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는 검마산, 그 오른쪽 뒤는 백암산, 일월산 남릉 내리면서 바위지대에서
사슴이랑 이리 함께 산길을 가며
바위틈에 어리우는 물을 마시면
살아 있는 즐거움의 저 언덕에서
아련히 풀피리도 들려오누나.
해바라기 닮아가는 내 눈동자는
자운 피어나는 청동의 향로
동해 동녘 바다에 해 떠오는 아침에
북받치는 설움을 하소하리라.
돌부리 가시밭에 다친 발길이
아물어 꽃잎에 스치는 날은
푸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며
춤과 노래도 가꾸어보자.
빛을 찾아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
―― 조지훈(1920~1968), 「빛을 찾아가는 길」 전문
※ 이 시를 새긴 조지훈의 시비가 그의 생가인 일월산 남쪽 자락 주곡리 주실 마을 숲길에
있다고 한다.
▶ 산행일시 : 2017년 12월 2일(토), 맑음, 바람
▶ 산행인원 : 11명(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산정무한, 인치성, 상고대, 사계, 두루,
신가이버, 도~자, 무불)
▶ 산행거리 : 도상 20.0km(1부 13.4km, 2부 6.6km)
▶ 산행시간 : 12시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18 - 동서울터미널 출발
01 : 35 - 치악휴게소
03 : 41 ~ 04 : 30 - 윗대티, 차내 계속 취침, 산행준비, 산행시작
05 : 37 - 1,014.3m봉
06 : 30 - 일월산(日月山, △1,217.7m), 해맞이 광장
06 : 57 - 월자봉 아래, 뒤돌아 감
07 : 30 - 1,083.5m봉, 뒤돌아 감
08 : 12 - 바윗길, 전망대
08 : 37 - 안부, 일행과 합류
08 : 50 - 676.0m봉
09 : 22 - 640.5m봉
09 : 44 - 임도 삼거리 안부
10 : 10 - 655.7m봉
10 : 46 - △615.4m봉
11 : 10 - 새마을,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2 : 20 - 윗노루모기, 불향사 아래, 2부 산행시작
13 : 04 - △787.9m봉
13 : 53 - 1,010m 고지
14 : 42 - 일월산(日月山, △1,217.7m), 해맞이 광장
15 : 18 - 대관봉(1,083.5m)
15 : 35 - 윗예개봉(997m)
15 : 53 - 838.7m봉
16 : 30 - 청기저수지 위, 산행종료
17 : 36 - 봉화, 목욕, 저녁
21 : 5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
2. 오늘 두 번째 오른 일월산 해맞이광장에서
3. 쿵쿵목이 남쪽 사면에서 나뭇가지 사이 조망
4. 일월산 남릉 바위지대에서
▶ 윗대티, 1,083.5m봉, 일월산(日月山, △1,217.7m), 해맞이 광장
밤으로 산굽이굽이 돌아들어 대티골 윗대티 마을이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런 오늘밤이다. 찬바람은 세차게 불고 하늘은 맑디맑고 별은 초롱초롱 빛난다. 한껏 부푼
보름달은 일월산 월자봉 검은 산릉 너머로 금세 사라졌다. 옷깃부터 단단히 여미고 나선다.
윗대티 마을 동구 너른 주차장에 화장실까지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일월산을 오르는 일반
등산로가 있을 법한데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깊은 옹벽 아래 반변천(半邊川)을
어떻게 건너서 산기슭에 붙을까만 궁리하며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옹벽을 내리는 사다리를
찾아냈다. 징검다리로 반변천 건너고 돌무더기 딛고 맞은편 옹벽을 오른다.
농가가 나온다. 바람소리가 부조한다만 안면(安眠)에 방해될라 살금살금 뒷마당을 지나 산
속으로 들어간다. 덤불숲 뚫고 잡목 헤치며 생사면을 오른다. 우리 하는 일이 번번이 이렇다.
