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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매혹적인 꽃향기 속에서(309) - 남한산성 노루귀

작성자악수|작성시간22.04.01|조회수163 목록 댓글 5

노루귀

 

2022년 3월 27일(일), 맑음, 남한산성

 

남한산성에도 노루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주말에나 휴일에는 차 몰고 남한산성을 찾아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차장에 만차여서 차가 빠져

나올 때까지 부지하세월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고역은 응달진 사면에 언 땅을 뚫고 힘들게 핀 노루

귀를 보는 최소한의 통과의례였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에서 몇 구절 뽑았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임금의 몸이 치욕을 감당하는 날에,

신하는 임금을 막아선 채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는 백성들이 살아남아서 사직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문장으로 발신(發身)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도 같았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이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廟堂)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엇물면서

떼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렸다. 말들의 산맥 너머는 겨울이었

는데, 임금의 시야는 그 겨울 들판에 닿을 수 없었다.

 

 

 

 

청병은 북서풍처럼 밀려왔다. 말의 산맥에 가로막혀 적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말 탄 적들은 눈보라를 휘몰며

다가왔다. 고개 숙인 김류의 머릿속에는 이를 악문 겨울 강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그 위를 땀에 번들거리며

청병의 군마들이 건너오고 있었다. 헐떡이는 말들의 허파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눈보라도 보였다.

 

경은 늘 내 가까이 있으니 군율이 쉽게 닿겠구나…….

임금의 말투는 장님이 벽을 더듬는 듯했다. 임금은 먼 곳을 더듬어서 복심을 찔렀다. 임금의 더듬는 말투

속에 숨겨진 칼의 표적이 도원수인지, 영의정인지, 김류는 알 수 없었다.

 

 

 

 

조정은 얼어붙었다. 아무도 두려움을 말하지 않았다. 침묵은 얼어서 편전 땅 밑으로 깔리고, 그 위에 언설은

불꽃으로 피어올랐다.

…… 전하, 적의 문서는 차마 읽을 수 없고 옮길 수 없는 것이옵니다. 짐승을 어찌 교화할 수 있으며, 오랑캐를

어찌 예로써 대할 수 있겠습니까. 적의 사신을 목 베고 그 머리를 국경에 효수하여 황제를 참칭한 죄를 물으시

고 대의를 밝히소서.

…… 전하, 화친을 발설한 최명길과 그의 무리를 모조리 목 베고 속히 개성으로 이어하시어 결전의 진을

펼치소서.

 

 

 

 

 

행렬은 수구문으로 도성을 빠져나와 송파나루에서 강을 건넜다. 강은 얼어 있었다. 나루터 사공이 언 강 위를

앞서 걸으며 얼음이 두꺼운 쪽으로 행렬을 인도했다. 어가행렬은 사공이 흔드는 횃불의 방향을 따라서 강을

건넜다. 눈보라 속에 주저앉은 말들은 채찍으로 때려도 일어서지 않았다.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겨우내 가루눈이 내렸고, 눈이 걷힌 날 하늘은 찢어질 듯 팽팽했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 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

다. 칼바람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눈 덮인 봉우리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산줄기들은 가까이 다가와 성을 겹으로 외호했고, 물은 동쪽으로 흘러서 성 밖 들에 닿았다. 산이 물러서며

성 안팎으로 길이 열리는 자리가 조붓했다. 들이 헤벌어지지 않아서 산과 들은 옷깃을 여미고 맞아들이는

형국이었다. 성 안은 오목했으나 산들이 바싹 조이지는 않았다. 성 안 마을을 하늘이 넓어서 해가 길었다.

 

겨울 새벽의 추위는 영롱했다. 아침 햇살이 깊이 닿아서 먼 상류 쪽 봉우리들이 깨어났고, 골짜기들은 어슴푸레

열렸다. 그 사이로 강물은 얼어붙어 있었다. 언 강 위에 눈이 내리고 쌓인 눈 위에 바람이 불어서 눈이 길게

불려갔고, 그 자리에 새로운 시간의 무늬가 드러났다. 깨어나는 봉우리들 너머로 어둠이 걷히는 하늘은 새파랬

고, 눈 덮인 들판이 아침 햇살을 품어 냈다.

 

 

 

 

 

정갈한 추위였고, 빛나는 추위였다. 말은 제 장난기에 홀려서 고삐를 당기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갔다. 말 콧구

멍에서 허연 김이 품어져 나왔다. 김상헌은 폐부를 찌르는 새벽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몸이 찬 바람에 절여

지며 시간은 차갑고 새롭게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임금이 성 안으로 들어왔으므로, 곧 청병이 들이닥쳐 성을 에워싸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갇혀서 마르

고 시드는 날들이 얼마나 길어질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고, 갇혀서 마르는 날들 끝에 청병이 성벽을 넘어와

서 세상을 다 없애버릴지, 아니면 그 전에 성 안이 먼저 말라서 스러질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

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았다. 누구나 알았지만 누구도 입을 벌려서 그 알고 모름을 말하지 않았다.

