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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이야기

반우스개_‘와그(래)너_#7 <헐뜻지 마라 !>

작성자김두천|작성시간25.02.15|조회수68 목록 댓글 0
반우스개_‘와그()_#7     <헐뜻지 마라 !>

1874년 아내 코지마에게 보낸 편지에서 ‘브람스는 바하가 작곡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식으로 작곡 한다“ 고 털어놓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공공연한 자리에서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인격상의 비난을 퍼붓기까지 했다. 마이어베어의 경우처럼 유대인이라 헐뜯을 수가 없어서 브람스가 독신자라는 사실을 물고 늘어졌다. 그의 논문 「지휘에 관하여」에서 바그너는 브람스를 「내시 예술가」니 「음악의 정절수호가」라고 비웃었다.

위선의 정수」니 「그 흉악한 종파」니 하는 표현도 썼으며,<<사랑의 노래 왈츠>>를 「오페라를 꽤나 열심히 흉내낸」작품이라는 말도 했다.
이런 공공연한 혹평은 「미래의 음악에」 대한 브람스의 「선언」과 관련지어 이해해야 한다.

1870년 브레슬라우 대학교에서 브람스가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그의 학위증서에서 그가 「현시대 진지한 음악의 대가」들 가운데 첫 번째라는 표현이 나왔을 때,바그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창작과 작곡에 관하여」에서 그에 대한 노골적이고 가혹한 공격을 퍼부었다.
바그너는 “이 진지한 음악의 군주께서 오늘은 길거리의 엉터리 시인으로, 내일은 헨델의 할렐루야 가발로, 어떤 때는 유대인 차르다시 깡깡이장이로 변장하여”나타나리라고 주장했다.

바그너의 독설은 하나같이 인격모독적인 공격이었던 반면에 브람스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유일한 반격을 가하는 반사이득을 얻은 셈이 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브람스로 하여금 '바그너의 환상'을 깨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그 후 죽을 때까지 바그너를 '증오'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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