겨우 한 피치 올랐을까, 잡목 숲을 벗어나는가 했더니 잘난 등산로가 우리를 앞질러가는 것
이 아닌가. 아마 주차장에서 오는 길이리라. 못이기는 체하고 등로 따른다. 줄곧 오르막이다.
멀리서부터 들리는 바람소리가 거대한 해일처럼 몰려왔다 몰려가곤 한다. 세차게 부는 바람
을 뚫는 것도 여간한 고역이 아니다. 그렇게 35분을 올랐다. 선두의 몇몇 헤드램프가 왼쪽 사
면을 돌아가기에 길을 놓치고 헤매는 줄 알았는데 바람을 피해 휴식할 장소를 찾는 중이었
다. 수북한 낙엽더미에 파묻히듯 주저앉았다. 낮의 햇볕이 잔뜩 묻어있다. 포근하거니와 그
따스함이라니.
안락의자보다 더 안락한 낙엽 속에 앉아 밤하늘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열린 별무리를 바라보
는 것이 겨울 산행의 정취다. 이 산 저 산 돌아다니며 나뭇가지 끝 훑는 바람소리가 문풍지
울리는 소리로 들린다. 날이 새면 조망이 좋으렷다. 자리 박차고 능선에 오른다. 1,014.3m봉
을 넘는다. 멀리서는 성단으로 보였는데 일월산 주둔 군부대의 가로등이다. 우리 선두행렬의
헤드램프 불빛 또한 가로등으로 보인다.
완만한 오르막이다. 아까는 바람결에 환청을 듣는가, 내 귀를 의심했다. 군부대 녹음방송이
다. “여기는 군사보호구역이니 접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고 반복해서 방송한다. 일월산
해맞이 광장에 오른다. 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사실상 일월산 정상이다. 6시 3분. 너무 일찍
올랐다. 어둡다. 일출시각은 7시 25분께일 것.
일단 버너 불 피워 어묵탕 끓이고 아침요기를 한다마는 얼마쯤 버틸지 모르겠다. 산정무한
님이 그랬던가, 윗대티골 기온이 영하 4도라고 했다. 기온은 고도 100m 오를 때마다 0.6도
씩 내려간다. 일월산 정상은 1,217.7m다. 고도 700m는 올라왔다. 따라서 여기 기온은 영하
8도를 밑돈다. 더구나 칼바람은 우리를 기어코 찾아내고 보란 듯이 어지럽게 칼춤을 추어댄
다. 접근하지 말라는 반복 방송 또한 고문이다.
장장 30분을 버텼다. 도망간다. 쿵쿵하는 발자국 소리도 요란하게 쿵쿵목이를 향하여 줄달음
한다. 내 앞에 모닥불 님과 도~자 님이 헤드램프 불 켜고 간다. 어련히 갈까. 부지런히 뒤쫓
는다. 갈림길에는 선두가 여느 때처럼 교통 정리할 텐데 굳이 지도 꺼내 들여다보는 것은 시
간낭비다. 앞 사람은 뒷사람이 따라오니까 이 길이 맞는가 보다 하고 막 가고, 뒷사람은 앞사
람이 알아서 갈 거라 여기고 간다.
5-1. 여명, 일월산 해맞이광장에서
5-2. 쿵쿵목이 남쪽 사면에서 나뭇가지 사이 조망
6. 흥림산과 작약봉
7. 쿵쿵목이 남쪽 사면에서 나뭇가지 사이 조망
8. 오른쪽이 흥림산과 작약봉, 멀리 왼쪽은 맹동산
9. 검마산
▶ 새마을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가도 가도 앞이 소연하다. 조금만 쉬었다 가자 하고 지도 보
니 월자봉 아래까지 와버렸다. 셋이 1km를 더 온 것이다. 날은 밝았다. 일행들은 쿵쿵목이에
서 일월산 남릉을 내렸다. 서둘러 뒤돌아간다. 이때는 칼바람소리도 들리지 않고 춥지도 않
았다. 단숨에 쿵쿵목이까지 내달았다. 다시 일월산 해맞이 광장에 들려 첩첩 산 조망하고 싶
은 마음이 간절한데 앞서간 일행은 휴대전화 걸어 우리더러 빨리 내려오라고 재촉한다.
