가 나타난다.

2.1, 정명론
논어에 보이는 공자의 거의 모든 사상은 A=A 라는 정명론으로 연결된다.

2.11, 역할의 집합으로서 개인
정명론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는 말로 보통 요약된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임금답고 신하다운지가 문제가 된다. 그것은 예(禮)가 결정해 준다. 주례(周禮)에 따르는 행동만이 임금답고 신하답다는 것이 공자의 견해이다. 그리고 왜 그런 예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이유 없이 그것은 `마땅히' 해야 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한다. 즉 의(義)이기 때문이다. 벌거숭이 존재자, 혹은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을 유가는 다루지 않는다. 유가에서 말하는 인간은 사회에 있는 무수한 인간 관계 속에서 여러 역할을 맡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란 역할들의 집합적 총체의 담지자이다. 한 인간의 하루란 아니 일생이란 역할 교체의 연속이다. 예컨대 집에 있을 때 아버지 앞에서는 아들로, 형 앞에서는 동생으로 행동하다 학교에 가면 선생 앞에서는 학생으로, 친구들과 있을 때는 친구로서 역할을 한다. 따라서 `君君 臣臣 父父 子子'는 군신부자의 네 사람에 대한 말이 아닌 어떤 한 개인에 대한 말이 될 수 있다. 한 개인은 임금이면서 동시에 신하이고 아버지이고 아들일 수 있다. [임금이면서 신하인 경우; 周의 봉건제에서는, 제후는 천자에 대해서는 신하이지만 자기의 신하에 대해서는 임금이다] 유가에서 볼 때 사회란 인간 관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 관계란 언제나 상대와 짝을 이루는 관계이다. 예컨대 임금-신하, 아버지-아들, 남편-아내, 어른-아이, 친구-친구 등의 관계이다. 한 인간은 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상대에 따라서 자신의 역할이 결정되며, 어떤 역할을 맡는 상황이더라도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라는 것이 공자의 정명론이다.
모든 개인들은 무수한 역할을 가지며, 그 역할들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 사회이다. 개인이란 역할들의 집합적 총체이며 사회도 역할의 집합적 총체라는 것, 이것이 바로 정명론이 가지는 함축이다.

2.12, 덕목의 집합으로서 인(仁)
"A는 A가 되어야 한다"는 정명론은 단순한 동어반복이 아니라 현실과 이상을 나누고 현실은 이상에 접근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현실 속의 개체 (앞의 A)는 이상적인 개체 (뒤의 A)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현실 속의 개체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이상은 어디에 있는가? 공자는 그 이상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의 마음 속에 보존되어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잘 닦으면[가공하면] 이상적인 개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A가 `A답게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주로 말한다. 즉 `이러 이러하게 하면 A가 될 것이다' 혹은 `A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라'는 긍정 판단 형식의 문장이 『논어』의 주를 이룬다. A가 A답게 되기 위해서는 마음 속에 보존되어 있는 A (이상으로서 A)를 계발해야 한다는 것, 즉 덕을 쌓아야 한다고 공자는 본다.
이러한 정명론이 인간의 덕, 즉 마음의 능력8)의 문제로 나타난 것이 공자의 인(仁) 사상이다. 주자에 따르면 인(仁)이란 `사랑의 원리, 근원(愛之理)'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능력(心之德)'을 의미한다.9)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가진 가장 중요한 능력이며, 이 능력을 완전히 실현시키면 그 사람은 완벽한 인격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인(仁)은, 공자에 있어서는 `사랑함'과 `완벽한 인격'을 의미한다.
사람이 모여 살기 위해서는 그 모이는 결집력으로서 개체들 간에 하나의 근원적인 사랑(仁)이 있어야 한다고 공자는 본다. 이런 사랑이 있을 때 인간은 사회(모듬살이)를 이룰 수 있다. 혹은 최소한 개인들 사이에 적개심은 없어야 한다. 공자는, 이런 근원적인 하나의 사랑이 없어지고 각개인들이 각자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여, 이해가 상충되면 아들도 아버지를 죽이고 신하가 임금을 몰아내기까지 했던 난신적자(亂臣賊子)의 사회가 당시의 춘추 시대라고 한다.
정명론으로 볼 때 개인은 무수한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이 역할의 수행은 하나의 근원적인 사랑(仁)의 다양한 표출이다. 한 개인이 아들의 입장에 있을 때 그 사랑은 아버지에 대해서 효라는 사랑으로 나타나며, 신하의 입장에 섰을 때는 임금에 대해 충이라는 사랑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남편, 형제, 친구 등등 모든 역할 수행은 결국 하나의 근원적인 사랑의 다양한 표출이다. 또한 충효 등 역할 수행에 따른 덕목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덕목이 인(仁)에 포함된다. 역할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는 것이 지(智)이며, 그 행동 방식이 예이며, 그렇게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용(勇)이다. 이렇게 볼 때 인은 모든 덕을 다 포괄한다. 그 모든 덕을 다 실현하면 [하나의 근원적인 사랑을 어떤 역할에서도 다 실천하면] 그는 인자(仁者)가 되며, 인자는 그런 모든 덕을 다 구현한 자이다. 곧 완벽한 인격을 갖춘 자이다. 이와 같이 볼 때 인(仁)의 이론은 내적인 마음의 문제를 다루고 정명론은 외적인 행동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서로 표리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공자는 인에 대해 묻는 제자들에게 사람에 따라 다르게 대답했다. 공자는 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내가 무엇을 보충하면 완벽한 인격자가 될 수 있느냐로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질문자에게 부족한 점은 부추켜 올려 주고 지나친 것은 깎아내려 준 것이 그 대답이었다. 그렇게 과부족을 제거하면 완벽한 인격자, 즉 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공자의 견해이다. 완벽한 인격자(仁者)가 된다는 것은 그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들을 완벽히 수행할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을 갖춘다는 말이 된다. 공자가 보건대 덕이란 `찬란히 문채가 나는 것(文質彬彬)'이다. 이것은 잘 개발되어 아름답게 된 것을 말하며, 원목(質)을 잘 가공하여(文) 빛나는 예술 작품(彬彬)을 이룬 것이 완벽한 인격자로서 인자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옹야 16) 나아가 마음만이 그런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몸까지도 의젓하고 윤택하게 된다고 한다.10)

