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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多夕 류영모 선생님 - 1년뒤 나 죽는다

작성자노자 善|작성시간06.05.01|조회수104 목록 댓글 0
류영모는 52살에 구경각을 이루고부터 바로 널(棺) 한 감을 사서 밑 칠성판만 방안에 들여다 놓고 낮에는 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고 밤에는 그 위에서 잠을 잤다. 그러니 무덤 속에서 사는 고려장 살이나 다름이 없었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우리는 날 때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 형무소에서 죄수를 사형집행하는데 죄수들을 사형집행장에 데리고 와서 죄수가 모르는 결에 서있는 마루청이 떨어지면 목이 졸려 죽게 된다. 우리도 그와 같이 마루청이 떨어지지만 않았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그러한 형편에 있다. 이 사실을 잊으면 쓸데없는 잡념에 시달리고 욕망에 끌려다니고 교만에 빠진다. 사람은 죽음을 가깝게 생각할 때 생각이 깊어져 얼의 나라와 뚫린다.”(『다석어록』) 고 하였다.
  류영모는 하루살이(一日一生)로 살았다. 예수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태 6:34)라고 말한 것도 하루살이를 하자는 것이다. 이미 자아(自我)로는 죽었는데 그리하여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1년 뒤에 죽는다는 말은 사실은 쓸데없는 소리였다. 그런데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은 죽음을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깨우쳐 죽음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였다.
  1956년 4월 26일에 죽는다고 1년 전 서울 YMCA 연경(硏經) 모임에서 선언하였다. 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류영모는 깜짝 놀라게 하고자 하는 일이었다. 1956년 4월 26일을 죽는 날로 잡은 것은 김교신의 죽음과 관계가 있다. <성서 조선> 발행인 김교신은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조국의 광복을 못 본체 1945년 4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나이로 보나 신체로 보나 류영모가 죽었으면 죽었지 김교신이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김교신은 류영모보다 11살 아래인 44살이었다. 그리고 김교신은 체격이 건장하였다. 양정고보의 지리교사였지만 마라톤 선수 손기정을 지도하였다.
  죽음 공부를 하여온 류영모에게도 김교신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부음(訃音)을 듣고서 자신의 죽을 날을 더듬어 보았다. 김교신이 자신보다 11년 뒤에 왔는데 먼저 갔으니 자신은 11년 뒤에 죽을 것인가. 이렇게 하여 1956년 4월 26일이 죽을 날로 정해진 것이다. 1945년 4월 25일에 정한 사망가정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가 10년 지난 1955년 4월 26일에 사망가정일을 선포한 것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잠시 그런 생각을 하였다가도 10년이 지나면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류영모는 잊어버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공개하였다. 그만큼 언제나 죽음을 잊지 않고 살았다는 증거인 것이다.
  류영모가 죽음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키에르케고르가 죽음을 잊지 않았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류영모는 죽음에 자유(초월)하는 사람이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데 3가지 유형이 있다. 연애를 하다가 기쁨으로 시집을 가듯 죽는 사람, 또 중매 결혼을 하여 서먹서먹하지만 불안 반 기대 반으로 시집가듯 죽는 사람, 마지막으로 보쌈 당해 시집가듯 억지로 죽는 사람이 있다. 이왕이면 사랑하는 님에게 시집가듯 죽어야 한다. 하느님은 진·선·미한 영원한 님이시기 때문이다. 물질의 개체에서 성령의 전체로 돌아가는 만큼 기쁘고 영광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류영모가 실제로 세상을 떠난 날은 1981년 2월 1일로 아흔 한 살을 살았다. 류영모가 사는 동안 많은 인재(人材)들을 만났다. 춘원 이광수·육당 최남선·호암 문일평·위당 정인보 등이 류영모의 절친한 문우(文友)들이었다.
  그리고 함석헌·김교신·류달영·현동완·인현필·김흥호·염낙준·김정호 등이 그를 스승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류영모를 바로 알아준 사람은 드물었다. 아니 한 사람도 없는지 모른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죽은 사람 앞에서 통곡할 것은 이 사람도 아무도 못 만나고 갔구나. 나도 누구 하나 못 만나고 갈 건가 하는 생각이다. 누가 남의 속을 아는가. 부부 사이도 부자(父子) 사이도 서로 모르고 지낸다. 알아주는 사람 하나도 못 만나고 거저 왔다 간단 말인가.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하느님만 나를 알아주면 그만인 것이다.”(『다석어록』)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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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기천문 혜화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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