쿵쿵목이는 Y자 능선이 분기한다. 오른쪽이 찰당골 가는 길로 주등로다. 왼쪽은 인적이 흐릿
하다. 악수는 악수를 낳는다고 했다. 여기서도 생각없이 오른쪽 길로 잘못 간다. 들입다 한참
을 내리 쏟다가 1,083.5m봉 오르막에서 가쁜 숨 돌리며 지도를 확인해보니 가야 할 능선은
왼쪽 건너편이다. 뒤돌아갈 수에. 발걸음이 무겁디무겁다. 이제부터라도 열 걸음이 멀다 하
고 지도 들여다본다.
쿵쿵목이 오르막에 어쩌면 향긋한 손맛도 볼 겸 오른쪽 사면으로 질러간다. 너덜지대가 나오
고 아쉬운 대로 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올망졸망한 첩첩 산이 보인다. 부지런히 카메라에 쓸
어 담고 일월산 남릉에 올라선다. 소나무 숲 바윗길을 내린다. 바윗길 절벽 위가 드문 경점이
다. 울련산, 검마산, 그 뒤로 백암산이 불끈 솟았다.
바닥 친 안부. 선두 일행들이 모여 마냥 우리 오기를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다. 반갑다. 두 번
에 걸쳐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고 하니 백난지중대인난(百難之中待人難)이라 해도 엄동에
그런 대인난이 없었을 것. 입산주 탁주(해피~ 님이 덕산 명주를 보내왔다)로 목 추기고 나서
대오 갖춘다. 여태와 산행패턴이 달라진다. 나지막한 봉봉을 부단히 오르고 내리는 것이다.
676.0m봉이 첨봉이다. 가파른 오르막을 두 피치로 넘는다. 등로가 사나워진다. 인적이 뜸하
고 잡목 풀숲이 기세를 올린다. 640.5m봉 내린 안부는 임도 삼거리다. 절개지 흙 절벽을 미
끄러져 내리고 건너편 사면 잡목 숲 헤친다.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만만하지 않다. 간벌지
대 잔해 추려가며 오른다. 655.7m봉이 멀리서도 준봉이었다.
구불구불한 능선 마루금을 찾아가는 재미가 각별하다. 비록 내 선두는 아니지만 선두의 행로
를 감상하고 감시한다. 발밑에서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 또한 경쾌하다. 완만하게 내렸다가
완만하고 길게 올라 △615.4m봉이다. 정상의 키 큰 풀숲에 무덤 2기가 있다. 삼각점은 무덤
에 묻혔는지 여럿이 풀숲을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하산. 새마을을 향해 방향 튼다. 인적 없
는 지능선 우리의 길이다.
새마을. 궁벽한 산간 마을이다. 띄엄띄엄 있는 농가는 70년대 새마을운동 때 얹은 지금은 퇴
색하고 삭은 슬레이트 지붕이다. 흙벽은 헐어 폐가이거나 흉가다. 양광 가득한 갓길 너른 터
에 둘러앉아 점심밥 먹는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우리를 본다면 새마을운동 울력하다 밥 먹
는 줄 알겠다.
10. 무명봉 억새
11. 640.5m봉에서 잠시 휴식
12. 640.5m봉에서 조망
13. 작약봉 주변
▶ 윗노루모기, 불향사 아래, 일월산(日月山, △1,217.7m), 해맞이 광장
2부 산행. 이번에는 일월산을 남쪽 윗노루모
기에서 오른다. 차로 이동한다. 좁은 비포장인 농로 겸한 도로다. 차는 윗노루모기(노루모기
는 ‘노루목이’의 변성으로 보인다)까지 간다. 불향사 아래 계류 건너고 잡목 숲 헤치며 가파
른 생사면을 오른다. 일월산을 짭짤한 세 피치로 오른다. 첫째 피치, 신가이버 님이 앞장서서
견인한다. 이때는 칼바람이 봄바람이다. 시원하다. 겉옷 벗고 팔 걷어붙인다.