2.13, 충서(忠恕)
정명론은 다른 한편으로는 충서의 이론으로 나타난다. 충이란 증자가 말하는 "남을 위하여 마음을 씀에 진심(忠)을 다하지 않았는가"(학이 4)의 충을 의미한다. 남을 대하는데 진심을 다하는 것이다. 서(恕)란 "남이 나에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나도 남에게 베풀지 말라"(위영공 23)라는 부정적인 표현과 "내가 서고 싶거든 그 점에서 남도 세워 주고 내가 이루고 싶거든 그것을 남도 이루게 해 주라"(옹야 28)는 긍정적 표현을 모두 포괄한다.11)
남에 대해서는 자기의 진심을 다하되 그 방법으로서의 원리를 채택하라는 것이 충서의 이론이다. 즉 "자기가 자식들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어버이를 섬기고, 자기 신하들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임금을 섬기며, 벗들에게서 바라는 마음으로 먼저 벗들에게 베풀어 주라"(중용 13장) 이것은 다시 말해서 내 아들이 나에게 했을 때 기분 나쁜 행동을 나도 아들의 입장에서 나의 아버지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임금, 벗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것이 서(恕)이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언제나 민감하게 가져서, 남을 헤아리는 동정(同情;sym-pathy)의 마음을 갖는 것을 충이라 할 수 있다. 이 동정심은 `사랑함'으로서 인(仁)의 한 측면이다. 한 개인은 역할의 집합체이므로 짝을 이루는 역할(예컨대 아버지-아들)의 양쪽을 다 맡을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상대가 나에게 바라는 것을 감정이입(感情移入)으로 헤아려서 행동할 수 있다. 이것은 정명론의 또 다른 한 측면이다.

2.14, 충서 이론의 변용 ; 충서 이론은 맹자에 오면 약간의 변형을 거친다.12)
2.141 ; 맹자 양혜왕 편에 의하면 임금은 백성에 대해서 같은 인간으로서 동질성을 느껴야 한다고 한다(감정이입) 임금 자신이 여자를 좋아하면 백성도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미루어 알아서 그들을 결혼시킬 것이며, 임금 자신이 배부름을 원하거든 백성도 그러하므로 먹고 살게 해야 하며(양혜왕 하 5),임금이 음악을 좋아해서 즐기거든 백성도 즐기게 해야 한다.(양혜왕 하 1) 자신이 임금인 줄만 알고 같은 인간인 줄 모를 때 정치적인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질성을 확보할 때 그의 행동은 정의롭고 공평(大公無私)하지만, 그 동질성을 망각할 때 그의 행동은 사사로움(私欲, 私心)에 의한 것으로 사회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자신(己=私欲)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고 한다"(안연1)고 한다. 이는 정명론의 중요한 한 측면으로, 유가의 공평성 혹은 사회 정의의 이론의 출발점이 된다.
2.142 ; 이 충서론을 맹자는 더 밀고 나가, "나의 부모를 사랑하고 난 뒤에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난 뒤에 만물을 사랑한다"(진심 상 45), 혹은 "우리 집 노인을 노인답게 모시고 그 마음이 남의 집 노인들에게까지 미치게 하고, 우리 집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대접하고 그 마음이 남의 집 어린이들에게 미치게 하라"13) 라는 가족주의에 근거하여 그런 사랑이 미치는 범위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이는`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는 수양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며, 이웃보다는 자기 가족을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인간의 마음에 근거해서 가족주의를 옹호하는 이론이다. 또한 임금은 그러한 방법으로 천하를 하나의 가족으로 대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천자가 자기의 친척을 제후로 봉하고 제후는 또 자기의 친척을 대부로 봉했던 주(周)의 종법제(宗法制)적 봉건제에 근거한 것이다.