 

 

 

살받이 터 총안 앞에서 젖은 군병들이 얼어 있었다. 군병들은 도롱이를 쓴 예조판서를 알아보지 못했다. 군관이

다가가서 예판대감의 순시를 알려도 군병들은 군례(軍禮)를 바치지 않았다. 바람에 무너진 가리개들이 흩어졌

고 물 먹은 거적이 나뒹굴었다. 손에 창이나 활을 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군병들은 두 손을 제 사타구니 사이에

넣고 비비며 언 발을 굴렀다. 젖은 발을 구를 때마다 빗물이 튀었다. 땅바닥에 버려진 창들이 비에 젖어 흙에 얼

어붙어 있었다. 소나무 위로 기어 올라간 자들은 얼어 죽었는지 두 다리가 늘어져 있었다.

 

병조판서 이성구가 말했다.

― 전하, 군병의 추위가 망극한 일이오나 온 산과 들에 비가 고루 내려 적병들 또한 깊이 젖고 얼었으니,

적세가 사납지 못할 것이옵니다.

임금은 눈을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 그렇겠구나. 그래서 병판은 적의 추위로 내 군병의 언 몸을 덥히겠느냐?

병판은 하나마나한 말을 하지 말라.

 

 

 

 

용골대는 성벽 가까이 다가갔다. 따르던 철갑보병들이 용골대의 앞쪽과 머리 위를 방패로 가렸다. 성첩에 올라

간 조선 군병들은 여장 아래로 몸을 숨겼다. 성 안에서는 군호도 나팔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성 안은 재처럼 적

막했다. 햇빛을 받은 성벽은 정갈했고 여장 기와 덮개에 매달린 고드름의 대열이 영롱했다. 인기척 없는 문루에

수(帥)의 깃발이 나부꼈다.

 

용골대가 손을 들어서 후속 부대의 전진을 막았다.

― 괴이하구나. 저것이 싸우려는 성이냐?

정명수가 대답했다.

― 견디자는 것이지요.

― 견디어? 견딜 수가 있겠는가.

―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자는 것입니다.

― 저 안에 들어가서 대체 무엇들을 하고 있는 겐가?

― 안에서 저희끼리 싸우고 있을 겁니다. 견디어야 하는 놈들끼리의 싸움일 테지요.

 

 

 

 

김상헌이 말했다.

― 화친은 불가하옵니다. 적들이 여기까지 소풍을 나온 것이겠습니까. 크게 한번 싸우는 기세를 보이지 않고

화 자를 먼저 꺼내 보이면 적들은 우리를 더욱 깔보고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해올 것입니다. 무도한 문서를

성 안에 들인 수문장을 벌하시고 적의 문서를 불살라 군병들을 격발케 하옵소서. 애통해 하시는 교지를 성 밖

으로 내보내 삼남과 양서(兩西)의 군사를 서둘러 부르셔야 하옵니다. 이백 년 종사가 신민을 가르쳐서 길렀으니

반드시 의분하는 창의의 무리들이 달려올 것입니다.

 

최명길이 말했다.

― 상헌의 답답함이 저러하옵니다. 창의를 불러 모은다고 꼭 화친의 말길을 끊어야 하는 것이겠사옵니까.

군신이 함께 피를 흘리더라도 적게 흘리는 편이 이로울 터인데, 의를 세운다고 이(利)를 버려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앉은부채

 

김상헌이 말했다.

― 지금 묘당의 일을 성 안의 아이들도 알고 있는데, 조정이 화친하려는 기색을 보이면 성첩은 스스로 무너질

것이옵니다. 화 자를 깃발로 내걸고 군병을 격발시키며 창의의 군사를 불러 모을 수 있겠사옵니까? 명길의 말

은 의도 아니고 이도 아니옵니다. 명길은 울면서 노래하고 웃으면서 곡하려는 자이옵니다.

 

최명길이 또 입을 열었다.

― 웃으면서 곡을 할 줄 알아야……

임금이 소리 질렀다.

― 어허

임금은 옆으로 돌아앉았다. 달이 능선 위로 올라 내행전 마루를 비추었다. 쌓인 눈이 달빛을 빨아들여서 먼

벽이 부풀었다. 달빛은 눈 속으로 깊이 스몄고, 성벽은 땅 위의 달무리처럼 보였다. 추위가 맑아서 밤하늘이

새파랬다.

 

올괴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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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캐이 | 작성시간 22.04.01 노루귀 분포의 전국구 지도를 만드시긋네요~노루귀 꽃색깔도 산수국처럼 토질 산도에 따른 영향인가? 몰겠네요~ 한군데 여러 색깔이 피어대니~ㅠ
  • 답댓글 작성자악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4.01 ㅋㅋㅋ 노루귀에 꽂혔습니다.
    천마산 노루귀도 보고왔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캐이 | 작성시간 22.04.01 악수 천마엔 노루귀 읍든데???


  • 답댓글 작성자악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4.01 캐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지요.
    작년에 천마산 야생화 보러 갔더니 캐이 님이 그 옆에 노루귀가 있는데 보았느냐고 하시기에
    이번에는 작정하고 뒤져서 찾았기에 여기를 두고 말씀하셨구나 생각했는데. ㅠㅠ
    며칠 후에 올리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캐이 | 작성시간 22.04.01 악수 기억이 아나니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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