△787.9m봉. 삼각점은 ‘소천 456, 2004 재설’이다. 잠시 휴식한다. 그새 구슬 같은 땀방울이
고드름이 되려 하고 그만 일어난다. 둘째 피치, 수북한 햇낙엽을 헤쳐 오르기가 퍽 되다. 미
끄럽기도 하여 자꾸 뒷걸음질한다. 저기 공제선이 일월산 정상 언저리이겠지 하고 스퍼트 내
다시피 했는데 아직 멀었다. 1,010m 고지다. 셋째 피치, 딱히 능선이 없다. 넙데데한 사면을
누비며 간다. 만리발청향에 이끌려 오른다. 이윽고 새벽에 오른 등로와 만나지만 그때는 어
두웠던 터라 낯설다.
다시 일월산 해맞이 광장이다. 햇빛이 익었다. 이래서는 일망무제의 첩첩 산이 흐리멍덩하게
보인다. 일월산 정상 표지석을 배경하여 단체 기념사진 찍는다. 표지석 뒷면에는 이 고장 출
신인 이문열이 찬한 「日月頌辭」를 새겼다.
崑崙의 정기가 해 뜨는 곳을 바라 치닫다가 白頭大幹
을 타고 남으로 흘러 바닷가에 우뚝한 靈山으로
맺히니 이름하여 日月山이다.
해와 달을 아울러 품은 넉넉한 자락은 그윽한 옛 고을
古隱을 길러내고 삼엄한 기상은 거기 깃들여 사는
이들에게 매운 뜻을 일깨웠다.
세상이 평온하면 이 땅 가득 지혜와 영감의 향내를
피워 내다가도 나라가 치욕을 입으면 비분에 찬 隱士
들의 수양산이 되거나 죽기로 맞서는 志士들의 마지막
베개와 무덤이 되었다.
이제 옛 古隱은 文鄕 英陽으로 자라 새로운 천년을
마주하고 섰으니
아아, 일월산이여
그 기상 그 자태 바뀌고 다함이 없으라
우리 영양과 더불어 길이 우뚝 하라.
고은(古隱)은 영양의 고려 때 이름이다. 위 송사 중 “나라가 치욕을 입으면 비분에 찬 隱士들
의 수양산이 되거나 죽기로 맞서는 志士들의 마지막 베개와 무덤이 되었다.”라는 대목이 궁
금했다. 그 지사들이 누구일까 찾아보았다.
첫째 인물로 수은 이홍조(睡隱 李弘祚, 1595~1660)를 들 수 있겠다. 그는 병자호란 때 의병
을 일으킨 공으로 서용되어 의금부 도사, 회인 현감(懷仁縣監)을 역임하였는데 광해군 때 폐
모론으로 당쟁이 격해지자 벼슬을 그만두고 일월산에 은거해 독서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둘째 인물은 창주 조덕린(滄洲 趙德隣, 1658~1737)이다. 1725년(영조 1)에 당쟁의 폐해를
논하는 십조소(十條疏)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노론의 공격을 받아 유배되었다. 이후 고향 영
양(英陽)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셋째 인물은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 1842~1910)를 들 수 있다. 그는 1895년(고종 32)
8월에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일월산 남서쪽 자락의 납대기 마을에 있는
분암(墳菴)에 가 있으면서 다음 해까지 산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맹서하였으며, 삭망마다 분
암의 뒤에 있는 국사봉에 올라가 서울 쪽을 바라보면서 통곡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1895년
11월에 안동에서 일어난 의병 운동의 의병장이 되어 일월산에서 내려왔다가, 의병이 해산된
뒤 일월산으로 다시 들어갔다.