2.15, 개인과 사회의 조화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정명론은 그 바탕에 역할들이 얽혀 있는 것으로서 `사회'의 질서를 옹호하는 이론이다. 정명이 완벽하게 실현된 사회의 이미지를 공자는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임금)이 제자리에 있고 여러 별들이 그것을 중심으로 도는 것과 같다"(위정 1)는 것에서 본다. 이러한 모습의 사회는 모든 이름들이 제자리를 찾아 스스로 제 몫(기능)을 다하여 질서와 조화가 이루어진 사회이다. 그러므로 순임금은 무위(無爲)하여 다스릴 수 있었다. "그는 대체 무엇을 했는가! 자신을 공손히 하여 남면(南面)했을 따름이다"(위영공 4) 모든 개인들이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다할 때 전체 사회에서 보이는 질서와 조화를 공자는 `무위'라고 표현한다. 도달하는 과정은 다르지만 사회의 궁극적인 이상이 `무위의 상태'라고 하는 것은 공자나 노자나 다 마찬가지이다. 공자의 경우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서 주로 마음의 능력을 계발하는 방식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마음의 능력이 완벽하게 계발되었을 때 그 개인은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지 않는'(위정 4)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스스로 그러한(自然)' 단계이며 자유인의 경지이다. 그리고 이점[自然]은 노자도 마찬가지로 가지는 이상이다. 공자의 정명론은 사회, 즉 규범과 규칙 (名)에서 출발하여 그 규범을 초월하는 단계[自然 혹은 자유]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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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무 명 론
노자 도덕경의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사고 방식은 대립되는 것의 공존이라는 생각이다.
예컨대 "천하가 다 아름다움이 아름다운 줄 알지만 그것은 추악함이 있기 때문이다" (2장), "현자를 높이지 말아서 백성으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하라"(3장),14) "회오리 바람은 하루 아침을 불지 못한다"(23장),15) "적으면 얻고 많으면 어지러워진다"(22장), "덜어서 보탬이 되고"(42장), "화여! 복이 기대어 서 있는 것이로다"(58장),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진실하지 않다"(81장), "함이 없음을 하고 일 없음을 일삼고"(63장) 등등.

2.21, 명(名) 부정의 논리
A = A 라는 논리는 공자의 정명론에 대한 비판이다. 공자의 경우 `A는A 이어야 한다'고 하여 현실의 것과 이상적인 것을 분리하고 현실의 것을 이상적인 것에다 일치시키려 한다. 공자에 있어서 이름(名)은 영원 불변하는 진리이며 정의이며 보편자이며, 현실적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이 기준이라는 점에서 맹자는 "한 깡패 주(紂)를 죽인 것이지 임금을 시해한 것은 아니다"(양혜왕 하 8)라고 하여 평가적16) 혹은 혁명적 정명론을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는 이상[名]에 의한 현실 부정이 공자식의 마음 수양이라는 점진적 개량을 넘어 서서 파괴적 혁명적 수준에까지 이른 것이다.
노자는 이상적인 것으로서 불변의 기준인 이름을 부정한다. 예컨대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참된) 도가 아니고,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이름은 참된(영원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1장)17) 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군군 신신(君君 臣臣) 의 논리에 대한 반박이다. 인의예지 등 유가가 주장하는 도는 참된 영원한 도가 아니다. 또 공자가 말하는 `임금다움',`신하다움' 등의 이상으로서의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임금이라 할 수 있는 임금, 신하라고 할 수 있는 신하(君可君 臣可臣)'는 `영원하고 참된 임금이나 신하(常君 常臣)'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名可名'의 名은 함수에서의 x, 즉 변수로 보면 된다. 거기에 군, 신, 부, 자 등을 대입할 수 있다.
공자에 의하면 인의 등을 갖추면 그는 임금다운 임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자가 볼 때 그것은 참된 임금이 아니다. 예컨대 전성자(田成子)는 신하로서 임금을 죽이고 왕이 되어 그에게 불복하는 사람들을 법으로 다스리고, 충효 인의 등을 지킬 것을 강조했다. 이는 그 나라 뿐만 아니라 인의예지 등의 이념과 법률 제도까지 훔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아가 인의예지를 사람들에게 강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앞장서서 지키려 했다. 따라서 그는 인의예지 등의 법도를 잘 갖춘 사람으로 임금다운 임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를 참다운 임금이라 할 수 있는가? 전성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도척이 도둑질을 하는데도 인의예지가 있어야 한다.