14. 2부 산행 일월산 해맞이 광장에서 조망, 햇빛이 너무 익어 첩첩 산이 흐리멍덩하게 보인다.
15. 왼쪽은 울련산, 오른쪽은 검마산
16. 가운데는 청량산, 왼쪽은 축융봉, 오른쪽은 문명산
17. 가운데는 축융봉, 오른쪽은 청량산
▶ 대관봉(1,083.5m), 청기저수지
오늘 일월산을 두 번 오른 것을 합하여 셈하면 오지산행에서 예닐곱 번은 올랐다. 산이란 계
절마다 다른 것은 물론이고 같은 계절에도 일기에 따라 다르고 하루 중에도 아침저녁으로 다
르니, 우리가 그리 많이 올랐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제 다시 오려마 하고 내린다. 찰당
골 쪽을 향한다. 쿵쿵목이에서 분기되는 Y자 능선의 오른쪽이다.
길게 내렸다가 잠깐 발걸음이 멈칫하게 되는 1,083.5m봉은 이정표에 ‘대관봉’이라 한다. 일
월산 정상 주변에서 내려다보면 납작하지만 베틀바위 아랫녘에서 바라보면 대관(大冠)이다.
등로는 능선 왼쪽 사면으로 났다. 윗예개봉(997m)도 왼쪽 사면으로 돌아 넘는다. 노송 어우
러진 베틀바위 지나고 한 피치 바짝 오른 838.7m봉은 오늘 산행 최고의 경점이다. 동화재 내
린 능선 너머로 청량산 연봉이 피안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 838.7m봉 북서벽을 내린다. 고도 200m를 직선거리 400m로 내린다. 평균경사도
30도에 달한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처음에는 잡목 번갈아 움켜잡으며 쭉쭉 내리는
것이 사뭇 재미났으나 암벽 밑을 어렵게 트래버스 하고부터는 정색하게 되었다. 크고 작은
돌들은 여기저기서 비산하고, 고정자일 삼아 늘어뜨린 잡목은 꺾여 부러지기 일쑤다. 게걸음
하여 낙엽 수북한 골로 간다. 엎어져 굴러도 낙엽이 안전하다. 낙엽과 사태 져서 내린다.
어렵사리 천화사를 오가는 도로에 내리고, 비로소 고개 들고 허리 펴고 걷는다. 청기저수지
위로 두메 님이 마중 나왔다.
18. 월자봉
19. 일자봉
20. 멀리 왼쪽이 문명산
21. 청기저수지 위 석비, 천화사(天華寺)의 입구이기도 하다
고려 말 고승인 나옹 혜근(懶翁 慧勤, 1320~1376)의 선시(禪詩)다.
阿彌陀佛在何方 아미타불이 어디에 있는가
着得心頭切莫忘 마음을 잡아두고 간절히 잊지 마라
念到念窮無念處 생각하고 생각해서 생각이 없는 곳에 이르면
六門常放紫金光 육문에서 항상 금빛 광명이 빛나리라
주) 육문은 천, 인,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여섯 문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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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두루(輝輝) 작성시간 17.12.06 일월산은 녹음이 오르는 5월경에 다시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일월산 첫길이 추위로 그리도 힘든지 !
미련이 남는 산행입니다.
악수형님의 산행기는 항상 후행학습입니다 !!
아무쪼록 언~~능 나으시길 !!!!!!!!! -
작성자무불(지현수) 작성시간 17.12.06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수술 잘 되어 빨리 치료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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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스틸영(김순영) 작성시간 17.12.06 ㅎㅎ 다시보니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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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산아 작성시간 17.12.06 독수리타법으로 힘겹게 써내려갔을 산행기,눈 크게 뜨고 열심히 읽었습니다. 빠른 쾌유 바랍니다^^