"방안에 감추어 둔 것을 미루어 아는 것이 예지(聖)이고, 앞장 서는 것이 용(勇)이고, 맨 뒤에 나오는 것이 의(義)이고, 가부를 미리 아는 것이 지(知)이며, 고르게 나누는 것이 인(仁)이다. 이 다섯가지를 갖추지 못하고 도둑이 된 자는 천하에 없다" (장자 거협편)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이면서 영원 불변하는 기준인 이름(名)이 현실(實)을 완벽하게 규제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현실은 오히려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이름(이념)을 이용하는 무리들로 차 있다. 따라서 이름은 현실의 한 측면만을 규정할 뿐이다. 공자가 보는 시각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그것을 규율하는 이름이 있으며 그 이름은 모든 사물에 필연적으로 부과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자가 보건대 이름이란 거기에 부과된 우연적인 것에 불과하다. 공자는 이름을 중심으로 하여 현실 속의 개체를 보는데 비하여, 노자는 `이름'이 가진 영원 불변하는 기준 혹은 이상이라는 점을 배제하고 이름(이념)18)의 위치가 현실적으로 어떠한가를 본다. 즉 현실을 중심으로 하여 이름을 살펴본다. 이렇게 볼 때, 하나의 이름(A)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과 반대되는 것(~A)이 있으며, 이는 현상 세계의 본질적인 성격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A 와는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법령이 더욱 엄하게 되면 도적도 더 많이 나타난다"(57장) 법을 제정하는 것은 본래 도적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정명론 식으로 생각하면 법을 더욱 엄격하게 집행할 때 도적은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법이 많고 엄해도 범죄자는 교활한 꾀와 탐욕으로 그 법을 피해 가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따라서 법과 범법(도적)은 같은 근원에 있으며, 대립되는 것이 공존하는 것은 현상세계의 근본적인 성격이라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나아가 노자는 이름이 필연적인 것이 아니 듯이 탐욕과 꾀와 같은, 이름을 부정하는 요소도 현상 세계에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천지(天地)에는 인(仁)이 없다. 따라서 만물을 추구(芻狗; 제사 때 쓰고 버리는 짚으로 만든 개)로 대한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다고나 할까! 비었으나 다하지 않고 움직일수록 더욱 사물이 생겨 나온다"(5장) 세계에는 인 등의 이념이 본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氣)가 모이고 흩어짐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이 마치 풀무에서 바람(氣)이 나오는 것 같으며, 그 과정에서 생겨났다 없어지는 만물은 제사 때 한번 쓰여지고 버려지는 풀 강아지와 같다. 자연의 필연적인 변화만을 보는 이런 자연주의적인 세계관에서 볼 때, 인간의 탐욕과 꾀는 이념(이름)과 같은 뿌리를 가진 것으로 문명 사회의 산물일 뿐 자연에 원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색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태어난) 눈을 멀게 하고, 오음(五音)은 인간의 귀를 먹게 하고, 오미(五味)는 인간의 입을 상하게 한다"(12장) 따라서 통치자는 "그 마음은 비우되 그 배는 채우게 하고, 그 의지는 약하게 하되 그 뼈는 튼튼하게 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항상 앎도 욕심도 없게 하고, 지자(智者)로 하여금 감히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3장)
이렇게 볼 때 세계의 본래의 모습은 아무런 개념 규정이 없는 것[無], 개념 규정을 받아 들일수 있는 것[樸], 혹은 물질적인 기[氣]이다. 이것들은 모두 개념 규정[名]을 받아 들일 수 있는`가능성'을 의미한다.19) 그러므로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초이고 유명(有名)은 만물의 어미이다." (1장)

2.22, 사회와 역사의 분석
이와 같은 노자의 이름 부정론[無名論]은 탐욕과 이기심에 의한 갈등과 투쟁이 극심했던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면서 동시에, 그 사회적 혼란을 부정하고 이념에 의해 새 질서를 수립하려고 했던 공자 등의 시도에 대한 회의이며 비판이다.
공자의 동일율에 의하면 이름은 현실에 완전히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노자에 의하면 이름은 현실의 일부만을 규정할 뿐이다. 그 나머지는 ~A로서 엄연히 존재한다. 노자는 대립이 공존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 동일율에 근거한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일상적인 사람들은 A 와 ~A가 공존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A 쪽으로만 나간다. "천하는 모두 아름다움이 아름다운 줄만 알고 그것이 추악함을 동반함을 알지 못하며, 선(善)이 선함만 알고 그것이 불선(不善)을 동반함을 알지 못한다"(2장) 정명론이 바로 그런 것이다.
"무릇 예(禮)란 충신(忠信)이 박약한 데서 나온 것으로 혼란의 시작이다" (38장), "큰 도가 폐해 없어지니 인의가 있게 되고, 지혜가 나오니 큰 거짓이 있게 되었다. 육친(六親)이 불화하니 효와 자(慈)가 있게 되고, 나라가 혼란하니 충신이 있게 되었다"(18장) 예나 인의 충효 지혜 등은 모두 사회의 무질서를 극복하기 위하여 제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상(名)을 제시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 그만큼 큰 혼란이 있다는 말이 되며, 반대로 그런 이념이 제시되면 그것에 의해서 사회는 더욱 혼란하게 된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이념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위(有爲)함(A)으로서 사회를 구제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 유위에 반대가 되는 것(~A)이 그것에 동반됨을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유위에서 혼란이 가중되는 것을 A 와 ~A의 상승(相乘)적 작용(악순환)이라 한다면, 노자는 그것을 치유하기 위하여 A 와 ~A의 상강(相降)적 작용을 제시한다. [이것을 노자는 무위(無爲)라 한다.] 즉 노자는 그 대립의 공존을 해결하기보다는 해소하려 한다. 지혜나 인의, 법령, 세금 등을 없애면 그것에 대립되는 큰 거짓, 불화, 도적, 백성의 굶주림 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무(無)'의 범주에 의해 `유(有)'의 범주를 해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조건문으로 나타낼 수 있다.20)

1. `몸'이 있으면(有`身')----`환난'이 있다(有`患')
`몸'이 없으면(無'身')----`환난'이 없다(無`患') 13장
2. `지혜'가 있으면(有`智慧')---`큰 거짓'이 있다(有`大僞')
`지혜'가 없으면(無`智慧')---`큰 거짓'이 없다(無`大僞') 18장
3. `법령'이 있으면(有`法令')---`도적'이 있다(有`盜賊')
`법령'이 없으면(無`法令')---`도적'이 없다(無`盜賊') 57장
4. `스스로 자랑함'이 있으면(有`自伐')--`공이 없음'이 있다(有`無功')
`스스로 자랑함'이 없으면(無`自伐')-`공이 없음'이 없다(無`無功') 22장

이는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K1; 有(A)----有(A) 대립자의 상승적 악순환
K2; 無(~A)----無(~A) 대립자의 상강적 해소
노자는 K1을 유위(有爲)의 과정이며 혼란의 길이며 문명화의 과정이고, K2를 무위(無爲)의 과정이며 문명의 구속과 혼란을 치료하는 자연 상태로의 길이라고 본다. K1은 유위이고 K2는 무위이다. K2가 비록 혼란을 치료하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무위(아무런 행위함도 없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노자는 무위를 유위하라고 한다. 성인은 "무위를 일삼음(無爲之事)에 처하며 말없는 가르침(不言之敎)을 행한다. 만물을 만들되 지배하지 않으며, 생산하되 소유하지 않으며, 이루되 자랑하지 않으며, 공이 이루어지되 그것에 거하지 않는다"(2장) 만들되 지배하지 않고 생산하되 소유하지 않는 것 등은 정명론이 가정하는 사회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문명화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무위를 일삼는 것이다. 이를 노자는 "학문을 하면 날마다 늘어나고, 도를 하면 날마다 줄어든다. 줄이고 또 줄여서 무위에 도달한다. 그러면 함이 없어도 되지 않는 것이 없다"(無爲而無不爲) (48장)고 한다. 이렇게 하면 인간의 마음은 근원인 본성의 고요함으로 돌아가고, (16장) 사회는 문명화되기 이전 상태인 원시 시대로 복귀하게 된다.(80장) 노자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제거하는 입장에 서 있으므로 문명 사회가 추구하는 남성다움(雄)·강함(强)·굳셈(剛)을 부정하고 여성다움(雌)·부드러움(柔)·약함(弱)을 주장하며, 결국은 이것의 극치인 허(虛)·정(靜)·무(無)인 도(道)의 세계로의 복귀를 주장한다.
노자의 체계는 대립이 공존하는 현실 세계와 그런 대립이 없는 도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도의 세계를 한편에서는 사변적으로 분석하여 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해석한다. 사변적으로 분석 제시된 도의 세계는 허·고요함·무로서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이며, 형체가 없는 형체, 모습이 없는 모습이며, 황홀한 것이며(14장), 오묘하고 또 오묘한 것이다(1장). 역사적으로 해석된 도는 원시 상태이다. 원시 시대는 사변적으로 제시된 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문명 사회의 언어가 없으므로 무명(無名)이며 문명사회의 행위가 없으므로 무위이다. 여기에서 부터 혼란과 억압이 증가되어 가는 문명의 과정을 노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최상의 정치는 백성이 통치자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통치자를 사랑하여 기리고, 그 다음은 통치자를 두려워하고, 그 다음은 통치자를 업신여긴다"(17장) 이 마지막은 통치자의 학정에 견디지 못하는 단계이다. 이것이 당시의 사회였을 것이다. 이것과 대비되는 최상의 사회를 노자는, 구성원들이 평생동안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범위 안에서 살며 문자도 무기도 수레도 필요없이 무지무욕하게 사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사회라고 한다.(80장) 이는 토지 공유제에 기초한 공동 생산 공동 분배의 원시 씨족 공동체 사회이다. 여기에서 부터 역사는 사유재산제에 근거한 자사다욕(自私多欲)으로 대립 투쟁한 춘추 전국 시대로 나아간 것이다.
노자의 당시 사회에 대한 분석은 확실히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선 지혜를 보여 준다. "낮은 수준의 사람들은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크게 웃지 않는다면 도라고 할 수 없겠지" (41장) 그러나 현실을 대립적 요소들의 공존으로 파악한 것이 지혜의 차원을 넘지는 못한다.

2.23, 명(名) 부정과 힘의 논리
맹자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은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하십니까?"이다. 맹자가 보건대 사람들은 인의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므로 만승(萬乘)의 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그 부하인 천승의 나라이다. 이것은 유가의 근본적인 입장으로, 인의 등의 명(名)을 실천함으로써 사회를 파괴하는 사적인 것(私利 私慾)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자는 그 이념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로 가득찬 것이 현실이라고 본다. 유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상승(相乘)적인 대립은 결국 이념(名)을 이용하여 각자의 욕망을 채우는 힘의 싸움에 불과하다. 유위의 장(場)인 문명화된 사회라는 것이 그러한 힘들의 대결이라고 보는 것은 정명론을 부정할 때 이미 함축된 것이다. 이념의 절대성이 부정되면 결국 남는 것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자기 주장을 하는 세력들 뿐이다. 노자는 근본적으로 이런 힘의 싸움을 반대한다. 그는 이런 힘의 대결의 극단인 전쟁을 비판한다. 무릇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도구이니 군자가 쓸 것이 못된다. 부득이해서 쓸 경우 악독한 마음을 품지 말고 담담한 마음으로 하라. 전승을 자랑하는 자는 살인을 즐기는 자라 하겠다. 대저 살인을 즐기는 자는 뜻을 천하에 얻을 수 없다 (31장) 포악(强梁)한 자는 제 명에 죽지 못한다 (42장)
이렇게 '강한 힘'을 비판하면서도 노자는 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21)

상대를 쪼그라들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상대를 펴 주고
상대를 약하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상대를 강하게 해 주어야 하며
폐지시키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일으켜 주어야 하며
장차 빼앗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에게 주어야 한다 (36장)
그러므로 일은 혹 덜어서 보탬이 되고, 혹 보태어서 손해가 된다 (42장)
휘어지면 도리어 온전하고, 구부러지면 도리어 곧게 뻗고, 적으면 얻고, 많으면 미혹된다.(22장)

이와 같은 것은 A와 ~A의 공존을 힘의 역학관계로 파악하여, 상대를 약하게 하려 할 때 무조건 힘으로 밀어 붙여서는 안 되고[有爲] 그 힘의 관계를 잘 이용하여 통제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위(無爲)이지만 무불위(無不爲)가 된다는 것이다. 노자는 현실을 이념의 측면이 아닌 힘의 측면에서 본다. 현실은 힘이 얽혀 있는 것이며 그 힘의 구조를 이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구조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은 '부드러운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포정(포丁)이 소를 잡을(解牛) 때 두께없는 칼날로 뼈 사이의 넓고 넓은 틈을 찌른다는 것과 같은 것이며 노자의 처세술일 것이다. 포정의 칼날은 두께가 없으므로 뼈 사이의 틈이 아무리 좁은 것이라 할지라도 넓은 것이다. (『장자』 「양생주」) 마찬가지로 세상 일은 아무리 어렵고 안 될 것 같아도 그 일을 힘 안들이고 매끈히 해낼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일 것이다.
노자가 이념을 부정하고 현실을 세력간의 갈등 관계로 본 것은 법가와 같다. 그러나 법가는 왕을 중심으로 국가의 모든 힘을 집중시키고 힘을 배양하여 그 힘으로 `함이 없어도 되지 않음이 없음(無爲而無不爲)'을 이루려 하지만 노자는 그런 힘의 관계를 부정한다. 노자는 문명 자체를 비판하고 원시 사회로 돌아가려 했기 때문이다. 법가의 대표적 인물인 한비자는 노자와는 달리 남성다움, 강함, 굳셈의 입장에서 노자의 무(無)를 받아들인다. 노자의 대립의 해소책인 `무위를 유위함'은 위에서 처럼 '부드러운 힘'의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한비자는 바로 이 점, `무(無)로서 유(有)를 제어한다(以無制有)'는 것을 왕의 통치술의 핵심으로 받아들인다. 왕은 무가 되고 신하는 유가 되어야 한다. 신하가 보는 왕은 무(無), 즉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고, 왕이 보는 신하는 유(有),즉 환하게 알아 볼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권력 관계 속에서 왕은 신하를 부릴 수 있다. 만일 그 관계가 반대로 되면 왕은 신하에게 조종당하게 된다. 이는 병법(兵法)에서 나와 적군이 각각 무와 유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과 똑같은 원리이다.
여기에서 무와 유는 각각 어두움과 밝음으로 비유될 수 있다. 밝은 데서 어두운 데를 보면 잘 안보이지만 어두운 데서 밝은 데를 보면 잘 보이는 것과 같다. (한비자 揚각) 또한 한비자는 신하는 유위(有爲)하고 왕은 무위(無爲)해야 한다고 하여 왕이 신하를 부리는 기본 원리로 채택한다.

3. 맺 는 말
공자는 이념(名)의 힘에 의해서 질서있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구성원은 각자가 가진 역할들을 완벽하게 수행해야 한다. 역할의 완벽한 수행을 위하여 사람들은 인의 충서 등의 덕목을 닦아야 한다. 덕목의 수양을 통하여 모든 개인들이 완벽한 인격을 이룰 때 역할의 집합체로서 사회 체제는 각 개인들에게 내면화가 되며, 이렇게 되면 각 개인들이 마음먹은 대로 해도[從心所慾 不踰矩] 그 사회 전체는 '북극성을 뭍 별들이 에워싸고 도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다. (「위정」 1) 여기에는 동일율에 근거한 정명론적 사고 방식으로 일관되어 있다.
노자는 문명 사회를 탐욕과 이기심 및 이를 정당화시켜 주는 이념의 산물이라고 본다. 이념이란 현실에 우연적으로 부가된 것이다. 현실이란 이기심으로 이념을 이용하는 자들이 대립 투쟁하는 장이다. 이를 노자는 대립의 공존이라는 논리로 분석하고, 그런 대립이 없는 원시 사회로의 복귀를 꿈꾼다. 그는 무명(無名)을 주장하므로써 정명으로 대표되는 사회 체제를 부정하며 인(仁)으로 대표되는 마음의 덕목들을 부정한다. "그 마음은 비우되 그 배는 채우라"(3장)는 머리를 중시하는 공자에 비해 배(腹)를 중시하는 노자의 물질적인 사고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이상에서 무명론과 정명론이라는 두 논리로 공자와 노자의 사상 체계를 대비시켜 보았다. 논리의 비교를 위하여 다소 지나친 일반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명론과 정명론의 측면에서 공자와 노자의 사상은 핵심적으로 팡악될 수 있을 것이며, 이 글은 그것에 대한 하나의 시론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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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석 >
1) 자세한 것은 우노세이이찌 편, 김진욱 옮김, <중국의 사상>, 열음사, p201-208 참조.
2) 노자가 공자 이전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대표적인 견해는 호적,<중국 고대 철학사>. 이후로 보는 것은 풍우란,<중국 철학사>,p 210 참조.
3) 사유의 실험이란, 그 당시의 혼란을 구제하기 위하여 몇가지 전제를 상정하고, 이 전제를 상식적으로 보기에 기묘할 정도까지 밀고 나간 것을 말한다.
4) 노자의 경우 꼭 공자만을 비판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묵자도 사회 이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같은 비판의 대상에 들어 갈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사유의 방식을 대조적으로 밝히기 위하여 공자와 노자를 비교 대상으로 택했다.
5) 여기의 논어 해석은 주로 주희(朱熹)의 설에 근거하고 있다. 이 글은 공자나 노자의 사상이 어떻게 그 사상을 산출한 사회 경제적 배경과 관련되어 있는가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그들의 사상이 전체적으로 일관된 한 덩어리의 체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체계를 일관하는 논리 혹은 사고 방식이 있다고 보아, 이 사고 방식의 체계적 대립성을 밝히려 한다. 이런 목 적에서 볼 때 고증학적 해석보다는 전체적인 의미의 체계적인 파악을 중시한 송대의 의리(義理; 의미)적 해석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6) '정명(正名)'은 직역하면 '이름을 바로 잡는다'는 것이다. 이름(말)을 바로 잡는 것은 언어학자들이 하는 일이다. 공자의 행적을 보면 말을 바로 잡으려 한 일도 있다. 예컨대 자로 14에 나오는 염구의 일이 그것이다. [호적, 중국 고대 철학사, 제 4편 제 4장 '정명주의' 참조]
그러나 '정명'은 단순히 그런 작업을 말하기 보다는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행동하라는 '군군(君君) 신신(臣臣)' 등을 의미한다. 즉 "자신이 가진 이름에 맞게 자신의 행동을 바로 잡는다"는 것이 좀더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7) 이하의 모든 인용은, 논어의 경우 편명과 장(章)만 밝힘. 맹자의 경우도 동일함. 노자의 경우 장을, 장자의 경우 편명만 밝힘.
8) '덕(德)'은 '득(得)',즉 부여받은 능력(power) 혹은 그런 능력에서 나오는 특징(character)을 의미한다. 예컨대 부덕(婦德)은 며느리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능력 혹은 그 역할을 다했을 때 가지는 특징이다. 따라서 Waley는 『道德經』을 <The Tao and its Power>로 번역했다. [Wing Tsit-chan 편역, 『A Sourcebook in Chinese Philosophy』 ,p 790 참조]
9) <논어 학이 2> 및 <맹자 양혜왕 상 1>의 주자 주(註)
10) 몸이 풍채 있고 의젓하게 됨을 맹자는 "그 본성이 빛을 내면 윤택하게 얼굴에 나타나고 등에 가득히 넘치며(수面앙背) 사체에 고루 퍼진다"(진심 상 21)고 하고, <대학>에서는 "부(富)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편안해진다(心廣體반)"(전 6장)고 한다.
이와 반대로 노자에 있어서 덕이란 마음에 그런 특징이나 능력을 갖추는 것이 아니다. 그는 무(無)를 갖추는 것을 덕이라 보며 나아가 이무제유(以無制有)를 주장한다. (2.23 참조) 장자의 경우 덕을 갖춘 자로서 불구자·형벌 받은 사람 등을 등장시키는데(덕충부 등 참조) 이는 유가적인 사고 방식을 야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1) '충서'에 대한 이상의 견해는 성리학자들의 주장이며, 필자는 이를 택한다. 풍우란은, 서(恕)는 부정적 표현[己所不欲勿施於人]이고 충(忠)은 긍정적 표현[己欲立而立人]이라고 한다. (풍우란, <중국철학사>, 정인재 번역, p 72-73) 즉 "남을 위해 마음 씀에 진심(忠)을 다하지 않았는가 ?"등에서 언급되는 '충'은 적극적인 면을 말하므로 '己所不欲勿施於人' 등이 '충'이라 한다. (풍우란, <중국철학사>, 상무인서관, p 99-100)
그러나 부정적 표현이나 긍정적 표현이나 다 같은 내용인데 굳이 '忠'과 '恕'로 나눌 필요는 없는 것 같다.오히려 "그에게 진심(忠)을 다한다면서 그를 깨우쳐 주지 않을 수 있겠느냐!" (헌문8), "진심(忠)으로 타일러서 잘 이끌어 주되" (안연23) 등의 말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남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 '忠'이고, 그것의 구체적인 실행 방법이 '恕'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楊伯峻, <論語譯註>, p 252 참조)
12) 정명론은 A=A라는 논리로서,'君君 臣臣' 등의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바로 잡는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그런데 이 원리는 나아가 남을 적절히 대접하는 방법으로도 제시된다. 예컨대 '어진 이를 어진이답게 대접하고(賢賢)'(학이7), '어버이를 어버이답게 모시고(親親)'(진심 상 45), '우리 집 노인을 노인답게 모시고 그 마음을 남의 집 노인들에게 까지 미치게 하고(老吾老而及人之老)'(양혜왕 상 7) 등은 모두 A=A 형식으로 타인을 대하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13) 『맹자 양혜왕』 上 7 "老吾老而及人之老, 幼吾幼而及人之幼"
14) 현자를 높여서 쓰는 것은, 능력자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들 사이의 다툼을 제거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자를 높이면 백성들이 서로 현자가 되려고 다툴 것이고, 현자도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그 권력을 이용하여 난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현자를 높이지 않는 것이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하는 방법이 된다. 이는 공자(위정19, 안연22)나 묵자(상현 편)의 상현론에 대한 비판이다.
15) 회오리 바람은 거세게 분다. 보통 사람들은 힘이 센 것이 오래 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세게 불기 때문에 회오리 바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16) 이름(名)은 자기가 행동하는데 기준이 되며 동시에 자기와 남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다만 임금이 신하를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나, 신하가 임금을 평가하고 혁명까지 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맹자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이는 '親親' '賢賢' 등 남을 대하는 원리로서 정명론(주 12 참조)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평가의 측면이 강조된 것이 법가의 형명론(刑名論) 혹은 신하 통제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7) 이 구절에 대해서는 보통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고 이름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로 번역한다. 이럴 경우 '도'란 황홀하고 오묘한 형이상학적인 실체가 되어 버린다. 필자는 노자를 정명론과 대비시켜 사회 이론으로 파악하고자 하므로 그와 같이 번역했다.('도'에 관한 해석은 2.22 끝 부분의 '사변적 분석'과 '역사적 분석' 참조)
18) 명(名)은 이름, 명분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명분이란 그 사회가 받아들이는 이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명'을 이념이라고도 번역한다.
19) 아무런 규정이 없는 것은 규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 능력'이 있으며, 이를 노자는 '통나무 원목(樸)'으로 이미지화 한다.[이는 공자가 말하는 '文質'에서 '質'과 비슷하다] 이는 '임금-신하' 혹은 '아군-적군'의 관계에서 아군은 아직 정해진 바[규정됨]가 없으므로 적군이 아군을 어떻게 파악할 수 없고, 정해진 바가 없으므로 아군은 언제든지 필요한 방향으로 정하여 행동하고 공격할 수 있는 그러한 의미에서의 `가능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무규정성'에서 나오는 `파악 불가능함'과 `변화 가능성'은 무(無)로서 유(有)를 제어하는데 핵심적인 요소이다. (2.23 참조)
20) 후외려, 조기빈, 두국상 저, <중국사상통사> 제1권,p 260-261.
21) 이와 같은 것은 공자의 충서 이론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충서론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서로 베푸는 일치 순응 조화의 관계를 강조하는데 비해, 노자는 인간들 사이를 욕망을 가진 자 끼리 서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적대적 혹은 대립적 관계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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